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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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MCMLXXXVIII 千九百八十八年 | 一九八八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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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戊辰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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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1988년 | 음력 1987년 11월 12일 ~ 1988년 11월 23일 | |
음력 1988년 | 양력 1988년 2월 18일 ~ 1989년 2월 5일 | |
일수 | 366일(윤년) | |
금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며, 무진년(戊辰年, 황금 용의 해)이다.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 40년 이래 발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세계에 과시하고 냉전 종식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1988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다. 이를 계기로 '한강의 기적'은 절정을 이루었으며, 2002년과 함께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해가 되었다.[1] 또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인지도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올림픽 당시 오후 수업이 있으면 올림픽 관람에 방해가 된다며 유치원의 수업도 오전 수업만 했다고 한다.[2] 반면 철거민이나 노점상 등 도시빈민들은 올림픽 준비를 위한 '보여주기식' 강제철거와 이주로 한동안 고통을 받아 왔다. (상계동 올림픽 참조)
제6공화국 헌법이 전년부터 효력을 발하기 시작하였으며, 대한민국의 정치 제도가 6.29 선언 후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하였으나,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으로 본격적인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었으며, 그동안 '광주사태'로 알려진 1980년 5.18 항쟁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1988년 4월 26일에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로 3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되면서 노태우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해 물러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새로 발족한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으로서 상왕 노릇을 하려 했지만, 후임 노태우의 '5공 색깔 지우기'로 동생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 등 5공 비리의 핵심 인물들이 줄줄이 구속됐고, 이에 따라 대국민 사과를 해서 민주정의당 명예 총재 및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에서도 물러났다. 10월 유신 이후 1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에 이어 광주학살, 일해재단 비리, 1980년 언론대학살의 진상 등을 밝히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대한민국 국회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청문회[3]가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재벌총수, 언론인, 정치가 등 유명 인사들이 출석하여 TV로 생중계되는 등 올림픽에 버금가는 전 국민적 화제를 낳았으며, 국회의원 중에서는 노무현 등이 청문회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 후 11월, 전두환 부부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이후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외교 면에선 헝가리 상주대표부 설치를 시초로 공산권 수교를 골자로 한 '북방정책'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사회운동 면에선 학생운동권은 6.10/8.15 남북학생회담 개최투쟁에 주력했고, 이를 전후해 대학가에선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퍼져갔다. 올림픽 폐막 뒤에는 각 재야단체들이 '전두환-이순자 부부 체포결사대'를 조직해 연희동이나 백담사까지 가서 가두시위를 전개했고, 시위가 벌어지는 곳은 언제나 최루탄 가스로 범벅이 됐다.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 서울랜드가 개장하였으며,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센터가 완공되었다.
tvN의 인기 드라마인 응답하라 시리즈가 다루는 가장 먼 시대이자 유일하게 1980년대를 다룬 시리즈이기도 하다.
쌍팔년도라고 자주 지칭되는 해이다. 하지만 쌍팔년도라는 단어는 원래 서기 1988년이 아닌 단군기원 4288년인 1955년을 뜻하는 단어로, 1988년 이전부터 사용되던 어휘였다. 1950년대를 쌍팔년도로 표현했던 1970년대 신문기사
1988년은 제5공화국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던 마지막 해이다. 대표적으로 이 해는 한자가 자주 사용된 사실상 마지막 해이며, 읍니다체가 방송이나 신문에서 자주 사용된 마지막 해이다. 이듬해를 기점으로 MBC 뉴스데스크와 KBS 뉴스 9가 모든 문자를 한글로 표기하면서 한자 사용의 마지막 해가 되었다. '읍니다'체 또한 1988년 맞춤법 개정을 통해 이 해까지 존재했다가 1989년에 폐지되어 '습니다'체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해에 국민학교에 재학한 1981년생까지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읍니다'라고 판서하던 시절을 알 것이다. 1982년생부터는 현재와 같이 '습니다'체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 해에는 유난히 농작물이 풍작을 맞이했고, 해외여행 연령도 종전 50세 이상에서 40세 이상으로 확장되었고, 부부동반 여행도 허용되었다.
1988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국민학교에 다닌 마지막 세대이며 마지막 국초딩 세대이기도 하다. 또한 계속 줄고 있던 출산율이 9년 만에(1.53 - 1.55) 출생아수가 7년 만에(623,831명 - 633,092명) 증가한 해이기도 하다.
이 해부터 2012년까지 25년 연속으로 연도 4자리 수 중 하나라도 겹친다.
1988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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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 25일 MBC 뉴스데스크 |
지난 7년 동안 역사의 핵으로 자리 잡았던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보통사람이 되어 청와대를 떠났고, 보통사람을 자처한 노태우 대통령은 제6공화국에 가슴 벅찬 꿈을 안은 채 청와대로 들어갔습니다. (중략) 보통사람들이 만드는 상식의 시대를 국민과 함께 걷는 민주주의를 통해서 이룩하겠다고 밝힌 노태우 대통령의 뜻이 앞으로의 임기 5년 동안에 어떻게 이루어져 나가는지 국민 여러분들과 함께 계속 지켜 볼 것입니다.강성구(당시 보도이사)의 MBC 뉴스데스크 오프닝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1981년 2월 25일부터 1988년 2월 24일까지 존재했던 전두환 정부와 제5공화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에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뒤 취임사에서 민족자존의 시대가 열렸다며 타 국가에 심하게 의존하기보다는 자주적으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냉전 시기가 서서히 이완되면서 세계도 상당히 급진적으로 변화된 데 대해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씩씩하게, 그리고 단란하게 힘찬 전진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자고 시민들에게 당부하였다.
그런가하면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부분은 단연 북방 외교이다. 이 또한 노태우 대통령이 굉장히 중요시했던 외교 정책 중 하나였는데, 노태우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서방과의 우대를 한층 더 강화하는 한편 제3세계와의 우의를 더욱 굳게 하겠다고 말한 바 있으며, 그 동안 대한민국과 교류가 없었던 중국공산당(중공)과 소련 등 공산권 국가와도 국제 협력의 진로를 넓게 하여 이념과 체제를 넘어 안정과 평화 그리고 공동의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공산권 국가와의 대화, 민족자존 등 다소 진보적인 정책들이 발표되자 시민들은 노태우 정부 출범에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시민들 중 대부분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독재정치보다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유민주적인 사회와 행복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이 노력해줬으면 하는 등의 기대감을 표출하였다.
이외에도 세계 여러 국가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의 새 정부 출범을 머릿기사로 다루었다. 먼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직접 선거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에게 당선을 축하하는 논평을 냈다. 일본 정부는 오부치 게이조 전 관방장관을 통해 평가를 냈는데, 오부치 전 장관은 "평화적인 정권 이양이 실현된 것은 역사적인 일로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홍콩[4] 정부는 "북방외교를 천명한 노태우 대통령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
1988년 2월 25일에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이후 1993년 2월 25일 자정을 기해 막을 내렸다.
그런가하면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부분은 단연 북방 외교이다. 이 또한 노태우 대통령이 굉장히 중요시했던 외교 정책 중 하나였는데, 노태우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서방과의 우대를 한층 더 강화하는 한편 제3세계와의 우의를 더욱 굳게 하겠다고 말한 바 있으며, 그 동안 대한민국과 교류가 없었던 중국공산당(중공)과 소련 등 공산권 국가와도 국제 협력의 진로를 넓게 하여 이념과 체제를 넘어 안정과 평화 그리고 공동의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공산권 국가와의 대화, 민족자존 등 다소 진보적인 정책들이 발표되자 시민들은 노태우 정부 출범에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시민들 중 대부분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독재정치보다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유민주적인 사회와 행복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이 노력해줬으면 하는 등의 기대감을 표출하였다.
이외에도 세계 여러 국가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의 새 정부 출범을 머릿기사로 다루었다. 먼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직접 선거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에게 당선을 축하하는 논평을 냈다. 일본 정부는 오부치 게이조 전 관방장관을 통해 평가를 냈는데, 오부치 전 장관은 "평화적인 정권 이양이 실현된 것은 역사적인 일로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홍콩[4] 정부는 "북방외교를 천명한 노태우 대통령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
1988년 2월 25일에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이후 1993년 2월 25일 자정을 기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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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9월 17일 KBS 뉴스 9 |
1988년 9월 17일, 당시 온 국민이 염원하고 기대하던 제24회 서울 올림픽이 마침내 개최되었다. 이 해에 개최된 서울 올림픽은 아시아에서 열린 2번째 하계 올림픽이며 대한민국이 최초로 개최한 올림픽이다. 대다수의 한국인은 1988년이라고 하면 단연코 1988 서울 올림픽을 먼저 떠올린다.
먼저, 1988년 1월 당시 서울 올림픽에 참가를 희망한다고 밝힌 국가는 167개국 중 160개국이었다. 지난 1984 LA 올림픽까지만 해도 미국-소련의 대립과 중공의 도발로 인해 미국과 같은 편에 서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한민국이 개최하는 1988년 올림픽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 해 1월 중순 즈음에 공산권 국가들이 연이은 개최 희망 입장을 선언하면서 지구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이후 1988년 8월 23일에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성화 봉송이 세계 여러 국가를 거쳐 1988년 8월 28일에 제주도 땅을 밟으면서 대한민국에 도착했으며, 올림픽 개막 전날인 1988년 9월 16일까지 대한민국 전국 각지를 돌며 올림픽 개막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먼저, 1988년 1월 당시 서울 올림픽에 참가를 희망한다고 밝힌 국가는 167개국 중 160개국이었다. 지난 1984 LA 올림픽까지만 해도 미국-소련의 대립과 중공의 도발로 인해 미국과 같은 편에 서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한민국이 개최하는 1988년 올림픽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 해 1월 중순 즈음에 공산권 국가들이 연이은 개최 희망 입장을 선언하면서 지구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이후 1988년 8월 23일에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성화 봉송이 세계 여러 국가를 거쳐 1988년 8월 28일에 제주도 땅을 밟으면서 대한민국에 도착했으며, 올림픽 개막 전날인 1988년 9월 16일까지 대한민국 전국 각지를 돌며 올림픽 개막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기온이 낮았던 1987년까지의 해들을 뒤로하고, 지난 해 10월부터 시작된 기온 상승을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한 해이다.[5] 11월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상 고온이 잦은 편이었으며, 여름이 시원했던 1980년대 치고는 여름도 꽤나 더웠다. 또한 서울 기준 연강수량이 760.8mm에 불과해 1939년, 1943년에 이은 하위 3위를 기록했다.
서울의 월평균기온 통계는 다음과 같았다.
서울의 월평균기온 통계는 다음과 같았다.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년 | |
서울 월평균기온(°C) | -2.1 | -1.5 | 4.3 | 11.3 | 17.9 | 22.3 | 24.4 | 26.4 | 21.4 | 15.0 | 5.5 | 0.1 | 12.1 |
평년대비 편차(°C) | 1.4 | -0.4 | 0.2 | -0.1 | 0.8 | 1.2 | -0.1 | 1.1 | 0.9 | 1.1 | -1.1 | 0.7 | 0.5 |
강수량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년 |
서울 월평균강수량(mm) | 3.3 | 4.5 | 31.3 | 60.5 | 42.8 | 73.7 | 382.3 | 81.3 | 39.7 | 8.4 | 21.1 | 11.9 | 760.8 |
평년대비 편차(%) | 16.8 | 16.6 | 61.1 | 58.5 | 48.5 | 48.0 | 101.0 | 30.3 | 25.3 | 16.3 | 49.2 | 47.4 | 55.8 |
연 최저기온 | 연 최고기온 | 연교차 | 서울 일강수량 극값 |
-12.9 °C(0203) | 36.6 °C(0810) | 49.5 °C | 101.6mm(0709) |
- 이대건: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 전석재 신부: 대한민국의 천주교 성직자, 학교법인 선목학원 설립자
- 1월 19일 -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소련의 지휘자
- 태완선: 제11대 경제기획원 장관, 전 대한중석 회장
- 박정만: 1981년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보안사에서 고문을 당한 시인. 그의 일대기가 사후 1989년 3월 KBS1 <드라마초대석>을 통해 '서러운 땅' 편으로 방영된 바 있었다.
- 안병하: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 경찰국장
- 양영진: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가
- 안광술, 지강헌, 한의철: 지강헌 일당 3인
- 황승선: 전 성균관대학교 농구부 감독.
- 미키 다케오: 제66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 클레안티스 비켈리디스: 그리스의 전 축구 감독
- 정진석: 전 OB씨그램(현 디아지오코리아) 사장
- 조태호(1923년~): 제5대 정수장학회 이사장,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서
- 한국
- 강애리자 - 분홍립스틱
- 김완선 - 리듬 속의 그 춤을,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사랑의 골목길
- 김종찬 - 사랑이 저만치 가네, 토요일은 밤이 좋아, 당신도 울고 있네요
- 나훈아 - 무시로
- 도시아이들 - 텔레파시
- 동물원 - 거리에서, 변해가네
- 민해경 - 그대 모습은 장미
- 무한궤도 - 그대에게
- 박남정 - 아! 바람이여
- 박혜성 - 도시의 삐에로
- 변진섭 - 홀로 된다는 것
- 석미경 - 물안개
- 소리새 - 그대 그리고 나
- 소방차 - 어젯밤 이야기, 통화중, 일급비밀
- 수와 진 - 파초
- 시인과 촌장 - 가시나무
- 양수경 - 바라볼 수 없는 그대
- 유열 - 이별이래, 화려한 날은 가고
- 유익종 -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 이남이 - 울고 싶어라
- 이상은 - 담다디
- 이선희 - 나 항상 그대를, 아름다운 강산
- 이정석, 조갑경 - 사랑의 대화
- 이지연 -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난 사랑을 아직 몰라
- 이치현과 벗님들 - 집시여인
- 작품하나 - 난 아직도 널
- 전영록 - 저녁놀
- 전인권 - 사랑한 후에, 돌고 돌고 돌고
- 정기영 - 인생이란 다 그런 것
- 정수라 - 환희
- 조영남 - 화개장터
- 조용필 - 서울 서울 서울, I Love 수지, 모나리자
- 조하문 - 이 밤을 다시 한번
- 최성수 - 동행, 기쁜 우리 사랑은
- 최성원 - 제주도의 푸른 밤
- 최호섭 - 세월이 가면
- 코리아나 - 손에 손 잡고, The Victory
- 푸른하늘 - 겨울바다
- 한영애 - 누구 없소
- 홍수철 - 장미빛깔 그 입술
- 해외
- 건즈 앤 로지스 - Sweet Child O’Mine, Welcome to The Jungle
- 카일리 미노그 - I Should Be So Lucky, Especially for You(w/제이슨 도노반)
- 마이클 잭슨 - Bad, I Just Can't Stop Loving You, Man in the Mirror, Smooth Criminal, The Way You Make Me Feel, Dirty Diana
- Tiffany - I Saw Him Standing There, I Think We're Alone Now
- Bobby McFerrin - Don't Worry, Be Happy
- 엔야 - Orinoco Flow
- 히카루GENJI - パラダイス銀河
- 나가부치 츠요시 - とんぼ
- 영구야 영구야 (~'90.1)
- 동작그만 (~'91.5)
- 청춘을 돌려다오 (~'90.2)
- 네로 25시 (~'90.3)
- 쓰리랑 부부 (~'90.3)
- 시커먼스
- 최병서의 따따부따
- 박미선의 별난 여자 (~'89.4)
- 헬로우 일지매 (~'90.3)
- 남부군 - 이태 저.
- 홀로서기 - 서정윤 저.
-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저.
- 롯데칠성음료[19]
- 3월: 홍삼스포츠D
- 4월: 홍삼드링크
- 롯데리아
- 데리버거
- 동양제과/오리온프리토레이
- 2월: 오리온 치토스
- 8월: 오리온 포카칩 어니언맛
- 12월: 오리온 바이오캔디
- 크라운제과
- 새콤달콤
- 동서식품
- 맥스웰 저가당 커피믹스 II
- 포스트 코코볼, 아몬드 후레이크, 현미 후레이크
- 동서 현미녹차, 녹차(티백제품), 민속차, 고려인삼차
- 동서 밤꿀, 밀감꿀, 싸리꿀, 1회용 컵꿀
- 탄산캔커피 맥스쿨
- 매일유업
- 피크닉
- 오뚜기식품/오뚜기라면
- 3월: 진라면
- 한국야쿠르트유업
- 슈퍼100 딸기
- 애경산업
- 트리오(리뉴얼)
- 보통 사람/나 이 사람, 믿어 주세요 - 노태우
-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 유전무죄 무전유죄 - 지강헌
-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증인은 지금 위증을 하고 있어요 - 5공 청문회
- 영구 없~다/띠리리리리리~ - 심형래 (영구야 영구야)
- 장사 하루 이틀 하나? - 김형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 밥 먹고 합시다! - 양종철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 오~ 신이시여! 우리 로마를 버리시나이까?/셱셱셱!/아냐, 인마! - 최양락 (네로 25시)
- 골뱅이 하나 추가했어요/너 그렇게 사는 거 아냐~ - 정명재 (네로 25시)
- 넌 내 거야~ - 이경애 (북청 물장수)
- 메기나 건빵이다/시정하겠습니다! - 이상운 (동작그만)
-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빠른 시일 내~에, 믿어, 못 믿어? - 김상호 (미스터 주)
-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 이홍렬 (참깨부부 들깨부부)
- 힘이여 솟아라 - 출동! 바이오 용사
- KBS
- 논픽션드라마
- 전국 어린이동요대회
- 비바청춘
- TV회견
- MBC
- 아침을 달린다
- 주부가요열창
- 신문
- 경기일보
- 국민일보
- 기호일보
- 기독교연합신문
- 인천일보
- 평화신문
- 한겨레신문
- 한국대학신문
- 잡지
- 닌텐도 파워
- 르네상스
- 문학과 사회
- 아이큐 점프
- 우먼센스
- 영 챔피언
[1] 말하자면 1988년은 긍정적인 분위기가 매우 역대급으로 압도적인 해였다고 볼 수 있다.[2] 1988년에 유치원생이었던 1982~1984년생은 유치원 단축 수업을 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기억할 것이다.[3] 1988년 11월의 일해재단 청문회.[4] 당시 대한민국과 중국(중국공산당)은 교류 중이 아니었다. 1988년에는 홍콩이 영국령에 속했으며, 대한민국은 중화민국(대만)과 수교하였다.[5] 다만 현대와 비교할 경우에는 이 해도 다소 낮은 편이기는 하며, 이질감이 조금은 있는 편이다. 물론 다음 해부터는 그런 거 없다.[6] 형들과는 다르게 솔로로 활동했었고, 1988년에 가입했으나 얼마 안 가 사망했다.[A] 7.1 7.2 7.3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의 피해자[8] 1997년에 동부건설로 합병[11] 라이히-5의 미국 국가안전기획국장이다.[12] 라이히-5의 허수아비 38대 미국 대통령.[13] 주인공 료의 아버지. 작중 기준으로 10년 전에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은 1998년이다.[14] 서세원 전 부인하고는 동명이인.[15] 88올림픽 당시 방영 취소로 항의전화가 빗발쳤을 정도로 주부층을 중심으로 인기리에 방영[16] 발표는 1986년에 했으나 2년 뒤 골든 디스크 본상을 받으면서 인기가 생기기 시작했다.[17] ‘88 골든디스크 대상 수상곡, ’88 MBC 가요대제전 최고인기가수상 수상곡.[18] ‘88 KBS 가요대상 대상 수상곡.[19] 이하 두 제품은 한국전매공사가 제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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