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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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서울특별시 휘장
서울특별시청
서울特別市廳 | Seoul City Hall
서울시청 전경
본청
서소문1청사
슬로건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
주소
개청
1949년 8월 15일 (76주년)
전신
서울특별자유시청, 서울시청
국가
광역시도
직원 수
5,000명[1]
예산
51조 4,778억 원[2]
특별시장
부시장
김태균 (행정1)
김성보 (행정2)
김병민 (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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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전근대2.2. 구 본관2.3. 시청 이전 계획2.4. 구 본관 철거, 그리고 복원2.5. 신관 (2012 ~ 현재)
2.5.1. 다섯 번의 설계2.5.2. 외관 공개
3. 별관
3.1. 서소문 청사3.2. 기타 청사
4. 조직
4.1. 서울특별시 자치구4.2. 역대 서울특별시장4.3. 서울특별시 부시장4.4. 산하기관
4.4.1. 지방공기업4.4.2. 지방출연기관
5.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5.1. 본관, 서소문 1, 2청사, 무교로, 청계 청사5.2. 남산 청사
6. 여담
6.1. 시계
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의 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이자 그 기관이 입주한 광역자치단체 청사. 줄여서 서울시청이라고도 한다. 현재 사용 중인 청사는 2012년 10월 완공되었으며, 이전까지는 바로 앞의 현 서울도서관 건물을 시청으로 사용했었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 (태평로1가)이다. 행정동은 명동이다.

바로 맞은편에 서울특별시청을 견제하는 서울특별시의회[4]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시청 앞 광장을 말하면 보통 이곳 앞에 있는 서울광장을 가리킨다.
 
 
 
 

2. 역사[편집]

 
 
 
 
흔히 서울특별시청 하면 서울광장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당시부터 있던 본관과 이후 지어진 신관만 생각하는데 인구 1,000만 명의 거대 도시 서울특별시의 조직을 신관만으로 수용할 수 있을리는 당연히 없고, 덕수궁 돌담길 바로 옆에 서소문 청사[5], 서소문 2청사, 무교동 청사[6], 남산 청사[7], 청계 청사[8] 등이 따로 있다. 참고로 을지로 별관[9]은 그레뱅 뮤지엄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중 서소문 청사의 규모가 상당히 커서 서울시청 복원 및 신청사 건설 기간에는 시장실 등의 기관이 입주하여 본관 역할을 하였다.
 
 
 
 

2.1. 전근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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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성부 청사
서울특별시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조선 한성부 청사는 지역별로 서부, 동부, 남부, 북부, 중부 청사로 나뉘어 있었으며, 이 중 중부 청사는 세종대로의 미국 대사관 인근에 있었다. 이후 고종 대에 경희궁 인근으로 이전하였다가 여러 장소를 전전하게 되었다.
 
 
 
 

2.2. 구 본관[편집]

 
 
 
 
45 1910 구경성부 189...
경술국치 직후 경성부청
구한말 격동의 시기 을사조약이 맺어지며 일본 제국대한제국통감정치를 펼쳤고 이에 현재의 신세계백화점 본점SC제일은행 제일지점을 합친 부지에 있던 구 일본영사관을 통감부가 각 지방행정 처리를 위해 설치한 관청인 "이사청"으로 개칭하게 되었으며, 1910년 한일합방조약 이후엔 다시 "경성부청"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한국은행 건너편에 있었다.
경성부청 전경
1937년 촬영된 경성부청의 전경 (컬러 복원)
이후 1926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경성 인구로 인해 더 이상 이 작은 청사에서는 경성의 행정 업무를 돌볼 수 없다고 판단한 총독부는 현 서울시청 본관 부지에 있던 경성일보 건물[10]을 허물고 그 자리에 경성부청 청사를 짓게 되었고 이 건물이 바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서울시청 구 청사, 현 서울도서관 건물이다. 이 당시 건축 설계 총책임은 일본인 3명으로 이와이(경성부 간부), 사사, 이와츠키로 되어있는데 조선인 장연채도 참여했다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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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구 서울특별시청 건물 (서울도서관)
구 본관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건축미학적 면에서 따지면 딱히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인정되지 않는다. 평가절하되는 원인 중 하나가 보통 위압감인데, 이와츠키가 한 "관청 건물이 추구하는 위엄성을 배제하여"란 말로 볼 때 일본인 건축가들은 의외로 건물이 주는 위압감을 낮춰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광복 이후 경성부청은 서울특별시청이 되어 초대 김형민 시장부터 오세훈 시장까지 구 본관에서 업무를 봤다.[11]

시청 건물이 지어진지 80년 가량 지나며 이 본관 또한 1,000만 서울시민의 보금자리가 된 서울의 행정을 처리하기엔 협소했다. 협소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본청 역할을 할 수가 없을 정도의 업무 공간이었다. 주요 실국 중 기획조정실과 행정국만 들어와도 사무 공간이 포화 상태여서 서울시의 실질적 메인 오피스는 서소문 청사 등 별관이었다. 이렇게 분산된 청사로 인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시청을 찾는 민원인도 불편해했다.
 
 
 
 

2.3. 시청 이전 계획[편집]

 
 
 
 
1969년에는 김수근이 관여했던 여의도개발계획으로 동여의도에 이전계획이 있었고 71년에는 서여의도로 수정이 됐으나 무산됐으며, 1980년대에 다시 시청 이전 및 청사 신축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당시 박영수 서울시장은 서초동으로 청사 이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엎어지고 이후 염보현 시장과 최병렬 시장은 각각 1987년과 1995년에 현재 자리에 재건축 하기로 하였다.

조순이 첫 민선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서울시는 서울시청을 당시 미군기지가 있었던 현 용산구청 자리로 옮기기로 하였다. 이 때 100인의 시민위원회까지 구성해 시청사의 용산 이전을 결정했고 청사 건립계획도 완성하여 녹사평역 인근의 시청 부지는 물론이고 건물 면적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도 정했다. 시 청사 이전에 대비해 기간 교통망도 정비되었는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녹사평역의 거대한 규모이다. 후임인 고건 역시 용산 이전을 지지했다. 이 당시에는 완전한 통합청사 계획이 있어서 현재 있는 별관들을 전부 팔아서 건축비를 회수한다는 계획이었다. 높이는 남산 고도제한이 걸리는 최대 한계인 180m까지 세우고, 건폐율을 높게 잡아 건물을 높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고건의 후임인 이명박은 이 계획을 엎어버리고 다시 현 시청 자리에 재건축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작은 정부를 지지했던 이명박 시장은 현 부지 재건축이 용산 이전보다 저렴하다고 주장하면서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곳을 위해 몇 조씩 들이는 건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많은 공무원이 일하고 방문객도 많은 시청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데 따른 이해집단 간 갈등 문제도 시청 이전을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청 이전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현 부지 재건축을 주장했고,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는 고건 및 조순 시장 때와 동일하게 용산 이전을 주장했고, 민주당 박주선 후보와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으로 비게 될 정부서울청사를 활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면서 시청 이전은 완전히 무산되고 현 자리에 재건축하기로 결정되었다. 출처
 
 
 
 

2.4. 구 본관 철거, 그리고 복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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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울특별시청 건물 철거 과정
파사드만 남겨두고 전부 철거했다. 이젠 더 이상 근대 건축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

이 철거 과정은 당시 재임했던 오세훈 시장의 오점이 되어 두고두고 욕을 먹고 있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시청 본관은 200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를 무시하고 조선총독부처럼 없애버리려고 했다.[12] 물론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건물 역시 1920년대에 지어진 대법원 건물을 입면만 살려서 다시 짓는 식으로 복원하는 등 이런 식으로 문화재 복원한 전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까는 사람들은 이런 것도 파사디즘[13]이라고 까는 현실이라 논란이 될 법한 방식임은 여전하다.[14]

그러다 기습 철거를 시도했는데[15],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문화재청의 반대로 그나마 다시 짓겠다고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시청의 뒷부분을 지하로 수직이전 시켰고 정문을 아예 뚫어버려서 시청이 아닌 신청사 출입문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옛날의 근대건축과는 동떨어져 버렸다.

서울시 측에서 내놓은 이유로는 건물의 안전 문제가 있었다. 일단 건물을 복원 혹은 리모델링하는 방법 중에는 철거 후 재사용 가능한 자재들을 이용하여 다시 짓는 해체 복원도 존재하긴 하다. (심슨 기념관이라든지..) 그러나 구 시청 건물은 해체 복원이 필요할 정도로 원형 훼손이 심한 편이었다.

보통은 시청을 부순 오세훈의 시정(市政)과 늑장 대응을 한 문화재청을 깠지만 비판의 대상이 하나 더 있었다. 신관을 설계한 건축가 유걸이다. 이 사람은 본관을 부수고 신관의 일부로 만드는 전제하에 신관을 설계했고, 본관은 부수는 편이 낫다고 혹평했다.

몇 년 뒤, 신청사 (신관) 완공 후 공개된 모습은 일단 태평홀이 지하로 이전한 걸 빼면 시장실 등등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자세한 건 2012년 10월 26일에 일반 공개가 되어야 알겠지만... 덧붙여, 태평홀이 수직 이전 된 것은 신청사와 본관 사이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어서, 보존하려면 할 수 없이 택해야 했던 것 같다.

옛 시청 상당수 공간에 서울도서관이 입주하였고, 현재 옛 시청은 이 서울 도서관 현판을 달고 있다.
 
 
 
 

2.5. 신관 (2012 ~ 현재)[편집]

 
 
 
 

2.5.1. 다섯 번의 설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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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의 서울특별시청 턴키 당선안
보다시피 다섯 번이나 설계를 해서 만든 건물이다.

문화재법상 덕수궁의 경관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어려운 조건이 붙었다.

문화재 근처의 고층건물은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허가를 얻으려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삼우 건축 설계의 다섯 개 안이 모두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으며 서울시에서는 이에 따라 명망 있는 건축가들의 디자인 설계를 공모해서 컨센서스를 이끌어내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공모에서 선정된 것이 건축가 유걸의 작품.

1과 2는 같은 설계자가 했다. 참고로 두 설계 모두 런던 시청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위치도 위치고 건물의 상징성도 있어서 둥글둥글 항아리나 저고리 모양 등에서 가져온 곡선을 써봤으나 거대한 건물이 주는 위압감이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고 해서 딱지를 먹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태극 모양을 가져왔으나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딱지. 그리하여 3번째가 나왔는데 거대한 매스가 주는 위압감을 줄여보기 위해 매스를 분절시켜 보았으나 대중들의 반응은 성냥갑이었다. 문화재청에서 디자인 자체는 그럭저럭 승인하였으나 문화재 앙각 규정 등으로 높이나 형태 등에 일부 수정을 요구하였고 이렇게 4번째 안이 나왔으나 이번에는 너무 단순 무식해서 서울 시청의 위치나 역사적인 면에서 상징성이 부족하여 서울시 쪽에서 딱지.

결국에는 높이가 대폭 낮춰지고 한옥의 처마선을 딴 형태가 나오게 되었다. 문화재청에서 항아리나 태극은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면서 처마선은 괜찮아 보였는지 이번에는 통과... 이 문제에 대해서 유리궁전 양식 그 자체가 문제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단 서울시 청사의 경우 대지에 걸린 제약 자체가 엄청난 난제였다. 모든 설계안이 전체적으로 동고서저의 형태를 띄는데 이는 덕수궁 담장에서 27의 각도로 올려다 볼 때 이 높이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문화재 앙각 규정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실용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냥 시청 이전이 더 간단한 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부지에 걸린 각종 제한 요소들 때문에 높고 넓은 빌딩을 설계해 갈 때마다 문화재청 등에서 딱지 먹어서 점점 높이를 줄이고,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추가한다며 이런 저런 시설을 넣고, 구 청사는 전체를 도서관으로 활용하다 보니 현재의 청사와 같은 설계가 나왔다. 당연히 통합청사는 기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신청사에 입주할 수 있는 직원들은 30% 정도였고, 시장실과 업무상의 밀접한 관련을 갖는 부서들만 들어가고 나머지 대부분의 기관들은 서소문 청사 및 인근 민간빌딩에 위치하게 되었다.
 
 
 
 

2.5.2. 외관 공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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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이 드러난 서울특별시청 신관
2012년 5월 24일에 가림막이 완전히 철거되면서 외관이 완전히 공개되었다. 문제는 외관이 공개되자마자 온갖 비난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전형적인 유리궁전형 디자인을 채택했는데, 당시 서울시에서는 특수 유리를 사용해서 에너지 효율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말은 단순 핑계였음이 이듬해 폭염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구관과 조화되지 않는 튀는 외관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인근의 건축물들과 조화를 생각해야 되는데 지나치게 화려한 디자인으로 마치 나만 잘났다는 듯이 서있는 건물이 주요 불만 사항인 것. 반대로 현재의 건축 트렌드의 반영이라는 옹호도 있다.

지나치게 위압적인 광경이 파도, 쓰나미를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서울시 청사가 쓰나미를 닮아 일본식 건축물인 구 청사를 덮치는 형세다.' 라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고. 한옥 처마를 재해석한 디자인이라는데, 건축가는 이런 비난을 듣고 오히려 파워풀하다며 좋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디자인만 화려하고 정작 실용적이지는 않은 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유리궁전 골조 때문에 시장실조차도 광장 조망이 영 좋지 않다고. 박원순 전 시장도 내부 마감재 공사 기간에 신청사를 둘러보고 '3,000억이나 들인 건물이 이렇게 비실용적인가'라고 한탄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조망 부문의 경우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청사 8~9층에 '하늘광장' 이란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공간이 있는데, 건물 골조 때문에 조망이 매우 힘들다.

또한 건축 과정을 턴키 방식으로 했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건설회사가 건물이 지어질 때 나오는 모든 것을 다 해먹기 때문에 건축주한테는 편해도 건축가의 디자인은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방식이다. 실제로 서울 신청사도 건축가 유걸은 좀 더 나은 디자인을 원했는데 턴키의 문제 때문에 건물이 절반쯤 지어진 다음에야 자기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유걸 본인이 “결과만 놓고 말하면 신청사 외관은 내가 상상한 이미지가 거의 그대로 구현된 결과물”이라고까지 말한 것을 보면 턴키의 문제 자체는 인정하지만 딱히 자기 생각을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광복 이후 경성부가 서울특별시로 바뀐 직후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판이 사라지고 그 위에는 '서울도서관' 이라 쓰인 현판이 등장했다. 옛 현판은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매끈한 곡선 스타일의 건물 구조상 겨울철에 위험하다고 한다. 물이나 얼음이 흘러내릴 길이나 완충되는 턱이 없어서 그대로 흘러내리다보니 얼음이 얼었다가 살짝 녹으면 얼음이 폭탄처럼 떨어진다. 결국 완공 이후 첫 겨울부터 눈 한번 오자 바로 시청 뒷길이 통제되었다. 문제는 이 길이 단순 뒷길이 아니라 서울광장 조성을 위해 교통체계를 바꾼 이후로는 남산 3호 터널 방면에서 세종대로 쪽으로 빠지는 주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 때문에 건물 외벽에 열선을 추가해서 얼음이 얼지 않게 하려는 계획이 있지만 잘 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원래 디자인 과정에서는 그러한 계획이 있었는데 실시설계 단계부터 턴키 방식으로 인해 모든 권한이 넘어가버려서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고 한다.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전문잡지 SPACE가 건축가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태작[16]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건축가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일제도 공을 들인 서울의 심장부에 우리 스스로가 가장 큰 실수를 했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외계에서 온 건물 같다." 그리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들어서자 둘이 서로 악평을 비교당하는 신세가 됐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프로젝트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결과를 내길 강요한 측면이 크다. 당장 구청사, 서울광장, 덕수궁이라는 세 가지 기존 건축과 어울리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청 업무공간과 공공시설물을 위해 최대한 넓은 연면적을 확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대문 안 고도제한 98m 규정과 문화재 앙각규정 등의 규제를 준수해야 하는 등. 위에서 언급했지만 사실 건축적으로만 따지면 시청을 옮기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하지만 서울 건축의 맥락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일 된 의견이 없어서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새로 건물이 올라갈 때마다 서울의 맥락에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도대체 서울 건축의 맥락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갈 맥락이 없으니 새로 올리는 건축물이 중구난방인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신청사 혼자서 튀는 건축을 올린 것이 아니라 한국 건축의 맥이 원래부터 여러 양식이 혼성되는 맥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여름에는 이 건물의 유리골조로 인해 여름에 찜통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나름 이 문제를 막기 위해서 적은 에너지로도 효율적인 냉난방이 되도록 신경써서 공조 설계를 하였고 더더욱 친환경적인 건물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2013년 전력대란에 따라 시행된 절전 정책은 관공서의 모든 냉방 및 공조 장치를 아예 끄도록 하였고, 에어컨 및 선풍기를 일제히 껐더니 순식간에 내부 온도가 35도 이상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건물 전체가 엄청난 폭염의 찜질방 내지는 거대한 비닐 하우스가 되어버렸다고 하며 근무시간 내내 공무원들이 엄청나게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심지어 계급 높고 짬밥 높은 고위공무원들은 도저히 참다못해 건물 안에 있는 목욕탕에서 단체로 냉수목욕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로 복귀해 업무를 시작하려고 하자마자 또다시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릴 정도로 엄청나게 더웠다고 한다.
 
 
 
 

3. 별관[편집]

 
 
 
 

3.1. 서소문 청사[편집]

 
 
 
 
서소문청사
서울특별시청 서소문 청사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15 (서소문동)에 있다. 본래 대한제국탁지부 청사와 일제강점기의 중추원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1975년에 대검찰청 청사로 준공되었으며, 검찰이 1989년 서초구 서초동에 조성한 법조타운으로 신축, 이전한 후에는 서울특별시청이 이관받아 사용하고 있다.
  • 1동 : 여러 실/국/본부의 사무실이 있는 15층짜리 큰 건물. 13층에는 덕수궁을 비롯하여 정동-광화문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동전망대가 있으며,[17] 2021년에는 1동 건물 전체 외장 공사를 하였다.
  • 2동 : 서울시의회 (각 위원회별 회의실, 의원회관 등)
  • 3동 : 1동 건물 옆에 있는 3층짜리 낡은 건물. 스마트도시정책관이 사용하고 있다.
  • 5동 : 감사위원회
  • 후생동 : 직원식당, 강당, 매점 등

2008년 서울특별시청 본청 공사 기간에는 시장실을 비롯한 본청 주요 부서가 잠시 서소문 별관으로 옮겼고, 2012년 태평로 본청 공사가 끝나면서 다시 본청으로 사무실을 복귀한 역사가 있다.[18] 또한 직원 구내식당으로 쓰이는 후생동 건물 옆에는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이 있다.

시립미술관 및 서소문 청사 2동과 5동 사이에는 서울시청CNG충전소가 있었다. 종로구, 용산구, 서대문구, 동작구 등지에서 운행하는 마을버스, 502번[19] 등이 가스를 충전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며 밤낮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CNG충전소였다. 2021년에 수소충전소 전환을 위해 CNG충전소가 철거되었고, 2022년 10월 7일에 수소충전소가 완공됐다.

2019년 서소문로 맞은편에 새로 세운 민간 오피스인 씨티스퀘어빌딩 상당층을 빌려 '서소문 2청사'로 쓰면서, 서소문청사는 구분을 위하여 '서소문 1청사'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3.2. 기타 청사[편집]

 
 
 
 
  • 서소문 2청사: 중구 서소문로 124
    씨티스퀘어의 4~20층에 입주하고 있다. 위 서소문 청사 바로 길 건너편에 있다.
  • 남산 청사: 중구 삼일대로 231 (예장동)
    국가안전기획부 일부 청사를 활용한 제1청사 및 남산 기슭 곳곳에 제2, 제3청사가 있다. 1청사는 중부공원녹지사업소, 구 안기부 2청사는 민생사법경찰국, 3청사는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사용 중이다.
  • 무교로 청사: 중구 무교로 21 (무교동)
    더익스체인지서울 3~4층, 7~9층에 입주하고 있다.
  • 청계 청사: 중구 청계천로 8 (무교동)
    프리미어플레이스빌딩 3층, 8층~15층에 입주하고 있다. 청계 청사는 도시기반시설본부만 사용하고 있다.

롯데호텔 서울 맞은 편 건물은 과거 미국문화원으로 쓰이며 1985년 5월 대학생들이 5.18 민주화운동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건물을 점거한 사건이 있었던[20] 을지로 별관으로, 밀랍인형 박물관인 그레뱅 뮤지엄에게 내주게 되었다.
 
 
 
 

4. 조직[편집]

 
 
 
 
서울시청 조직도
자세한 내용은 해당 링크로 확인.
 
 
 
 

4.1. 서울특별시 자치구[편집]

 
 
 
 

4.2. 역대 서울특별시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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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이원종
제28대
우명규
제29대
최병렬
제30대
조순
제31대
고건
제32대
이명박
제33·34대
오세훈
제35-37대
박원순
제38·39대
오세훈
SEOUL MY SOUL 한글...
대수
사진
성명
재임기간
선출
비고
서울특별시 휘장(1947-19... 서울특별자유시장
초대
1대김형민
1946.9.28 ~ 1948.12.14
관선 (미군정)
2대
2대윤보선
1948.12.15 ~ 1949.6.5
3·4대
3대이기붕
1949.6.6 ~ 1951.5.8
서울특별시 휘장(1947-19... 서울특별시장
5·6대
5대김태선
1951.6.27 ~ 1956.7.5
7대
7대고재봉
1956.7.6 ~ 1957.12.13
8대
8대허정
1957.12.14 ~ 1959.6.11
9대
9대임흥순
1959.6.12 ~ 1960.4.30
10대
10대장기영
1960.5.2 ~ 1960.12.30
11대
11대김상돈
1960.12.30 ~ 1961.5.16
12대
12대윤태일
1961.5.20 ~ 1963.12.16
13대
13대윤치영
1963.12.17 ~ 1966.3.30
14대
14대김현옥
1966.3.31 ~ 1970.4.15
15대
15대양택식
1970.4.16 ~ 1974.9.1
16대
16대구자춘
1974.9.2 ~ 1978.12.21
17대
17대정상천
1978.12.22 ~ 1980.9.1
18대
18대박영수
1980.9.2 ~ 1982.4.27
19대
19대김성배
1982.4.28 ~ 1983.10.14
20대
20대염보현
1983.10.15. ~ 1987.12.29
21대
21대김용래
1987.12.30 ~ 1988.12.4
22대
22대고건
1988.12.5 ~ 1990.12.26
23대
23대박세직
1990.12.27 ~ 1991.2.18
24대
24대이해원
1991.2.19 ~ 1992.6.25
25대
25대이상배
1992.6.26. ~ 1993.2.25
26대
26대김상철
1993.2.26 ~ 1993.3.4
27대
27대이원종
1993.3.8 ~ 1994.10.21
28대
28대우명규
1994.10.22 ~ 1994.11.2
29대
29대최병렬
1994.11.3 ~ 1995.6.30
서울특별시 휘장 서울특별시장(민선)
30대
30대조순
1995.7.1 ~ 1997.9.9
강덕기 부시장
1997.9.10 ~ 1998.6.30
-
31대
22대고건
1998.7.1 ~ 2002.6.30
32대
32대이명박
2002.7.1 ~ 2006.6.30
33·34대
33대오세훈
2006.7.1 ~ 2011.8.26
권부시장
2011.8.27 ~ 2011.10.26
-
35-37대
20210308000843 0
2011.10.27 ~ 2020.7.9
서정협 전 서울특별시장 권한대...
2020.7.10. ~ 2021.4.7.
-
38·39대
제39대 서울특별시장 오세훈
2021.4.8. ~ 현재
 
 
 
 

4.3. 서울특별시 부시장[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서울특별시 부시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4. 산하기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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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공기업
서울특별시 서울아리수본부 | 서울특별시 하수도
지방출연기관
서울의료원 | 서울연구원 | 서울경제진흥원 | 서울신용보증재단 | 세종문화회관 | 서울시여성가족재단 | 서울시복지재단 | 서울문화재단 | 서울시립교향악단 | 서울디자인재단 | 서울장학재단 |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 | 서울특별시50플러스재단 | 서울디지털재단 | 120다산콜재단 | 서울관광재단 | 서울특별시사회서비스원
 
 
 
 

4.4.1. 지방공기업[편집]

 
 
 
 

4.4.2. 지방출연기관[편집]

 
 
 
 
 
 
 
 

5.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편집]

 
 
 
 

5.1. 본관, 서소문 1, 2청사, 무교로, 청계 청사[편집]

 
 
 
 

서소문(02134)
경찰청.동북아역사재단 방면

시청.서소문청사(02135)
경찰청.동북아역사재단 방면

시청역9번출구.시청서소문2청사(02133)
서울신문사 방면




광화문역6번출구(01120)[38]
신한은행본점 방면


서린동.SK서린빌딩(01173)



 
 
 
 

5.2. 남산 청사[편집]

 
 
 
 
남산1호터널(02289)
순천향대학병원.한남오거리 방면

 
 
 
 

6. 여담[편집]

 
 
 
 
  • 구 청사 본관에 있는 구내 식당은 서울시가 직영하기 전까지 외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때 운영을 맡은 사람이 서울역 그릴에서 웨이터로 시작해 양식업계의 명사로 거듭난 이중일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서울시청 구내 식당의 서양 음식이 좋았다고 기억한다고 한다.
  •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김수근 같은 사람이 여의도 도시계획을 했는데, 원래 서쪽에는 국회의사당을, 동쪽에는 시청을 둘 예정이었다 한다.
  •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도 이것과 관련된다. 녹사평역 인근의 현 용산구청 부지가 원래 서울시청 신청사 부지였는데, 이것 때문에 새로운 시청역이 될 녹사평역은 상당히 건축에 힘을 들였고 3기 지하철 계획의 서울 지하철 11호선 건설에 대비 환승 통로를 최적화하기도 하였다. 다만 역시나 시청은 말아먹고 3기 지하철 계획도 외환위기로 말아먹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되었다. 참고로 용산구청은 설계 변경을 밥 먹듯 하다가 건축가가 자기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단도 있었다. 서울시청도 이렇게 될 뻔했으나 이것보다는 부드럽게 상황이 끝났고, 이 두 건물은 사이좋게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태작 목록에 올랐다.
  • 신청사를 짓는 도중에 조선의 무기제조를 도맡던 관청인 군기시 유적[43]이 발견되었으며 불랑기포도 발견되었다. 이후 필로티 식으로 띄우고 지하1층 위치에 고스란히 보존하고 서울역사박물관 군기시유적전시실로 만들어 유물전시를 하고 있다.

  • 부산광역시에 있는 구 경남도청 청사와 비슷하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 관청 건물은 겉모습만 그대로 보존한 채로 내부는 현재 다른 용도로 사용중이고(박물관, 미술관), 그 바로 뒤에 안 어울리는 거대한 유리궁전이 세워져 청사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44]
  • 한국 공직 사회에서 몇 없는 7급 공무원들이 주류인 기관이다. 하지만 7급 이외의 출신들도 근무하고 있다. 예전에는 지방고시, 현재는 행정고시 서울시 합격자들도 서울 시청으로 입직을 하며, 매우 적은 수의 서울시 9급 공무원 합격자들도 시청에 배치가 된다. 물론 사업소, 자치구 9급 출신 공무원도 승진해서 시청으로 전보하는 경우도 많다.
  • 대한민국의 수도를 관리하는 공공기관이자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른 정치적 거물들이 서울 시장을 역임하다 보니, 작은 국가나 작은 중앙부처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업무 난이도와 양을 자랑하며, 수많은 인구가 몰려있는 서울답게 상당한 민원과 현안 업무가 몰려있다.
  • 시장이 차기 대권 주자일 확률이 높다는 점 때문에 하는 사업이 많고 워라밸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타 지역과 달리 시청에서 오히려 자치구로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서울시는 일찌감치 시청 전입시험을 폐지하였다. 타 지역들은 시·도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시험 보고, 순번 받아 대기하는 걸 생각하면 큰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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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올림픽 즈음의 모습. 대형 전광판 시계가 설치되어 있다. 디데이 남은 일자를 볼 때 촬영 일자는 1988년 9월 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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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청 구관(서울도서관)의 시계
시계가 나름 유명하다. 1975년에 처음 디지털 시계가 설치되었고, 1999년에도 유사한 디지털 시계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전 시장 시절인 2003년, 시청 건축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날로그 시계로 교체되었다. 이 2003년의 시계에는 이름이 붙었는데 옛날 보신각종에 있던 이름인 "바라"였다. 대한상공회의소스와치의 기부를 받아 설치되었으며 GPS 신호를 받아 정밀하게 시간을 맞췄다.

하지만 이 시계도 몇 년 후 본관이 철거되면서 떼어지게 된다. 그래도 본관을 부수기 리모델링하기 위해 세운 가리개 조형물에 시계가 있어서 모양새는 갖추었다.

새 시청이 지어지는 사이 서울특별시장이 박원순으로 바뀌었고, 또 시계는 바뀌었다. 다만 이때의 교체는 어쩔 수 없었던 게, 이명박 전 시장 때 설치한 스와치 시계를 보관하고 있었으나 수리가 어려울 정도로 고장나서 새 시계를 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때는 중소기업 활성화 차원에서 국내기업 로만손이 만든 시계로 바꿨다고. #
 
 
 
 

7. 관련 문서[편집]

 
 
 
 

8. 둘러보기[편집]

 
 
 
 
[1] 국가직 공무원 제외.[2] 2026년 기준.[3] 민선 4·5·7·8기.[4] 1975년 대한민국 국회여의도로 이사 가기 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쓰였던 건물.[5] 대검찰청이 1995년까지 본청 청사로 쓰던 건물로써 대한제국 탁지부가 있던 자리이다.[6] 현 시청 본청 뒤편에 있는 더익스체인지 서울 빌딩으로 1997년까지 코오롱그룹 본사로 사용된 건물.[7]국가안전기획부 별관 청사.[8] 청계광장 앞 프리미어플레이스 건물 3층, 8~15층을 시청사로 쓰고 있다. 참고로 과거 이 건물에는 여성가족부가 입주한 역사가 있다.[9] 미국문화원으로 쓰였던 곳으로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건물.[10] 그 이전에는 대한제국 경위원이 있었던 자리다.[11] 오세훈은 민정 4기 시절(2006년~2008년) 한정이며,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시청 신청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12] 참고로 외국에도 이와 비슷한 새로 지으면서 기존 건물이 부분만 남아있는 예가 하나 있다. 일본 도쿄역 앞에 있는 도쿄중앙우체국이 바로 그것. 여기 같은 경우 일본우정이 민영화되면서 먹고 사는 주요 수단으로 도쿄중앙우체국 자리에 고층건물을 세워 부동산 장사하는 계획이 있어서 역시 건물을 해체했는데, 건물이 해체되기 시작되니 부랴부랴 중요문화재 지정 시도한 점도 그렇고 사건이 일어난 시기도 비슷하여 그야말로 일본판 시청 사건이다. #[13] 건축물의 파사드(Facade: 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만을 유지하고 나머지 부분을 현대식으로 고치는 건축물 보존 방법의 하나.[14] 그나마 위안이라면 서울시립미술관(구 대법원)처럼 아예 앞면 빼고 다른 부분들은 알수 없을 정도가 되도록 신축 된것과는 다르게 구 청사는 다시 지어질 때 뒷부분 포함해서 다른 부분들까지 어느 정도 옛 모습으로 재현되어서 지어졌다 즉 어떻게 보면은 재건과 동시에 복원인셈이다.[15] 등록문화재 문서에서도 나와있듯, 지정되었다고 해서 보존, 관리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그 점을 노리고 문제를 제기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기습 철거에 들어간 것.[16] 태작: 솜씨가 서투르고 보잘것없는 작품[17] 2020년부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시민 이용 중단[18] 오세훈과 박원순 역시 취임식을 이 곳에서 거행했다. 박원순은 1기 취임식 당시 이곳 집무실에서 온라인 생중계로 취임식을 했다.[19] 월암공영차고지 연장 전[20] 1988년 안내상시한폭탄 테러 미수가 일어났던 쪽은 이곳이 아니라 광주광역시의 미국 문화원이다.[21] 제4대 대통령[22] 고재봉 살인 사건의 범인과는 동명이인이다.[23] 훗날 외무부장관을 거쳐 국무총리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24] 5.16 군사정변으로 조기퇴임[A] 25.1 25.2 국무총리 역임,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 수행.[26]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경질[27] 마지막 관선시장.[28] 제15대 대통령 선거 출마로 사퇴.[30]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역임.[31] 2010.5.7. ~ 2010.6.2. 재선 출마로 직무정지.[32] 무상급식 전면확대 논란 당시 주민투표에서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못해 사퇴.[33] 2014.5.5. ~ 2014.6.5., 2018.5.14. ~ 2018.6.13. 재선•3선 출마로 직무정지.[34] 재임중 사망.[35] 2022.5.12. ~ 2022.6.1. 4선 출마로 인한 직무정지.[36] 2024년 9월 11일 자로 출연기관 지정 해제로 민영화 확정.[37] 서소문청사가 목적지인 경우 신한은행본점/삼성본관 정류장에서(M7154번은 시청앞 정류장에서) 하차하는 게 더 가깝다.[38] 서소문청사가 목적지인 경우 신한은행본점 정류장에서 하차하는 게 더 가깝다.[39] 본관에서 가깝다.[40] 본관에서 가깝다.[41] 서소문 청사에서 가깝다.[42] 청계 청사에서 가깝다.[43] 현재의 방위사업청과 유사함[44] 차이점이 있다면 구 경남도청 청사는 증축을 반복했을뿐 구 서울시청처럼 일부가 철거되고 다시 지어지진 않았다는 것이다.[45] #1 #2 #3 #4 #5 #6 #7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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