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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공장에서 프레스 조작자로 일하던 중 산업재해로 왼쪽 새끼손가락을 전부 잃었다. 잘린 정도가 아니라 전부 떨어져 버렸다! 맨 위 프로필 사진에도 확인할 수 있다.
- 그의 임기 중이었던 2007년에 브라질은 콜롬비아의 포기에 따라 무투표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을 따냈다. 이로써 2연속으로 남반구 월드컵이 열리게 되었다.
- 1990년대 룰라의 정당인 노동자당과 룰라의 대통령 출마 이야기는 노동자를 위한 정당을 수립하려던 한국 운동권들의 독서 목록에도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창당된 게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그런데 2005년 룰라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하자, 민주노동당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룰라가 일견 신자유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는 이유로 방한 환영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룰라 대통령이 고평가를 받아서인지, 이후 민주노동당 내 PD 계열이 만든 정당인 정의당, 노동당 같은 진보 정당들은 기존의 색채보다 많이 유연화되었기 때문인지, 민주노동당 시절 때와는 달리 룰라 대통령을 높게 평가한다. 노동당은 선거운동 때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를 언급할 정도.#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룰라는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4] 둘 다 2003년에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살아온 역정이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인권변호사와 노동운동가로 노동자를 대변하였으며 정계 진출 이후에는 여러 번의 선거 낙선 끝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 또한 집권 이후에는 일견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으로 진보 노선보다는 중도 노선의 정책을 폈다는 것도 비슷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브라질에 국빈 방문하여 룰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룰라 대통령이 시가를 한 대 물자 노무현 대통령이 시가를 한 대 건네받아 맞담배를 피우면서 정상회담을 이어가기도 했다. 자칫 외교적 결례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다행히 노무현 대통령도 흡연자였기 때문에 맞담배 회담이 가능했다고 한다.#
- 이재명 대통령과도 유사한 요소가 많다. 이재명도 룰라처럼 초졸 소년공 출신이며, 소년공 시절 왼쪽 부위에 부상을 입었고, 사법적인 문제로 곤혹을 치루고, 대통령에 오르기 직전에 전직 대통령이 대권을 막기 위해 쿠데타를 시도/모의했다가 실패한 뒤 대통령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대 대선 기간 중 룰라를 11회 가량 언급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언급 횟수보다 1회 많다. # 3차 토론에서는 윤석열 후보에게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다큐멘터리를 봤냐고 물어보기도 했다.[5] 룰라도 이재명 대통령이 21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축하하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으며#, 캐나다 G7 정상회의 때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공장에서 산업재해를 당한 일화를 이야기하자 룰라 대통령이 몇살때 일이냐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기념촬영 후 물러날 때에는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퇴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 재임 후반기 당시 급진주의 정책을 펼친 우고 차베스와의 정책상 대립 구도를 언론에서 부각시키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사이는 상당히 친했었다고 한다. 일단 지지기반이 빈민층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나 정책 목표도 비슷했기 때문. 물론 경쟁심 자체가 아예 없지는 않았고, 정책노선에서 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 VS 좌익 대중주의, 21세기 사회주의 성향의 급진좌파라는 차이가 있었기는 했고,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견 차이를 보였다. 그래도 선거철이 될 때마다 둘은 서로 지지 선언을 해주었고 타 남미 국가의 진보 정권 확산에도 둘 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 물론 룰라와 차베스의 차이는 상당하다. 룰라는 집권 기간 민주적으로 통치했고, 세계의 자유 점수 지표와 점수 상승 기준 브라질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었던 시기가 룰라~호세프의 노동자당 집권기였던 것과 정반대로, 차베스는 집권기가 길어질수록 점차 권위주의로 흘러간 독재자 기질을 보였고, 룰라는 자원빨과 시기를 잘 만났다는 반대파들의 비아냥도 있지만 어쨌든 그 운을 잘 활용해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그 성과를 마구잡이로 뿌리지 않는 등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차베스는 전형적인 자원의 저주에 걸릴 만 한 행보들을 다 하고 다니다가 결국 자원 경제가 망가지자 베네수엘라의 경제도 급격히 휘청이는 원인들을 만들어 놓고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물론 브라질 역시 룰라 이후 경제가 일시적으로 나빠지긴 했지만 이는 탄핵 등 정치적 혼란기까지 겹쳐서 그런거고 이후 어느 정도 문제가 수습이 되고 안정화되면서 베네수엘라처럼 극단적으로 경제가 망하진 않았다.
- 2019년 10월에 프랑스 파리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
-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브라질에서는 'Round 6'이라는 이름으로 스트리밍되고 있는 중이다. 그 이유는 '오징어 게임'을 브라질에서 쓰는 포르투갈어로 직역한 'Jogo de Lula'가 그의 이름 '룰라'(포르투갈어로 '오징어'를 의미)와 겹쳐서 정치적 논쟁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브라질은 2022년 10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중이었고, 룰라 전 대통령은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한 대선주자 중의 한 명이었다. 따라서 유력한 대권 후보의 이름이 들어간 제목을 쓰게 되면 '특정 후보를 홍보해준다'는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사실, '룰라'라는 단어도 원래 본명이 아니라 별명이었지만 하도 많이 쓰이다보니 나중에 가서 본명으로 덧붙인 것이다.
- 최근 룰라가 대통령으로 재취임한 후 중남미 정상들이 모이는 최대기구 CELAC에 브라질이 다시 참석하게 되었다. 이 기구에는 진보가 집권 중인 중남미 국가들이 속해있는데, 직전 브라질 대통령인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극우 성향이라 브라질이 이 모임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진보 성향을 가진 룰라가 대통령에 다시 오르자 브라질이 이 회담에 컴백할 수 있었다.
- 1차 집권기 룰라의 지지율 추이는 다음과 같다. 2002~2008년 2006~2011년 집권 초에는 기존부터 파탄 상태에 이르렀던 경제와 측근들의 비리(2005년 기사)로 인해 30%대 지지율도 위태로운 수준이었지만, 고도성장을 이어나가며 임기 말인 2010년에는 지지율이 80%를 넘겼고, 영국 GDP도 넘볼 정도로 고도성장을 이어나간 끝에[6] 퇴임 직전에는 대통령 지지율 87%, 국정 긍정평가 83.4%를 기록하며 최저치 대비 지지율을 무려 3배 가까이 늘리며 화려하게 임기를 마쳤다.[7] 이에 힘입어 룰라 시기 정무장관으로서 룰라의 경제정책의 실무를 담당하던 지우마 호세프도 룰라의 후광을 입고 연임에 성공했다.
- 1985년 민주화 이후 여당 소속 타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데에 성공한 최초의 브라질 대통령이다.[8] 다른 대통령들은 본인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여당 소속 타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데에는 실패했다.[9]
- 민주화 이후 브라질에서 열린 대선에는 2010년, 2014년, 2018년 대선을 빼면 다 출마했다. 2010년 대선은 3선 연임을 금지하는 브라질 헌법상 출마 자체가 불가능했고, 2014년 대선은 지우마 호세프가 다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으며, 2018년 대선은 옥중출마를 시도했으나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출마가 불가능해졌다.[10]
- 브라질 역사상 3번째로 집권 기간이 긴 지도자다.[11] 민주화 이후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지도자 중에서는 최장 기간 집권자다.
1969년, 23세 때 마리아 지루르지스 히베이루와 첫 번째 결혼을 했지만 약 2년 만에 간염에 걸려 임신한 아기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1974년, 28세 때 마리사 레티시아 카사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둘 사이에서 5명의 자녀를 낳았다. 1980년 룰라가 노동자당을 창당하자 여성인권운동가로 활동했고 룰라가 대선에서 여러 번 낙선하는 동안 선거 뒷바라지를 했다. 안타깝게도 마리사가 2017년 2월, 66세에 뇌졸중으로 사망하며 두 번째로 사별했다.
세번째 부인인 호잔젤라 다 시우바는 1966년 8월생으로, 파라나주에서 태어나 파라나 연방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사회학 연구자이며 공무원 경력도 있다. 호잔젤라도 17세인 1983년부터 노동자당의 당원으로 활동했다.[12] 룰라와 호잔젤라 둘은 199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룰라가 레티시아와 사별한 뒤 진보 예술인 행사에서 만나 본격적으로 관계가 발전했다. 또 2018년에 룰라가 뇌물 스캔들로 엮여 구속 수사를 받게 되자 면회를 자주 하고 옥바라지를 하며 만남을 지속했다.
2019년 11월 룰라가 무혐의를 받아 풀려나자 약혼하고 2022년 5월 18일 대선을 준비하던 기간 성당에서 결혼했다. 룰라와의 약혼 이후 유명세를 얻자 잔자(Janja) 라는 애칭을 얻었다. 전처인 마리사는 사회운동가보다 가족적인 모습을 좀 더 보여준 반면, 잔자는 대선 후보 공약과 활동 계획을 룰라와 함께 만들며 2022년 선거 운동과 당선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룰라 당선 후 인터뷰에서도 "퍼스트 레이디보다 퍼스트 메이트가 되고 싶다."라며 동지애를 드러냈다.
1974년, 28세 때 마리사 레티시아 카사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둘 사이에서 5명의 자녀를 낳았다. 1980년 룰라가 노동자당을 창당하자 여성인권운동가로 활동했고 룰라가 대선에서 여러 번 낙선하는 동안 선거 뒷바라지를 했다. 안타깝게도 마리사가 2017년 2월, 66세에 뇌졸중으로 사망하며 두 번째로 사별했다.
세번째 부인인 호잔젤라 다 시우바는 1966년 8월생으로, 파라나주에서 태어나 파라나 연방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사회학 연구자이며 공무원 경력도 있다. 호잔젤라도 17세인 1983년부터 노동자당의 당원으로 활동했다.[12] 룰라와 호잔젤라 둘은 199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룰라가 레티시아와 사별한 뒤 진보 예술인 행사에서 만나 본격적으로 관계가 발전했다. 또 2018년에 룰라가 뇌물 스캔들로 엮여 구속 수사를 받게 되자 면회를 자주 하고 옥바라지를 하며 만남을 지속했다.
2019년 11월 룰라가 무혐의를 받아 풀려나자 약혼하고 2022년 5월 18일 대선을 준비하던 기간 성당에서 결혼했다. 룰라와의 약혼 이후 유명세를 얻자 잔자(Janja) 라는 애칭을 얻었다. 전처인 마리사는 사회운동가보다 가족적인 모습을 좀 더 보여준 반면, 잔자는 대선 후보 공약과 활동 계획을 룰라와 함께 만들며 2022년 선거 운동과 당선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룰라 당선 후 인터뷰에서도 "퍼스트 레이디보다 퍼스트 메이트가 되고 싶다."라며 동지애를 드러냈다.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1차 득표수 (득표율) | 2차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6 | 브라질 하원의원 선거 | 3,253,999 (6.88%) | 당선 (1번) | 초선 | |||
1989 | 11,622,673 (22.70%) | 31,076,364 (46.97%) | 낙선 (2위) | ||||
1994 | 17,122,127 (27.04%) | -[A] | |||||
1998 | 21,470,333 (31.71%) | -[A] | |||||
2002 | 39,455,233 (46.44%) | 52,793,364 (61.27%) | 당선 (1위) | 초선 | |||
2006 | 46,662,365 (48.61%) | 58,295,042 (60.83%) | 재선 | ||||
2022 | 57,259,504 (48.43%) | 60,345,999 (50.90%) | 3선[15] | ||||
"모든 업적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노동자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16]2010년 퇴임식 연설 중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다."
"나도 인간인데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무척 부럽다. 경제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자질이 있으니까."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17]
"개인 혹은 정부의 미래는 우리가 꿈꾸는대로 만들어진다. 스스로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대해지고, 스스로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잘 것 없어진다. 브라질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이 순간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을 보잘 것 없다고 단정 지을 권리는 없다."
1988년 야당 의원 시절
"그들은 나의 체포를 명령했다. 나는 그들의 체포 영장에 따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책임을 그들에게 넘기고 싶다. 그들은 마치 이 나라에 생긴 모든 일이 나 때문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내 생각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는 부질없다. 왜냐하면 내 생각은 이미 공기 중에 퍼져 있고 이것을 체포할 수는 없다. 내 꿈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는 부질없다. 왜냐하면 내가 꿈을 꾸지 않게 되더라도 그 꿈은 여러분의 마음과 꿈 속에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심장마비로 죽게 되면 모든 것이 멈출 것이라는 생각도 부질없다. 나는 한 인간이 아니라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여러분의 생각과 섞여 있다. 토지가 없고 주택이 없는 노동자 운동가들은 이를 알 것이다. 이것이 증거이다. 나는 체포 영장을 따를 것이고 여러분은 변화를 겪어야 한다. 여러분의 이름은 더 이상 조이, 조니, 에디 같은 이름이 아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룰라'가 될 것이고 매일 매일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이 나라를 걷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한 전사의 죽음이 혁명을 멈출 수는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2018년 4월, 구속되기 직전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에게 한 연설
이 사람(젤렌스키)은 전쟁에 대해 푸틴만큼 책임이 있다.
우리는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한다.
좋아요, 당신(젤렌스키)은 좋은 코미디언이었다. 그러나 당신이 TV에 나오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는 말아야 한다. 미국은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바이든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피할 수 있었다. 바이든은 푸틴 대통령과 대화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갈 수도 있었다. 이것이 리더에게 바라는 태도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범인은 푸틴만이 아니다. 미국과 EU도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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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모두 두 번째 부인인 마리사 레티시아 카사 사이에서 태어났다.[3] 친노동 성향 때문에 해방신학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룰라는 해방신학 성향이 아니고, 해방신학계와 선긋기를 한 뒤에 본인이 " 교회와 성당은 기도하러 가는 곳 " 이라는 태도를 내보이고 있기 때문에 가톨릭 , 개신교와 모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4]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의 절친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룰라의 적수이던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평행이론 수준으로 공통점이 많다. 무엇보다 둘 다 같은 2022년에 얼마 전 여성 대통령의 탄핵과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의 수감을 겪은 정당에게 민주화 이후 최초 단임 정권교체를 당했다.[5] 윤석열은 이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한다.[6] 엄밀히 따지자면 성장률 자체는 낮은 편이었으며, 당시 경제성장은 레알화의 고평가에 힘입은 것이다.[7] 임기 동안 지지율을 최저치 대비 3배나 늘린 셈이다.[8] 탄크레두 네베스와 조제 사르네이도 같은 브라질 민주운동 출신이지만, 이쪽은 대통령으로 선출된 네베스가 취임식 직전 급사해서 부통령이던 사르네이가 권한을 승계받은 케이스이기에 논외.[9] 아이러니하게도 룰라의 3선 당시 룰라에게 진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브라질 최초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다.[10] 노동자당이 2018년 대선에서 진 것도 룰라의 출마가 금지되자 부통령 후보였던 페르난두 아다지를 부랴부랴 대선에 출마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1달 남짓밖에 대선 후보 준비를 하지 못한 아다지는 보우소나루에게 참패했다.[11] 2위는 제툴리우 바르가스, 1위는 페드루 2세(브라질).[12] 브라질 국민은 16세부터 참정권이 있고 18세부터 70세까지는 투표의 의무가 있다.[A] 13.1 13.2 페르난두 카르도주의 과반 득표로 결선투표 미실시[15] 브라질 민주화 이후 첫 3선 대통령.[16] 2002년 대통령 당선증을 받았을 때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한 나로선 생전 처음 받아보는 증서라며 눈물을 흘렸다. 룰라는 어려운 생계 때문에 초등학교를 5학년까지만 다니고 중퇴했다. 그 후 12살에 길거리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17] 이 말은 KBS 드라마 어셈블리 19회에서도 인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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