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왕산
최근 수정 시각:
구분 | 북 | 서 | 남 | 동 |
북악산 (342 m) | 인왕산 (338.2 m) | 남산 (270.85 m) | 낙산 (125 m) | |
외사산 (外四山) | 북한산 (836.5 m) | 덕양산 (124.8 m) | 관악산 (632 m) | 용마산 (348 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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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
주말 등산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사직단, 무악재역, 세검정, 창의문에서 걸어서 올라가는 길이 대표적이다. 다만, 사직단쪽에서 올라온다면 범바위까지는 순조로울 순 있어도 치마바위(정상) 쪽부터 기암괴석이나 암벽 지형이 등장하므로 어린이나 노약자가 등산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로도 산악 사고도 빈번한 곳이므로 매우 주의가 필요하다. 절대적인 난이도는 높지 않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 보이지 않고 시내 한복판에 있으며 주말 등산 및 야경 명소로 SNS에서 유명해서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산으로 오해받는다. 계단으로 안전하게 올라가려면 창의문쪽에서 올라가보자 인왕산은 남산처럼 모든 곳이 공원화되지 않아 잘 정비된 계단은 부분적으로 있다.
- 자세한 정보는 관련 정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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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사를 이루는 군락(ⓒBBS) |
인왕사는 조선 개국과 함께 1393년에 무학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조계종, 태고종 등 서로 다른 5개 종단의 작은 암자 14개가 모여 인왕사라는 절을 형성하였다. 그래서인지 사찰이 다소 특이한데, 산자락에 군락형으로 자리잡혀 있다. 실제로 가 보면 하나의 작은 마을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부속 건물도 다른 사찰과 달리 '극락전', '보광전', '대웅전', '관음전', '선암정사'로 다양하다(보광전은 현재 전소 상태). 이렇게 특이한 형태로 이어져 오다가 1988년에 전통사찰로 지정됐다.
인왕사는 봉은사에서 갈라져 나온 말사로 규정하고 있다. 절의 체계도 복잡한데 지주가 4명이며 해마다 번갈아가면서 맡고 있다. 언급했듯이 1910년대 이래로 여러 암자가 통합되지 않고, 제각기 독자적으로 활동해온 흔적으로 보고 있다. 입구 현판은 仁王寺[5]로 되어 있으나 행정상 ‘산’만 王이지 사찰은 여전히 仁旺寺가 표준이다.
명목상 절의 중심으로 보고 있는 ‘인왕사 본원정사(前 선암정사)’는 국사당 바로 아래에 있다. 평소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사당 쪽 산 샛길로 200m 정도 올라가다 보면, 부처 그림이 새겨진 바위와 약수터가 나오는데, 지도 안내판상으로는 그곳이 ‘실질적 인왕사의 기원’임을 시사하고 있다.
2019년 4월 경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인왕사의 전각 하나에 불이 나 전소된 일이 있었다(서울 종로구 인왕사 화재, ‘보광전’ 전소).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화재 원인은 2년이 지난 이후에도 불명인 상태이다.
인왕사에 가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하차한 뒤 무악현대 아파트와 인왕산 아이파크 아파트단지 속을 가로질러야 빠르다. 아파트 단지 보도 경사가 생각보다 심하므로 다리를 적당히 풀어 줘야 할 것이다. 또 일반적인 인왕산 등산 코스로는 이곳을 통하기 어려우므로 유의할 것.
인왕사는 봉은사에서 갈라져 나온 말사로 규정하고 있다. 절의 체계도 복잡한데 지주가 4명이며 해마다 번갈아가면서 맡고 있다. 언급했듯이 1910년대 이래로 여러 암자가 통합되지 않고, 제각기 독자적으로 활동해온 흔적으로 보고 있다. 입구 현판은 仁王寺[5]로 되어 있으나 행정상 ‘산’만 王이지 사찰은 여전히 仁旺寺가 표준이다.
명목상 절의 중심으로 보고 있는 ‘인왕사 본원정사(前 선암정사)’는 국사당 바로 아래에 있다. 평소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사당 쪽 산 샛길로 200m 정도 올라가다 보면, 부처 그림이 새겨진 바위와 약수터가 나오는데, 지도 안내판상으로는 그곳이 ‘실질적 인왕사의 기원’임을 시사하고 있다.
2019년 4월 경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인왕사의 전각 하나에 불이 나 전소된 일이 있었다(서울 종로구 인왕사 화재, ‘보광전’ 전소).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화재 원인은 2년이 지난 이후에도 불명인 상태이다.
인왕사에 가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하차한 뒤 무악현대 아파트와 인왕산 아이파크 아파트단지 속을 가로질러야 빠르다. 아파트 단지 보도 경사가 생각보다 심하므로 다리를 적당히 풀어 줘야 할 것이다. 또 일반적인 인왕산 등산 코스로는 이곳을 통하기 어려우므로 유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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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수성동 계곡[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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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作, 〈수성동〉 |
위 그림이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중 〈수성동〉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 수성동 계곡이 등장한다.
'수성동'이라는 단어는 청담동, 홍제동 같은 부류의 단어가 아니다. '수성동'에서 '동'은 현재 법정동 혹은 행정동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동'이 아닌 '골짜기'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따라서 수성동 계곡이 있는 지역을 표기할 때에는 '수성동'이 아닌 '옥인동'으로 표기해야 한다.
'수성동'이라는 지명은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물 수(水), 소리 성(聲), 마을 동(洞)자가 합쳐졌다.
'수성동'이라는 단어는 청담동, 홍제동 같은 부류의 단어가 아니다. '수성동'에서 '동'은 현재 법정동 혹은 행정동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동'이 아닌 '골짜기'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따라서 수성동 계곡이 있는 지역을 표기할 때에는 '수성동'이 아닌 '옥인동'으로 표기해야 한다.
'수성동'이라는 지명은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물 수(水), 소리 성(聲), 마을 동(洞)자가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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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문학관 |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문학관. 2005년 철거된 구 청운시범아파트 자리에 윤동주를 기념하여 만든 공원인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8] 그 옆의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연결된 청운공원에서는 도심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싶다면 서울 버스 1020, 서울 버스 7022, 서울 버스 7212를 이용, 자하문고개 정류장에 하차하면 된다.
고종 시절 대금의 명인이였던 정약대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었으며, 한 곡조가 끝날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를 한 알씩 넣어 나막신에 모래가 가득차면 돌아갔다고한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인왕산 부근에 살았었다. 이를 기념하여 윤동주 시인의 공원을 조성했으며 공원은 자하문고개 근처에 위치해있다. 바로 옆의 청운공원은 서울의 조망 명소 중 한 곳이다.
한국 전쟁 당시 안병범 육군 대령(사후 육군 준장 추증)은 낙오병 등을 모아 유격대를 결성해 인왕산에서 활약하다가 국군의 참패 소식을 듣고 조국의 처지를 한탄하며 자결하였다.
서울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사후 경무관 추서)과 정종수 경장(사후 경사 추서)이 무장공비를 막다가 자하문 아래에서 전사하였고, 경복고등학교의 수위였던 정사영 씨가 살해되었다. 무장공비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 씨는 인왕산에서 생포됐다. 이후 인왕산은 한 25년 넘도록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3년 이후 부분 개방됐다.
인왕산 어느 바위에 써놓은 글씨에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이라는 구호(한자 문구)가 새겨졌다.
어떤 한 사람이 잘되어 세력이 커지면 그 덕을 입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많게 된다는 말.
그 방면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말.
배가 부른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무리 어렵고 고생스러워도 처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싶지는 아니함을 이르는 말.
[1] 출처 - 서울의 공원.[2] 마찬가지로 좌종묘•우사직에 해당되는 사직단도 인왕산 인근에 있다.[3] 338.2m인 산에 호랑이가 많았다는 게 의아할 수 있지만 사실 호랑이는 산보다 물 근처에 많이 살아서 호랑이 분포도가 적당히 유지되었고 근처에 여러 산들도 있어서 인왕산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근처 산도 왔다갔다 했을 것이다.[4] 송덕기 옹에게 택견을 가르친 스승인 임호의 별명도 인왕산 호랑이였다고 한다.[5] 본래 ‘旺’ 부분이 었던 곳에 땜질하여 ‘王’으로 바꾼 흔적이 보인다.[6]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7]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8] 문학관은 과거 이용되던 상수도시설을 활용해 만들었는데,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명작 18위에 오를 정도로 잘 지은 건물이니 방문을 권한다.[9]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인왕산 영상 대다수에 파비앙이 언급된다.[10] 당시엔 '장동'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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