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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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141번째(윤년의 경우 142번째) 날에 해당한다.
- 1978년 - 케이세이 히가시나리타선이 개통했다.
- 2008년 - 2007-08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열렸으며, 이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첼시 FC를 승부차기 끝에 6:5로 꺾고 세 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3] 또한 이날 맨유에서 선수 생활을 했었던 박지성은 대한민국과 아시아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선수라는 기록과 UEFA에 소속된 국가의 축구협회에서 개최하는 1부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를 한 시즌에 모두 우승한 선수가 되었다. 다만, 2007-08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당일에 박지성은 출전 선수 명단에서 제외가 되었으나, 빅 이어는 들어올렸다. 또한, 맨유는 같은 시즌에 열렸던 FA컵에서는 8강에서 탈락함에 따라 1999년처럼 유러피언 트레블을 달성하는 것은 실패했다.
- 2015년 - 장기협회 전 회장이었던 전만황이 권력 남용 문제로 영구제명 되었다.
- 2017년 - 오산 청소년 테이저 진압사건이 발생했다.
- 2018년 - 인천항에서 오토 배너호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 영화 날씨의 아이의 더빙판이 개봉했다.
- 2021 한미정상회담을 실시했다.
- SSG 랜더스/2021년/5월/21일: LG와 SSG 경기에서 유강남이 산 주자를 놔주고 죽은 주자를 쫓아가는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역대급으로 말도 안 되는 끝내기 경기를 만들어냈다.
- 제32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수류탄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 싱가포르항공 321편 기체 요동 사고가 일어났다.
- 성 고드릭
- 성 니코스트라토
- 성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
- 성 다비드 롤단 라라
- 성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
- 성 도나토
- 성 로드리고 아길라르 알레만
- 성 로만 아다메 로살레스
- 성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
- 성 마누엘 모랄레스
- 성 마르가리토 플로레스 가르시아
- 성 마테오 코레아 메가야네스
- 성 미겔 데 라 모라
- 성 발렌스
- 복자 벤베누토
- 성 빅토리오
- 성 사바스 레예스 살라사르
- 성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
- 성 세쿤도
- 성 세쿤디노
- 성 아우구스티노 칼로카 코르테스
- 성 아제라노
- 성 아틸라노 크루스 알바라도
- 성 안티오코
- 성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
- 성 에우티키오
- 성 예나로 산체스 델가디요
- 성녀 이스베르가
-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하라
- 성 크리스피노
- 성 테오발도
- 성 토리비오 로모 곤살레스
- 성 트란쿠일리노 우비아르코 로블레스
- 성 티모테오
- 성 페드로 데 헤수스 말도나도 루세로
- 성 페드로 에스케다 라미레스
- 성 폴리에욱토
- 성 폴리오
- 성 헤수스 멘데스 몬토야
- 성 호세 마리아 로블레스 우르타도
- 성 호세 이사벨 플로레스 바레라
- 성 호스피시오
- 성 후스티노 오로나 마드리갈
- 성 훌리오 알바레스 멘도사
- 오다 스바루 - 외톨이의 이세계 공략
- 오오쿠라 루미네 - 달에 다가가는 소녀의 작법 2
- 쿠즈류 료타 - 신칸센변형로보 신카리온 체인지 더 월드
- 아흐타르 모하마드 만수르(1968년~):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인
[1] 이 사건은 시민군이 조직돼 계엄군에 무장 저항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2] 임성훈은 모친상을 당하는 와중에도, 박소현은 갈비뼈 부상을 당하는 와중에도 단 한번도 펑크를 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3] 다만, 경기가 열린 루즈니키 스타디움이 위치한 모스크바 현지 시간으로는 22시 45분에 열렸고, 따라서 후반전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날이 바뀌었다. 그리고 한국 시간으로는 5월 22일 새벽 3시 45분에 열렸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두 팀이 속한 잉글랜드에서는 19시 45분에 열렸고, 따라서 브리튼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5월 21일 안에 결승전이 끝나는 순간을 볼 수 있었다.[4] 당초 2020년 4월 8일 시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이 날로 밀렸다. 때문에 이 시험은 4모라기보다는 5모로 더 잘 불린다.[5] 자세히는 소만 절입시간을 기준으로 갈린다.[6] 광주에 진주한 계엄군은 이날 낮 전라남도청 앞에서 비무장 상태였던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집단 발포를 자행했고 이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탄에 의해 희생되거나 다치는 참극이 벌어졌다. 문제는 지금 이 시간까지도 누가 집단 발포를 명령했는지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당시 군부의 실질적 최고 권력자였던 이 사람이 발포를 명령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실제 지휘계통에 이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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