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얀마
최근 수정 시각:
분류
|
상징 | ||||||||||||||||||||||||||||||||||||
국가 | ||||||||||||||||||||||||||||||||||||
국화 | 파다욱[4] | |||||||||||||||||||||||||||||||||||
역사 | ||||||||||||||||||||||||||||||||||||
지리 | ||||||||||||||||||||||||||||||||||||
인문환경 | ||||||||||||||||||||||||||||||||||||
하위 행정구역 | ||||||||||||||||||||||||||||||||||||
정치 | ||||||||||||||||||||||||||||||||||||
경제 | ||||||||||||||||||||||||||||||||||||
| ||||||||||||||||||||||||||||||||||||
단위 | ||||||||||||||||||||||||||||||||||||
외교 | ||||||||||||||||||||||||||||||||||||
.mm | ||||||||||||||||||||||||||||||||||||
국가 코드 | ||||||||||||||||||||||||||||||||||||
104, MMR, MM | ||||||||||||||||||||||||||||||||||||
국제전화 코드 | ||||||||||||||||||||||||||||||||||||
+95 | ||||||||||||||||||||||||||||||||||||
여행경보 | ||||||||||||||||||||||||||||||||||||
출국권고 | 여행금지 지역 제외 전 지역 | |||||||||||||||||||||||||||||||||||
여행금지 | 샨주 북부 및 동부, 까야주, 라카인주, 미야와디주 | |||||||||||||||||||||||||||||||||||
위치 |
버마 ဗမာပြည် 버마삐 ↓ 미얀마 연방 ပြည်ဓထာဝ်စု မြန်မာနိုင်ငံတော် 삐다웅주 며마나잉응앙도 ↓ 미얀마 မြန်မာပြည် 며마삐 မြန်မာနိုင်ငံ 며마나잉응앙 |
정식 국호는 '미얀마 연방공화국(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 Pyidaunzu Thanmăda Myăma Nainngandaw)'이다. 미얀마 군사 정권이 20년 만에 2010년 11월 7일에 실시하는 총선거를 앞두고 국기와 정식 국호를 변경했다. 이전의 국호는 '미얀마 연방'이었다. 1988년 미얀마로 개칭하기 전에는 '버마'라고 불렸다. 따라서 이 나라의 국호는 아직도 뜨거운 감자이다. 영국 등 꽤 많은 국가가 지금도 버마(Burma)라고 부르고 BBC World News도 버마라고 부른다. 한편, 미국 CNN International은 미얀마(Myanmar)라고 부른다.
과거 국호였던 '버마'는 미얀마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인 버마족의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 이 때문에 여러 민족을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바꾼 것이지만, 미얀마라는 표현의 어원도 결국 버마이기 때문에 다민족성을 표방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지적이 있다. 무엇보다, 1989년 미얀마 연방공화국으로 국호를 개칭할 때 그에 관여한 대부분 사람들이 언어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군부에서 지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군부의 독단적인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버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 산 수 치는 버마라는 단어를 사용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미얀마라고 안 부르고 그냥 버마로 부르고 있다. 이는 정통성에 관한 논란에서 비롯된 것인데, 미얀마가 군부에 의해 임의로 개칭된 국호라는 이유로 군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언론들이 주로 버마라고 부른다. 따라서 미국에서도 버마와 미얀마로 부르는 언론사들이 따로 있다. 아웅 산 수 치가 방한했을 때, 국내 언론사들에게 미얀마를 버마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의 경우 과거에는 꽤나 오랫동안 버마라고 부르다가 미얀마로 고쳤고,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국내 체류 미얀마인들은 현재의 공식 명칭인 미얀마는 독재 군사정권이 일방적으로 붙인 이름이므로 버마라고 표기해 달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국기를 사용할 때도 옛날 국기(아래의 버마 연방 국기)를 사용한다. 경향신문은 2007년부터 국내 언론사 중 최초로 미얀마의 표기를 버마로 바꿨다. #
그런데 버마와 미얀마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단언하기가 어렵다. 원래 이 나라의 이름은 미얀마였는데, 영국이 식민지배를 하면서 버마족의 이름을 따와 버마라고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재정권이 바꾸었으니 미얀마라는 호칭을 부정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버마 민족의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이름이란 점에서도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얀마 또한 어원은 버마족에 두고 있다. 오히려 영어판 위키피디아 해당 문서에 서술된 바에 의하면 '버마'가 '미얀마'에서 변성된 것으로, '버마'든 '미얀마'든 버마족을 지칭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일본에서는 '버마'를 표기시 비르마(ビルマ)라고 쓴다. 한때 한국에서는 일본 매체의 영향으로 버마를 '비르마'라고 표기한 사례 역시 숱하였다고 한다. 또, 인하대학교 사학과 최병욱 교수의 저서 『동남아시아사』에 따르면 1102년 버마족의 이웃이었던 몬족의 비문에 버마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Mirma'란 표현이 등장한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이를 음차한 듯한 '면전(緬甸)'이란 표기가 등장한다.
몇몇 맞춤법 검사기는 버마라는 국호가 예전의 이름이라 하여 일괄적으로 미얀마라고 수정하는데, 그래서 사마귀의 다른 이름인 버마재비가 '미얀마재비'가 되기도 한다. 결국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집권했지만 미얀마든 버마든 상관없다고 밝히면서 국호는 그대로 유지될 듯하다.
정치적 논란과는 별개로, 미얀마라는 국호 자체는 남만의 한자 蠻과 동계어이다. 상고한어 발음으로는 므론(mron)으로 재구되는데, 이는 미얀마의 옛 발음인 므란마(မြန်မာ / mranma)와 매우 유사해서, 상나라나 주나라 때의 고대 한족들이 버마인의 조상격 민족과 접촉한 흔적으로 추정된다. 므란마는 산스크리트어로 '강하다'를 의미한다.
특이하게도 영어 정식 국호가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로 of가 2번 들어간다. 통상적으로 연방공화국이나 연합공화국은 독일처럼 Federal Republic을 사용하거나, 브라질처럼 Federative Republic을 사용하거나, 탄자니아처럼 United Republic을 사용하는데, 미얀마는 유독 Republic of the Union이라는 다소 희한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 |||||||||||||||||||||||||||||||||||||||||||||||||||||||||||||||||||||||||||||||||||||||||||||||||||||||||||||||||||||||||||||||||||||||||||||||||||||||||||||||||||||||||||||||||||||||||||||||||||||||||||||||||||||||||||||||||||||||||||||||||||||||||||||||||||||||||||||||||||||||||||||||||||||||||||||||||||||||||||||||||||||||||||||||||||||||||||||||||||||||||||||||||||||||||||||||||||||||||||||||||||||||||||||||||||||||||||||||||||||||||||||||||||||||||||||||||||||||||||||||||||||||||||||||||||||||||||||||||||||||||||||||||||||||||||||||||||||||||||||||||||||||||||||||||||||||||||||||||||||||||||||||||||||||||||||||||||||||||||||||||||||||||||||||||||||||||||||||||||||||||||||||||||||||||||||||||||||||||||||||||||||||||||||||||||||||||||||||||||||||||||||||||||||||||||||||||||||||||||||||||||||||||||||||||||||||||||||||||||||||||||||||||||||||||||||||||||||||||||||||||||||||||||||||||||||||||||||||||||||||||||||||||||||||||||||||||||||||||||||||||||||||||||||||||||||||||||||||||||||||
국토 면적은 약 676,578km²로 대한민국의 약 6.7배고, 인구도 54,850,648명(2025년 기준)로 대한민국보다 약간 더 많으며, 콜롬비아, 케냐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미얀마인의 인구 구성은 버마족이 약 68%, 샨족이 9%, 카렌족이 7%이며 기타 소수민족도 16%에 이른다. 나라 크기에 비해 민족 구성이 대단히 다양해서, 무려 135개나 되는 소수민족이 산다. 공용어는 미얀마어지만 소수민족들의 언어들도 많이 쓰이는데, 그 수가 242개나 되어 세계 민속학자들의 단골 연구지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영어도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었다.
지방행정은 7주(states, ပြည်နယ်)와 7성(regions, တိုင်းဒေသကြီး: 과거에는 divisions)로 나뉜다. 성(省) 지역은 버마족이 중심인 지방들이고, 주(州) 지역은 소수민족이 중심인 지방들이다. 주는 카친주, 카야, 카인, 친, 몬, 라카인, 샨 주가 있고, 성은 양곤, 사가잉, 타닌타리, 바고, 마과이, 만달라이, 아예야와디 성이 있다.
지방행정은 7주(states, ပြည်နယ်)와 7성(regions, တိုင်းဒေသကြီး: 과거에는 divisions)로 나뉜다. 성(省) 지역은 버마족이 중심인 지방들이고, 주(州) 지역은 소수민족이 중심인 지방들이다. 주는 카친주, 카야, 카인, 친, 몬, 라카인, 샨 주가 있고, 성은 양곤, 사가잉, 타닌타리, 바고, 마과이, 만달라이, 아예야와디 성이 있다.
대영제국은 미얀마를 식민통치하는 와중에 농지 개간 및 도시 인프라 확대 차원에서 많은 인도계 주민들을 미얀마에 정착시켰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리랑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피지 등 다른 대영제국 식민지에 정착한 인도인들은 주로 타밀나두 지방의 수드라와 불가촉천민으로 고향에 농사 지을 땅이 없는 가난한 소작농들이 많았던 반면, 미얀마에 정착한 인도인들은 주로 아삼 지방과 마니푸르 지방의 브라흐민과 크샤트리야 등 상위 카스트 출신이 많았다. 대영제국에서 버마인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힌두교도 소수민족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정책이었을 수도 있다.
주로 양곤 시에 정착한 힌두교도 상인들은 버마 현지인들을 불가촉천민 취급을 하며 통혼은커녕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미얀마에 진주해오자 이들 중 상당수가 인도로 도망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양곤시 인구의 다수가 힌두교도였지만 2차대전과 그 이후 버마의 독립을 계기로 거진 다 떠나버렸고, 현재 미얀마에 거주하는 인도계 힌두교도 및 미얀마계 힌두교도 숫자는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2% 내외이다.
양곤에 정착한 힌두교도들과 달리 인도 동부에서 온 무슬림들은 버마 현지인 여자들을 현지처나 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힌두교에서는 외국인과의 통혼을 금기시하는 반면 이슬람에서는 무슬림 남성과 비무슬림 여성과의 결혼을 권장하는 편이다. 버마인 승려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여기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무슬림들을 전부 씨를 말려야 한다고 이를 갈았다. 힌두교도들은 무슬림들을 열등인종 취급하고 무시하는데, 정작 그 무슬림들은 버마 현지인 여자들을 첩으로 삼으니 버마인들 입장에서는 이가 부득부득 갈릴 만했다.
원래 이슬람에서는 무슬림 남자와 그리스도교/유대교 여자간 통혼은 권장하는 반면, 무슬림 남자와 불교/힌두교 여자간 통혼은 허용하지 않는다. 양곤시에 정착한 무슬림 상인 상당수는 정식 결혼을 이 아니라 몰래 애인 삼은 현지처를 둔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로힝야 난민문제의 발단은 버마인들이 느낀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로힝야를 제외한, 미얀마의 무슬림 인구 대부분은 무슬림 남자와 버마 현지인 비무슬림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
시크교도 군인들도 적지 않은 수가 대영제국의 군인으로 양곤에 정착했으나 현재는 거의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주로 양곤 시에 정착한 힌두교도 상인들은 버마 현지인들을 불가촉천민 취급을 하며 통혼은커녕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미얀마에 진주해오자 이들 중 상당수가 인도로 도망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양곤시 인구의 다수가 힌두교도였지만 2차대전과 그 이후 버마의 독립을 계기로 거진 다 떠나버렸고, 현재 미얀마에 거주하는 인도계 힌두교도 및 미얀마계 힌두교도 숫자는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2% 내외이다.
양곤에 정착한 힌두교도들과 달리 인도 동부에서 온 무슬림들은 버마 현지인 여자들을 현지처나 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힌두교에서는 외국인과의 통혼을 금기시하는 반면 이슬람에서는 무슬림 남성과 비무슬림 여성과의 결혼을 권장하는 편이다. 버마인 승려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여기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무슬림들을 전부 씨를 말려야 한다고 이를 갈았다. 힌두교도들은 무슬림들을 열등인종 취급하고 무시하는데, 정작 그 무슬림들은 버마 현지인 여자들을 첩으로 삼으니 버마인들 입장에서는 이가 부득부득 갈릴 만했다.
원래 이슬람에서는 무슬림 남자와 그리스도교/유대교 여자간 통혼은 권장하는 반면, 무슬림 남자와 불교/힌두교 여자간 통혼은 허용하지 않는다. 양곤시에 정착한 무슬림 상인 상당수는 정식 결혼을 이 아니라 몰래 애인 삼은 현지처를 둔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로힝야 난민문제의 발단은 버마인들이 느낀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로힝야를 제외한, 미얀마의 무슬림 인구 대부분은 무슬림 남자와 버마 현지인 비무슬림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
시크교도 군인들도 적지 않은 수가 대영제국의 군인으로 양곤에 정착했으나 현재는 거의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그러듯이 소수민족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극심하다. 소수민족들이 당하는 차별의 예가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역에는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도로도 포장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하다. 특히 군부 소유의 기업들이 소수민족들의 지역에 있는 자원들을 가져가며 막대한 돈을 버는데도 소수민족들에게는 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열악한 인프라를 개선해주지도 않는다. 또한 불교 사원에 대한 건축 허가는 잘 해주지만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건축 허가는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가장 나쁜 것이 소수민족 반군들과의 전쟁 과정에서 군경이 반군과 아무 상관이 없는 소수민족 민간인들에게 학살, 강간, 고문, 약탈, 강제노동을 저지르며 이에 대한 조사와 처벌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수민족 차별, 탄압에서 세계적으로도 미얀마는 특히 심각하게 부각된다. 영화 람보 4만 해도 미얀마가 저지르고 있는 소수민족 탄압의 악랄함을 잘 보여준다. 특히 람보 4는 미얀마의 소수민족 탄압을 보여준 것 때문에 현재 미얀마에서 상영 및 수입 금지까지 했다.
사실 미얀마의 주류민족인 버마족과 소수 민족들 간의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영국의 식민 통치 시기의 소수 민족 우대 및 민족, 종교간 분열 정책인데, 이원복은 교양만화 <가로세로 세계사> 2권에서 미얀마 민족분쟁 근본원인이 영국의 '국경선 멋대로 긋기'라고도 해석했다. 미얀마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데도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버마족이 독립 이후 미얀마 사회의 주도층으로 부상하면서 소수민족들을 차별하고 보복을 가한 것이다. 이를 참다 못한 각지의 여러 소수민족들이 버마족에 대항해 무기를 집어들었고 곧바로 내전이 시작되었다. 특히 소수민족 반군들은 게릴라전과 테러로 저항하여 미얀마 정부에게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다.
카친족, 기독교를 믿는 한족[15], 카렌족, 아라칸족, 샨족, 몬족, 와족, 친족[16], 나가족 등의 소수민족들은 미얀마에 대한 반감이 강하며 주류민족이자 불교도인 버마족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심하다. 그중 아라칸족은 미얀마에서 분리독립하거나 아예 인도에 편입하길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버마족은 물론 다른 소수민족들과도 갈등을 빚는다. 즉 다른 소수 민족들은 버마족 vs 각 소수 민족의 갈등 형태지만 로힝야족은 버마족 + 모든 소수민족들 vs 로힝야족의 형태로 대립한다.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220만 명이 사는데 그중에서 130만 명이 미얀마에 있다. 그 외에도 방글라데시, 인도, 사우디, 파키스탄에도 살고 있다.
미얀마의 독립과 함께 시작된 내전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기는 하나, 미얀마 정부와 굵직한 반군들 사이에 개별적인 휴전 협정이 타결된 이후로는 차츰 잦아들고 있다. 2022년 현재 어느 정도 민주화된 미얀마에서는 라카인족, 샨족, 몬족, 카친족, 카렌족 등 전통적인 반군조직들과 예전처럼 크게 교전한다는 소식은 없다. 버마족과 여러 소수민족들 간에 증오와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들은 미얀마 역사의 오랜 부분을 부대껴 살아왔고 같은 상좌부 불교 문화권이다. 일부 카렌족과 카친족의 그리스도교 계열 반군과는 여전히 대립하지만 1980-90년대에 비하면 매우 완화됐다. 하지만 일부 소수민족에 대해서는 미얀마 정부에서 아직도 매우 적대적인 입장을 유지하는데 대표적으로 무슬림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 청소 문제가 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아예 인도, 방글라데시로 추방시키기는 등 자국 내에서 완전히 쫓아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처우 개선은 전혀 없이 무슬림에 대한 차별정책을 강화하고 군대를 주둔시켜 모스크를 강제로 철거하거나 불교 사찰로 개조하는 등의 행위로 국제사회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으며 무슬림의 격렬한 반발을 부른다. 이 차별과 탄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공립학교 또한 불상을 두고 불교 교육만 시킨다. 그런데다가 무슬림인 로힝야족 다수는 실업자라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이러다보니 로힝야인들의 불교와 미얀마 정부에 대한 증오는 깊다.
결국 과격 이슬람 세력이 이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며 로힝야 무장단체들이 결성되어 테러가 벌어졌다. 이렇게 헬게이트가 열렸음에도 미얀마 정부는 그저 군대투입과 같은 강경책으로만 나가며 억압만 일삼으며 각종 전쟁범죄를 저지른다. 여기에 무슬림 추방을 강행하는데, 여기 거주하는 무슬림은 당연히 반발한다. 반군의 보복으로 불교도 버마족들을 공격하고 죽이면서 당연히 이주하려는 사람이 뚝 줄었고 치안은 악화한다.
하지만 로힝야족 문제는 단순히 미얀마 정부만의 잘못은 아니다. 2012년에 일어났던 무슬림과 불교도 간의 폭력 사태도 로힝야족 남자가 불교도 여자 어린이를 집단 성폭행하고 산 채로 불태워 죽였고 당시 피해자 가족 등은 가해자를 처단하겠다고 가해자를 내놓으라고 로힝야족에게 요구했지만 그걸 거부하고 모욕을 줬다. 또 로힝야족은 영국이 버마를 식민지화한 후 영국의 보호 아래에서 부를 축적해 버마족 입장에선 영국에 빌붙어 이득을 취하는 민족으로 앞잡이 같은 인식이고 당시에는 로힝야가 버마족을 차별했다. 이는 영국 식민지 시절 당시 카친족이나 카렌족, 샨족 등도 마찬가지다.
로힝야 무장단체가 이슬람 과격단체의 지원을 받고서 최근에 결성된 것도 아니다. 시작은 1948년에 미얀마가 독립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불교도 수천 명을 축출하면서 발생한 반란이다. 또 이후로도 1994년 한 마을을 습격하여 폭탄을 설치하여 주민에게 부상을 입히고 2014년 국경 경찰 4명을 살해하고 2016년에는 로힝야족 남자 수백 명이 칼과 화기류로 무장하고 국경 경찰 초소를 공격해 9명을 살해하고 2명을 사로잡고 상당수의 화기와 탄약을 탈취하는 등 지난 몇십 년 간 로힝야족 무장 단체는 계속 존재했고 말썽을 부렸다.
비이슬람 계열인 카친족, 카렌족 등의 일부 반군 조직도 여전히 미얀마 정부와 투쟁하며 유혈 사태를 일으키고 버마족을 보복 살해하며 저항할 정도로 원수지간이다. 다만 카친족과 카렌족은 미얀마 정부군에게 탄압받아도 최소한 미얀마 정부에서 자국민으로 인정하지만 로힝야족은 그마저도 없다.
그런데 소수민족 차별, 탄압에서 세계적으로도 미얀마는 특히 심각하게 부각된다. 영화 람보 4만 해도 미얀마가 저지르고 있는 소수민족 탄압의 악랄함을 잘 보여준다. 특히 람보 4는 미얀마의 소수민족 탄압을 보여준 것 때문에 현재 미얀마에서 상영 및 수입 금지까지 했다.
사실 미얀마의 주류민족인 버마족과 소수 민족들 간의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영국의 식민 통치 시기의 소수 민족 우대 및 민족, 종교간 분열 정책인데, 이원복은 교양만화 <가로세로 세계사> 2권에서 미얀마 민족분쟁 근본원인이 영국의 '국경선 멋대로 긋기'라고도 해석했다. 미얀마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데도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버마족이 독립 이후 미얀마 사회의 주도층으로 부상하면서 소수민족들을 차별하고 보복을 가한 것이다. 이를 참다 못한 각지의 여러 소수민족들이 버마족에 대항해 무기를 집어들었고 곧바로 내전이 시작되었다. 특히 소수민족 반군들은 게릴라전과 테러로 저항하여 미얀마 정부에게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다.
카친족, 기독교를 믿는 한족[15], 카렌족, 아라칸족, 샨족, 몬족, 와족, 친족[16], 나가족 등의 소수민족들은 미얀마에 대한 반감이 강하며 주류민족이자 불교도인 버마족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심하다. 그중 아라칸족은 미얀마에서 분리독립하거나 아예 인도에 편입하길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버마족은 물론 다른 소수민족들과도 갈등을 빚는다. 즉 다른 소수 민족들은 버마족 vs 각 소수 민족의 갈등 형태지만 로힝야족은 버마족 + 모든 소수민족들 vs 로힝야족의 형태로 대립한다.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220만 명이 사는데 그중에서 130만 명이 미얀마에 있다. 그 외에도 방글라데시, 인도, 사우디, 파키스탄에도 살고 있다.
미얀마의 독립과 함께 시작된 내전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기는 하나, 미얀마 정부와 굵직한 반군들 사이에 개별적인 휴전 협정이 타결된 이후로는 차츰 잦아들고 있다. 2022년 현재 어느 정도 민주화된 미얀마에서는 라카인족, 샨족, 몬족, 카친족, 카렌족 등 전통적인 반군조직들과 예전처럼 크게 교전한다는 소식은 없다. 버마족과 여러 소수민족들 간에 증오와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들은 미얀마 역사의 오랜 부분을 부대껴 살아왔고 같은 상좌부 불교 문화권이다. 일부 카렌족과 카친족의 그리스도교 계열 반군과는 여전히 대립하지만 1980-90년대에 비하면 매우 완화됐다. 하지만 일부 소수민족에 대해서는 미얀마 정부에서 아직도 매우 적대적인 입장을 유지하는데 대표적으로 무슬림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 청소 문제가 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아예 인도, 방글라데시로 추방시키기는 등 자국 내에서 완전히 쫓아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처우 개선은 전혀 없이 무슬림에 대한 차별정책을 강화하고 군대를 주둔시켜 모스크를 강제로 철거하거나 불교 사찰로 개조하는 등의 행위로 국제사회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으며 무슬림의 격렬한 반발을 부른다. 이 차별과 탄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공립학교 또한 불상을 두고 불교 교육만 시킨다. 그런데다가 무슬림인 로힝야족 다수는 실업자라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이러다보니 로힝야인들의 불교와 미얀마 정부에 대한 증오는 깊다.
결국 과격 이슬람 세력이 이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며 로힝야 무장단체들이 결성되어 테러가 벌어졌다. 이렇게 헬게이트가 열렸음에도 미얀마 정부는 그저 군대투입과 같은 강경책으로만 나가며 억압만 일삼으며 각종 전쟁범죄를 저지른다. 여기에 무슬림 추방을 강행하는데, 여기 거주하는 무슬림은 당연히 반발한다. 반군의 보복으로 불교도 버마족들을 공격하고 죽이면서 당연히 이주하려는 사람이 뚝 줄었고 치안은 악화한다.
하지만 로힝야족 문제는 단순히 미얀마 정부만의 잘못은 아니다. 2012년에 일어났던 무슬림과 불교도 간의 폭력 사태도 로힝야족 남자가 불교도 여자 어린이를 집단 성폭행하고 산 채로 불태워 죽였고 당시 피해자 가족 등은 가해자를 처단하겠다고 가해자를 내놓으라고 로힝야족에게 요구했지만 그걸 거부하고 모욕을 줬다. 또 로힝야족은 영국이 버마를 식민지화한 후 영국의 보호 아래에서 부를 축적해 버마족 입장에선 영국에 빌붙어 이득을 취하는 민족으로 앞잡이 같은 인식이고 당시에는 로힝야가 버마족을 차별했다. 이는 영국 식민지 시절 당시 카친족이나 카렌족, 샨족 등도 마찬가지다.
로힝야 무장단체가 이슬람 과격단체의 지원을 받고서 최근에 결성된 것도 아니다. 시작은 1948년에 미얀마가 독립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불교도 수천 명을 축출하면서 발생한 반란이다. 또 이후로도 1994년 한 마을을 습격하여 폭탄을 설치하여 주민에게 부상을 입히고 2014년 국경 경찰 4명을 살해하고 2016년에는 로힝야족 남자 수백 명이 칼과 화기류로 무장하고 국경 경찰 초소를 공격해 9명을 살해하고 2명을 사로잡고 상당수의 화기와 탄약을 탈취하는 등 지난 몇십 년 간 로힝야족 무장 단체는 계속 존재했고 말썽을 부렸다.
비이슬람 계열인 카친족, 카렌족 등의 일부 반군 조직도 여전히 미얀마 정부와 투쟁하며 유혈 사태를 일으키고 버마족을 보복 살해하며 저항할 정도로 원수지간이다. 다만 카친족과 카렌족은 미얀마 정부군에게 탄압받아도 최소한 미얀마 정부에서 자국민으로 인정하지만 로힝야족은 그마저도 없다.
국토의 중앙을 길이 2,170km인 에야와디강이 관통하는데, 강 유역에 평원이 펼쳐져 있다. 그 주변을 아라칸 산맥과 샨 고원 등 산지가 둘러싼 모양새인데, 최북단에는 해발 5,881m로 만년설로 덮인 동남아 최고봉 카까보라지(Hkakabo Razi)산이 있다. 그러나 2013년 미국인 앤디 타이슨이 이끄는 등산대는 근처에 있는 감랑라지(Gamlang Razi)산이 11미터 정도 더 높다고 발표하면서 카까보라지를 성스러운 산으로 받들던 미얀마에서 난리가 났다. 미얀마는 세계 최초로 이 산을 등정한 사람이 일본인이고[17], 이후 외국인이 연이어 올라갔음에 불만을 품었다.
그래서 2014년 8월, 미얀마인으로만 이뤄진 등산대를 보냈으나 이들은 조난당해 2명이 행방불명되어 사망처리되었고, 구조 헬리콥터까지 추락하여 조종사 1명이 죽으면서 등정에 실패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장비도 개판이고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그냥 올라간 게 드러나서 미얀마만 개망신당했다. 현재도 두 산 중 어느 쪽이 더 높은지 논란이 있다. 산이 워낙 험해 제대로 측정이 어렵다. 감랑라지산을 1970년 처음 오른 러시아 등산대는 여길 5,691m로 측정했다가 나중에 재측정하니 5,870m가 나오기도 하고 5,892m가 나오는 등, 측정할 때마다 결과가 달랐기 때문에 아직은 카까보라지 산이 동남아 최고봉으로 통한다.
동쪽엔 길이 2,815km인 살윈강이 흐르지만 워낙 절묘하게 산 속만 흐르는지라 에야와디강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양곤은 남부에, 행정수도인 네피도는 중부에, 역사도시인 만달레이는 북부에 있다. 그 북쪽은 동남아시아의 일반적인 풍경과 전혀 다른 티베트에서 이어지는 고산지대며, 반대로 남쪽의 길쭉하게 말레이 반도 입구까지 내려가는 지역은 동남아시아 어디 가도 안 꿀릴 맑은 인도양의 해변이 아직 덜 개발된 채 산재해 있다. 옆나라 태국을 보면 세계적 관광대국의 조건은 갖추고 있지만 정권이 못 받쳐줘서 지금 같은 상태인 것이다.
버마의 기후는 건기와 혹서기, 우기로 나뉘며 여타 동남아지역과는 비슷하나 비교적 대륙성 기후를 띄고 있다. 한국의 겨울 즈음인 건기에는 밤엔 춥고 낮엔 따뜻하며 건조하고, 한국의 봄 무렵에는 극도로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다 5월에서 6월쯤 오면 우기가 찾아와 적게는 한국의 여름과 비슷한 800mm 정도부터 많게는 5,000mm를 넘는 많은 비를 뿌린다.
에야워디강 상류 지역은 열대가 아닌 아열대 기후라 건기의 밤엔 온도가 0도 가까이 내려가며 혹서기 때 같은 때도 그렇게 온도가 높지 않다. 만달레이 등의 중류 지역은 강수량이 1000 mm가 안 되는 곳도 흔할 정도로 건조한 지역이다. 혹서기에는 극도로 뜨겁고, 뻐꼬꾸처럼 강수량이 620mm까지 떨어지는 지역도 있다.
양곤이 있는 에야워디강 하류 지역은 강수량이 2,500mm 정도로 많고 1년 내내 더운 편이다. 이 지역은 삼각주가 펼쳐져 있어 인구가 밀집했다.
서북부 해안의 시뜨웨 등의 라카잉 지역과 남동부 해안의 드웨 등의 뜨닝다이 지역은 바람과 산맥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아주 많아 5,000mm를 넘긴다. 마지막으로 따웅지 같은 고산 지대는 1년 내내 온화한 고산기후를 띈다.
그리고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맞물려 있는 지역 특성상 지진이 비교적 잦은 편이다. 이로 인해 고대 불교 유적 붕괴 및 파손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2014년 8월, 미얀마인으로만 이뤄진 등산대를 보냈으나 이들은 조난당해 2명이 행방불명되어 사망처리되었고, 구조 헬리콥터까지 추락하여 조종사 1명이 죽으면서 등정에 실패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장비도 개판이고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그냥 올라간 게 드러나서 미얀마만 개망신당했다. 현재도 두 산 중 어느 쪽이 더 높은지 논란이 있다. 산이 워낙 험해 제대로 측정이 어렵다. 감랑라지산을 1970년 처음 오른 러시아 등산대는 여길 5,691m로 측정했다가 나중에 재측정하니 5,870m가 나오기도 하고 5,892m가 나오는 등, 측정할 때마다 결과가 달랐기 때문에 아직은 카까보라지 산이 동남아 최고봉으로 통한다.
동쪽엔 길이 2,815km인 살윈강이 흐르지만 워낙 절묘하게 산 속만 흐르는지라 에야와디강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양곤은 남부에, 행정수도인 네피도는 중부에, 역사도시인 만달레이는 북부에 있다. 그 북쪽은 동남아시아의 일반적인 풍경과 전혀 다른 티베트에서 이어지는 고산지대며, 반대로 남쪽의 길쭉하게 말레이 반도 입구까지 내려가는 지역은 동남아시아 어디 가도 안 꿀릴 맑은 인도양의 해변이 아직 덜 개발된 채 산재해 있다. 옆나라 태국을 보면 세계적 관광대국의 조건은 갖추고 있지만 정권이 못 받쳐줘서 지금 같은 상태인 것이다.
버마의 기후는 건기와 혹서기, 우기로 나뉘며 여타 동남아지역과는 비슷하나 비교적 대륙성 기후를 띄고 있다. 한국의 겨울 즈음인 건기에는 밤엔 춥고 낮엔 따뜻하며 건조하고, 한국의 봄 무렵에는 극도로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다 5월에서 6월쯤 오면 우기가 찾아와 적게는 한국의 여름과 비슷한 800mm 정도부터 많게는 5,000mm를 넘는 많은 비를 뿌린다.
에야워디강 상류 지역은 열대가 아닌 아열대 기후라 건기의 밤엔 온도가 0도 가까이 내려가며 혹서기 때 같은 때도 그렇게 온도가 높지 않다. 만달레이 등의 중류 지역은 강수량이 1000 mm가 안 되는 곳도 흔할 정도로 건조한 지역이다. 혹서기에는 극도로 뜨겁고, 뻐꼬꾸처럼 강수량이 620mm까지 떨어지는 지역도 있다.
양곤이 있는 에야워디강 하류 지역은 강수량이 2,500mm 정도로 많고 1년 내내 더운 편이다. 이 지역은 삼각주가 펼쳐져 있어 인구가 밀집했다.
서북부 해안의 시뜨웨 등의 라카잉 지역과 남동부 해안의 드웨 등의 뜨닝다이 지역은 바람과 산맥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아주 많아 5,000mm를 넘긴다. 마지막으로 따웅지 같은 고산 지대는 1년 내내 온화한 고산기후를 띈다.
그리고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맞물려 있는 지역 특성상 지진이 비교적 잦은 편이다. 이로 인해 고대 불교 유적 붕괴 및 파손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아웅 산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이 총선에서 승리해 연방제 정부가 수립된 이래 양원제, 서구식 다당제 하에서 선거가 이뤄젔다. 그러나 공산당 및 소수민족 간의 정치 갈등과 경제 혼란 등이 겹쳐 1962년 네 윈이 일으킨 1962년 버마 군사반란 이후 1988년까지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BSPP)이 버마식 사회주의를 제창하며 일당 독재를 했다. 물론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측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구색을 갖추려고 의회도 만들었으나 BSPP의 승인을 받은 인사만 출마가 가능하다.
그러다가 1988년에 터진 8888 항쟁을 계기로 소 마웅이 이끄는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가 군부 내에서 쿠데타를 터뜨려 네 윈을 권좌에서 몰아냈고, 1992년부터 탄 쉐 장군이 집권한 후 1997년에 기존의 SLORC에서 개편하여 국가평화발전위원회를 조직하고 2011년까지 여기를 중심으로 또 군사독재를 했다.
아웅 산 수 치의 민주화 투쟁과 2007년 민주화운동 등을 계기로 2008년부터 일단 자유선거가 치러저 표면적으로 민주화가 되었으나 실상은 탄 쉐 장군과 군부가 지지하는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부정선거 논란속에 압승하고 정치를 좌지우지 했다. 2015년 자유선거에서 아웅산 수지의 민족민주동맹(NLD)이 승리하여 정권을 교체했다.
| ||||||||||||||||||||||||||||||||||||||||||||
| ||||||||||||||||||||||||||||||||||||||||||||
양원제 국가다. 2008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미얀마 군부가 상하원 전체의석의 25%를 지명한다. 미얀마의 정부수반은 중임 가능한 5년 임기의 부통령 3명을 각 원과 의회 군부가 1명씩 선출하고, 연방의원 전원이 3명의 부통령 중에서 1명을 미얀마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특히, 군 최고사령관이 임명하는 국방장관, 내무장관, 국경장관은 현역 군인이 장관 직을 수행할 수 있다.
군부의 의석으로 인해 군부가 국가의 통치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며 문민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부가 군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다보니 이로 인한 문제가 굉장하다. 심지어 미얀마군의 통수권자는 대통령도, 국가고문도 아닌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이다. 국방부장관의 임명도 최고사령관이 한다. 미얀마 정부는 군에게 협조를 요청할 권리만 있으며 군이 이를 거부할 경우 그 어떤 제재방법도 없다. 오히려 쿠데타 압박을 가하기에 정부가 군의 명령을 따르는 구조다. 내로라 하는 군사독재 국가들도 대개 문민통제가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고 일이 수틀리더라도 군부 지도자가 통수권을 가진 대통령 직을 꿰차며 독재를 하지, 이처럼 대놓고 통수권을 군부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항을 개혁하기 위해 개헌하고 싶어도 헌법상 75%의 동의를 받아야만 개헌할 수 있기 때문에 군부가 25%지명을 하는 현재 사실상 개헌이 불가능하다. 물론 설령 75%의 동의가 있다 하더라도 물리력을 지닌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그만이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언론탄압도 심각한데 2024년 기준 언론자유지수가 171위에 불과하며 정부가 언론과 기자에 대해 각종 탄압을 일삼고 있다.#, # 게다가 인터넷까지 검열하며 정부와 군부를 비판하기만 하면 체포하기도 했으며,# 특히 탄 쉐 시절인 2005년 이전까지만 해도 홈페이지 개설 및 호스팅이 금지됐다가 이후 조금씩 풀어줬지만, 구글, 핫메일, 야후! 등 주요 포털사이트를 차단했다. 2019년에는 군부를 비판하던 연극인이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미얀마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 대원수가 정권을 장악했으며 1년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민 슈웨 부통령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내각을 개각했으며,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국가행정위원회를 결성했다.
쿠데타 발생 이후 2월 2일 민 아웅 흘라잉 대원수는 군정을 실시하기 위하여 국가행정위원회(State Administrative Council)를 조직하였으며, 1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원은 현역 군인과 USDP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쿠데타 발생 이후 2월 2일 민 아웅 흘라잉 대원수는 군정을 실시하기 위하여 국가행정위원회(State Administrative Council)를 조직하였으며, 1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원은 현역 군인과 USDP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국가행정위원회 위원장 : 민 아웅 흘라잉 대원수. 미얀마군 최고사령관
- 국가행정위원회 부위원장 : 소 윈 원수. 미얀마군 부사령관
- 국가행정위원회 위원 : 미야 툰 우 대장. 미얀마 국방장관
- 국가행정위원회 위원 : 틴 아웅 산 대장
- 국가행정위원회 위원 : 마웅 마웅 쪼 대장
2021년 군부가 아웅 산 수 치를 구금하고 실권을 장악한 군사 쿠데타에 반발해 미얀마에서 벌어진 내전이다. 1988년 8월 8일부터 9월 16일까지 있었던 8888 항쟁에 빗대어 22222 항쟁(2021년 2월 22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외에도 봄 혁명(နွေဦးတော်လှန်ရေး) 등 여러 명칭이 있다.
평화주의를 고수하며 시위 등을 통해 군사반란을 반대하는 뜻을 펼치는 시민들을 군경이 지속적으로 살해하는 등, 군 반란세력이 양보와 타협을 끝끝내 거부하고 폭동적 시위진압을 고수하자 끝내 시민들도 저항권을 발동하면서 자체적으로 무장하기 시작했고, 5월 5일, 미얀마 시민방위군이 창설되면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2021년 9월 7일, 반군부 민주진영인 국민통합정부가 군부에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였다.
미얀마의 근대적인 교육 여건은 영국령 시기, 일본령 시기에 확립되었다.
현대의 미얀마의 학제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이다. 9월에 입학한다.
유치원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재해 있으며 수가 적어 대부분의 아동은 사원에서 글을 익힌다. 유치원은 2년제로 4세에 입학하여 5세 중반에 졸업한다.
초등학교는 대부분 국공립이며 중소도시에서도 접근성이 높다. 다만 의무교육이 아니라 소정의 수업료를 낸다. 초등학교는 5년제로 5세에 0학년으로 입학하여 10세에 4학년으로 졸업한다.
중학교는 국공립과 사립으로 나뉜다. 사립 중학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있으며 부유한 집안의 학생이 많다. 중학교는 4년제로 10세에 5학년으로 입학하여 13세에 8학년으로 졸업한다.
고등학교는 복선형인데 대학 진학을 위한 인문계 고등학교와 취직을 위한 직업계 고등학교로 나뉜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명칭에는 지역명과 숫자가 있는데 숫자가 그 지역내 고등학교의 순위다. 즉 양곤 제1고등학교는 양곤 지역 최고의 고등학교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미얀마 전국에 200개 정도며 이 학교 입학을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직업계 고등학교는 국공립과 사립이 섞여 있으며 대도시와 지역 중심지를 중심으로 있다. 고등학교는 기본적으로 2년제나 일부 인문계 고등학교는 3년제다. 고등학교는 15세 혹은 16세에 졸업한다.
대학입학 시험을 3월에 실시하며 국공립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만 응시할 수 있다. 시험 과목은 버마어, 영어, 수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 지리학, 역사, 경제학이며, 각 과목마다 2개의 논술형 문제가 출제된다. 연간 80~100만명의 인원이 응시한다.
전국적으로 163개의 대학이 있으며 미얀마의 헌법에는 각 주에 인문계대학 1개, 기술대학 1개의 설치 의무가 있다. 미얀마 대학의 학사 과정은 4년제다.
미얀마의 대학 중 일부는 영국령 식민 시기에 설립된 유서 깊은 학교다. 대표적인 대학이 양곤대학, 양곤경제대학, 양곤외국어대학이다. 지방 주 지역에도 식민 시기 설립된 명망 있는 대학이 있다. 이러한 대학은 반식민지 운동의 중심지였고 이후에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었다. 실제로 네 윈 정권에서는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을 할 것을 염려해 학내에서 영어 사용을 금지하고 종합대학은 분리시켜서 강제 분산했다. 또 대학 교육 기간을 2~3년으로 축소했다. 위에 기술한 양곤대학, 양곤경제대학, 양곤외국어대학도 원래 하나의 대학이었으나 이 때 분리한 것이다.
미얀마는 본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꽤 수준 높은 대학 교육으로 인근 국가에서 많은 유학생이 찾았으나 네 윈 정권의 이러한 대학 탄압 정책으로 대학 교육 수준이 급추락했다. 이후의 군사 정권에서도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강해져 대학 경내 외부인 출입 금지, 부정기적인 강의 진행, 입학생 모집 중지 등의 조치를 2011년까지 수십년간 지속한다.
2011년 탄 쉐 정권이 퇴진하고 대학 교육이 정상화한다. 대학 교육 기간을 4년 이상으로 법제화하고 강의 시수 확보가 안정적으로 이뤄졌다. 다만 대학 경내의 외부인 출입 금지는 지금도 여전해 출입문과 건물을 드나들 때 학생증 검사를 꽤나 철저히 한다. 구내식당도 마찬가지라 재학생이 아닌 경우에는 식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현재 미얀마 대학 내 주요 교수 언어는 영어다. 강의, 과제, 논문 작성 등에서 영어를 기본적으로 쓴다. 특이한 점은 미얀마 내 대학 교수의 90%가량이 여성이다. 이는 미얀마 내 특유의 출세 지향적 문화와 관련이 있는데, 남성이 박사 학위를 받는다 해도 남성들은 학자가 되기보단 공무원이 되거나 기업에 가고자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미얀마의 학제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이다. 9월에 입학한다.
유치원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재해 있으며 수가 적어 대부분의 아동은 사원에서 글을 익힌다. 유치원은 2년제로 4세에 입학하여 5세 중반에 졸업한다.
초등학교는 대부분 국공립이며 중소도시에서도 접근성이 높다. 다만 의무교육이 아니라 소정의 수업료를 낸다. 초등학교는 5년제로 5세에 0학년으로 입학하여 10세에 4학년으로 졸업한다.
중학교는 국공립과 사립으로 나뉜다. 사립 중학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있으며 부유한 집안의 학생이 많다. 중학교는 4년제로 10세에 5학년으로 입학하여 13세에 8학년으로 졸업한다.
고등학교는 복선형인데 대학 진학을 위한 인문계 고등학교와 취직을 위한 직업계 고등학교로 나뉜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명칭에는 지역명과 숫자가 있는데 숫자가 그 지역내 고등학교의 순위다. 즉 양곤 제1고등학교는 양곤 지역 최고의 고등학교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미얀마 전국에 200개 정도며 이 학교 입학을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직업계 고등학교는 국공립과 사립이 섞여 있으며 대도시와 지역 중심지를 중심으로 있다. 고등학교는 기본적으로 2년제나 일부 인문계 고등학교는 3년제다. 고등학교는 15세 혹은 16세에 졸업한다.
대학입학 시험을 3월에 실시하며 국공립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만 응시할 수 있다. 시험 과목은 버마어, 영어, 수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 지리학, 역사, 경제학이며, 각 과목마다 2개의 논술형 문제가 출제된다. 연간 80~100만명의 인원이 응시한다.
전국적으로 163개의 대학이 있으며 미얀마의 헌법에는 각 주에 인문계대학 1개, 기술대학 1개의 설치 의무가 있다. 미얀마 대학의 학사 과정은 4년제다.
미얀마의 대학 중 일부는 영국령 식민 시기에 설립된 유서 깊은 학교다. 대표적인 대학이 양곤대학, 양곤경제대학, 양곤외국어대학이다. 지방 주 지역에도 식민 시기 설립된 명망 있는 대학이 있다. 이러한 대학은 반식민지 운동의 중심지였고 이후에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었다. 실제로 네 윈 정권에서는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을 할 것을 염려해 학내에서 영어 사용을 금지하고 종합대학은 분리시켜서 강제 분산했다. 또 대학 교육 기간을 2~3년으로 축소했다. 위에 기술한 양곤대학, 양곤경제대학, 양곤외국어대학도 원래 하나의 대학이었으나 이 때 분리한 것이다.
미얀마는 본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꽤 수준 높은 대학 교육으로 인근 국가에서 많은 유학생이 찾았으나 네 윈 정권의 이러한 대학 탄압 정책으로 대학 교육 수준이 급추락했다. 이후의 군사 정권에서도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강해져 대학 경내 외부인 출입 금지, 부정기적인 강의 진행, 입학생 모집 중지 등의 조치를 2011년까지 수십년간 지속한다.
2011년 탄 쉐 정권이 퇴진하고 대학 교육이 정상화한다. 대학 교육 기간을 4년 이상으로 법제화하고 강의 시수 확보가 안정적으로 이뤄졌다. 다만 대학 경내의 외부인 출입 금지는 지금도 여전해 출입문과 건물을 드나들 때 학생증 검사를 꽤나 철저히 한다. 구내식당도 마찬가지라 재학생이 아닌 경우에는 식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현재 미얀마 대학 내 주요 교수 언어는 영어다. 강의, 과제, 논문 작성 등에서 영어를 기본적으로 쓴다. 특이한 점은 미얀마 내 대학 교수의 90%가량이 여성이다. 이는 미얀마 내 특유의 출세 지향적 문화와 관련이 있는데, 남성이 박사 학위를 받는다 해도 남성들은 학자가 되기보단 공무원이 되거나 기업에 가고자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공용어는 미얀마어로 지정되어 있다. 미얀마어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처럼 SOV 어순을 따르는 언어다. 또한 성조 역시 캄보디아를 제외한 인도차이나반도 국가 가운데에서는 제일 적어 3개 뿐이다. 미얀마도 다민족국가라서 샨어, 카렌어 등 각 소수민족 언어가 병용된다. 그 외에도 예전에는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영국의 영향으로 영어도 쓰인다.[18]
그리고 간단한 한국어 정도는 익히는 사람이 많은데, 물론 중급 이상으로 학습하는 경우는 그렇게까지 많진 않지만, 그래도 드라마, 영화, K-POP 덕질을 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미얀마 내 한국 기업이나 한국으로 취업하고자 한국어를 공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미얀마인들의 정서가 한국인들과 비슷한 부분이 의외로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간단한 한국어 정도는 익히는 사람이 많은데, 물론 중급 이상으로 학습하는 경우는 그렇게까지 많진 않지만, 그래도 드라마, 영화, K-POP 덕질을 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미얀마 내 한국 기업이나 한국으로 취업하고자 한국어를 공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미얀마인들의 정서가 한국인들과 비슷한 부분이 의외로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을 비롯하여 여러 종교가 있지만, 상좌부 불교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19] 미얀마 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여, 특히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이라도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야 할 정도다. 전체 인구 중 88%가 불자이다. 생활에서나 문화에서나 불교의 영향이 곳곳에 보인다. 거리에 나가면 아침마다 시주를 받으러 다니는 승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절을 젊은이들의 만남 장소나 공동체 모임 장소로도 많이 사용하며, 미얀마 남자들은 성인식 차원에서 몇 주 혹은 몇 달간 삭발을 하고 절에 들어가 불공을 드림이 문화적인 통과의례다.
근데 최근 들어서는 이런 것을 귀찮게 여겨 생략하는 청년들이 늘었다고 한다. 또, 추문에 시달리거나 소비지향주의에 많이 물든 땡중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는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으면 여러 가지 계율을 지켜야 하므로, 일부러 평생 사미로 머무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불교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의 10계처럼 상좌부 불교의 오계를 일상적으로 지킨다.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과 마약을 삼가라." 그러나 도덕적으로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시골 사람이나, 가축을 도축하는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를 합리화하려고 각종 변명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미얀마 내 불교 종파(nikaya)는 선불교나 명상과 같은 일반인들도 참여하기에 어렵지 않은 특징을 내세운 신흥 종파도 두각을 드러내며, 불교계 각종 이슈는 비교적 자주 뉴스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법적으로 허가받은 종파는 단 아홉 곳뿐이며, 가장 세력이 큰 종파로는 수담마(Sudhamma)가 있다. 수담마 종파는 불교 개혁을 부르짖은 꼰바웅 왕조의 보도파야 황제가 세운 종파로, 쉐진(Shwegyin)이나 겟뛴(Hngettwin), 마하드와라(Mahadvara), 물라드와라(Muladvara) 등 타 종파에 비해 원리주의적 면모가 덜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9개 외의 종파에 대해서는 위닛차야(Vinicchaya)라는 이단 심문소의 심리를 거쳐, 이단으로 판단될 경우 가차 없이 탄압한다.
일반 학교 교사들 또한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미얀마 문화와 불교 문화를 함께 가르치는 전인적 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미얀마인들은 어릴 때부터 불교 문화에 스며든다. 불교 사원에서 미션스쿨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20] 다만 학교에서의 불교 교육 수준은 교사마다 또는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교사는 아비담마를 깊이 있게 공부하여 교학과 수행을 깊이 있게 가르쳐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활용하지만, 어떤 교사는 자타카에 나오는 여러 우화나 카르마에 기반한 윤리관을 피상적으로 가르치는 수준이다. 마바타(Ma Ba Tha)와 같은 극단주의 승려들과 교감하며 이들의 논리를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교사들도 있다. #
절에서는 대승불교와 성격이 많이 다른 상좌부 불교 문화가 많이 살아있다. 대승불교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미얀마 절에서 금박을 붙이고 연꽃을 합장한 손에 끼우는 등 행위가 많이 낯설다.
불교가 존숭받는 나라답게 미얀마의 절들은 정말 크다. 보통 절들이 대학 캠퍼스만 한 경우도 적지 않고, 각종 역사적인 절들과 도심 곳곳에 자리한 절들 외에도 새로 창건하는 절도 상당히 전국에 많다.
불교의 영향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불교는 법률로도 보호를 받는다. 미얀마에서 불교를 존숭하지 않는 행위까지 법적으로 처벌받는 범죄다. 예를 들어 불교 사찰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갔다가 종교행사방해죄로 경찰서에 끌려간 외국인 관광객의 사례가 있다. 또한 몸에 불상 문신을 한 네덜란드 관광객이 종교모독죄로 추방당한 예도 있다. 불교적 그림이나 불상은 불교의례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악의적인 표현이 없다고 하더라도 비불교적인 용도로 사용함 자체를 불교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외국인 입국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미얀마의 불교가 종교 근본주의 수준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 상좌부 불교 승려나 불교도들은 자신들이 붓다의 진설을 그대로 보존하였다고 믿어서 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21] 미얀마 불교의 특징은 이웃한 캄보디아 등의 국가[22]에 비해 《청정도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마타 및 위빠싸나 수행자 수가 많다는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토착 신격인 낫(Nat)도 함께 섬긴다. 낫은 대부분 불교 전래 이전 미얀마의 토착신이나, 한을 품고 죽은 역사 인물이나, 옛 미얀마에서 잠시 위세를 떨쳤던 대승 불교의 보디사뜨와(보살)들이 변형되어 민간신앙에 편입된 것이다. 이들은 상좌부 불교와 결합하여 불법(붓다담마)를 수호하는 신장처럼 대접받는다. 낫을 섬기는 주술사는 대개 여장남자인데 '낫거도'라고 불린다. 이들은 한국 무속신앙의 굿과 비슷한 '야다야(yadaya)'[23]라는 주술의례를 행하는데, 다양한 이유로 행하지만 대개 액땜의 성격이 강하다.[24] 야다야는 수비학적 성격이 강한데 특히 숫자 9를 영험하게 여긴다. 외세와 민주화 세력을 두려워하는 미얀마군 장성들도 낫 신앙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커서, 낫을 마치 자기들의 수호신처럼 여긴다. 현재 수도인 네피도 곳곳에도 온갖 낫들의 채색상이 세워져 있다.
불교 사원에 모셔진 불상 중 일부는 매우 특이하게 생겼다. 이 경우 주술사가 특정 정치인, 군인 등 세력가의 안위를 위해 제작에 관여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2020년 미얀마 종교부에서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불상을 대대적으로 철거하라고 요구하였으나 이듬해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불교 승려가 보시를 받고서 점성술(미얀마어: ဗေဒင်)[25]에 바탕한 조언을 일반 주민이나 권력자에게 해 주는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 상좌부 불교 승려는 율장에 따라 점성술을 비롯한 점술로 생계를 이어서는 안 되지만, 점성술을 배우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적다. 이는 본생경에 기록된 보살들의 일화나 앙굴리말라의 탄생설화[26] 등을 근거로, 개인이 타고 나는 과거생의 업을 점성술로 미리 알 수 있다는 인식이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징조를 해석하는 학문이 천신들로부터 전수된 앎이며, 싯다르타 왕자가 붓다가 될 것임을 알아보는 데 활용되었다는 경전의 기록도 점술이 불교 문화권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일조했다.
한편 서부 및 북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영국 식민 시절에 들어온 기독교를 믿는 민족들도 많으며 방글라데시와 접한 서부 라카인 주에는 로힝야라고 불리는 영국 식민 시절에 미얀마로 이주한 벵골인 무슬림들의 후손들도 많다. 다만 로힝야는 기원이 기원인지라 미얀마 정부의 조직적인 박해를 받는 중이다. 벵골계 무슬림 주민들 중에서도 그나마 덜 박해받는 이들은 벵골인과 미얀마 토착민의 혼혈이거나, 순혈 벵골인이지만 로힝야족이라는 정체성이 없는 이들이다.
근데 최근 들어서는 이런 것을 귀찮게 여겨 생략하는 청년들이 늘었다고 한다. 또, 추문에 시달리거나 소비지향주의에 많이 물든 땡중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는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으면 여러 가지 계율을 지켜야 하므로, 일부러 평생 사미로 머무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불교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의 10계처럼 상좌부 불교의 오계를 일상적으로 지킨다.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과 마약을 삼가라." 그러나 도덕적으로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시골 사람이나, 가축을 도축하는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를 합리화하려고 각종 변명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미얀마 내 불교 종파(nikaya)는 선불교나 명상과 같은 일반인들도 참여하기에 어렵지 않은 특징을 내세운 신흥 종파도 두각을 드러내며, 불교계 각종 이슈는 비교적 자주 뉴스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법적으로 허가받은 종파는 단 아홉 곳뿐이며, 가장 세력이 큰 종파로는 수담마(Sudhamma)가 있다. 수담마 종파는 불교 개혁을 부르짖은 꼰바웅 왕조의 보도파야 황제가 세운 종파로, 쉐진(Shwegyin)이나 겟뛴(Hngettwin), 마하드와라(Mahadvara), 물라드와라(Muladvara) 등 타 종파에 비해 원리주의적 면모가 덜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9개 외의 종파에 대해서는 위닛차야(Vinicchaya)라는 이단 심문소의 심리를 거쳐, 이단으로 판단될 경우 가차 없이 탄압한다.
일반 학교 교사들 또한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미얀마 문화와 불교 문화를 함께 가르치는 전인적 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미얀마인들은 어릴 때부터 불교 문화에 스며든다. 불교 사원에서 미션스쿨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20] 다만 학교에서의 불교 교육 수준은 교사마다 또는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교사는 아비담마를 깊이 있게 공부하여 교학과 수행을 깊이 있게 가르쳐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활용하지만, 어떤 교사는 자타카에 나오는 여러 우화나 카르마에 기반한 윤리관을 피상적으로 가르치는 수준이다. 마바타(Ma Ba Tha)와 같은 극단주의 승려들과 교감하며 이들의 논리를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교사들도 있다. #
절에서는 대승불교와 성격이 많이 다른 상좌부 불교 문화가 많이 살아있다. 대승불교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미얀마 절에서 금박을 붙이고 연꽃을 합장한 손에 끼우는 등 행위가 많이 낯설다.
불교가 존숭받는 나라답게 미얀마의 절들은 정말 크다. 보통 절들이 대학 캠퍼스만 한 경우도 적지 않고, 각종 역사적인 절들과 도심 곳곳에 자리한 절들 외에도 새로 창건하는 절도 상당히 전국에 많다.
불교의 영향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불교는 법률로도 보호를 받는다. 미얀마에서 불교를 존숭하지 않는 행위까지 법적으로 처벌받는 범죄다. 예를 들어 불교 사찰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갔다가 종교행사방해죄로 경찰서에 끌려간 외국인 관광객의 사례가 있다. 또한 몸에 불상 문신을 한 네덜란드 관광객이 종교모독죄로 추방당한 예도 있다. 불교적 그림이나 불상은 불교의례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악의적인 표현이 없다고 하더라도 비불교적인 용도로 사용함 자체를 불교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외국인 입국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미얀마의 불교가 종교 근본주의 수준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 상좌부 불교 승려나 불교도들은 자신들이 붓다의 진설을 그대로 보존하였다고 믿어서 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21] 미얀마 불교의 특징은 이웃한 캄보디아 등의 국가[22]에 비해 《청정도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마타 및 위빠싸나 수행자 수가 많다는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토착 신격인 낫(Nat)도 함께 섬긴다. 낫은 대부분 불교 전래 이전 미얀마의 토착신이나, 한을 품고 죽은 역사 인물이나, 옛 미얀마에서 잠시 위세를 떨쳤던 대승 불교의 보디사뜨와(보살)들이 변형되어 민간신앙에 편입된 것이다. 이들은 상좌부 불교와 결합하여 불법(붓다담마)를 수호하는 신장처럼 대접받는다. 낫을 섬기는 주술사는 대개 여장남자인데 '낫거도'라고 불린다. 이들은 한국 무속신앙의 굿과 비슷한 '야다야(yadaya)'[23]라는 주술의례를 행하는데, 다양한 이유로 행하지만 대개 액땜의 성격이 강하다.[24] 야다야는 수비학적 성격이 강한데 특히 숫자 9를 영험하게 여긴다. 외세와 민주화 세력을 두려워하는 미얀마군 장성들도 낫 신앙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커서, 낫을 마치 자기들의 수호신처럼 여긴다. 현재 수도인 네피도 곳곳에도 온갖 낫들의 채색상이 세워져 있다.
불교 사원에 모셔진 불상 중 일부는 매우 특이하게 생겼다. 이 경우 주술사가 특정 정치인, 군인 등 세력가의 안위를 위해 제작에 관여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2020년 미얀마 종교부에서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불상을 대대적으로 철거하라고 요구하였으나 이듬해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불교 승려가 보시를 받고서 점성술(미얀마어: ဗေဒင်)[25]에 바탕한 조언을 일반 주민이나 권력자에게 해 주는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 상좌부 불교 승려는 율장에 따라 점성술을 비롯한 점술로 생계를 이어서는 안 되지만, 점성술을 배우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적다. 이는 본생경에 기록된 보살들의 일화나 앙굴리말라의 탄생설화[26] 등을 근거로, 개인이 타고 나는 과거생의 업을 점성술로 미리 알 수 있다는 인식이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징조를 해석하는 학문이 천신들로부터 전수된 앎이며, 싯다르타 왕자가 붓다가 될 것임을 알아보는 데 활용되었다는 경전의 기록도 점술이 불교 문화권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일조했다.
한편 서부 및 북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영국 식민 시절에 들어온 기독교를 믿는 민족들도 많으며 방글라데시와 접한 서부 라카인 주에는 로힝야라고 불리는 영국 식민 시절에 미얀마로 이주한 벵골인 무슬림들의 후손들도 많다. 다만 로힝야는 기원이 기원인지라 미얀마 정부의 조직적인 박해를 받는 중이다. 벵골계 무슬림 주민들 중에서도 그나마 덜 박해받는 이들은 벵골인과 미얀마 토착민의 혼혈이거나, 순혈 벵골인이지만 로힝야족이라는 정체성이 없는 이들이다.
2010년대 도시 기준으로는 제법 좋은 편으로, 경범죄 발생률도 낮았다.[27] 미얀마 사람들도 자비를 강조하는 불심으로 어디 가서 안 밀리는 나라답게 대체로는 온화하고 친절한 편이다. 그래도 엄연히 여행 유의 국가이며 국경 지대 등 일부 지역들은 철수 권고 지역으로 발령되어 있다. 게다가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후로는 자국민들도 군부에 저항하다 학살당하는 상황이라 안전하다고 보긴 어렵다. 군부에 대항하는 시민군들도 무장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내전 상태다. 즉, 함부로 미얀마 갔다가 재수없으면 미얀마군이나 시민군에게 총 맞고 죽을 수도 있다. 미얀마군은 불교 극단주의와 주술 등에 철저히 경도되어 군인 외 사람들을 밑으로 보는 호전적인 집단이며, 중국계 범죄조직들과도 연계되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샨주 동•북부 지역과 까야주는 법적 강제력이 있는 여행금지 지역이다. 중국-태국 접경 지역은 위험하고 외국인 출입 금지 지역은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샨주 남부 지역의 태국-라오스와 인접한 국경지대는 그 유명한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며 과거 쿤사의 마약 카르텔 군벌들이 정부군과 교전하면서 악명을 날렸다. 쿤사가 은퇴하고 그 일대가 카지노, 관광 단지로 개발되면서 치안 상태는 많이 좋아졌으나, 21세기 들어 또 다시 마약 군벌들과 중국계 마약 조직들, 삼합회들이 그곳 일부 지역에서 마약을 생산한다고 한다. 이 지역은 캄보디아처럼 범죄단지가 들어서 있어 외국인에 대한 납치와 인신매매가 빈번하게 일어나며, 납치 피해자들은 마약 생산 및 유통에 강제로 동원되거나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를 강요받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흔히 미얀마의 범죄단지 등을 'KK단지', 또는 'KK캠프'로 부른다. 그런데 여행금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태국 국경 검문소와 연결되어있는 곳이 여행금지에 해당되므로, 항공편으로 가는 게 아니라면 태국, 특히 치앙라이 쪽과 연계하여 여행할 수 없다.#
특히 샨주 동•북부 지역과 까야주는 법적 강제력이 있는 여행금지 지역이다. 중국-태국 접경 지역은 위험하고 외국인 출입 금지 지역은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샨주 남부 지역의 태국-라오스와 인접한 국경지대는 그 유명한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며 과거 쿤사의 마약 카르텔 군벌들이 정부군과 교전하면서 악명을 날렸다. 쿤사가 은퇴하고 그 일대가 카지노, 관광 단지로 개발되면서 치안 상태는 많이 좋아졌으나, 21세기 들어 또 다시 마약 군벌들과 중국계 마약 조직들, 삼합회들이 그곳 일부 지역에서 마약을 생산한다고 한다. 이 지역은 캄보디아처럼 범죄단지가 들어서 있어 외국인에 대한 납치와 인신매매가 빈번하게 일어나며, 납치 피해자들은 마약 생산 및 유통에 강제로 동원되거나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를 강요받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흔히 미얀마의 범죄단지 등을 'KK단지', 또는 'KK캠프'로 부른다. 그런데 여행금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태국 국경 검문소와 연결되어있는 곳이 여행금지에 해당되므로, 항공편으로 가는 게 아니라면 태국, 특히 치앙라이 쪽과 연계하여 여행할 수 없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처럼 여기도 기후가 온화하여 각종 채소, 곡식들을 많이 재배한다. 따라서 채소 요리가 발달하였다. 물론 고기 요리도 있는데, 주로 생선, 닭고기 요리가 발달되었다. 태국 요리, 인도 요리와도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대한민국에서는 인천 부평역 근처에서 미얀마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부평역 근처는 미얀마 불교 사원이 있어서 대한민국에서 미얀마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남자의 가웅바웅이라는 전통 터번, 론지라는 남녀 공용 전통 치마가 유명하다. 타나카라는 미용을 위한 하얀 전통 화장품도 유명하다. 가웅바웅은 격식을 차린 행사에서 종종 등장하지만 론지나 타나카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보인다.
남자의 가웅바웅이라는 전통 터번, 론지라는 남녀 공용 전통 치마가 유명하다. 타나카라는 미용을 위한 하얀 전통 화장품도 유명하다. 가웅바웅은 격식을 차린 행사에서 종종 등장하지만 론지나 타나카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보인다.
미얀마의 기간방송으로는 MRTV(Myanmar Radio and Television), MWD(Myawaddy TV)가 있다. MRTV는 국영방송으로, 영국 식민시절인 1946년 개국한 유서 깊은 방송국이다. 텔레비전 방송은 1980년부터 시작했으며 1997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MWD는 특이하게 미얀마군이 운영하는 군영 방송으로 총 6개의 채널이 있다. 미얀마라는 나라가 군부가 지배하는 선군정치에 가깝다 보니 군부 방송이 전국 중앙방송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민영방송은 대표적으로 포에버 그룹이 MRTV와 합작하여 세운 MRTV-4 채널이 있다. 소프트 파워가 빈약한 미얀마이지만 드라마를 비롯한 TV 프로그램을 꾸준히 자체제작하고 있다. 그 외 방송국들은 주로 해외 프로그램들을 수입해 방영하는데 보통 중국,인도,태국 같은 옆 나라 또는 한국 등지에서 많이 들여온다. 한국 드라마는 20여년 전부터 미얀마에서 방영되고 있으며 현지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특이한 점으로 한국 드라마 중 사극의 인기가 높은데 군부 측에서 사극에 매우 호의적이라고 한다.
미얀마의 신문은 국영 신문인 미얀마 알린, 더 미러, 글로벌 뉴라이트 오브 미얀마(영자지), 군부 신문인 더 먀와디만 발행되고 있다. 그 전에는 미얀마 나우, 더 이라와디 등의 민영 신문들도 있었으나 쿠데타로 강제 폐간되어 지금은 독립언론 형태로 이어나가고 있다. 영자신문은 그 정도가 덜하지만, 미얀마어본 국영 신문과 군부 신문은 기사를 전산화하는 일이 매우 드물며, 웹사이트에 들어가 봐도 종이 신문의 스캔본만 공개한다. 내수용 신문에 실린 텍스트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극히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간지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검열하며, 주간지는 정치 관련 보도를 자제한다는 점으로 인해 언론 통제를 느슨히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2021년 이후로는 이마저도 경색되었다.
모든 통신수단은 미얀마 통신정보기술부(MCIT)가 주관하며 미얀마우편통신공사(MPT)가 독점해왔으나, 2013년 카타르 우레두, 2014년 노르웨이 텔레노르가 각각 진출하여 균열이 깨지기 시작했고 2018년 베트남 비엣텔이 군부 측과 합작해 '미텔'을 개통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1885년 '전신법'을 필두로 1934년 '무선전신법', 1996년 '컴퓨터과학발전법', 2004년 '전자상거래법' 등을 만들어 ICT 체계를 구축했고, 2013년 전신법과 무선전신법을 합쳐 '통신법'으로 개편했다.(관련 논문) 1999년 전화접속 방식으로 상용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하여 2000년대 이후 ADSL, IP Star, McWill, Wimax(무선) 등으로 확대했다. 2000년대만 해도 컴퓨터와 모뎀 값이 비싸 서민들은 엄두도 못 냈으며 주로 정부 및 군부에서 쓰였으나, 2011년 민주정부 수립과 시장개방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 등으로 조금씩 확산되었다.(참고) 다만 2021년 쿠데타 직후 2022년 텔레노르, 우레두 등이 미얀마에서 발을 뺐다.
언론통제가 심하다. 언론자유지수 기준 중국과 비슷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민주화 시절에는 약간 나아졌으나 군부 쿠데타 이후에는 다시 원상복귀되었다. 대표적으로 뉴스는 사실상 어용방송인 MRTV와 MWD TV에서만 보도될 수 있으며 당연히 내용은 흘라잉 사령관이 무엇을 했다, 미얀마군이 PDF 테러리스트를 체포했다 등 땡흘뉴스 일색이다. 해외 소식은 서방매체 출처를 배제한 채 CGTN, RT 같은 중국/러시아쪽 매체를 통해서 주로 인용되고 있다.
태국의 송끄란처럼 미얀마에도 매년 4월에 하는 물 축제가 있다. 띤잔(သင်္ကြန်, Thingyan)이라 불리는 설날인데, 사실 송끄란과 띤잔, 라오스의 삐마이(ປີໃໝ່)는 동아시아의 구정처럼 세 나라가 공유하는 명절이다.
폭죽을 터트리는 중국과 비슷하게 큰 소음으로 마를 쫓아내는 풍습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민주화 운동 당시 냄비나 깡통을 두드려 악마(군부)를 몰아내자는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민영방송은 대표적으로 포에버 그룹이 MRTV와 합작하여 세운 MRTV-4 채널이 있다. 소프트 파워가 빈약한 미얀마이지만 드라마를 비롯한 TV 프로그램을 꾸준히 자체제작하고 있다. 그 외 방송국들은 주로 해외 프로그램들을 수입해 방영하는데 보통 중국,인도,태국 같은 옆 나라 또는 한국 등지에서 많이 들여온다. 한국 드라마는 20여년 전부터 미얀마에서 방영되고 있으며 현지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특이한 점으로 한국 드라마 중 사극의 인기가 높은데 군부 측에서 사극에 매우 호의적이라고 한다.
미얀마의 신문은 국영 신문인 미얀마 알린, 더 미러, 글로벌 뉴라이트 오브 미얀마(영자지), 군부 신문인 더 먀와디만 발행되고 있다. 그 전에는 미얀마 나우, 더 이라와디 등의 민영 신문들도 있었으나 쿠데타로 강제 폐간되어 지금은 독립언론 형태로 이어나가고 있다. 영자신문은 그 정도가 덜하지만, 미얀마어본 국영 신문과 군부 신문은 기사를 전산화하는 일이 매우 드물며, 웹사이트에 들어가 봐도 종이 신문의 스캔본만 공개한다. 내수용 신문에 실린 텍스트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극히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간지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검열하며, 주간지는 정치 관련 보도를 자제한다는 점으로 인해 언론 통제를 느슨히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2021년 이후로는 이마저도 경색되었다.
모든 통신수단은 미얀마 통신정보기술부(MCIT)가 주관하며 미얀마우편통신공사(MPT)가 독점해왔으나, 2013년 카타르 우레두, 2014년 노르웨이 텔레노르가 각각 진출하여 균열이 깨지기 시작했고 2018년 베트남 비엣텔이 군부 측과 합작해 '미텔'을 개통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1885년 '전신법'을 필두로 1934년 '무선전신법', 1996년 '컴퓨터과학발전법', 2004년 '전자상거래법' 등을 만들어 ICT 체계를 구축했고, 2013년 전신법과 무선전신법을 합쳐 '통신법'으로 개편했다.(관련 논문) 1999년 전화접속 방식으로 상용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하여 2000년대 이후 ADSL, IP Star, McWill, Wimax(무선) 등으로 확대했다. 2000년대만 해도 컴퓨터와 모뎀 값이 비싸 서민들은 엄두도 못 냈으며 주로 정부 및 군부에서 쓰였으나, 2011년 민주정부 수립과 시장개방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 등으로 조금씩 확산되었다.(참고) 다만 2021년 쿠데타 직후 2022년 텔레노르, 우레두 등이 미얀마에서 발을 뺐다.
언론통제가 심하다. 언론자유지수 기준 중국과 비슷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민주화 시절에는 약간 나아졌으나 군부 쿠데타 이후에는 다시 원상복귀되었다. 대표적으로 뉴스는 사실상 어용방송인 MRTV와 MWD TV에서만 보도될 수 있으며 당연히 내용은 흘라잉 사령관이 무엇을 했다, 미얀마군이 PDF 테러리스트를 체포했다 등 땡흘뉴스 일색이다. 해외 소식은 서방매체 출처를 배제한 채 CGTN, RT 같은 중국/러시아쪽 매체를 통해서 주로 인용되고 있다.
태국의 송끄란처럼 미얀마에도 매년 4월에 하는 물 축제가 있다. 띤잔(သင်္ကြန်, Thingyan)이라 불리는 설날인데, 사실 송끄란과 띤잔, 라오스의 삐마이(ປີໃໝ່)는 동아시아의 구정처럼 세 나라가 공유하는 명절이다.
폭죽을 터트리는 중국과 비슷하게 큰 소음으로 마를 쫓아내는 풍습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민주화 운동 당시 냄비나 깡통을 두드려 악마(군부)를 몰아내자는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미터법을 공식 도량형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얀마는 비(非)미터법 3개국 중 하나다. (나머지 2개국은 미국과 라이베리아) 게다가 전 세계에서 미얀마 혼자 쓰는 (동아시아의 척관법과 비슷한) 전통적 도량형을 독자적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시장에서 물건의 무게를 잴 때 g이나 kg가 아닌 베익따(1.666kg)를 주로 사용한다. 다만, 미얀마를 식민통치한 영국의 영향으로 현재의 미얀마 단위계는 야드파운드법과 어느 정도는 호환되고 공식적으로는 야드파운드법과도 혼용한다.[28]
2011~2013년 사이에 대외무역 장벽의 완화를 이유로 미얀마 역시 미터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무산되었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야드파운드법이나 미얀마 단위계 사용이 체계적으로 잡히지 않아서 그런지 해외 진출한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치수를 그냥 미터법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2024년 현재 기준으로 기상 예보는 화씨에서 섭씨로 전횐됐고, 도로 표지판이나 속도 제한 표지판에서 각각 km, km/h 표기가 상당수 늘어나면서 미터법 도입에 어느 정도 진전을 보였다.
시간대도 UTC+6½라는, 이상한 시간대를 미얀마 혼자서 사용하는데, 의도적으로 태국과 단절하려는 의도라고 추정된다. 미얀마는 경도상으로 봤을 때 UTC+6이나 UTC+7을 쓰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
2011~2013년 사이에 대외무역 장벽의 완화를 이유로 미얀마 역시 미터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무산되었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야드파운드법이나 미얀마 단위계 사용이 체계적으로 잡히지 않아서 그런지 해외 진출한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치수를 그냥 미터법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2024년 현재 기준으로 기상 예보는 화씨에서 섭씨로 전횐됐고, 도로 표지판이나 속도 제한 표지판에서 각각 km, km/h 표기가 상당수 늘어나면서 미터법 도입에 어느 정도 진전을 보였다.
시간대도 UTC+6½라는, 이상한 시간대를 미얀마 혼자서 사용하는데, 의도적으로 태국과 단절하려는 의도라고 추정된다. 미얀마는 경도상으로 봤을 때 UTC+6이나 UTC+7을 쓰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고 프로 리그를 운영 중이다. 1970년대에만 하더라도 아시아권에서 축구 강호였고 한국이나 일본도 고전하던 나라였으나, 현재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최약체로 전락해버렸다. 그냥 세계적으로 아예 최약체 수준이다. 자세한 건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
축구 인프라는 아시아에서 하위권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 발전을 꾀하고 있다. 2011년까지 AFC 챌린지 리그에 참가했다가 2012년부터 AFC 챔피언스 리그 투에 참가하고 있다. 2010년 AFC 프레지던트컵에서 야다나르본 FC가 키르기스스탄의 도르도이 비슈케크를 1-0으로 꺾고 우승한 기록이 있다. 최고 인기팀은 최대도시 양곤에 위치한 양곤 유나이티드로 매 경기 구름 관중을 동원한다.
그 외에는 역시나 다른 동남아국가와 마찬가지로 세팍타크로가 인기가 많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세팍타크로종목에서만 획득했다.
축구 인프라는 아시아에서 하위권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 발전을 꾀하고 있다. 2011년까지 AFC 챌린지 리그에 참가했다가 2012년부터 AFC 챔피언스 리그 투에 참가하고 있다. 2010년 AFC 프레지던트컵에서 야다나르본 FC가 키르기스스탄의 도르도이 비슈케크를 1-0으로 꺾고 우승한 기록이 있다. 최고 인기팀은 최대도시 양곤에 위치한 양곤 유나이티드로 매 경기 구름 관중을 동원한다.
그 외에는 역시나 다른 동남아국가와 마찬가지로 세팍타크로가 인기가 많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세팍타크로종목에서만 획득했다.
- 인도차이나반도 내륙에 위치한 국가 중 유일하게 NTSC-M을 채택했다. 참고로 내륙에 있는 국가들은 전부 PAL-B/G, D/K를 채택하였다. 디지털 방송 규격으로는 필리핀을 제외한 다른 국가와 같이 DVB를 채택했다. FM방송의 경우 ITU-R2(87.7 - 107.9MHz/200kHz)를 채택한 필리핀, 타이완과 다르게 ITU-R1(87.5 - 108.0MHz/100kHz), R3(87.0 - 108.0/100kHz)를 채택했다. 웃기는건 공시청장비[SMATV]와 케이블 방송은 PAL-G(CATV 하이퍼, UHF IV/V밴드)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 북한과의 악연이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북한의 해외 테러 건으로. 자국 내에서 벌어진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이 그것이고,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역시 미얀마 인근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가 일어났다.
-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인해 심각한 피해가 났다.
- 미얀마는 아침에 하루종일 먹을 걸 만들어 놓고 많아 보이게 차린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씩 나눠 먹는다고 한다. 어느 날 한국인을 초대 했는데 차려 놓은 걸 전부 먹어버려서 "우린 저녁에 뭐 먹지?"라며 난감했다는 일화가 있다.#
- 캐나다 만화가 기 들릴의 굿모닝 버마(2007)는 미얀마 군부독재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 들릴은 만화 굿모닝 예루살렘(2011)과 평양(2003)을 그리기도 했다.
- 미얀마에서 서식하는 열대어로 오데사바브가 있다. 이름과 달리 우크라이나 오데사주에 서식하지 않지만, 오데사에서 인기를 끌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오데사바브란 이름이 지어진 건 이 물고기가 1970년대 초반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애완동물 애호가들의 모임에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다.
- Justice For Myanmar: 미얀마의 정의와 인권을 촉구하는 글로벌 비정부기구로, 2020년 9월 1일부로 교통통신성에 의해 미얀마 내에서 차단됐지만 github 기반의 미러 사이트를 더 만들었다.
| |||||||||||||||||||||||||||||||||||||||||||||||
| |||||||||||||||||||||||||||||||||||||||||||||||||||||||||||||||||||||||||||||||||||||||||||||||||||||||||||||||||||||||||||||||||||||||||||||||||||||||||||||||||||||||||||||||||||||||||||||||||||||||||||||||||||||||||||||||||||||||||||||||||||||||||||||||||||||||||||||||||||||||||||||||||||||||||||||||||||||||||||||||||||||||||||||||||||||||||||||||||||||||||||||||||||||||||||||||||||||||||||||||||||||||||||||||||||||||||||||||||||||||||||||||||||||||||||||||||||||||||||||||||||||||||||||||||||||||||||||||||||||||||||||||||||||||||||||||||||||||||||||||||||||||||||||||||||||||||||||||||||||||||||||||||||||||||||||||||||||||||||||||||||||||||||||||||||||||||||||||||||||||||||||||||||||||||||||||||||||||||||||||||||||||||||||||||||||||||||||||||||||||||||||||||||||||||||||||||||||||||||||||||||||||||||||||||||||||||||||||||||||||||||||||||||||||||||||||||||||||||||||||||||||||||||||||||||||||||||||||||||||||||||||||||||||||||||||||||||||||||||||||||||||||||||||||||||||||||||||||||||||||
| ||||||||||||||||||||||||||||||||||||||||||||||||||||||||||||||||||||||||||||||||||||||||||||||||||||||||||||||||||||||||||||||||||||||||||||||||||||||
[1] 북한에서는 "먄마" 라고 한다.[2] Pyidaunzu Thanmăda Myăma Nainngandaw [pjìdàʊɴzṵ θàɴməda̰ mjəmà nàɪɴŋàɴdɔ̀][3] 문장을 직역하면 "해탈을 위해서는 필요한 노력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라는 뜻이다. 버마어 단어 ရွှင်မှု(솅무, hrang-hmu)는 상좌부 불교에서 '해탈'을 뜻하는 팔리어 어휘 bodhi의 번역어에서 유래하며, 점차 '행복'을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되었다.[4]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국화로 여겨진다. 미얀마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꽃들에 속하기 때문이다.[5] 출처[6] 출처[7] 출처 [8] ပြည်နယ်. 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들이다.[9] တိုင်းဒေသကြီ. 버마족에 속하지 않는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는 지역들의 행정구분이다.[10] 미얀마의 뒤로는 같은 0점대로 167위인 아프가니스탄이 있으며 앞에는 165등으로 북한이 있다.[11] 2021년에는 1.02점으로 1점대를 유지했었지만 2022년에 0.73점으로 떨어지면서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0점대를 기록한 국가가 되었다.[12] 2011년에 총리직이 폐지되었으나 민 아웅 흘라잉이 자신을 스스로 총리직으로 임명시켜 총리직이 부활했다.[13] 수교에 앞서 1962년 6월 16일에 영사관계를 수립했다.[14]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에 따라 단교. 국가 승인 역시 취소했다.[15] 18세기 이후 이주한 화교와 북동부 코캉 일대의 한족, 이렇게 두 부류가 있다.[16] 인도 미조람에 거주하는 미조인과 가까운 민족이다.[17] 1996년 오자키 타카시(尾崎隆)와 티베트인 셰르파 2명이 등정하였다.[18] 실제 미얀마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 의하면 대학에서는 주로 영어로 수업하고 공부한다고 한다.[19] 상좌부 불교권 국가인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스리랑카 같은 경우 이슬람과 기독교 등 불교 외의 종교를 믿는 인구가 적지 않고 일부 지역은 이슬람이나 기독교 다수 지역이기도 하기에 미얀마와는 꽤나 다르다. 태국도 푸켓과 그 남부 한정으로 이슬람이 적지 않거나 일부는 아예 이웃인 말레이시아와 같이 이슬람 다수이거나 타이족이 아닌 말레이계인 경우도 있긴 하다.[20] 학교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그리스도교인이나 무슬림 학생들까지 이런 미션스쿨에 다니는 경우가 있으며, 강제로 삭발을 당하거나 불교경전 암송 및 불상 앞에서의 큰절을 강요당하는 등 차별대우를 받기도 한다. 비신자 교직원 및 학생에게까지 예배를 강요하고 개종을 강권하며 "꼬우면 딴데 가든지. 누가 기독교계 미션스쿨 오라고 칼 들고 협박함?"이라고 비웃는 한국의 기독교계 미션스쿨과 반대 양상.[21] 이는 스리랑카도 마찬가지다.[22] 이곳의 출가자들은 교학 위주로 공부하며, 재가자가 오히려 참선을 많이 한다.[23] 어원은 산스크리트 어휘인 얀트라(yantra)이다. 동계어로 태국의 수호부적 역할을 하는 문신 '싹 얀'이 있다.[24] 상좌부 불교 경전에서는 주술로써 업을 피해갈 수 없다고 가르치지만, 야다야는 '선업을 쌓음으로써 악업을 중화시키는 의식'이라는 둥 여러 합리화와 함께 미얀마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온다. 액땜을 위해서는 동물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거나, 액운이 닥치기 전에 미리 액운에 관련된 언행을 시뮬레이션하는 등 의식을 행한다.[25] '배딘(baydain)'이라고 읽는다. 미얀마 고유의 점성술로, 힌두 점성술인 베당가 죠티샤(Vedanga Jyotisha)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26] 앙굴리말라는 도둑 별자리를 타고 났고, 이로 인해 그의 부모는 '아무도 해치지 말라'라는 뜻에서 그에게 아힘사까(Ahimsaka)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27] 사실 경범죄 발생률이 낮은 건 곳곳에 사복 경찰이 깔려있기 때문도 있다. 심지어 쪼리를 신고 돌아다니는 제복 경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이 깔려있는건 치안도 치안이지만 시위를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다.[28] 추가로 미얀마 도로의 표지판에서 라틴 문자가 병기된 부분을 잘 보면 거리 단위를 마일로 표기한다. 다만 이쪽은 km 표기도 있어서 논외.[29] 동남아의 여러 무술과 마찬가지로 무에타이와 원조 시비가 붙는 무술 중 하나로 헤드기어나 글러브를 사용하지 않는다.[SMATV] [31] 아예 코카콜라가 진출한 적 자체가 없다.[32] 원래는 진출해 있었지만 쿠바 혁명 이후 철수했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