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천절
최근 수정 시각:
2026년 개천절까지 |
D-269 |
![]() | |
▲ 하늘이 열린 날 | |
BCE 2333년 2025년 제4357주년 | |
날짜 | |
지위 | |
국경일 지정 | |
근거 법령 | 「국경일에 관한 법률」제2조 제1항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제2조 제2항 |
개천절은 단군의 고조선(단군 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역사학적으로 10월 3일이 고조선의 건국일인 것은 아니다. 체계적인 역법이 보급되기 전 성립된 고대 국가이기 때문에 고조선의 정확한 건국 일자는 알 수 없다. 일자나 월은커녕 건국 연도조차 학설마다 몇백 년씩 차이가 난다. 인류문화학적으로는 아마 다른 청동기 시대 국가들처럼 부족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종교의 관점에서는 "한배님이 갑자년 10월 3일 태백산에 강림하여 125년간 교화 시대를 지내고 무진년(戊辰年) 10월 3일부터 치화(治化)를 시작했다."는 문장을 근거로 하는데,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457년(갑자)에 강림했고 기원전 2333년(무진)부터 치화를 했다'는 의미가 된다.
'무진년(기원전 2333년)'이라는 일자는 1281년 편찬된 삼국유사와 1485년 편찬된 《동국통감》에도 등장하나, 그 내용은 중국 신화의 요임금이나 순임금 같은 실존성이 불안정한 기록에 연유하고 있어 정확한 연도와 일자를 신뢰하기 어렵다.[2](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단군기원 문서 및 고조선 문서, 단군 신화 문서를 각각 참고)
그러나 대종교의 관점에서는 "한배님이 갑자년 10월 3일 태백산에 강림하여 125년간 교화 시대를 지내고 무진년(戊辰年) 10월 3일부터 치화(治化)를 시작했다."는 문장을 근거로 하는데,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457년(갑자)에 강림했고 기원전 2333년(무진)부터 치화를 했다'는 의미가 된다.
'무진년(기원전 2333년)'이라는 일자는 1281년 편찬된 삼국유사와 1485년 편찬된 《동국통감》에도 등장하나, 그 내용은 중국 신화의 요임금이나 순임금 같은 실존성이 불안정한 기록에 연유하고 있어 정확한 연도와 일자를 신뢰하기 어렵다.[2](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단군기원 문서 및 고조선 문서, 단군 신화 문서를 각각 참고)
전통적으로 음력 10월은 특별한 달로 여겨졌다. 음력 10월은 동짓달(음력 11월) 바로 전 달로, 12간지로 따지면 마지막 해(亥)에 해당한다.[3] 한 해의 마지막이면서, 이즈음이면 농사도 끝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느낌도 강하다. 이때는 민간에서도 상달(上달, 10월)이라 하여 집집마다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는데, 현대에도 이 풍속이 아직 살아있다.
조선 후기 일부 지방에 '음력 10월 3일에 단군에게 제사 지내는 향산제라는 풍속이 있다'는 기록이 있고, 19세기 문헌인 무당내력이 "상원갑자 10월 3일에 신인이 박달수 아래로 내려오니 단군이라 한다. 신교(神敎)를 세우고 백성들을 가르쳤다"라는 구절이 있으며, 김염백(金廉伯)이 평안도에서 1890년대에 일으킨 단군 신앙 집단에서도 음력 10월 3일을 단군의 탄생일로 여겼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조선 후기에 평안도나 함경도 등 한반도 북부에서 단군과 음력 10월 3일을 연결 짓는 민간신앙이나 의식이 존재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태조 1년(1392년)의 8월 11일 2번째 기사#에는 "조선의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 "평양부(平壤府)로 하여금 때에 따라 제사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라는 언급이 있다. 조선 왕조의 제사 예법에서는 상순, 즉 1일부터 10일까지는 존귀한 제사를 드리는 날, 중순은 사대부, 하순은 그 이하가 제사를 지내는 날로 삼았다. 왕실 제사 예법에도 상순에 드리도록 정한 제사가 많다. 또한,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 옛 제천 행사도 10월에 열렸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태조 1년(1392년)의 8월 11일 2번째 기사#에는 "조선의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 "평양부(平壤府)로 하여금 때에 따라 제사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라는 언급이 있다. 조선 왕조의 제사 예법에서는 상순, 즉 1일부터 10일까지는 존귀한 제사를 드리는 날, 중순은 사대부, 하순은 그 이하가 제사를 지내는 날로 삼았다. 왕실 제사 예법에도 상순에 드리도록 정한 제사가 많다. 또한,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 옛 제천 행사도 10월에 열렸다.
대종교에서 나철이 1909년 처음 《단군교포명서(檀君敎佈明書)》를 발표할 때 음력 10월 3일을 경절(慶節)이라고 부르며, "단군 대황조께서 나라를 세우고 참도를 세우신 지 4237년, 광무(光武) 8년(1904)에 백두산에서 백봉(白峰)이라는 인물에게 단군교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설명한다. 또한 1910년에 나철은 "환인이나 환웅, 환검이라 함은 전부 단군 한 분을 나누어 불렀을 뿐"이라고 하여, 단군을 적극적으로 천신(天神)과 일체화하고, 환웅/환인과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대종교에서는 나철이 삼일신고를 짓지 않고, 백봉신사라는 이인으로부터 받았다고 설명한다. 백봉신사와의 관련 인물들은 대종교 문헌을 제외하면 기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백봉신사를 허구의 인물로 판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실제로 백두산 근처에 백봉신사를 중심으로 소규모 단군계 종교 단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추정일 뿐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아마도 삼일신고나 단군교포명서는 나철이 저술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나철이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한 이유도 위 문단에 나오는 것처럼 기존에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음력 10월 또는 음력 10월 3일을 특별히 여기고 제천 행사를 열어온 전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종교에서는 나철이 삼일신고를 짓지 않고, 백봉신사라는 이인으로부터 받았다고 설명한다. 백봉신사와의 관련 인물들은 대종교 문헌을 제외하면 기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백봉신사를 허구의 인물로 판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실제로 백두산 근처에 백봉신사를 중심으로 소규모 단군계 종교 단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추정일 뿐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아마도 삼일신고나 단군교포명서는 나철이 저술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나철이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한 이유도 위 문단에 나오는 것처럼 기존에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음력 10월 또는 음력 10월 3일을 특별히 여기고 제천 행사를 열어온 전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909년 11월 21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단군성조제일(檀君聖祖祭日)》이란 논설은 10월 3일을 민족적인 기념일로 삼자고 주장하였다. 그 논설의 논지를 요약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우리 민족의 시조를 기념함으로써 우리가 문명국의 문명민족임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다. 근자에 모 씨(나철로 추정)가 이번 달 15일, 음력 10월 3일에 성조개극절(聖祖開極節)을 지냈으니 일반 대중도 이날을 기념제로 삼도록 하자. 혹자는 이 날짜를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의미 없는 말이다. 우리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도 탄생/기일에 제를 올림은 옛 예법이 아니요, 길일을 잡아 지냄이 올바른 예법이다. 그러므로 우리 건국 시조를 제사하는 날도 오곡이 무르익는 좋은 시절인 음력 10월 초삼일로 정함은 예에 맞다. 우리는 단군을 기념함으로써 우리가 문명 민족임을 세상에 발표해야 한다. |
10월 3일이 꼭 역사적 사실에 합치된 날짜가 아니어도 아무 상관이 없고, 그 날짜가 좋은 때니 그날 단군을 기념하자는 것이다. 또한 해당 논설의 필자는 단군을 기념해야 하는 목적은 '우리가 문명민족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자체적으로 음력 10월 3일을 기념하여 경축하였다. 다만 그 명칭은 대종교의 명칭인 '개천절', 혹은 '개천경절'이 아닌 '대황조 성탄 및 건국 기원절(大皇祖聖誕及建國紀元節)'이라고 하였고, 이날 임시 정부 국무원이 주최하는 축하식이 열린 바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에 대한민국 정부는 나라가 어수선하여 아무런 국경일을 제정하지 않았다.[4] 이듬해인 1949년에 비로소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법률 제정을 앞두고 당시 문교부에서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할 수 있는지 검토하였다. 하지만 심의 결과 환산할 수 없다고 나왔거니와[5] '10월 3일'이라는 날짜 자체가 중요하단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래서 1949년 10월 1일에 법률 53호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이름하여 국경일로 정했다.[6]
그런데 음력 10월로 했으면 대부분 11월에 걸려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이 때문에 10월에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이 1991년부터 2012년까지 공휴일에서 빠져 논란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에는 태음력이 '비과학적인 역법'이기 때문에 절대로 쓰지 말자는 것이 정부 공식 입장이었다. 이 시절에는 설날 연휴도 양력 기준으로 쇠었다. "8월 15일 + 보름달"을 양력으로 환산하자니 도무지 답이 안 나와서 마지못해 추석에만 음력 사용을 인정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민간의 음력 사용 관행을 없앨 수는 없어서 결국 정부도 포기하고 1970년대 지정된 부처님오신날은 음력을 따르게 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설날 연휴도 양력 기준에서 음력 기준으로 바꾸었다. 당시 대종교에서는 음력을 기준으로 했지만, 나라에서 양력 10월 3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자 이를 존중하여 음력 10월 3일과 양력 10월 3일 양일을 모두 기리기로 하였다.
한편 20세기 이후 전산의 발달로 달력 계산이 간편해지면서, 기원전 2333년의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자는 주장도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적용시키기에는 기술적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태음력 자체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된 음력은 단 한 가지가 만세불변 쓰인 것이 아니고[7], 청나라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 천문학 지식을 더하여 만든 시헌력을 기준으로 조정된 것이다. 문헌 자료로 상고되는 중국의 옛 역법만 보더라도 시헌력과는 또 기준이 다르고, 옛 역법으로 올라갈수록 이 차이가 커진다. 하물며 문헌 자료도 없는 기원전 2333년의, 그것도 중국이 아닌 고조선에서 사용했을 역법은 고증이 불가능하다. 기원전 2333년이라는 일자 자체도 부정확한 마당에 음력 날짜도 17세기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시헌력을 따라 계산해야 한다면, 사실상 아무 가공의 일자를 하나 고르는 것이나 다름없다.[8]
두 번째는 기원전 수천 년쯤 되면 산술적 역법과 천문학적 역법 사이의 오차가 너무 커져,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달력 프로그램은 거의 의미가 없고 천문대에서 해와 달의 움직임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천문연구원의 음양력 변환 서비스는 조선 건국 직전인 1391년까지, C#의 음력 기능[9]은 고려가 건국된 918년까지 등으로 상한을 정하였다. 계산 시점에서 멀어질수록 해와 달의 정확한 움직임을 계산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실제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계산을 보정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현실에서 대충 구할 수 있는 전자 달력은 이런 천문학 보정을 무시하고 하루를 더하거나 빼면서 세는 것으로, 미래로 갈수록, 혹은 과거로 갈수록 천문학적 오차가 커진다. 율리우스적일을 통해 일수를 계산해보면 2022년경부터는 159만일에 달한다.
이러한 문제점에 덧붙여 역사적으로는 필연적인 의미가 없는 일자 때문에 공연히 인력과 비용을 지출하느니, 어차피 개천절이 반드시 음력 10월 3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없기 때문에 당시 문교부의 심의에서는 숫자 자체에 초점을 맞추자는 결론을 낸 것이다.
그런데 음력 10월로 했으면 대부분 11월에 걸려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이 때문에 10월에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이 1991년부터 2012년까지 공휴일에서 빠져 논란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에는 태음력이 '비과학적인 역법'이기 때문에 절대로 쓰지 말자는 것이 정부 공식 입장이었다. 이 시절에는 설날 연휴도 양력 기준으로 쇠었다. "8월 15일 + 보름달"을 양력으로 환산하자니 도무지 답이 안 나와서 마지못해 추석에만 음력 사용을 인정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민간의 음력 사용 관행을 없앨 수는 없어서 결국 정부도 포기하고 1970년대 지정된 부처님오신날은 음력을 따르게 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설날 연휴도 양력 기준에서 음력 기준으로 바꾸었다. 당시 대종교에서는 음력을 기준으로 했지만, 나라에서 양력 10월 3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자 이를 존중하여 음력 10월 3일과 양력 10월 3일 양일을 모두 기리기로 하였다.
한편 20세기 이후 전산의 발달로 달력 계산이 간편해지면서, 기원전 2333년의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자는 주장도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적용시키기에는 기술적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태음력 자체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된 음력은 단 한 가지가 만세불변 쓰인 것이 아니고[7], 청나라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 천문학 지식을 더하여 만든 시헌력을 기준으로 조정된 것이다. 문헌 자료로 상고되는 중국의 옛 역법만 보더라도 시헌력과는 또 기준이 다르고, 옛 역법으로 올라갈수록 이 차이가 커진다. 하물며 문헌 자료도 없는 기원전 2333년의, 그것도 중국이 아닌 고조선에서 사용했을 역법은 고증이 불가능하다. 기원전 2333년이라는 일자 자체도 부정확한 마당에 음력 날짜도 17세기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시헌력을 따라 계산해야 한다면, 사실상 아무 가공의 일자를 하나 고르는 것이나 다름없다.[8]
두 번째는 기원전 수천 년쯤 되면 산술적 역법과 천문학적 역법 사이의 오차가 너무 커져,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달력 프로그램은 거의 의미가 없고 천문대에서 해와 달의 움직임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천문연구원의 음양력 변환 서비스는 조선 건국 직전인 1391년까지, C#의 음력 기능[9]은 고려가 건국된 918년까지 등으로 상한을 정하였다. 계산 시점에서 멀어질수록 해와 달의 정확한 움직임을 계산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실제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계산을 보정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현실에서 대충 구할 수 있는 전자 달력은 이런 천문학 보정을 무시하고 하루를 더하거나 빼면서 세는 것으로, 미래로 갈수록, 혹은 과거로 갈수록 천문학적 오차가 커진다. 율리우스적일을 통해 일수를 계산해보면 2022년경부터는 159만일에 달한다.
이러한 문제점에 덧붙여 역사적으로는 필연적인 의미가 없는 일자 때문에 공연히 인력과 비용을 지출하느니, 어차피 개천절이 반드시 음력 10월 3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없기 때문에 당시 문교부의 심의에서는 숫자 자체에 초점을 맞추자는 결론을 낸 것이다.
현재 사용되는 개천절은 '하늘을 연 날'이라는 표현이나, 대종교적 의미를 감안하더라도 다소 모호해 보일 수 있다. 전설적으로는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전해진다. '건국절'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영어로 'National Foundation Day'로 번역하는 사례도 많지만 건국절 논란 문서에서 알 수 있듯 건국일자, 또는 건국이라는 정의 자체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간단히 생각할 일은 아니다.
개천절 건국절론의 경우 실제로 임정도 건국 기념절이란 호칭을 썼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개천절이라는 명칭에는 홍암 나철이 단군을 '역사적 위인, 민족의 시조'로서만이 아니라 천신(天神)으로도 이해한다는 의식이 반영되었다. 개천절에는 다른 국경일처럼 정부(행정안전부) 주도의 기념식이 열리는데 노무현 정부까지는 대통령이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였으나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국무총리만 참석하고 있다.[10] 때문에 민족의 건국 기념일을 정부가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11]
개천절 건국절론의 경우 실제로 임정도 건국 기념절이란 호칭을 썼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개천절이라는 명칭에는 홍암 나철이 단군을 '역사적 위인, 민족의 시조'로서만이 아니라 천신(天神)으로도 이해한다는 의식이 반영되었다. 개천절에는 다른 국경일처럼 정부(행정안전부) 주도의 기념식이 열리는데 노무현 정부까지는 대통령이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였으나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국무총리만 참석하고 있다.[10] 때문에 민족의 건국 기념일을 정부가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11]
1.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2. 백두산 높은 터의 부자요 부부
성인의 자취 따라 하늘이 텄다
이날이 시월상달의 초사흘이니
이날이 시월상달의 초사흘이니
3. 오래다 멀다 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 필 단쪽잎에 삼천리 곱다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개천절 노래》[12]
- 서울 기준으로 개천절에는 해가 오전 6시 29분에 떠서 오후 6시 13분에 저문다.
- 개천절에 소집 해제를 하는 사회복무요원의 경우 최소 1일 일찍 나가게 되며 추석까지 겹치면 5일 일찍 나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 만약 요일제 공휴일 제도가 도입되고 한글날을 10월 첫째 주 월요일로 바꾼다면 한글날과 개천절이 겹칠 수도 있다.
- 음력으로 개천절의 날짜를 환산하면 8~9월이고 음력 5~7월에 윤달이 끼면 거의 추석과 연결이 된다. 또한 개천절 자체가 윤달인 경우는 무조건 윤8월이다.[14] 대표적으로 2017년, 2020년, 2025년, 2028년, 2031년, 2036년, 2039년, 2044년 등. 즉, 10월 추석은 거의 개천절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양력 10월 5일 이후에 추석이 올 경우 추석과 개천절은 물론, 한글날까지 가세해 그레이트 합체를 이루는 장엄한 광경을 볼 수가 있다. 다만 궁극의 연휴라 할 수 있는 10월 5일 목요일 추석[15], 10월 7일 화요일 추석[16]은 로또급으로 드물긴 하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개천절에 경기를 한 적이 있었다. 1967년 10월 3일 남베트남을 3:0으로 이긴 경기, 1986년 10월 3일 인도네시아를 4:0으로 이긴 경기[24], 1990년 10월 3일 이란에 1:0으로 진 경기[25]가 있었다. 개천절 경기의 전적은 3전 2승 0무 1패 7득점 1실점. 2002년에는 U23 대표팀이 개천절에 말레이시아를 4 대 0으로 이겼다.
- 역법이 국제 고정력으로 바뀔 경우 개천절은 10월 24일이 된다.
- 2024년의 경우 국군의 날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국군의 날-개천절-주말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가 생겼다.
[1] 영어로 표기할 때 '건국 기념일(National Foundation Day)'로 의역되기도 하나, 이에 관해서는 하기 '명칭 및 건국 관련' 문단 참조.[2] 과거 국정 국사 교과서 등에서 채택한 바 있으나 당시에도 '동국통감에 의하면' 등의 단서를 달아 제한적으로 서술되었고, 오늘날에는 전설로 판단하여 아예 거론하지 않는 추세이다. 정확히는 단군기원을 사용하지 않는 현재도 개천절을 국경일로 국가 단위로 기념하고 있으니 완전히 긍정도 부정도 못 하는 상황이기에 분쟁의 여지가 될 수 있는 연도보다는 사건 위주로 가르치는 것에 더 가깝다.[3] 즉 동짓달이 자월(子月)이다.[4] 3.1절은 미군정 포고령으로 이미 국경일이었다.[5] 당장 기준을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음력은 1645년에 청나라 순치제가 예수회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반포한 시헌력이다. 아울러 천문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것도 큰 문제였다.[6] 1949년에 지정된 공휴일은 4대 국경일(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신정, 식목일, 한글날, 추석, 기독탄신일, 국제연합일, 매주 일요일이다. 이 시절에는 한글날이 국경일이 아니었다.[7] 양력조차 현재 널리 쓰이는 그레고리력이 정립된 때가 1582년이다.[8] 프로그램을 이용한 계산을 해보면 기원전 2333년 11월 30일(그레고리력 11월 10일)에 율리우스 적일로 869629(임인)로 나오긴 한다. 그러나 기준점이 다르다 보니 정확한 고증이 불가능하다. 건국 일자가 임인일인지에 대한 근거도 찾을 수가 없다.[9]
System.Globalization.KoreanLunisolarCalendar 클래스. 소스를 보면 918년부터 1390년까지는 중국 역법을 따랐고, 1391년 이후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음양력 변환 서비스 데이터를 가져왔다.[10] 5대 국경일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3·1절과 광복절에는 대통령이 반드시 참석하고 제헌절, 개천절, 한글날은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 추세다. 제헌절은 국회의장이 기념사를 하며 개천절과 한글날은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낭독한다.[11] 하필이면 이명박 전 대통령 자신이 개신교 신자로 교회 장로였던 점도 한몫했다는 지적도 있다.[12] 정인보 작사, 김성태 작곡.[13] 당시는 '익일 휴무제'라는 명칭으로 공휴일이 서로 겹치면 다음 날도 쉬는 제도가 있었다. 오늘날 대체 휴일 제도의 전신격이 되는 제도다. 그러나 1990년 11월 공휴일 축소 과정에서 이 제도도 사라졌다.[14] 한글날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윤8월이 된다.[15] 10월 3일 개천절(화) + 10월 4-5-6일 추석연휴(수목금) + 10월 7-8일 주말(토일) + 10월 9일 한글날(월). 여기에 10월 2일 월요일에 쉰다면 9월 30일(토)-10월 9일(월)이 연휴가 된다. 이렇게 되려면 토요일로 시작하는 윤년 또는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면서 음력 5~6월에 윤달이 껴야 한다.[16] 10월 3일 개천절(금) + 10월 4-5일 주말(토일) + 10월 6-7-8일 추석연휴(월화수) + 10월 9일 한글날(목). 여기에 10월 10일 금요일도 연차 사용 등으로 쉰다면 10월 3일(금)-10월 12일(일)이 연휴가 된다. 이렇게 되려면 화요일로 시작하는 윤년 또는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면서 음력 6~7월에 윤달이 껴야 한다.[17] 목요일이나 금요일로 시작하는 윤년 또는 금요일이나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 이에 해당한다.[18] 실제 개최는 2023년[19] 태권도 김태훈, 복싱 신종훈, 함상명,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20] 근대 5종 정진화, 복싱 임현철, 김현규, 세팍타크로 남녀 레구.[21]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근대 5종 남자 단체전, 다이빙 우하람, 가라테 이지환.[22] 실제로 1988 서울 올림픽 폐회식 다음 날이 개천절이었고,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세 번의 하계 아시안 게임 모두 개천절을 끼고 열렸다.[23] 사실 대한민국은 7, 8월에 폭염과 태풍과 집중 호우가 심해 이 기간에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기가 어렵다.[24]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도중에 열린 경기.[25]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도중에 열린 경기이며, 그것도 연장전에서 1골을 먹히고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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