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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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한양 (現 서울특별시)의 풍수지리
구분
내사산
()
북악산
(342 m)
인왕산
(338.2 m)
남산
(270.85 m)
낙산
(125 m)
외사산
(四山)
북한산
(836.5 m)
덕양산
(124.8 m)
관악산
(632 m)
용마산
(348 m)
인왕산
仁王山 | Inwangsan
위치
좌표
북위 37° 35′ 6″
동경 126° 57′ 33″
높이
338.2m
면적
1,111,664.9㎡[1]
산맥
광주산맥
인왕산
 
 
 
 
 
 
 
 
 
 
 
 
 
 
 
 

1. 개요2. 상세
2.1. 역사2.2. 등산·경관·명소
3. 여담
3.1. 겸재 정선과 인왕산3.2. 한자 표기
4. 사건 사고5. 기타
5.1. 이야깃거리
5.1.1. 인왕산과 관련된 장소 및 이야깃거리들
5.1.1.1. 조선 시대의 필운대5.1.1.2. 대한제국 시대의 정약대5.1.1.3. 일제강점기 시대의 윤동주5.1.1.4. 한국 전쟁 당시의 안병범5.1.1.5. 1968년 당시의 1·21 사태5.1.1.6. 1967년 영화 《대괴수 용가리》5.1.1.7. 민속
5.1.1.7.1. 강감찬 설화5.1.1.7.2. 박태성 설화5.1.1.7.3. 일제 강점기 시대 인왕산 어느 바위
5.1.1.8. 속담
5.1.1.8.1. 인왕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 간다.5.1.1.8.2.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있나.5.1.1.8.3. 인왕산 중허리 같다.5.1.1.8.4. 인왕산 차돌을 먹고 살기로 사돈의 밥을 먹으랴.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종로구서대문구에 걸쳐있는 고도 338.2 m의 으로, 산 중에서도 바위산에 속한다. 한양도성의 산으로는 북악산보다 3.8 m 낮은 2위이며 평균 경사도는 5.12%이다.
 
 
 
 
 
 
 
 
 
 
 
 
 
 
 
 
 
 
 
 
 
 
 
 

2. 상세[편집]

 
 
 
 
 
 
 
 
 
 
 
 
 
 
 
 
 
 
 
 
 
 
 
 
 
 
 
 
 
 
 
 
 
 
 
 
 
 
 
 
 
 
 
 
 
 
 
 
  • ‘좌청룡백호주작현무’에서 ‘우백호’를 담당하는 산이라고 한다. 이는 경복궁 정전에서 남쪽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인왕산이 있기에 붙여진 것이다.[2]
  •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로 매우 유명한 산이었다.[3] 지리산이나 금강산이 훨씬 더 웅장해서 호랑이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야산 격인 인왕산의 호랑이가 더 유명하다.[4] 정조 대왕 때만 해도 호랑이가 서울에 흔했고, 이들 호랑이가 민가는 물론 궁궐까지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인 듯. 참고로, 1868년, 북악산 등에서 잡은 호랑이 다섯 마리를 마지막으로 도성 내 호랑이는 모두 사라졌다.
  • 인왕산 정상에 자리한 치마바위의 이름 유래와 관련된 일화가 유명하다. 중종의 왕비였던 폐비 신씨는 날마다 중종이 있는 경회루 쪽을 향해 매일 시비를 시켜서 놓아 두었다고 한다. 이러한 폐비 신씨의 절개를 기려 치마바위라는 명칭을 유래하였다고 한다.
  • 인왕산 남쪽 기슭에 있는 활터인 황학정1898년 활쏘기를 장려하는 고종황제의 칙령에 따라 세워진 국궁장이다. 고종황제가 직접 활을 쏘기도 하여 황제를 초대 사두로 친다. 본래 경희궁에 있었는데 1922년에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며 옮겼다.
  • 절벽 한 켠 정체 불명의 파인 흔적이 있는데, 이는 1939년 9월 16일에 새겨진 일제의 선동 문구 흔적이다. 대일본 청년단 대회 기념으로 대동아공영권을 선동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는데 광복 이후 누군가에 의해 글자가 완전히 파내졌다. #
 
 
 
 
 
 
 
 
 
 
 
 
 
 
 
 
 
 
 
 
 
 
 
 

2.2. 등산·경관·명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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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주말 등산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사직단, 무악재역, 세검정, 창의문에서 걸어서 올라가는 길이 대표적이다. 다만, 사직단쪽에서 올라온다면 범바위까지는 순조로울 순 있어도 치마바위(정상) 쪽부터 기암괴석이나 암벽 지형이 등장하므로 어린이나 노약자가 등산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로도 산악 사고도 빈번한 곳이므로 매우 주의가 필요하다. 절대적인 난이도는 높지 않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 보이지 않고 시내 한복판에 있으며 주말 등산 및 야경 명소로 SNS에서 유명해서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산으로 오해받는다. 계단으로 안전하게 올라가려면 창의문쪽에서 올라가보자 인왕산은 남산처럼 모든 곳이 공원화되지 않아 잘 정비된 계단은 부분적으로 있다.
 
 
 
 
 
 
 
 
 
 
 
 
 
 
 
 
 
 
 
 
 
 
 
 
 
 
 
 
 
 
 
 
 
 
 
 
 
 
 
 
 
 
 
 
 
 
 
 
인왕사
인왕사를 이루는 군락(ⓒBBS)
인왕사는 조선 개국과 함께 1393년무학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조계종, 태고종 등 서로 다른 5개 종단의 작은 암자 14개가 모여 인왕사라는 절을 형성하였다. 그래서인지 사찰이 다소 특이한데, 산자락에 군락형으로 자리잡혀 있다. 실제로 가 보면 하나의 작은 마을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부속 건물도 다른 사찰과 달리 '극락전', '보광전', '대웅전', '관음전', '선암정사'로 다양하다(보광전은 현재 전소 상태). 이렇게 특이한 형태로 이어져 오다가 1988년에 전통사찰로 지정됐다.

​인왕사는 봉은사에서 갈라져 나온 말사로 규정하고 있다. 절의 체계도 복잡한데 지주가 4명이며 해마다 번갈아가면서 맡고 있다. 언급했듯이 1910년대 이래로 여러 암자가 통합되지 않고, 제각기 독자적으로 활동해온 흔적으로 보고 있다. 입구 현판은 仁王寺[5]로 되어 있으나 행정상 ‘산’만 王이지 사찰은 여전히 仁旺寺가 표준이다.

명목상 절의 중심으로 보고 있는 ‘인왕사 본원정사(前 선암정사)’는 국사당 바로 아래에 있다. 평소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사당 쪽 산 샛길로 200m 정도 올라가다 보면, 부처 그림이 새겨진 바위와 약수터가 나오는데, 지도 안내판상으로는 그곳이 ‘실질적 인왕사의 기원’임을 시사하고 있다.

2019년 4월 경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인왕사의 전각 하나에 불이 나 전소된 일이 있었다(서울 종로구 인왕사 화재, ‘보광전’ 전소).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화재 원인은 2년이 지난 이후에도 불명인 상태이다.

인왕사에 가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하차한 뒤 무악현대 아파트와 인왕산 아이파크 아파트단지 속을 가로질러야 빠르다. 아파트 단지 보도 경사가 생각보다 심하므로 다리를 적당히 풀어 줘야 할 것이다. 또 일반적인 인왕산 등산 코스로는 이곳을 통하기 어려우므로 유의할 것.
 
 
 
 
 
 
 
 
 
 
 
 
 
 
 
 
 
 
 
 
 
 
 
 
2.2.1.1. 선 바위(禪岩)[편집]
 
 
 
 
 
 
 
 
 
 
 
 
 
 
 
 
 
 
 
 
 
 
 
 
다른 뜻 아이콘   경기도 과천시 소재 수도권 전철 4호선의 역명에 대한 내용은 선바위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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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선 바위
인왕사 일대에 선 바위가 우뚝하게 자리하고 있는 바위. 선()을 행하는 바위라고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한자 표기는 선암(禪岩)이며 ‘선 바위’처럼 띄어 쓰는 게 표준인 것으로 보인다.# 국사당 쪽 산자락 어귀에서 샛길로 올라가다 보면 선 바위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인왕사 선 바위는 조선 초기 불교와 유교 간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중요한 유물로, 무학대사정도전 사이의 갈등에 중심에 놓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선 바위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투옥되었던 서대문형무소가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봄철에는 이곳에서 서대문 쪽을 내려다볼 때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개한 진풍경이 펼쳐진다.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국사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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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사 군락에 있는 국사당
서울의 신을 모시는 신당이다. 인왕사랑 인접해 있어서 불당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이 있으나, 국사당의 분야 분류는 불교가 아닌 민간신앙으로 등록되어 있다. 1973년 중요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인왕산 수성동 계곡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인왕산 수성동 계곡
인왕산 수성동 계곡[6]
수성동 계곡. 1971년 옥인시범아파트를 지으면서 콘크리트 속에 묻혔던 계곡을 2012년 복원했다. 중간에 정선의 그림을 반영한 '기린교'라는 돌다리가 있다.
〈수성동〉
정선 作, 〈수성동〉
위 그림이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중 〈수성동〉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 수성동 계곡이 등장한다.

'수성동'이라는 단어는 청담동, 홍제동 같은 부류의 단어가 아니다. '수성동'에서 '동'은 현재 법정동 혹은 행정동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동'이 아닌 '골짜기'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따라서 수성동 계곡이 있는 지역을 표기할 때에는 '수성동'이 아닌 '옥인동'으로 표기해야 한다.

'수성동'이라는 지명은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물 수(水), 소리 성(聲), 마을 동(洞)자가 합쳐졌다.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인왕산 백운동 계곡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도기념물 제40호 인왕산백운...
글자 '백운동 계곡의 각자바위[7]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윤동주문학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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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문학관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문학관. 2005년 철거된 구 청운시범아파트 자리에 윤동주를 기념하여 만든 공원인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8] 그 옆의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연결된 청운공원에서는 도심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싶다면 서울 버스 1020, 서울 버스 7022, 서울 버스 7212를 이용, 자하문고개 정류장에 하차하면 된다.
 
 
 
 
 
 
 
 
 
 
 
 
 
 
 
 
 
 
 
 
 
 
 
 

3. 여담[편집]

 
 
 
 
 
 
 
 
 
 
 
 
 
 
 
 
 
 
 
 
 
 
 
 
  • 등산이나 지형보다는 역사·문화 쪽으로 더 유명한 산이다. 사실 인근 주민이 아니라면 골수 서울시민들이나 토박이들에게도 존재감은 별로 높지 않은 이긴 하다. 다만 택견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성지에 가깝다. 구한말 택견꾼들이 마지막까지 수련했던 곳이 바로 이 인왕산이었기 때문. 지금은 감투바위 수련터가 복원됐다. 다만 파비앙 코르비노나 혼자 산다에서 등산을 했는데 역사적으로 설명을 하면서 올라가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었고 이 덕분에 존재감이 많이 올라가기도 했다.[9]
 
 
 
 
 
 
 
 
 
 
 
 
 
 
 
 
 
 
 
 
 
 
 
 

3.1. 겸재 정선과 인왕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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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동〉과 그에 기초하여 복원된 수성동 계곡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고향이 바로 인왕산 옆 현재의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등지.[10] 인왕산이 코앞인 데다가 동네 어디에서나 인왕산의 암벽이 보이는 곳이다보니 인왕산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잘 알려진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당대 장동팔경(壯洞八景)의 하나로 꼽혔던 인왕산의 수성동 계곡을 그린 그림도 유명하다. 실제로 2000년대에 아파트와 콘크리트로 복개된 수성동 계곡을 복원할 때 정선의 그림을 참고했을 만큼 사실과 비슷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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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
윗 그림은 인왕산을 그린 산수화 〈인왕제색도〉로, 위 사진과 암벽의 모양을 비교해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사실과 가까운지를 알 수 있다. 진경산수화의 대표격으로 흔히 언급되며 국보 제216호로 지정받은 그림이다.
 
 
 
 
 
 
 
 
 
 
 
 
 
 
 
 
 
 
 
 
 
 
 
 
 
 
 
 
 
 
 
 
 
 
 
 
 
 
 
 
 
 
 
 
 
 
 
 
일제강점기일제가 인왕산의 한자 표기 ‘仁山’을 ‘仁山’으로 변경했다는 낭설이 있다. 王자 앞에 일본을 상징하는 日을 넣어서 같은 발음의 旺으로 바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러 문헌으로 인왕산의 한자 표기를 고증해보면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仁旺山’ 표기는 다수 발견된다.
  • 仁旺山이라는 표기는 일제강점기보다 200년이나 훨씬 앞선 《영조실록》에 등장한 적이 있다.
  • 승정원일기》에서는 '仁旺山' 표기가 일제강점기 이전, 무려 102회나 발견된다.
  • 조선 순조 8년(1808)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의 〈군정편(軍政編) 훈련도감(訓鍊都監)〉 조에는 '왕을 호위(扈衛)할 때 척후와 복병이 지켜야 할 도성 분담 구역'을 거론하면서 '북악, 인왕산, 안현, 돈의문 바깥 삼거리'를 들고 있는데 여기서 인왕산은 '仁旺山'이라고 표기돼 있다.

따라서 일제가 '仁王山'을 '仁旺山'으로 바꾸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어느 한쪽이 정식 표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仁旺山'와 '仁王山' 모두 같이 썼던 것으로 보인다.

1995년에 서울시 지명위원회는 인왕산의 한자 표기를 ‘’ 표기를 표준 표기로 채택했다. 이 때에도 서울시는 "일제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고친 이름을 바로잡았다"며 그 취지를 설명했으나 근거 없는 이야기다.

한편 여기의 사찰인 인왕사는 여전히 표기가 정식이다(종로구청 홈페이지).
 
 
 
 
 
 
 
 
 
 
 
 
 
 
 
 
 
 
 
 
 
 
 
 

4. 사건 사고[편집]

 
 
 
 
 
 
 
 
 
 
 
 
 
 
 
 
 
 
 
 
 
 
 
 
 
 
 
 
 
 
 
 
 
 
 
 
2023년 4월 2일 오전 11시 53분경, 인왕산 중턱에서 화재가 발생했었다. 자세한 문서는 2023년 서울 인왕산-북악산 산불참고.
 
 
 
 
 
 
 
 
 
 
 
 
 
 
 
 
 
 
 
 
 
 
 
 

5. 기타[편집]

 
 
 
 
 
 
 
 
 
 
 
 
 
 
 
 
 
 
 
 
 
 
 
 

5.1. 이야깃거리[편집]

 
 
 
 
 
 
 
 
 
 
 
 
 
 
 
 
 
 
 
 
 
 
 
 

5.1.1. 인왕산과 관련된 장소 및 이야깃거리들[편집]

 
 
 
 
 
 
 
 
 
 
 
 
 
 
 
 
 
 
 
 
 
 
 
 
5.1.1.1. 조선 시대의 필운대[편집]
 
 
 
 
 
 
 
 
 
 
 
 
 
 
 
 
 
 
 
 
 
 
 
 
조선 중기의 명신 필운 이항복이 살던 곳이다.
 
 
 
 
 
 
 
 
 
 
 
 
 
 
 
 
 
 
 
 
 
 
 
 
5.1.1.2. 대한제국 시대의 정약대[편집]
 
 
 
 
 
 
 
 
 
 
 
 
 
 
 
 
 
 
 
 
 
 
 
 
고종 시절 대금의 명인이였던 정약대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었으며, 한 곡조가 끝날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를 한 알씩 넣어 나막신에 모래가 가득차면 돌아갔다고한다.
 
 
 
 
 
 
 
 
 
 
 
 
 
 
 
 
 
 
 
 
 
 
 
 
5.1.1.3. 일제강점기 시대의 윤동주[편집]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인왕산 부근에 살았었다. 이를 기념하여 윤동주 시인의 공원을 조성했으며 공원은 자하문고개 근처에 위치해있다. 바로 옆의 청운공원은 서울의 조망 명소 중 한 곳이다.
 
 
 
 
 
 
 
 
 
 
 
 
 
 
 
 
 
 
 
 
 
 
 
 
5.1.1.4. 한국 전쟁 당시의 안병범[편집]
 
 
 
 
 
 
 
 
 
 
 
 
 
 
 
 
 
 
 
 
 
 
 
 
한국 전쟁 당시 안병범 육군 대령(사후 육군 준장 추증)은 낙오병 등을 모아 유격대를 결성해 인왕산에서 활약하다가 국군의 참패 소식을 듣고 조국의 처지를 한탄하며 자결하였다.
 
 
 
 
 
 
 
 
 
 
 
 
 
 
 
 
 
 
 
 
 
 
 
 
5.1.1.5. 1968년 당시의 1·21 사태[편집]
 
 
 
 
 
 
 
 
 
 
 
 
 
 
 
 
 
 
 
 
 
 
 
 
서울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사후 경무관 추서)과 정종수 경장(사후 경사 추서)이 무장공비를 막다가 자하문 아래에서 전사하였고, 경복고등학교의 수위였던 정사영 씨가 살해되었다. 무장공비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 씨는 인왕산에서 생포됐다. 이후 인왕산은 한 25년 넘도록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3년 이후 부분 개방됐다.
 
 
 
 
 
 
 
 
 
 
 
 
 
 
 
 
 
 
 
 
 
 
 
 
5.1.1.6. 1967년 영화 《대괴수 용가리》[편집]
 
 
 
 
 
 
 
 
 
 
 
 
 
 
 
 
 
 
 
 
 
 
 
 
김기덕 감독의 1967년 영화 작품 《대괴수 용가리》에서는 인왕산 용가리가 나와 경복궁, 서울특별시 시청 등의 문화재들을 파괴하는데 해당 영화 극중의 캐릭터인 유광남 우주비행사(배역: 이순재 분)가 이(인왕산 용가리)를 물리친다.
 
 
 
 
 
 
 
 
 
 
 
 
 
 
 
 
 
 
 
 
 
 
 
 
 
 
 
 
 
 
 
 
 
 
 
 
 
 
 
 
 
 
 
 
 
 
 
 
5.1.1.7.1. 강감찬 설화[편집]
 
 
 
 
 
 
 
 
 
 
 
 
 
 
 
 
 
 
 
 
 
 
 
 
요나라의 침입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고려 시대의 강감찬 장군이 젊을적에 이 지역 판관으로 부임을 하였는데 인왕산과 북한산 일대에 호랑이가 많아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강감찬은 노승(老僧)으로 변신해있던 호랑이들의 대장을 알아보고 호통을 쳤으며, 호랑이들은 도망을 갔다고 한다.
 
 
 
 
 
 
 
 
 
 
 
 
 
 
 
 
 
 
 
 
 
 
 
 
5.1.1.7.2. 박태성 설화[편집]
 
 
 
 
 
 
 
 
 
 
 
 
 
 
 
 
 
 
 
 
 
 
 
 
대략 조선 시대 숙종 치세 때의 한성(漢城)의 박태성이라는 사람은 경기도 고양군에 묻힌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뵙고 난 뒤에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양군에 가려면 인왕산 무악재를 넘어가야 하는데 어느날부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박태성을 태워줘 아버지의 산소까지 데려다주었고 집으로 돌아 올 때도 데려다주었다고한다. 호랑이는 40년간 박태성을 도왔고 박태성이 죽었을때는 산소 옆에서 같이 죽었다고 한다. 이에 박태성의 후손들은 호랑이를 박태성의 산소 옆에 묻어주었고 제사까지 함께 지내주었으며, 묘소는 북한산(北漢山)에 위치해있다.
 
 
 
 
 
 
 
 
 
 
 
 
 
 
 
 
 
 
 
 
 
 
 
 
5.1.1.7.3. 일제 강점기 시대 인왕산 어느 바위[편집]
 
 
 
 
 
 
 
 
 
 
 
 
 
 
 
 
 
 
 
 
 
 
 
 
인왕산 어느 바위에 써놓은 글씨에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이라는 구호(한자 문구)가 새겨졌다.
 
 
 
 
 
 
 
 
 
 
 
 
 
 
 
 
 
 
 
 
 
 
 
 
 
 
 
 
 
 
 
 
 
 
 
 
 
 
 
 
 
 
 
 
 
 
 
 
5.1.1.8.1. 인왕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 간다.[편집]
 
 
 
 
 
 
 
 
 
 
 
 
 
 
 
 
 
 
 
 
 
 
 
 
어떤 한 사람이 잘되어 세력이 커지면 그 덕을 입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많게 된다는 말.
 
 
 
 
 
 
 
 
 
 
 
 
 
 
 
 
 
 
 
 
 
 
 
 
5.1.1.8.2.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있나.[편집]
 
 
 
 
 
 
 
 
 
 
 
 
 
 
 
 
 
 
 
 
 
 
 
 
그 방면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말.
 
 
 
 
 
 
 
 
 
 
 
 
 
 
 
 
 
 
 
 
 
 
 
 
5.1.1.8.3. 인왕산 중허리 같다.[편집]
 
 
 
 
 
 
 
 
 
 
 
 
 
 
 
 
 
 
 
 
 
 
 
 
배가 부른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5.1.1.8.4. 인왕산 차돌을 먹고 살기로 사돈의 밥을 먹으랴.[편집]
 
 
 
 
 
 
 
 
 
 
 
 
 
 
 
 
 
 
 
 
 
 
 
 
아무리 어렵고 고생스러워도 처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싶지는 아니함을 이르는 말.

[1] 출처 - 서울의 공원.[2] 마찬가지로 좌종묘•우사직에 해당되는 사직단도 인왕산 인근에 있다.[3] 338.2m인 산에 호랑이가 많았다는 게 의아할 수 있지만 사실 호랑이는 산보다 물 근처에 많이 살아서 호랑이 분포도가 적당히 유지되었고 근처에 여러 산들도 있어서 인왕산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근처 산도 왔다갔다 했을 것이다.[4] 송덕기 옹에게 택견을 가르친 스승인 임호의 별명도 인왕산 호랑이였다고 한다.[5] 본래 ‘旺’ 부분이 었던 곳에 땜질하여 ‘王’으로 바꾼 흔적이 보인다.[6]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7]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8] 문학관은 과거 이용되던 상수도시설을 활용해 만들었는데,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명작 18위에 오를 정도로 잘 지은 건물이니 방문을 권한다.[9]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인왕산 영상 대다수에 파비앙이 언급된다.[10] 당시엔 '장동'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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