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양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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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중양절까지 |
D-285 |
중양절 重陽節 | Jungyangjeo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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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성의 중양절 | |
이칭 | 중양(重陽), 중구(重九), 구일(九日), 국화절(菊花節), 상국일(賞菊日), 제비돌아가는날, 산신의 탄신일(山神의 誕辰日), 귈 |
시기 | 음력 9월 9일 |
지위 | 평일 |
전한 때 현자 장방(長房)이 항경(恒景)이라는 사람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3]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하였다. 항경은 그가 시킨 대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전국시대 제나라 경공(景公)이 산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4]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전국시대 때부터 중양절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당송시대에는 추석보다도 큰 명절이었다.
한국에서는 신라, 고려 시대에 연례 모임이나 연회가 벌어졌으며, 조선 세종 시기 중양절을 무척 중요히 여겨 삼짇날과 함께 명절로 공인하고 각종 행사가 치뤄졌다.
하지만 이날 전국시대 제나라 경공(景公)이 산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4]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전국시대 때부터 중양절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당송시대에는 추석보다도 큰 명절이었다.
한국에서는 신라, 고려 시대에 연례 모임이나 연회가 벌어졌으며, 조선 세종 시기 중양절을 무척 중요히 여겨 삼짇날과 함께 명절로 공인하고 각종 행사가 치뤄졌다.
수유주머니를 차고 산에 올라가 시를 짓고 국화로 만든 술을 나누는 풍습이 있다. 가정에서는 국화전이나 화채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리고 추석에 햇곡식을 올리지 못했을 때 이날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중구차례(重九茶禮)라고 하였는데, 불쌍한 조상을 위한 의미도 컸다. 예를 들어 조상의 기일을 모르거나 후손이 없을 때, 혹은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은 조상을 위하여 이 날에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또한 본래는 기제사보다 사시제를 더 중요하게 여겼는데 1년에 4번 지내기가 부담이 되어 봄과 가을에 2회, 즉 삼짇날과 중양절에 지내는 집안이 많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중양절에는 제사, 성묘, 등고 또는 각종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허락하였다. 그래서 관리들이 자리에 없기도 하였지만 또한 명절이었으므로 이날은 형(刑) 집행을 금하는 금형(禁刑)의 날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추석에 햇곡식을 올리지 못했을 때 이날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중구차례(重九茶禮)라고 하였는데, 불쌍한 조상을 위한 의미도 컸다. 예를 들어 조상의 기일을 모르거나 후손이 없을 때, 혹은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은 조상을 위하여 이 날에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또한 본래는 기제사보다 사시제를 더 중요하게 여겼는데 1년에 4번 지내기가 부담이 되어 봄과 가을에 2회, 즉 삼짇날과 중양절에 지내는 집안이 많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중양절에는 제사, 성묘, 등고 또는 각종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허락하였다. 그래서 관리들이 자리에 없기도 하였지만 또한 명절이었으므로 이날은 형(刑) 집행을 금하는 금형(禁刑)의 날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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