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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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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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휘장 White
서울특별시장
서울特別市長
Mayor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제39대 서울특별시장 오세훈
현직
오세훈 / 제33·34·38·39대 (민선 4·5·7·8기)
취임일
정당
관사
 
 
 
 

1. 개요2. 특징
2.1. 명목상 서열과 실질 대우2.2. 국무회의 참석권2.3. VS 경기도지사2.4. 대통령 후보?2.5. 출신 직위 및 출신지2.6. 시장 판독기(스윙보트)2.7. 기록2.8. 공관
3. 법적 권한4. 주요 인물5. 역대 시장 목록
5.1. 역대 서울특별자유시장5.2. 역대 서울특별시장
5.2.1. 관선 1차5.2.2. 민선 1차5.2.3. 관선 2차5.2.4. 민선 2차
6. 역대 선거7.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서울특별시장8. 시정 구호9. 창작물에서의 서울특별시장10. 관련 문서11.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장서울특별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임기는 4년이며, 최대 3선까지 연임할 수 있다.
 
 
 
 

2. 특징[편집]

 
 
 
 

2.1. 명목상 서열과 실질 대우[편집]

 
 
 
 
법적으로 명시된 명목상 서울시장의 서열은 다른 광역자치단체장과 동일하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발언권은 동일하며, 국가의전서열 목록에도 다른 자치단체장과 마찬가지로 따로 예우하지 않는다. 본래는 서울특별시장도 국가의전서열에 있었지만, 2005년 참여정부 때부터 명단에서 빠졌다. 장관급 인사 중에서 제일 마지막 순번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서열은 서울시장이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보다 더 위다. 지방직을 국가직에 대응해서 00대우라고 부르며 실질적인 서열을 나누는데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들이 차관급 대우(보수가 차관과 동액)를 받지만 서울특별시장은 유일하게 장관급 대우(보수가 국무위원과 동액)를 받는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의 수장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에 의거해서 행정안전부장관의 지휘를 받지 않고 국무총리가 직할하도록 되어 있다. 지방채 발행 등은 행정안전부장관이 승인하지만, 이 경우에도 국무총리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나아가 행안부가 서울시청 자치사무에 대해 감사를 하고자 할 때에도 총리의 조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고, 행정안전부장관을 보고하지 않고 서울특별시청 소속 공무원에 대한 상훈 추천을 시장이 국무회의에 직접 상신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제4조)

서울특별시가 설립하고 운영 중인 서울시립대학교의 운영위원장도 당연직으로 맡고 있다. 이 운영위원장을 이사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서울시립대학교는 아직 법인화가 되지 않았으므로 이사장은 잘못된 표기이다.
 
 
 
 

2.2. 국무회의 참석권[편집]

 
 
 
 
의결권은 없지만 국무회의에 직접 참석하여 발언이 가능하다. 이는 옛날 조선 때도 비슷했는데, 관찰사(지금의 도지사) 등은 참판(차관)급(종2품) 대우에 그쳤지만, 한성부판윤(지금의 서울특별시장)은 판서(장관)급(정2품)이라는 상당히 높은 대우를 받았다.[1]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가 된 특성상 경성부윤이라고 불렸다.

임명직 시장 시절부터 현행 선출직 시장까지 국무회의에도 참석이 가능하며, 발언권은 있지만 의결권은 없다. 실제로 박원순 전 시장도 의결권이 없다는 것을 발언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국무회의에서 발언권과 표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무위원들은 모두 국무회의 부의장의 제청에 따라 국무회의 의장이 임명한 자들[2]이고 그 외의 다른 배석 인원들은 모두 국무회의 의장이 직접 임명한 자들이다. 또한 모든 국무회의 안건들은 의장이나 부의장, 그리고 국무위원들에 의해서 제의되기 때문에 국무회의를 이끄는 주류에 반대 입장을 내는 참석자는 십중팔구 야당 소속 서울특별시장 밖에 없다.[3] 그래서 가끔씩 반대 의견이 나오면 이런 이유에서다.

장면 내각 시절에는 민선 서울특별시장도 각의(현재의 국무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했다. 이때 민선 서울특별시장이 김상돈 한 명뿐이고 임기도 몇 달 못 갔다는게 함정이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지방자치제도가 폐지되고 난 관선제 시절에는 당연히 서울특별시장도 국무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했고, 1995년에 다시 민선 서울특별시장이 들어오면서 권리로 약화된 것이다. 그래도 민선 1기 조순 전 시장과 민선 2기 고건 전 시장은 다른 일정이 없는 한 화요일 정례 국무회의에 매주 참석했다. 2002년에는 이명박이 서울특별시장이 되면서 정무부시장을 대타로 보내는 등 조금씩 출석율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참여정부 시기(2003~2008)에는 서울특별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을 금지시켰다가(근거가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 이명박 전대통령이 직접 노무현전대통령이 자신을 꼬박 꼬박 국무회의에 불러 참여시켰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지금도 유튜브에 있음) 2008년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국무회의에 배석되어 당시 오세훈 시장(2006~2011)은 국무회의에 꽤 자주 참석했다. 3개월에 1회는 정례적으로 참석하고[4], 보통은 정무부시장을 배석시켰다. 그러나 박원순 전 시장 때는 정무부시장도 보내지 않아 국무회의 참석율이 10% 아래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지금은 정말로 예산시즌 아니면 아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찾아가질 않지만 정권이 교체되었고, 오세훈 시장은 이전부터 국무회의에 잘 참석했으므로 추이는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규정은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이지 배석할 수 있다아니다. 즉 현재까지도 규정상 서울특별시장은 의무적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존재이며,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서울특별시장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대통령은 서울특별시장을 국무회의에서 기수열외시킬 수 없다는 뜻으로도 읽어, 야당 서울특별시장의 국무회의에서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규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편, 서울특별시장한테 출석 의무를 달아놓은 규정은 2008년 2월 29일에 생겼으며, 이렇게 대통령령 개정으로 서울특별시장에게 국무회의 출석 의무를 부여한 인물은 바로 서울특별시장 출신 이명박 대통령이다.
 
 
 
 
선출직 지자체장 중에서는 경기도지사와 함께 전국 탑급 위상이다. 무려 국무회의에도 참석하는 서울시장을 정치권에선 소통령(小統領)이라 부를 정도. 경기도지사가 급증한 인구를 기반으로 갈수록 서울과 인구격차를 벌리면서 위상에 도전하고 있으나, 법으로 보장된 서울특별시장의 확고한 우위를 꺾지는 못한다. 경기도지사는 국무회의 배석자도 아니다.

서울시장은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자체장 중에서도 자율권이 높은 편이고, 산하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장악력이 크다. 서울시는 산하 자치단체가 전부 자치구[5]고, 자치구는 자치시·군에 비해 여러 면에서 자치권이 적다. 그만큼 서울시장이 자치구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큰 것. 경기도지사는 그와 반대로 별도의 법률이 없으며, 자치시·군의 자치권이 자치구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강한 만큼 산하 시군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서울시장에 비해서 어렵다. 거기다가 특례시 제도가 도입되면서 더 폭넓은 많은 자치권이 보장되는 특례시에는 특히 더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그 와중에 특례시가 가장 많은 곳도 당연히 경기도.[6]

2000년대 중반 이후 경기도의 인구가 서울특별시를 추월하고 갈수록 격차를 벌리고 있지만, 인구와 관계없이 서울특별시장의 특별 대우는 여전하다. 서울특별시장은 '수도의 장(長)'으로서 정치적 영향력 외에도 지방자치법에서 특례를 인정받아 지방자치법과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을 통해 특례를 적용받지만, 경기도지사는 별도의 특례 없이 지방자치법에 규정된 권한만 보장받기 때문이다. 다른 광역자치단체들의 경우 지방채 발행이나 자치사무의 감사를 행안부장관이 하지만 서울특별시는 행안부장관이 국무총리에게 손수 보고해야 한다. 또한 국가공무원의 임용 및 징계 등은 해당 주무부처 장관에게 있으나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범위 내에서는 서울특별시장이 행사할 수 있다.[7]
 
 
 
 

2.4. 대통령 후보?[편집]

 
 
 
 
한국 정계에서 경기도지사와 함께 서울특별시장은 대통령으로 가는 중간 단계로 여겨지고 있다. 경기도지사를 제외하면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들보다 월등히 높은 위상을 지닌 자리이기 때문에, 서울시장을 거친 인물은 차기 대권 후보군에 포함되어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 민선 서울특별시장 출신 중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은 이명박 한 명뿐이며, 조순, 고건, 박원순 등 대권 후보로 거론되었음에도 끝내 당선에는 이르지 못한 사례들이 더 많다. 이는 서울시장 경력이 대권 도전에 일정한 발판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위상이 곧장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울시장직 도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현직 국회의원이나 국무위원 등 성공적인 중앙 정치 경력을 이어가던 중 자리를 내려놓고 시장 선거에 출마한 사례는 드물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장직이 국회의원 및 국무위원과 겸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면 의원직이나 장관직을 사퇴해야 하므로, 중앙 정계에서 안정적인 경력을 유지하고 있는 정치인 입장에서는 도전의 대가가 크다. 반면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은 상호 겸직이 가능하기 때문에, 서울시장보다 위상은 다소 낮더라도 경력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실제로도 서울시장에 도전한 정치인들은 대부분 기존 정치 경력이 단절된 상태이거나, 일시적으로 정치 활동을 중단한 상태에서 복귀의 기회를 엿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2002년 김민석, 2011년 나경원, 2014년 정몽준, 2021년 박영선, 2022년 송영길처럼 의원직이나 장관직을 내려놓고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사례도 없지는 않지만, 이들의 출마는 단순히 개인의 커리어 선택이 아니라 각기 다른 정치적 배경과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례로 2011년 나경원과 2021년 박영선의 출마는 각각 소속 정당의 서울시장이 중도 사퇴하거나, 성추문으로 인한 자살로 직을 떠나면서 열린 재보궐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이들은 당의 요청에 따라 서울시장이라는 ‘험지’에 출마한 대표적인 구원투수 격 정치인이었다. 당 차원에서도 전략적 공천을 할 여유가 부족했던 만큼, 본인들 역시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출마한 셈이다.

2022년 송영길의 출마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내며 여권 핵심 인물로 활동했으나, 대선 패배 이후 당의 지지율 하락과 지방선거 전망 악화 속에 당내에서 서울시장 후보군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현직 시장인 오세훈의 강세가 예상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도 '험지에 나서줄 인물'이 필요했고, 결국 송영길이 전략적 결단을 내리고 출마하게 된다. 본인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인천광역시를 벗어나 서울시장에 도전한 것은 진짜로 당선을 노린 행보였다기 보다는, 대선 패배 당시 당대표로서의 책임을 지는 동시에 지방선거 이후의 당내 입지를 고려하고 내린 결단에 가까웠던 셈이다.

또한 2014년 정몽준의 사례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의 전성기를 놓친 이후 장기간의 침체기를 겪던 그가 상황 타개를 위해 던진 승부수로 해석할 수 있다.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정몽준은 정치 경력을 이어가고 있었다고는 하나, 실상은 국회의원직만 유지하고 있었을 뿐, 과거 여야를 넘나들며 사실상 ‘일인 정당’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에 비하면 정치적 위상은 뚜렷하게 퇴조한 상태였다. 서울시장 출마는 이러한 침체 흐름을 반전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서울시장 출마는 단순한 정치적 상승 단계라기보다는, 정치 경력이 단절된 인물이 복귀를 모색하거나 정당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희생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역대 서울특별시장 중 가장 성공적인 정치적 경력인 대통령을 거친 이명박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의 불법 선거 운동으로 의원직을 상실당할 위기에 처하자 자진사퇴한 후 결국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가 사면 복권된 뒤 서울시장 도전으로 정계 복귀를 시도하여 성공한 케이스다. 제16대 국회 당시 정치에 갓 입문한 초선 국회의원에 불과하였던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계와 잠시 거리를 두고 있다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에 복귀한 뒤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케이스다. 오세훈의 2번째 임기도 마찬가지로 사퇴이후 2번의 총선과 당대표 선거에서 내리 패배하며 10년간 정치경력이 끊겼다가 정계로 복귀하는 서울특별시장 선거였다.

이명박이 2007년 대통령이 된 이후 근 20년간, 서울시장 출신은 대통령은 고사하고 대통령 후보에조차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는 서울시장 집권의 역사가 원체 특이하게 흘러가는 바람에 그 기간 동안의 서울시장이 오세훈→박원순→오세훈 고작 2명으로 시장이 되는 길 자체가 문이 좁아서 생긴 현상이라 봐야 한다. 박원순은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여 대선 출마 역시 말할 수 없게 됐으니, 2025년 현 시점에서 이것에 대한 질문은 오세훈이라는 개인의 추후 행보와 차기 서울시장 도전자의 가능성을 묻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2.5. 출신 직위 및 출신지[편집]

 
 
 
 
민선 구청장시의원 출신은 아직 없는 것이 특징이다. 구청장 출신은 시장은 물론 시장 후보로조차 선출된 적이 없는데[8][9], 구청장의 권한이 동급인 자치시장보다 확연히 적고 반대로 서울특별시장은 경기도지사를 제외한 다른 광역자치단체장에 비해서 위상이 높다 보니 구청장 정도로는 서울특별시장을 노리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울특별시내의 구청장만 해도 25명이나 되다 보니 서울특별시 전체에서 단 1명 뿐인 서울특별시장을 노리기에는 정치적 관심도나 언론 노출 빈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시의원은 시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아무래도 구 단위를 직접 관할하는 구청장에 비해서도 인지도나 정치적 위상이 낮은 편이어서 주요 정당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시의원을 서울시장 후보로 공천한 사례가 없다. 다만 군소정당의 경우에는 예외가 있는데, 정의당 소속의 권수정 제10대 서울특별시의원이 2022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사례가 있다.[10][11]

호남 출향민 비중이 높은 서울로 비록 초대 서울특별시장이 호남 출신이지만 민선 서울시장 중 호남 출신은 아직까지는 고건[12] 한 명뿐이다. 다만 호남 출향민들을 의식해서인지 박원순 전 시장은 임기 중 서울특별시 부시장 3인을 호남 출신으로 기용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13] 또한 역대 민선 서울특별시장 중 서울특별시 출신은 고건, 오세훈 시장이 있다.
 
 
 
 

2.6. 시장 판독기(스윙보트)[편집]

 
 
 
 
역대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적중률 100%의 승패 판독기 역할을 한 자치구는 중구, 양천구, 영등포구, 강동구다. # 이 4개의 자치구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각 선거의 서울특별시장 당선인들이 모두 승리한 지역이다. 다시 말해 해당 지역에서 승리한 후보들은 모두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되었다는 의미다. 이 중에서 특히 양천구영등포구는 각 후보의 해당 지역에서의 득표율과 서울특별시 전체 득표율이 비슷하게 나온 적이 많아 서울특별시장 선거 때 특히 주목을 받는다. #

그 외에도 송파구가 서울특별시장 선거의 판독기 역할을 했는데, 이는 송파구의 인구가 많은 것도 있지만[14] 다른 지역에서 인구가 많이 유입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접전 끝에 패배한 한명숙은 25개 지역구 가운데 17곳에서 승리하고도 오세훈에 패배했는데 오세훈이 승리한 지역 8곳 중 하나가 송파구였다. # 하지만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당시에는 박원순이 아닌 나경원송파구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적중률 100%의 족집게 지역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재보궐선거를 제외한 정식 선거에서의 승자는 모두 맞혔기 때문에, 위의 4개 자치구와 함께 족집게 지역으로 종종 거론된다.
 
 
 
 
 
 
 
 
  • 최단기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전임 시장(이원종)의 경질 이후, 후임 시장에 취임했던 우명규는 취임하자마자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그러나 성수대교 건설 당시 서울특별시청 건설본부장으로서 실무 총책임자였다는 게 밝혀져 11일 만에 자진 사퇴[15]하고 최병렬이 시장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최병렬 전 시장도 퇴임 전날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나, 조순 전 시장은 취임식하자마자 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서 상황을 살피고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 최연소
    역대 최연소 서울특별시장은 경성부윤 취임 당시 39세였던 김형민 전 시장이며, 그 다음은 40세였던 김현옥 전 시장이다. 민선 기준으로는 초선 취임 당시 45세였던 오세훈 시장이 있다.
 
 
 
 
시장에게는 재임 기간 동안 거처할 수 있는 공관이 제공된다. 위치는 삼청동 공관촌에서 한남동 공관촌으로 이전하였다.[16] 그 이전의 혜화동 공관은 서울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로 리모델링되었다.
 
 
 
 

3. 법적 권한[편집]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제4조(일반행정 운영상의 특례)
⑤ 서울특별시 소속 국가공무원의 임용 등에 관한 「국가공무원법」 제32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 제78조제1항ㆍ제4항 및 제82조에 따른 소속 장관 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권한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서울특별시장이 행사하며[17], 이와 관련된 행정소송의 피고는 같은 법 제16조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장이 된다. <개정 2011.5.30.>
⑦ 서울특별시 소속 공무원 등에 대한 서훈(敍勳)의 추천은 「상훈법」 제5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장이 한다. <개정 2011.5.30.>
제7조(대리 출석) ① 국무위원이 국무회의에 출석하지 못할 때에는 각 부의 차관(행정안전부의 재난안전관리사무에 관하여는 이를 담당하는 본부장을 포함한다)이 대리하여 출석한다.
② 대리 출석한 차관은 관계 의안에 관하여 발언할 수 있으나 표결에는 참가할 수 없다.
제8조(배석 등)국무회의에는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국무조정실장, 국가보훈처장, 인사혁신처장, 법제처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금융위원회위원장,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통상교섭본부장 및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 다만,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을 배석하게 할 수 있다.
②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중앙행정기관인 청(廳)의 장으로 하여금 소관 사무와 관련하여 국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하게 하거나 관계 전문가를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서울특별시장은 국무회의에 배석할 권리 혹은 의무(과거)가 있다. 이는 대한민국 출범 후 참여정부 시기를 제외하고 서울시장에게 주어진 의무 혹은 권리였다. 단 참여정부는 서울특별시장(당시 32대 한나라당 이명박, 33대 한나라당 오세훈)에게 보장된 국무회의 배석 및 발언권을 박탈했다.[18]
 
 
 
 

4. 주요 인물[편집]

 
 
 
 
  • 김형민: 초대 시장. 시작은 경성부윤이었다가 서울특별자유시장으로 직함명이 바뀌었다. 후임자가 대통령까지 돼서 워낙 유명해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묻혔으나 우남시가 될 뻔한 현 서울특별시 지명을 지켜내었고 그 외 다수의 일제 잔재 지명을 바꾸는 데에 기여한 인물이다.
  • 김현옥: 제14대 시장.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제12대 경상남도 부산광역시장에 임명되었으며 부산광역시직할시로 승격시키고자 부산광역시와 중앙을 새벽 열차로 왕래하면서 직할시 승격 필요성을 역설한 끝에 중앙의 승인을 받아 부산직할시 승격에 성공하고[19] 초대 부산직할시장(대수로는 13대)이 되었다가 몇 년 뒤 이 자리로 이임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특별시장 재임 시절 가졌던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의 원조가 되는 인물로, 파리의 오스만 시장에 버금가도록 서울과 부산에 대개조 사업을 벌였다. 1960년대 말 서울특별시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판잣집을 철거하고 시민아파트를 짓는 개발 정책을 주도했고, 서울전차 폐선[20]서울 지하철 기본 계획 수립도 이 사람이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를 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너무 개발 정책에만 목을 맨 나머지 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사고를 일으키고 사퇴하였다. 나중에 내무부장관으로 영전한다.
  • 조순: 제30대 시장. 최초이자 5공 이전의 유일한 민선 서울시장이었던 제11대 김상돈 전 시장(2공)의 뒤를 잇는 민선 서울시장인 동시에 6공 최초의 민선 서울특별시장이다. 안타깝게도 시장에 당선된지 2일 후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취임식도 대폭 축소하여 간소하게 치르고 바로 사고 현장부터 가서 상황을 살핌으로써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하였다. 임기 중 통합민주당 후보로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에서 사퇴하였으나 지지율이 정체되며 대통령 선거 후보직에서 사퇴하였다. 직후에는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을 창당하며 초대 총재가 된다.
  • 오세훈: 제33·34·38·39대 시장.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민선 시장이다. 뚜렷한 행정 성과, 반듯한 이미지와 외모로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됐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재선되었지만, 서울시의원 선거에서 소속 한나라당이 패배하며 팔다리가 잘리고 야당인 민주당의 견제로 시정 운영에 큰 제약을 받게 되었다. 결국 민주당과의 첨예한 대립 끝에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서울시장직을 걸었지만, 야당의 투표 불참운동 속에서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고, 오세훈은 서울시장직을 자진 사퇴했다. 그러나 중도 사퇴 후 10년 간의 공백기를 보낸 뒤 2021년 재보궐선거로 서울특별시장에 다시 당선되어 박원순에 이은 헌정 사상 두 번째 3선 서울특별시장이 되었고, 2021년 4월 8일 제38대 서울특별시장으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시정을 이끌고 있다. 2022년 6월 2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헌정 사상 최초의 민선 4선 광역자치단체장, 최초의 4선 서울특별시장 자리에 올랐다.
  • 박원순: 제35-37대 시장. 위의 오세훈 시장의 자진 사퇴로 열린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첫 출마 당시 5% 정도의 인기 없는 후보였으나, 당시 지지율 1위였던 안철수 후보의 양보 및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하여 극적으로 당선되었다.[23] 2011년 10월 27일에 취임하여 2014년 재선에 성공하였고 재선 임기 3년차에 들어서면서 조선 건국 이래 최장 기간을 재임하는 서울의 책임자(한성판윤과 경성부윤 포함)였으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연속 3선에 성공한 서울특별시장이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이미 2014년부터는 유력한 차기 대통령 1위로 지목되곤 했으며, 후술할 2020년 7월 이전까지는 여론조사만 했다하면 거의 항상 대권주자들 중에서 1위였고, 2위 주자와의 격차도 컸다. 이게 대단한 것이, 박원순은 2017년에 치러진 19대 대선에선 경선 참여조차 안했음에도 정권 교체 후에도 계쇠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거의 없었다. 대선 경선 조차 불참한 대선 주자가 두 정권 연속으로 유력 대권주자 1위를 한다는 것은 유래 조차 찾아보기 어렵다.[24] 그러나 재임 중 여비서를 성추행한 사건으로 피고소된 후, 2020년 7월 10일 0시 1분 북악산 부근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5. 역대 시장 목록[편집]

 
 
 
 
역대 시장의 사진과 주요 업적에 대해서는 서울시 홈페이지의 이 문서를 참고. 서울시 측에서는 초대 시장을 김형민으로 삼고 있다.
 
 
 
 

5.1. 역대 서울특별자유시장[편집]

 
 
 
 
관선 서울특별자유시장
대수
사진
이름
재임 기간
정부
비고
초대
1대김형민
김형민 (金炯敏)
1946년 9월 28일 ~ 1948년 12월 14일
2대
2대윤보선
윤보선 (尹潽善)
1948년 12월 15일 ~ 1949년 6월 5일
3대
3대이기붕
이기붕 (李起鵬)
1949년 6월 6일 ~ 1949년 8월 14일
 
 
 
 

5.2. 역대 서울특별시장[편집]

 
 
 
 

5.2.1. 관선 1차[편집]

 
 
 
 
관선 서울특별시장
대수
사진
이름
재임 기간
정부
비고
4대
3대이기붕
이기붕 (李起鵬)
1949년 8월 15일 ~ 1951년 5월 8일
5대
5대김태선
김태선 (金泰善)
1951년 6월 27일 ~ 1952년 7월 23일
6대
1952년 8월 29일 ~ 1956년 7월 5일
7대
7대고재봉
고재봉 (高在鳳)
1956년 7월 6일 ~ 1957년 12월 13일
8대
8대허정
허정 (許政)
1957년 12월 14일 ~ 1959년 6월 11일
9대
9대임흥순
임흥순 (任興淳)
1959년 6월 12일 ~ 1960년 4월 30일
10대
10대장기영
장기영 (張基永)
1960년 5월 2일 ~ 1960년 12월 30일
 
 
 
 

5.2.2. 민선 1차[편집]

 
 
 
 
민선 서울특별시장[37][38]
대수
사진
이름
재임 기간
당적[39]
비고
11대김상돈
김상돈 (金相敦)
1960년 12월 30일 ~ 1961년 5월 16일
 
 
 
 

5.2.3. 관선 2차[편집]

 
 
 
 
관선 서울특별시장
대수
사진
이름
재임 기간
정부
비고
12대
12대윤태일
윤태일 (尹泰日)
1961년 5월 20일 ~ 1963년 12월 16일
13대
13대윤치영
윤치영 (尹致暎)
1963년 12월 17일 ~ 1966년 3월 30일
14대
14대김현옥
김현옥 (金玄玉)
1966년 3월 31일 ~ 1970년 4월 15일
15대
15대양택식
양택식 (梁鐸植)
1970년 4월 16일 ~ 1974년 9월 1일
16대
16대구자춘
구자춘 (具滋春)
1974년 9월 2일 ~ 1978년 12월 21일
17대
17대정상천
정상천 (鄭相千)
1978년 12월 22일 ~ 1980년 9월 1일
18대
18대박영수
박영수 (朴英秀)
1980년 9월 2일 ~ 1982년 4월 27일
19대
19대김성배
김성배 (金聖培)
1982년 4월 28일 ~ 1983년 10월 14일
20대
20대염보현
염보현 (廉普鉉)
1983년 10월 15일 ~ 1987년 12월 29일
21대
21대김용래
김용래 (金庸來)
1987년 12월 30일 ~ 1988년 12월 4일
22대
22대고건
고건 (高建)
1988년 12월 5일 ~ 1990년 12월 26일
23대
23대박세직
박세직 (朴世直)
1990년 12월 27일 ~ 1991년 2월 18일
24대
24대이해원
이해원 (李海元)
1991년 2월 19일 ~ 1992년 6월 25일
25대
25대이상배
이상배 (李相培)
1992년 6월 26일 ~ 1993년 2월 25일
26대
26대김상철
김상철 (金尙哲)
1993년 2월 26일 ~ 1993년 3월 4일
27대
27대이원종
이원종 (李元鐘)
1993년 3월 8일 ~ 1994년 10월 21일
28대
28대우명규
우명규 (禹命奎)
1994년 10월 22일 ~ 1994년 11월 2일
29대
29대최병렬
최병렬 (崔炳烈)
1994년 11월 3일 ~ 1995년 6월 30일
 
 
 
 

5.2.4. 민선 2차[편집]

 
 
 
 
민선 서울특별시장
대수
사진
이름
재임 기간
당적[59]
출신지
비고
30대조순
조순 (趙淳)
1995년 7월 1일 ~ 1997년 9월 9일
강덕기 부시장
강덕기 (姜德基)
1997년 9월 9일 ~ 1998년 6월 30일
행정1부시장
22대고건
고건 (高建)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32대이명박
이명박 (李明博)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33대오세훈
오세훈 (吳世勳)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2010년 7월 1일 ~ 2011년 8월 26일
권부시장
권영규 (權寧奎)
2011년 8월 26일 ~ 2011년 10월 26일
행정1부시장
35대박원순
박원순 (朴元淳)
2011년 10월 27일 ~ 2014년 6월 30일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2018년 7월 1일 ~ 2020년 7월 9일
B37CEA46-6375-48...
서정협 (徐正協)
2020년 7월 10일 ~ 2021년 4월 7일
행정1부시장
38대오세훈
오세훈 (吳世勳)
2021년 4월 8일 ~ 2022년 6월 30일
2022년 7월 1일 ~ 현재
2026년 7월 1일 ~ (예정)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서울특별시장/선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서울특별시장[편집]

 
 
 
 
  • 2026년 기준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고건, 이명박 총 2명이다. 다만 역대 서울특별시장으로 범위를 넓히면 생존 중인 역대 서울특별시장은 이보다 많다.
 
 
 
 

8. 시정 구호[편집]

 
 
 
 
시장
시정 구호
조순 (민선 1기)
-
고건 (민선 2기)
-
이명박 (민선 3기)
-
오세훈 (민선 4·5기)
맑고 매력있는 세계도시 서울
시민이 행복한 서울 세계가 사랑하는 서울
박원순 (민선 5-7기)
희망서울 - 함께 만드는 서울, 함께 누리는 서울
함께 서울: 시민과 함께, 세계와 함께
내 삶을 바꾸는 서울 10년 혁명
오세훈 (민선 7·8기)
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
 
 
 
 

9. 창작물에서의 서울특별시장[편집]

 
 
 
 

10. 관련 문서[편집]

 
 
 
 

11.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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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대한민국 대통령 문장
부의장
대한민국 국무총리 문장
국무총리 휘장 국무총리 보좌기관·소속기관
기타 기관*
기타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배석시키는,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
* 국무회의 규정 외의 법률에 의거하여 국무회의출석, 발언권 등이 있음
 
 
 
 
[1] 한성판윤 또는 그냥 판윤으로도 불렸으며, 조선 초에는 한성부윤이 정식 명칭이었으므로 한성부윤 혹은 부윤으로도 불렸다.[2] 예외로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및 법원행정처장은 각각 헌법재판소장대법원장이 임명하기에 국무회의 의장이 그 인사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3] 가끔씩 전임 국무회의 의장이 지명한 배석자의 임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자리를 지켰다면 소수의견을 낼 수도 있다.[4] 보통 예산 문제다.[5] 산하에 자치구만을 두고 있는 광역자치단체는 서울뿐이다. 서울에는 자치구만을 둘 수 있으며, 광역시는 자치구와 을 둘 수 있다.[6] 물론 산하에 특례시가 많다는 건, 그만큼 인구 측면에서 경기도 자체의 위상이 높다는 증거이기도 하다.[7] 이로 인해 서울특별시의 행정부시장 2인과 기조실장의 경우 서울특별시장이 국무총리를 경유하여 대통령에게 임명안을 상신하여 대통령 명의의 임명장을 받게 되며, 행정안전부에서 국가직을 파견보내는 타 시도와는 달리 시장이 지명한 서울특별시청 내부 인사가 국가직으로 옷만 갈아입고(사실상의 내부 승진) 부시장 또는 기조실장이 된다. 더불어 서울시 소속 공무원의 상훈 수여도 타 시·도에서는 행정안전부장관을 경유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서울특별시장은 대통령에게 바로 상신할 수 있다.[8] 주요 정당은 물론 군소정당이나 심지어 무소속으로도 후보가 나온 적 없다.[9] 공천 도전자의 사례까지 찾아보면, 3선 강남구청장 출신인 권문용이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장 공천을 신청했으나 경선에서 탈락한 바 있다.[10] 그 외에 제4대 서울시의원이었던 민영삼은 2018년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바 있다.[11] 서울시의원 출신 정치인들은 보통 구청장에, 구청장은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흐름을 보인다. 구의원 → 시의원 → 구청장 → 국회의원 순의 경력 루트가 일반적이며, 김성환 의원이 대표적인 예시. 다만, 이 방식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후 서울시장에 도전한 사례는 아직 없다.[12] 그나마도 본적이 호남이어서 호남 출신으로 분류된 케이스이며, 고건 본인은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윤석열충청남도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충청 출신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13] 단, 박원순의 마지막 부시장들이었던 서정협(행정1부시장), 김학진(행정2부시장), 김우영(정무부시장)은 모두 비호남 출신이었다. 서정협은 울산광역시, 김학진은 경상북도 경주시, 김우영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출신.[14] 인구가 춘천시, 강릉시, 속초시, 동해시를 합한 것과 비슷하고 중구의 5배 이상이라 총선에서도 개표 속도가 가장 늦다.[15] 문민정부 출범 초기 7일 만에 경질된 김상철 전 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단명한 서울특별시장으로 남았다.[16] #[17] 이 조항에 따라서 서울특별시청에 들어가는 국가직공무원인 행정부시장 2인과 기획조정실장에 대한 인사권 역시 서울특별시장이 사실상 행사하며, 실제로는 시장의 임명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대통령실 인사검증에서 탈락한 경우, 시장의 임명제청을 대통령이 거부할 수도 있다. 2021년 4월 오세훈 시장이 임명제청한 황보연 기조실장 후보자가 청와대 인사검증에 막혀 정식 임명을 거부당한 것이 그 예시.[18] 현안 관련 공무원을 국무회의에 참석시킬 수 있는 규정을 통해 청계천 복원사업 질의와 관련하여 이명박 전 시장을 국무회의에 출석시킨 적은 있다.[19] 당시에는 정식으로 '부산직할시'의 이름은 얻지 못하고 '경상남도'만 빠져서 시장 직함명 역시 1981년 부산직할시 정식 개칭 전까지는 그냥 '부산시장'이었다. 다만 비공식적으로는 이때부터 이미 부산직할시라는 명칭이 통용되고 있었으며 지금은 소급 적용되었다.[20] 부산전차도 이때 동시에 폐선되었는데, 부산전차 폐선 계획을 최초로 수립한 사람 역시 김현옥 전 시장이었다. 다만 임기 내에는 실행하지 않고 후임 김대만 시장이 실행한 것이다.[21] 더 엄청난 것은 2호선 계획에서 영등포역 예정지 공사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해서 신도림으로 위치가 바뀐 것을 빼면 난공사라 할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구 시장은 포병장교 출신답게 지도 읽는 눈썰미가 상당히 뛰어났다.[22] 비슷한 사례로 서울특별시장은 아니지만 관선 1번 + 민선 3번으로 4번 도지사를 지냈던 심대평충청남도지사의 사례, 제25대 부산직할시장(관선)과 제31·32대 부산광역시장(민선)을 지낸 안상영부산광역시장이 있다.[23] 이 때 박원순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깨고 올라간 상대가 다름아닌 나경원이었다.[24] 그나마 비슷한 경우가 2002년부터 2014년까지만 해도 계속 유력 대권주자로 지목받던 정몽준이 있었고, 이는 대통령이 3번이나 바뀌는 동안, 즉, 4개의 정권 동안 지속되었지만 유력 대권주자 1위는 아니었으며, 이마저도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계속 유력 대권주자로 지목받은 사례도 드물다. 대권주자로서의 박원순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 케이스다.[25] 2년 78일. 해방 이후 초대 서울시장. 서울(특별자유시)이라는 명칭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경성부윤이었으나 곧 '서울시장'으로 개칭되었다. 여담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의 워싱턴 D.C.처럼 서울시를 우남로 만들고 싶어했다.[26] 172일.[27] 69일.[28] 1년 266일.[29] 후임 김태선 취임까지 전예용부시장이 권한대행.[30] 1년 26일.[31] 3년 337일.[32] 김태선 전 시장이 내무부장관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복귀할 때까지 이익흥 전 부시장이 권한대행.[33] 1년 160일.[34] 1년 179일.[35] 323일.[36] 242일.[37] 장면 내각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선거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다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서울시장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통령 임명직으로 회귀했다.[38] 이 당시의 지방선거는 시장, 도지사, 군수, 읍장, 면장, 시/도의원, 시/읍/면의원을 선출하였다. 현재의 전국동시지방선거와는 조금 다르다.[39] 선거 당시 당적.[40] 137일. 4.19 혁명으로 장면 내각이 들어서면서 선거를 통해 최초의 민선 시장이 되었다. 날짜를 보면 예상되지만, 1961년 일어난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임기를 반 년도 못 채우고 자진사퇴한다.[41] 2년 210일.[42] 2년 104일.[43] 4년 1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최측근으로 서울시장에 임명되어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서울 대개조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사고가 일어나 그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44] 4년 139일. 임명직 시장 중 최장기간 재임. 그러나 육영수 저격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45] 4년 111일.[46] 1년 254일.[47] 1년 237일.[48] 1년 169일.[49] 4년 76일. 1986 서울 아시안 게임1988 서울 올림픽 성공의 주역. 재임기간 지하철 2, 3, 4호선을 완공하였다.[50] 340일.[51] 2년 21일,
민주자유당
소속.
[52] 53일.[53] 1년 127일.[54] 244일. 새 대통령 취임일에 맞춰 퇴임했다.[55] 7일. 당시 매우 유명했던 인권 변호사 출신에 40대라는 젊은 나이로 참신한 이미지까지 갖추고 있어, 당시 최초의 민주 세력 정부였던 김영삼 정부의 주요 인사로 내세울 만했다. 하지만 시장 취임 후 곧바로 서울 근교에 위치한 수려한 본인 소유의 전원 주택이 그린 벨트를 무단 훼손해서 건축된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남으로써 1주일 만에 자진 사퇴하였다. 여담으로 국민의 정부 출범 후에는 보수 세력으로 변신하였다. 역대 최단 기간 재임.[56] 1년 227일.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난 그날 오후 7시에 문책성으로 경질되었다. 후에 민선 충청북도지사를 지냈다.[57] 11일. 경상북도지사를 하던 중에 이원종 전 시장의 경질로 급히 신임 시장에 임명되었지만 11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58] 239일. 마지막 관선 시장.
민주자유당
소속.
[59] 선거 당시 당적.[60] 2년 71일.[61] 1997.9.9. 제15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시장직 사퇴.[62] 293일.[4년] 63.1 63.2 63.3 63.4 [64] 2000.1.20.
새천년민주당
으로 당명 변경.
[65] 외국 태생. 실질적 고향은 아버지의 고향인 경상북도 포항시.[67] 임기 만료로 퇴임 직후 바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어 당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민선 서울특별시장 출신 첫 대통령. 임명직 서울특별시장 출신 대통령으로는 제2대 시장인 윤보선이 있다.[69] 민선 기준 최초의 재선 서울특별시장.[70] 1년 56일.[71]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당시 투표율이 33.3%에 못 미치자 사퇴했다.[72] 60일.[73] 2년 247일.[74]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사실상 야권의 단일 후보였다. 재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꺾었고, 시장 취임 후
민주통합당
에 입당한다.
[75] 2012.2.23.
민주통합당
입당.
[77]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78] 2년 9일.[79]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 역대 최장 기간 연속 재임(8년 256일). 재임 중 사망.[80] 272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으로 인한 서울특별시장 권한대행.[81] 직전 박원순 전 서울특별시장의 사망 사실이 10일 0시(9일 자정)를 넘겨 확인되었기 때문에 실종 당일인 9일에는 임시로 직무대리를 맡았던 것. 주된 차이가 시장으로서 현직이 누구냐 정도이다. 결재권자가 현직 '시장'인데 임시로 현상유지의 범위 내에서 대결하는 자리가 직무대리이고 권한대행자가 바로 최종 결재권자가 되는 것이 권한대행이다.[82] 1년 84일.[83] 두 번째 3선 서울특별시장이고 임기 이후 재출마하여 당선된 세 번째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이전에는 염홍철대전광역시장우근민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임기 이후 재당선된 사례가 있다. 오세훈 다음에는 홍준표경상남도지사유정복인천광역시장이 각각 대구광역시장인천광역시장에 재당선되었다.[84] 최초의 4선 광역자치단체장. 역대 최장 기간 재임 기록. (임기 4년을 모두 마칠 경우, 통산 10년 13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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