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기
최근 수정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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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 천황 즉위기원 神武天皇即位紀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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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東征)에 나선 진무 천황 | ||||||
원년 | 서기 기원전 660년 | |||||
이칭 | 진무기원(神武紀元) | |||||
표기 | 황기(皇紀), 기원(紀元), 황력(皇暦) | |||||
국가 | ||||||
시행 | ||||||
메이지 5년 12월 3일 | ||||||
미토 번(水戸藩)의 국학자 후지무라 토코(藤田東湖)가 1840년 지은 한시(漢詩)에서 그 해를 (진무 천황으로부터) 2500년이라고 설명하였다. 후지무라가 진무로부터 연도를 헤아려보긴 했지만, 딱히 기년법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 츠와노 번(津和野藩, 오늘날 시마네현 카노아시군)의 국학자 오쿠니 타카마사(大国隆正)가 1855년 집필한 《본학거요(本學擧要)》에서는 존황양이론에 입각하여 서양 기독교 국가들이 서력기원을 사용하듯, 일본도 진무 천황 즉위년을 원년으로 삼아 중흥기원(中興紀元)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세일원제(一世一元制), 즉 임금이 즉위하여 한 번 연호를 정하면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고 사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때 일본도 연호 대신 서력기원처럼 원년으로부터 계속 헤아리는 기년법을 사용하자며 황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1872년 12월 15일(음력 메이지 5년 11월 15일) 일본 정부는 역법을 전통적인 음력에서 그레고리력(양력)으로 바꾸는 것을 결정하고 연호를 폐지하지는 않으면서도 진무 천황 즉위기원을 제정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진무 천황은 45세 되던 기원전 667년(갑인년)에 규슈에서 동쪽으로 정벌(진무동정)에 나서서 나라를 세우고 52세 되던 기원전 660년(신유년) 설날 가시하라궁(橿原宮, 오늘날 가시하라 신궁 자리)에서 즉위하였다. 이 전승에 따라 일본 정부는 기원전 660년을 원년으로 정했다. 그리고 가장 격식을 갖춘 공문서에는 황기와 연호를 병용하되, 약식 공문서나 사적인 문서에서는 연호만 쓴다는 방침을 세웠다. 제정 공포 이듬해인 양력 1873년(메이지 6년) 1월 1일(음력 메이지 5년 12월 3일)을 황기 2533년 1월 1일로 삼으며, 이날부터 그레고리력 전환과 함께 공식적으로 황기를 시행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세일원제(一世一元制), 즉 임금이 즉위하여 한 번 연호를 정하면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고 사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때 일본도 연호 대신 서력기원처럼 원년으로부터 계속 헤아리는 기년법을 사용하자며 황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1872년 12월 15일(음력 메이지 5년 11월 15일) 일본 정부는 역법을 전통적인 음력에서 그레고리력(양력)으로 바꾸는 것을 결정하고 연호를 폐지하지는 않으면서도 진무 천황 즉위기원을 제정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진무 천황은 45세 되던 기원전 667년(갑인년)에 규슈에서 동쪽으로 정벌(진무동정)에 나서서 나라를 세우고 52세 되던 기원전 660년(신유년) 설날 가시하라궁(橿原宮, 오늘날 가시하라 신궁 자리)에서 즉위하였다. 이 전승에 따라 일본 정부는 기원전 660년을 원년으로 정했다. 그리고 가장 격식을 갖춘 공문서에는 황기와 연호를 병용하되, 약식 공문서나 사적인 문서에서는 연호만 쓴다는 방침을 세웠다. 제정 공포 이듬해인 양력 1873년(메이지 6년) 1월 1일(음력 메이지 5년 12월 3일)을 황기 2533년 1월 1일로 삼으며, 이날부터 그레고리력 전환과 함께 공식적으로 황기를 시행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1945년 패전 이전까지 일본에서 그냥 기원(紀元)이라고 하면 바로 '황기'를 가리켰다. 당시 일본에서는 연호를 대부분 사용하되 교과서와 격식을 갖춘 공문서에서는 황기를 사용하는 한편, 격식을 갖출 필요가 없는 문서는 연호만 사용하였다. 또한 일본군에서도 무기의 제식명에 황기에서 따온 숫자를 붙이곤 했다. 전후 창설된 자위대는 서기를 기반으로 제식명을 붙인다.
1940년(쇼와 15년)에는 황기 2600년을 기념하여 기원 2600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1940년(쇼와 15년)에는 황기 2600년을 기념하여 기원 2600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패전 이후로는 일본 사회가 연호 아니면 서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황기가 잘 쓰이진 않지만, 황기에 대한 법령은 아직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법적으로는 유효하다.
우익 성향이 강한 단체에서는 아직도 황기를 더 선호한다.
우익 성향이 강한 단체에서는 아직도 황기를 더 선호한다.
인도네시아 독립선언문에는 연도가 '05년 8월 17일'로 표기되었는데, 여기서 05년은 독립을 선언한 황기 2605년(서기 1945년)을 뜻한다.#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독립선언문의 05년이 일본 황기 2605년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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