
한국 전통 문화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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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전통 문화는 고대부터 중국 대륙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에 따른 외연에 노출되었으며, 조선시대 시장경제가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탓에 서민 문화의 집대성[1]이 짧고 늦었다는 감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중소 국가에 비해 독특하고 풍부한 문화적 요소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근대에 식민 지배 및 6.25 전쟁으로 인해 크게 훼손되었으며, 여기에 한강의 기적, 새마을운동,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급격한 개발에 따른 전통 문화의 가치 경시, 군사 정권 시대의 문화적 억압 등으로 전통 문화 및 전통적인 가치관이 심각할 정도로 소멸하였다. 2020년대 들어서는 많이 없어졌지만 현대 한국에서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간의 단절은 여러 '한국식' 콘텐츠는 물론, 생활 양식 전반에서 관찰되며, 남아 있는 것도 '촌스럽고 유치하고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럽다' 등의 이유로 기피되고는 한다.[2]
이러한 전통 문화의 단절은 단지 대한민국에서만의 현상은 아니다. 근대화되지 않은 국가의 전통문화는 중세적 한계에 따른 악, 폐습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이러한 나라의 전통 문화는 '미개한 문화', '보수적인 문화', '가난한 문화'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흔하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근대화를 성공시킨 서구 선진국의 진보적이고 세련된 문화라 표현된다. 이 때문에 근대에 수많은 공동체의 고유 문화는 화려한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라 할 수 있는 현대 문화에 밀려 빠르게 사라져 갔고, 현재도 사라지고 있다.[3] 그러나 대한민국은 담론이 형성될 기회조차 없는 다른 빈국과는 달리 전후 폐허를 딛고 빠르게 성장하여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한 몇 안 되는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러한 과거와의 단절과 부재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다.
전통 놀이는 윷놀이 정도가 명절 때나 다루어지는 수준이다. 한복과 같은 전통 의복은 거의 입지 않으며[4] 요리만이 한국 요리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기는 하나 서양식 요리의 비중이 늘어가는 추세이며 한국 요리 중에도 현대에 들어와 새롭게 만든 것들이 적지 않다. 또한 한국 전통 음악인 국악도 인기가 줄고 있으며, 아리랑 중에서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으로 대표되는 경기아리랑의 특징적인 곡조를 제외하면 외국인에게도 내국인에게도 유명한 곡이 거의 없어 '경기아리랑' 자체가 '진부한 국가적 요소의 대표주자'처럼 여겨질 정도이다.[5] 또한 남북분단 후 냉전적 분위기에 서로가 외세에 민족을 배반한 세력으로 주장하며 서로의 이질성을 과장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다수의 북한 주민[6]이 한류를 받아들이고 남한에서는 북한 문화에 대한 정치적 선전[7]의 진실이 알려지고, 탈북민이 한식과 같은 일부 전통 문화를 복원하는 등[8] 민간 차원에서는 교류 움직임이 있으나 정치권을 중심으로는 북한 쪽을 중심으로 체제 위협을 우려하여 오히려 단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대 한국 문화를 보자면, 일단 K-POP으로 한국의 문화는 트렌디하게 유행을 앞서나가는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현대 한국의 문화에 마냥 경쟁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무국적, 탈국적성이 깊어서 모방이 쉽고 국가의 상징 브랜드로서 각인되기는 어려운 문화[9]라는 것이 문제이다. 중국이 이 점을 노리고 게속 한류 예속화를 시도하고 있다. [10]
이것의 문제점은 고유적 전통 문화 특성의 감소가 그 나라의 문화적 도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만주족 역시 16세기만 해도 동아시아 내에서 문화적 영향력이 가장 컸으며 청나라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들이 정복한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경희대학교의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이 이야기를 언급하며 한국의 현재 문화가 만주족처럼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겉모습에 집중하고 있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대중에게까지 오래도록 어필할 수 있는 전통적인 철학, 미학적 내용 또한 한류와는 별개로 추가로 재발굴 및 개발해야 한다는 것. 물론 그의 발언에 보수적인 면[11]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바로잡고 혁신으로 잇지 않는다면 문화적으로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은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통 문화의 단절은 단지 대한민국에서만의 현상은 아니다. 근대화되지 않은 국가의 전통문화는 중세적 한계에 따른 악, 폐습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이러한 나라의 전통 문화는 '미개한 문화', '보수적인 문화', '가난한 문화'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흔하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근대화를 성공시킨 서구 선진국의 진보적이고 세련된 문화라 표현된다. 이 때문에 근대에 수많은 공동체의 고유 문화는 화려한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라 할 수 있는 현대 문화에 밀려 빠르게 사라져 갔고, 현재도 사라지고 있다.[3] 그러나 대한민국은 담론이 형성될 기회조차 없는 다른 빈국과는 달리 전후 폐허를 딛고 빠르게 성장하여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한 몇 안 되는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러한 과거와의 단절과 부재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다.
전통 놀이는 윷놀이 정도가 명절 때나 다루어지는 수준이다. 한복과 같은 전통 의복은 거의 입지 않으며[4] 요리만이 한국 요리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기는 하나 서양식 요리의 비중이 늘어가는 추세이며 한국 요리 중에도 현대에 들어와 새롭게 만든 것들이 적지 않다. 또한 한국 전통 음악인 국악도 인기가 줄고 있으며, 아리랑 중에서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으로 대표되는 경기아리랑의 특징적인 곡조를 제외하면 외국인에게도 내국인에게도 유명한 곡이 거의 없어 '경기아리랑' 자체가 '진부한 국가적 요소의 대표주자'처럼 여겨질 정도이다.[5] 또한 남북분단 후 냉전적 분위기에 서로가 외세에 민족을 배반한 세력으로 주장하며 서로의 이질성을 과장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다수의 북한 주민[6]이 한류를 받아들이고 남한에서는 북한 문화에 대한 정치적 선전[7]의 진실이 알려지고, 탈북민이 한식과 같은 일부 전통 문화를 복원하는 등[8] 민간 차원에서는 교류 움직임이 있으나 정치권을 중심으로는 북한 쪽을 중심으로 체제 위협을 우려하여 오히려 단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대 한국 문화를 보자면, 일단 K-POP으로 한국의 문화는 트렌디하게 유행을 앞서나가는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현대 한국의 문화에 마냥 경쟁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무국적, 탈국적성이 깊어서 모방이 쉽고 국가의 상징 브랜드로서 각인되기는 어려운 문화[9]라는 것이 문제이다. 중국이 이 점을 노리고 게속 한류 예속화를 시도하고 있다. [10]
이것의 문제점은 고유적 전통 문화 특성의 감소가 그 나라의 문화적 도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만주족 역시 16세기만 해도 동아시아 내에서 문화적 영향력이 가장 컸으며 청나라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들이 정복한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경희대학교의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이 이야기를 언급하며 한국의 현재 문화가 만주족처럼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겉모습에 집중하고 있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대중에게까지 오래도록 어필할 수 있는 전통적인 철학, 미학적 내용 또한 한류와는 별개로 추가로 재발굴 및 개발해야 한다는 것. 물론 그의 발언에 보수적인 면[11]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바로잡고 혁신으로 잇지 않는다면 문화적으로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은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문화라는 것은 보통 수많은 인구와 막대한 사회자본을 유지하고 운용할 수 있는 거대 제국에서 급격히 발전하며, 주로 귀족층을 중심으로 사치 문화가, 부를 얻은 상인들을 중심으로 서민 문화가 발전한다. 수많은 민족과 인종이 교류하는 거대한 문화 용광로와 같은 곳에서 문화는 번창한다. 문화란 풍요로운 국토를 바탕으로 수많은 교류가 수세기 이상 이루어져야 그 안에서 중심 민족의 입맛(정치, 종교, 풍토 등)에 맞는 요소들을 취사선택, 조합하여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 자체가 거대한 대륙이나 수많은 민족의 교류거점에 존재한 국가들(이들 대부분은 거대제국이다.)에서 자연스럽게 번창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변방의 빈곤하기 짝이 없는 자급자족형 소수민족의 문화는 이들에 비해 독창성이 많이 결여되며, 따라서 그들의 지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륙의 문명권의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거대한 문화의 용광로는 말할 것도 없이 중화이며, 주변부의 약소민족 국가는 한국과 일본, 베트남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스스로 거대제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으며, 근대화 자체가 국가의 국부와 사회자본의 엄청난 증식을 가져오기 때문에 자연스래 대량 소비사회화와 대량 수출수입 행위가 이루어져 일본 스스로도 수준 높은 상업적인 문화들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문화의 대중사회적 재해석(원래 기록만으로 남아있거나, 또는 일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거나, 아예 근대에 들어와서 새롭게 창작된: 스모, 가부키, 부시도, 무예, 신토 등)이 메이지 정부의 '국풍' 정책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번창하고, 2차 세계대전 후 경제성장기 중엔 '닌자'와 '스시'로 대표되는 각종 일본문화를 개발하고 개량하여, 막대한 지출을 감수하며 전세계로 전파하는 등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렇게 150여년 이상 경과한 결과, '아 일본은 전통문화를 천여년 가까이 이어온 독자적인 문화대국이구나!' 라는 인식을 전세계에 확실하게 심어준 것이다.
한국은 이렇게 '전통적인 문화대국'과 '근대적인 문화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케이스이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은 독자적인 문화가 꽃피었는데 한국만 문화가 빈약하다'라는 생각을 쉽게 가지게 된다. 전통에 대한 대중사회의 소비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고, 급격히 서구문화의 무비판적 수용의 시대를 맞이한 '전통과 단절된' 국가들은 국민들이 '왜 우린 독자적인 문화가 없는 거야!'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분명 전통문화라는 것 자체가 한 민족국가의 정체성 확보에 있어 상당히 유의미하고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도 희망적인 점은, 기존까지 무국적성이라고 비판을 받아온 한류에서도 점차 한국 고유의 전통미가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도한 원형주의 또한 반대로 전통문화의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 적극적으로 문화를 재탄생시켜 현대 한국에 맞는 문화로 빚어내야 한다. 예를 들면 한복을 민족의 명절에만 입는 옷이 아닌 현대식으로 재탄생시켜 입는 옷 중 하나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만약 전통이라는 것을 박물관에 갇혀있는 무언가로 각인시키면 부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스파오에서 만든 생활한복을 가지고 일본 진베이를 베꼈다며 우기는 사람들이 좋은 예다. 이에 대해 그 옷을 디자인한 황이슬은 각종 자료로 적극 반박하며 일본 진베이가 아닌 한국 한복에서 따온 디자인이며 "우리는 경험한 것 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일본 여행에서 쉽게 마주할 정도로 대중적인 일본의 진베이가 한복보다 친숙해 떠오르게 된 것 같다. 한복이 하나의 패션 장르가 되어가면서 한복을 마주했을 때 한복이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인터뷰하기도 하였다.# #
그에 반해 변방의 빈곤하기 짝이 없는 자급자족형 소수민족의 문화는 이들에 비해 독창성이 많이 결여되며, 따라서 그들의 지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륙의 문명권의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거대한 문화의 용광로는 말할 것도 없이 중화이며, 주변부의 약소민족 국가는 한국과 일본, 베트남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스스로 거대제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으며, 근대화 자체가 국가의 국부와 사회자본의 엄청난 증식을 가져오기 때문에 자연스래 대량 소비사회화와 대량 수출수입 행위가 이루어져 일본 스스로도 수준 높은 상업적인 문화들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문화의 대중사회적 재해석(원래 기록만으로 남아있거나, 또는 일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거나, 아예 근대에 들어와서 새롭게 창작된: 스모, 가부키, 부시도, 무예, 신토 등)이 메이지 정부의 '국풍' 정책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번창하고, 2차 세계대전 후 경제성장기 중엔 '닌자'와 '스시'로 대표되는 각종 일본문화를 개발하고 개량하여, 막대한 지출을 감수하며 전세계로 전파하는 등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렇게 150여년 이상 경과한 결과, '아 일본은 전통문화를 천여년 가까이 이어온 독자적인 문화대국이구나!' 라는 인식을 전세계에 확실하게 심어준 것이다.
한국은 이렇게 '전통적인 문화대국'과 '근대적인 문화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케이스이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은 독자적인 문화가 꽃피었는데 한국만 문화가 빈약하다'라는 생각을 쉽게 가지게 된다. 전통에 대한 대중사회의 소비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고, 급격히 서구문화의 무비판적 수용의 시대를 맞이한 '전통과 단절된' 국가들은 국민들이 '왜 우린 독자적인 문화가 없는 거야!'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분명 전통문화라는 것 자체가 한 민족국가의 정체성 확보에 있어 상당히 유의미하고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도 희망적인 점은, 기존까지 무국적성이라고 비판을 받아온 한류에서도 점차 한국 고유의 전통미가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도한 원형주의 또한 반대로 전통문화의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 적극적으로 문화를 재탄생시켜 현대 한국에 맞는 문화로 빚어내야 한다. 예를 들면 한복을 민족의 명절에만 입는 옷이 아닌 현대식으로 재탄생시켜 입는 옷 중 하나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만약 전통이라는 것을 박물관에 갇혀있는 무언가로 각인시키면 부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스파오에서 만든 생활한복을 가지고 일본 진베이를 베꼈다며 우기는 사람들이 좋은 예다. 이에 대해 그 옷을 디자인한 황이슬은 각종 자료로 적극 반박하며 일본 진베이가 아닌 한국 한복에서 따온 디자인이며 "우리는 경험한 것 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일본 여행에서 쉽게 마주할 정도로 대중적인 일본의 진베이가 한복보다 친숙해 떠오르게 된 것 같다. 한복이 하나의 패션 장르가 되어가면서 한복을 마주했을 때 한복이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인터뷰하기도 하였다.# #
전통 문화의 단절 항목과 관련된 내용인데, 현재 한국에는 나이 불문하고 전통 문화 유산에 대해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성 세대야 고속 성장을 직접 지켜본 세대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층에서도 전통 문화에 대한 인식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 보니 한국 전통 문화를 즐기는 젊은 층은 대부분 외국인들과 다문화 가정이다.
한국은 과거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옛 것을 고집하다가 결국 열강 축에 속했던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한 나라였다. 이렇게 조선에도 분명히 실책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나 실책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굳이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아님에도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서 조선에 대한 그릇된 인식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에게 '옛 것은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고 이는 전통 문화 유산에 대해서 폄하하는 결과를 낳았다.[12]
또, 주로 젊은 층들에게 매우 안 좋은 인식을 가진 전통 문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유교라고 할 수 있다.[13] 다만 젊은 세대조차도 유교걸과 같은 말처럼 스스로 유교적 사상이 있다고도 하고, 사실 가족 문화나 학업에 대한 문화는 젊은 세대도 타국에 비해 유교의 영향이 매우 강하기도 하다. 그러나 유교탈레반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젊은 층들 사이에서 나쁜 인식도 있다. 원래 유교 자체에도 현재의 가치관과 괴리가 있는 것이 있기는 하고, 삼국시대에도 있던 고유 문화나 무속 등의 전통 문화를 파괴시킨 부분도 있으며[14], 숭유억불 정책에 말미암아 불교계가 이 점에 대해 별로 좋게 여기지 않는 부분은 있다. 동학처럼 유교가 중국 사상이라면서 민족주의적 시도에서 반대하던 주장도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왜곡되어 이런 변질된 유교를 옹호하며 이런 폐단은 모두 일제, 기독교(정확히는 개신교)[15] 탓이라며 역사왜곡을 주장하는 태도도 있지만, 조선시대의 전통에서도 세종대왕과 같은 인물이 선민의식을 비판하고, 계급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던 양반전이나 봉산탈춤, 직업 차별을 비판하던 예덕선생전과 같은 현대와 비슷한 비판이 지금도 존재하는 등 무조건 부정적인 병폐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문제를 가만히 지켜보기보다 전통 문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문제는 복고 운동을 긍정적으로 보는 소비층이 힘을 써도 부정적이며 무의미한 험담거리로 소모하는 문제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복고 운동이 이슈가 되면 일뽕, 혐한국까 등이 분탕질을 벌이며 문제 해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토론하기보다 사람 한 명이 악플로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않는 뒤틀린 신변잡기 때문에 제동이 걸린다.
전통문화에 대한 폄하는 위에 내용들 뿐만 아니라 역사 유물과 유적지 보존에도 큰 걸림돌이 되는 문제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는 자연스레 전통문화와 옛 문화의 정수를 담은 문화유산들의 보호에 대한 무지함과 몰지각함으로 이어지며 이런 문제로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제대로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대표적으로 장릉 검단신도시 아파트 불법건축 논란과 김해 구산동 고인돌 훼손 사건 등이 바로 전통 문화에 대한 혐오와 무지로 인해 생긴 결과들이다.
한국은 과거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옛 것을 고집하다가 결국 열강 축에 속했던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한 나라였다. 이렇게 조선에도 분명히 실책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나 실책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굳이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아님에도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서 조선에 대한 그릇된 인식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에게 '옛 것은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고 이는 전통 문화 유산에 대해서 폄하하는 결과를 낳았다.[12]
또, 주로 젊은 층들에게 매우 안 좋은 인식을 가진 전통 문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유교라고 할 수 있다.[13] 다만 젊은 세대조차도 유교걸과 같은 말처럼 스스로 유교적 사상이 있다고도 하고, 사실 가족 문화나 학업에 대한 문화는 젊은 세대도 타국에 비해 유교의 영향이 매우 강하기도 하다. 그러나 유교탈레반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젊은 층들 사이에서 나쁜 인식도 있다. 원래 유교 자체에도 현재의 가치관과 괴리가 있는 것이 있기는 하고, 삼국시대에도 있던 고유 문화나 무속 등의 전통 문화를 파괴시킨 부분도 있으며[14], 숭유억불 정책에 말미암아 불교계가 이 점에 대해 별로 좋게 여기지 않는 부분은 있다. 동학처럼 유교가 중국 사상이라면서 민족주의적 시도에서 반대하던 주장도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왜곡되어 이런 변질된 유교를 옹호하며 이런 폐단은 모두 일제, 기독교(정확히는 개신교)[15] 탓이라며 역사왜곡을 주장하는 태도도 있지만, 조선시대의 전통에서도 세종대왕과 같은 인물이 선민의식을 비판하고, 계급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던 양반전이나 봉산탈춤, 직업 차별을 비판하던 예덕선생전과 같은 현대와 비슷한 비판이 지금도 존재하는 등 무조건 부정적인 병폐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문제를 가만히 지켜보기보다 전통 문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문제는 복고 운동을 긍정적으로 보는 소비층이 힘을 써도 부정적이며 무의미한 험담거리로 소모하는 문제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복고 운동이 이슈가 되면 일뽕, 혐한국까 등이 분탕질을 벌이며 문제 해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토론하기보다 사람 한 명이 악플로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않는 뒤틀린 신변잡기 때문에 제동이 걸린다.
전통문화에 대한 폄하는 위에 내용들 뿐만 아니라 역사 유물과 유적지 보존에도 큰 걸림돌이 되는 문제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는 자연스레 전통문화와 옛 문화의 정수를 담은 문화유산들의 보호에 대한 무지함과 몰지각함으로 이어지며 이런 문제로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제대로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대표적으로 장릉 검단신도시 아파트 불법건축 논란과 김해 구산동 고인돌 훼손 사건 등이 바로 전통 문화에 대한 혐오와 무지로 인해 생긴 결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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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전통 문화 요소들은 같은 한국인에게도 낯설고 신기한 소재가 많아 주목받았다. 사진은 '유교 드래곤'으로 인기를 얻었던 인면조 '만세(萬歲)'. |
다행인 것은 젊은 세대가 한국 전통 문화와 거리가 멀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중 젊은 예술인들이 한국 전통 문화를 참신하고 새롭게 개척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개성으로 여겨 재해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 한복을 게임 원화가 흑요석같이 디자인에 사용하거나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창조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늘었으며,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외국인들도 늘고 있는 추세. 웹툰에서도 한국적 소재를 차용한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고 그 중에서 채용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재창조를 이루어내고 킹덤같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등의 작품들도 존재한다. 또 상술했지만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에 젊은 층도 격노하며 완전히 전통과 단절되지 않았고, 하찮게 보는 시선도 2020년대부터는 사라져 판소리의 경우는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인기를 얻었고 2023년에는 떡, 한과가 유행했다. 무엇보다 방탄소년단, OTT 확산 전후 한류가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미주까지 정착됨을 피부로 느끼면서 두 유 노같은 열등감 자조 밈도 사라진 등, 자문화 사랑이 근자감이라는 시각도 옅어져 떳떳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한몫 한다.
뿐만 아니라 전통의 계승 및 승화도 커져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한류 아이돌, 영상물들이 한국적 요소를 차용한 것을 넘어[16], 외국에서 차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전에는 한국에 많은 게이머들을 신경쓸 수밖에 없는 게임[17]에나 보이다 2020년대 한류가 폭발하면서 미국 주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한국계 감독을 앞세워 한국 전통을 주 소재로 쓴 작품을 제작, 히트치는 수준까지 왔다.[18]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뮷즈를 온라인으로 풀기도 하면서 나날이 기발하고 아름다운 전통 계승 굿즈들이 소위 '힙하다'고 판매량이 계속 상승 중이다. 또한 한국 전통을 주제로 한 예능 유튜브가 더욱 늘어나고 주목받고 있다.
세시풍속[歲時風俗] 문서 참조.
세시풍속은 1년을 단위로 삼아 일정한 시기에 주기적, 관습적으로 매년 같은 시기에 반복적으로 시행하는 의례적 생활양식이나 규범이며 연중행사이다. 한국의 세시풍속은 예로부터 전해지는 농경사회의 풍속으로 해마다 농사력에 맞추어 관례(慣例)로서 행하여지며,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된다.
세시풍속은 음력의 월별 24절기와 명절로 구분되어 있으며 집단적 또는 공통적으로 집집마다 지역마다 또는 민족적으로 관행(慣行)에 따라 전승되는 의식, 의례행사와 놀이이다.
한국이 농경사회였기에 농경 사회의 풍속이 대부분이며, 한 해의 절기나 달, 계절에 하는 생활 관습을 말한다. 설날·정월 대보름·단오·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오랜 관습에 의해서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내는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있다. 이런 세시풍속이 생활에 정착된 시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었거나 필요에 의해서 관습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또한 대체로 농경문화를 반영하고 있어 농경의례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명절, 24절 등이 포함되어 있고 이에 따른 의례와 놀이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농경을 주 생업으로 하였기에 놀이도 오락성이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풍농을 예축하거나 기원하는 의례였다. 그래서 세시풍속을 세시의례(歲時儀禮)라고도 하며,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에 적절하게 행해지고 있으므로 계절제(季節祭)라고도 한다.
세시풍속의 기준이 되는 역법(曆法)은 음력이지만 양력이 전혀 배제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음력은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er)의 약자로서 음력이 중심을 이루되 양력도 가미된 것이다. 24절후는 양력 날짜로 고정되어 있는데 이는 태양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력으로는 해마다 날짜가 달라진다. 가령 24절후이자 세시명절이기도 한 동지는 양력 12월 22일에 들지만 음력으로는 동짓달 초순, 중순, 하순 등 해마다 달리 든다.
세시풍속은 대체로 1년을 주기로 반복되는데 예외도 있다. 가령 윤년(閏年)이 드는 해에 행하는 세시풍속이 있고, 3년, 5년, 또는 10년 단위로 행해지는 별신제도 세시풍속의 범주에 속한다.
문화 교류를 통하여 전래된 것도 있고, 또 이 외래의 것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한(韓)민족의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것도 오늘날 행하여지고 있는 세시풍속은 예로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며, 또 옛 문헌에 보이는 것 중에는 이름만 남아 있고, 현재 일반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도 많이 있다. 한(韓)민족에 의하여 발생되고 전승되어 오는 고유(固有)의 것도 많이 있지만 외국과의 문화 교류를 통하여 전래된 것도 있고, 또 이 외래의 것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한(韓)민족의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것도 많다.[20]
세시풍속은 1년을 단위로 삼아 일정한 시기에 주기적, 관습적으로 매년 같은 시기에 반복적으로 시행하는 의례적 생활양식이나 규범이며 연중행사이다. 한국의 세시풍속은 예로부터 전해지는 농경사회의 풍속으로 해마다 농사력에 맞추어 관례(慣例)로서 행하여지며,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된다.
세시풍속은 음력의 월별 24절기와 명절로 구분되어 있으며 집단적 또는 공통적으로 집집마다 지역마다 또는 민족적으로 관행(慣行)에 따라 전승되는 의식, 의례행사와 놀이이다.
한국이 농경사회였기에 농경 사회의 풍속이 대부분이며, 한 해의 절기나 달, 계절에 하는 생활 관습을 말한다. 설날·정월 대보름·단오·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오랜 관습에 의해서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내는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있다. 이런 세시풍속이 생활에 정착된 시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었거나 필요에 의해서 관습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또한 대체로 농경문화를 반영하고 있어 농경의례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명절, 24절 등이 포함되어 있고 이에 따른 의례와 놀이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농경을 주 생업으로 하였기에 놀이도 오락성이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풍농을 예축하거나 기원하는 의례였다. 그래서 세시풍속을 세시의례(歲時儀禮)라고도 하며,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에 적절하게 행해지고 있으므로 계절제(季節祭)라고도 한다.
세시풍속의 기준이 되는 역법(曆法)은 음력이지만 양력이 전혀 배제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음력은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er)의 약자로서 음력이 중심을 이루되 양력도 가미된 것이다. 24절후는 양력 날짜로 고정되어 있는데 이는 태양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력으로는 해마다 날짜가 달라진다. 가령 24절후이자 세시명절이기도 한 동지는 양력 12월 22일에 들지만 음력으로는 동짓달 초순, 중순, 하순 등 해마다 달리 든다.
세시풍속은 대체로 1년을 주기로 반복되는데 예외도 있다. 가령 윤년(閏年)이 드는 해에 행하는 세시풍속이 있고, 3년, 5년, 또는 10년 단위로 행해지는 별신제도 세시풍속의 범주에 속한다.
문화 교류를 통하여 전래된 것도 있고, 또 이 외래의 것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한(韓)민족의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것도 오늘날 행하여지고 있는 세시풍속은 예로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며, 또 옛 문헌에 보이는 것 중에는 이름만 남아 있고, 현재 일반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도 많이 있다. 한(韓)민족에 의하여 발생되고 전승되어 오는 고유(固有)의 것도 많이 있지만 외국과의 문화 교류를 통하여 전래된 것도 있고, 또 이 외래의 것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한(韓)민족의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것도 많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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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상씨 탈
- 산대, 채붕
- 예산대, 산대희
한국의 전통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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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공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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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 민속학사에서 완성된 전통 문화요소로 여겨지는 것은 대개 먼 중세가 아닌, 300년에서 600년 전에 형성된 것들로, 상공업의 발달로 서민의 경제력이 향상되며 각 지방의 다양한 풍속이 재발굴되거나 신화, 전설, 민담 등을 정리하고 집대성할 여유가 생긴 시기이다. 서양의 르네상스에서 신고전주의까지, 중국의 명-청대나 일본의 에도 시대가 이에 해당한다.[2] 물론 이 같은 말을 대놓고 말했다가는 주변인들에게 손절당하고 사회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는 이 같은 말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3] 이를 비판한 노래로 몽골의 Yuve Yuve Yu가 있는데 유튜브 댓글을 보면 가사 내용에 공감하는 외국인들이 많다.[4] 요즘에는 일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생활한복이 유행하며 한복을 되살리자는 분위기가 일고 있으나, 거시적으로 관측되는 경향은 아니다.[5] 다만, 서양 악기를 동원한 사극풍의 퓨전 국악은 나름 인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전통 음악 자체에 관심이 없는건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6] 남한식 개량 한복은 1990년대에도 일부 계층이 입었다고 한다. #[7] 예를 들면 전구를 '불알'이라고 한다는 식의 거짓말 등이 있었다. 북한에서 '아이스크림'을 쓴다는 것은 2020년대 들어서 대중에게도 좀 알려졌다. 아직도 북한에서 '일없다'뿐만 아니라 '괜찮다'를, '직승기'가 아니라 '헬기'도 쓴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상당히 드물다.[8] 함경도식 차례상이 복원되기도 했고#, 북한에서 사투리가 어떤 것이 쓰이는지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한식의 경우 북한 요리를 제공하는 음식점을 여는 경우가 좀 있다.[9] 외국에서 '한국적인' 이미지로 손꼽히는 것은 케이팝, 한국 드라마, 한국 아이돌같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소비성 대중문화 산업과 첨단 제조업에 해당하는 것들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무국적성이 강한 대중문화이기 때문에 지구 어느 나라에서나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에 온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드라마 촬영지에 가서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어도, 한국학 강의를 듣거나 한국 유적에 가서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드문 것과 같다. 특히나 이런 전통문화를 통해 각인되는 국가 고유 이미지는 아직까지 옆나라 일본 중국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10]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젊은층은 중국의 문화공정을 들으면 다른 세대들에 비해 크게 분노한다.[11] 인터뷰에서도 기자가 '보수적'이라고 질문했을 정도였다.[12] 사실 이 또한 동아시아 공통이다. 당장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정확히 이 논리로 자행된 것이었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 또한 근본 논조가 일맥상통한다. 단지 이들에 비해 한국이 문화적 고뇌를 늦게 겪은 것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과 일본이 자체적으로 고뇌하고 발전할 동안 한국은 식민지 시대 및 전쟁과 민주화를 향한 투쟁의 시기를 보내며 스스로를 돌보며 고뇌할 시간 자체가 없었다. 한숨 돌리게 되니 오히려 90년대 경제적 호황을 맛보며 더더욱 발전 지향적인 면을 단단히 다졌다. 이 모든 것이 지나 21세기가 무르익어서야 비로소 한국은 문화적 고뇌기에 들어선 것이다. 옆 나라들에 비하면 최소 반백년에서 백 년은 늦은 것이다.[13] 유교는 중국에서 발생된 것이긴 하지만, 조선의 국교로 삼았기 때문에 여기에 서술한다.[14]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돌무더기 폐허로 변해 버린 불국사를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15] 민중 사이에서 개신교가 받아들여진 것도 유교를 반대하는 사람도 조선에 있던 요인이 있다. 천주교는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진 종교다.[16] 대취타, 한국 전통놀이 등[17] 롤, 오버워치 등[18] 엘리멘탈, 케이팝 데몬 헌터스[19] 처음엔 중국에서 왔지만 점차 두루마기 형태로 변한다.[20]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세시풍속편,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민속학이란 무엇인가 - 김의숙, 이창식저[21] 현대에는 남아있지 않다.[22] 임진왜란부터 조선 말기까지 한국에서 사용된 군용 무예를 총칭하는 언어다. 전통군영무예의 종류를 알고싶다면 '무예도보통지' 항목을 참고하면 된다.[23] 태권도가 한국 전통 무술이 아니고 광복 후 일본의 가라데 영향으로 발달한 역사가 짧은 무술이며 그저 택견이라는 이름을 빌려와서 태권도로 변형해 국뽕을 한사발 부었을 뿐이라는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이 많은데 전통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반드시 오래된 것, 순수 한국의 창작인 것만이 전통인 것은 아니다. 유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브라질 무술인 주짓수를 일본 무술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가라테 역시도 중국 무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24] 태권도와 마찬가지로 기원은 일본의 유술이지만 유술에는 없는 발기술과 온갖 무기술로 차별화하였다.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근본없는 짬뽕무술이라며 한국무술임에도 한국에서 많은 비판과 폄훼를 받고있지만 의외로 해외에서는 태권도 다음으로 인지도 높은 한국무술이며 위키백과에서는 한자표기로는 같은 문자이지만 일본의 아이키도(Aikido) 한국의 합기도(HAPKIDO)로 이름부터 다르게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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