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클라베
최근 수정 시각:
| ||||||||||||||||||||||||||||||||||||||||||||||||||||||||||||||||||||||||||||||||||||||||||||||||||||||||||||||||||||||||||||||||||||||||||||||||||||||||||||||||||||||||||||||||||||||||||||||||||||||||||||||||||||||||||||||||||||||||||||||||||||||||||||||||||||||||||||||||||||||||||||||||||||||||||||||||||||||||||||||||||||||||||||||||||||||||||||||||||||||||||||||||||||||||||||||||||||||||||||||||||||||||||||||||||||||||||||||||||||||||||||||||||||||||||||||||||||||||||||||||||||||||||||||||||||||||||||||||||||||||||||||||||||||||||||||||||||||||||||||||||||||||||||||||||||||||||||||||||||||||||||||||||||||||||||||||||||||||||||||||||||||||||||||||||||||||||||||||||||||||||||||||||||||||||||||||||||||||||||||||||||||||||||||||||||||||||||||||||||||||||||||||||||||||||||||||||||||||
![]() |
2025년 콘클라베 당시 시스티나 경당에 모인 추기경단의 모습 |
![]() |
2025년 콘클라베에서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경당의 흰 연기 |
콘클라베(conclave)는 가톨릭에서 교황을 선출하기 위하여 소집된 추기경들로 이루어진 선거인단과, 그러한 선거인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비밀 회의 및 투표 예식을 가리킨다. 어원은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쿰 클라베'(cum clave)이다. 이는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동안 추기경들이 있는 성당으로 통하는 문을 걸어 잠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가톨릭의 종교지도자와 바티칸의 군주를 겸하는 교황은 80세 미만 추기경들로 구성된 선거인단들 중에서 선출하는데, 이때 자서식 투표를 채택한다. 추기경들은 교황으로 선출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직접 글로 써서, 한 사람이 3분의 2 이상을 득표할 때까지 투표를 계속한다.
가톨릭의 종교지도자와 바티칸의 군주를 겸하는 교황은 80세 미만 추기경들로 구성된 선거인단들 중에서 선출하는데, 이때 자서식 투표를 채택한다. 추기경들은 교황으로 선출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직접 글로 써서, 한 사람이 3분의 2 이상을 득표할 때까지 투표를 계속한다.
가톨릭 교황직을 처음부터 콘클라베로 선출했던 것은 아니다. 아직 동서 로마 제국이 모두 건재했던 3세기 이전에는 로마 주교의 선출이 다른 지방 주교들의 경우와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은 없었고 로마 교황도 처음엔 다른 지역의 주교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내부의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물론 클레멘스 1세 교황의 《코린토 교회에 보내는 편지》 사례에서 보듯 로마 지역 교회가 특별하다는 인식은 있었지만[1] 박해받는 처지에 오늘날과 같은 콘클라베를 한다는 건 당연히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로마 주교는 좁게는 라틴 교회의 대표자이고, 넓게는 세계 주교단의 수장[2]이라는 로마 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그룹에 속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위상이 기존의 2위이던 알렉산드리아를 추월하면서 수위권 분쟁의 조짐이 점차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반도를 수복하고 그에 따라 동로마 황제의 압력이 강해지면서, 로마의 주교 선출을 반드시 라벤나 총독부에 보고해야 했다. 이렇게 로마 주교직의 선출은 점점 정치적인 문제에 시달렸다.
그러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로마 주교는 좁게는 라틴 교회의 대표자이고, 넓게는 세계 주교단의 수장[2]이라는 로마 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그룹에 속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위상이 기존의 2위이던 알렉산드리아를 추월하면서 수위권 분쟁의 조짐이 점차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반도를 수복하고 그에 따라 동로마 황제의 압력이 강해지면서, 로마의 주교 선출을 반드시 라벤나 총독부에 보고해야 했다. 이렇게 로마 주교직의 선출은 점점 정치적인 문제에 시달렸다.
769년에 행해진 시노드에서 정식으로 로마인 평신도에 의한 승인이 폐지되었지만, 862년의 로마 시노드에서는 귀족에 한해서만 그 권리를 부활시켰다.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는 교령을 발표하여 추기경으로 승격되려면 로마의 성직자와 평신도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교황 선출은 추기경단으로부터 선택되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것이 바로 콘클라베의 시초다. 당시에는 주교급 추기경들이 최초로 모여 누가 다음 교황 자리에 어울릴까 하는 문제를 토의하여 결정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제급 추기경과 부제급 추기경도 동참하여 투표하는 형태로 변모했다.
국력 약화와 성상 파괴 위기를 겪고 비틀거리던 동로마가 라벤나 총독부 영토의 절반을 상실해 교황좌에 대한 압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이후에도 이 문제는 여전했다. 심지어 교회가 동서 대분열 된 이후에도 교황직은 온갖 정치적 압력에 시달리는 판이었다. 9세기부터는 온갖 권력자들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의해서 마구 갈아치워지는 지경이었다. 또한 아직 라벤나 총독부는 흔적으로나마 남아 있었으므로 동로마 제국의 압력은 여전히 들어오고 있었다. 하인리히 3세는 3명의 교황을 황제의 힘으로 추방시키고 허수아비 교황을 세우기도 했다. 1056년에 하인리히 3세가 사망하고 어린 하인리히 4세가 모후 아그네스의 섭정 하에 있게 되자 이에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가 '교황 선거권은 추기경만이 가진다'라는 원칙을 세웠고 1139년 제 2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황이나 추기경의 선출에서의 평신도와 하급 성직자의 동의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리고 이 규정은 1378년 이후에 활발한 논의를 거쳐 다시 제정된다.
이때 당시의 교황 선출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국력 약화와 성상 파괴 위기를 겪고 비틀거리던 동로마가 라벤나 총독부 영토의 절반을 상실해 교황좌에 대한 압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이후에도 이 문제는 여전했다. 심지어 교회가 동서 대분열 된 이후에도 교황직은 온갖 정치적 압력에 시달리는 판이었다. 9세기부터는 온갖 권력자들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의해서 마구 갈아치워지는 지경이었다. 또한 아직 라벤나 총독부는 흔적으로나마 남아 있었으므로 동로마 제국의 압력은 여전히 들어오고 있었다. 하인리히 3세는 3명의 교황을 황제의 힘으로 추방시키고 허수아비 교황을 세우기도 했다. 1056년에 하인리히 3세가 사망하고 어린 하인리히 4세가 모후 아그네스의 섭정 하에 있게 되자 이에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가 '교황 선거권은 추기경만이 가진다'라는 원칙을 세웠고 1139년 제 2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황이나 추기경의 선출에서의 평신도와 하급 성직자의 동의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리고 이 규정은 1378년 이후에 활발한 논의를 거쳐 다시 제정된다.
이때 당시의 교황 선출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1179년까지는 투표자의 과반수의 지지를 얻으면 교황으로 선출되었지만,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투표의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얻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교황 선거에서는 본인에게 투표하는 것은 인정되지 못한다. 교황 선거에서는 투표자의 익명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투표를 막는 교묘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왔다. 비오 12세는 필요한 득표수를 3분의 2 초과(즉 3분의 2에 최소 1표가 더 나와야 함)로 고쳤다. 1996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33회 투표에서도 당선자가 결정되지 못했을 경우 과반 찬성을 하는 단서 조항을 두었으나 베네딕토 16세가 다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바꾸고 단서 조항을 없애버렸다. 이는 미래의 교황들이 확실한 합의에 의해 선출되지 않으면 가톨릭교회의 일치와 운영에 지장이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3분의 2 득표에 의해 선거가 종종 지연돼 공석이 자주 발생했다. 교황 선거법에는 교황 선출이 될 때까지 공석 기간과 선거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268년 클레멘스 4세 사망 후 비테르보 교황궁 경내 성당에서 치러진 1268년~1271년 교황 선거에서는 추기경들의 정치적 투쟁 때문에 무려 2년 9개월 하고도 이틀 후인 1271년에야 교황이 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1241년 교황 선거에서는 그레고리오 9세가 사망한 뒤 차기 교황 선출이 지지부진하자, 로마 귀족 마테오 오르시니가 10명의 추기경을 낡은 궁인 셉티조디움 궁전에 가두었다. 추기경들이 두통, 탈진, 탈수 등을 호소하는 일기를 남겼다. 투표가 지체되자 화가 난 로마인들은 그레고리오 9세의 시신을 파헤치겠다고 협박했다. 더위 때문에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로베르토 디 소메르코테스 추기경이 사망했고, 70일 만에 당선된 새 교황인 첼레스티노 4세는 교황 선거에 지쳐 17일 후 사망했다.
지금처럼 추기경들을 감금하는 형태의 콘클라베는 이때 정립되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북쪽으로 85㎞ 떨어진 비테르보에서 열린 1268년~1271년 교황 선거가 늘어지자 지친[3] 비테르보의 시민들과 행정 당국자들은 성당의 문을 걸어 잠가 추기경들을 감금하고 지붕을 뜯어 빗물이 새게 함과 동시에 제공되던 물과 빵의 양을 줄여 선거를 독촉하는 조치를 취했다.[4][5] 그 동안 추기경 2명이 사망하고 1명은 병에 걸려서 성당을 나갔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새로 즉위한 그레고리오 10세는 그때 당했던 방식을 좀 더 체계화하여 교황 사망 후 10일 안에 무조건 차기 교황을 뽑아야 하고, 추기경들을 화장실이 딸린 교황청의 한 방에 몰아넣고 나오지 못하게 하고, 3일 안에 교황이 나오지 않으면 하루 1끼의 식사만 제공되고, 5일이 지나도 합의가 안 되면 빵과 물, 포도주 외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하라는 칙령을 내려 이것을 1274년 제2차 리용 공의회 때 제도로 편입해 콘클라베의 절차를 새로 세웠으며, 이것이 12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300년대 중반 클레멘스 6세는 이 규칙을 완화해 수프, 생선과 고기 및 달걀로 구성된 메인 요리, 치즈나 과일로 구성된 디저트 등 3가지 코스요리를 허용했다.
1492년 시스티나 경당이 지어지자 이때부터 이곳에서 콘클라베가 열리기 시작했다.[6] 여기서 처음 열린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단 중 한 명인 로드리고 보르자는 추기경들을 돈으로 매수해 교황에 선출되어 알렉산데르 6세라는 이름으로 즉위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것이 진실인지는 논란이 있다.
중세~르네상스 시기(4~16세기)에는 교황 선출에 세속 군주, 귀족 가문, 국가들[7]이 개입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출 과정 자체를 차단된 공간에서 비공개로 진행하며, 유권자들인 추기경에게 외부와 단절된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이 발전했다. 공개 투표나 외부 노출이 있을 경우, 추기경들은 특정 세력[8]의 눈치를 보며 투표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하여, 비밀 투표를 통해 각 추기경이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명목하에 콘클라베는 비밀 선거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선출 과정이 정당하고 독립적이었다는 인식은 교황의 권위를 뒷받침하며, 계파 갈등, 불복, 정당성 시비를 넘어 신비롭고 경건한 '성령의 인도'에 의한 선택을 신학적인 이상으로 지향하게 되었다. 다만 이런 비밀 지향에도 불구하고, 분위기 정도는 흘리는 경우가 많으며, 보조 인원이 정보를 좀 유출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떤 경우에는 교황이 보편적 지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거나, 현대 교회가 어떤 배경과 흐름 속에서 결정을 내렸는지를 외부가 이해하길 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신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는 비밀을 잘 지키는 편이다.
1570년 바르톨로메오 스카피의 저서 요리의 예술(Opera Dell'Arte del Cucinare, 오페라 델 아르테 델 쿠치나레)에서 율리오 3세를 선출한 콘클라베에서 제공된 음식에 대해 소개했는데, 추기경들의 일상 식사는 요리사와 소믈리에가 공동 주방에서 마련했고, 부엌이 불법 메시지를 공유할 수도 있는 공간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경비원들이 특별히 배치되었다. 하루에 2번 추첨으로 정한 순서에 따라 음식 나르는 사람들이 요리를 "루오타"[9]로 전달했는데 시음 담당자들이 음식과 음료가 벽을 통과하기 전에, 불법 메시지가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확인했고 이탈리아와 스위스 경비원들이 감시했다. 포도주와 물은 불투명한 용기가 아닌 투명한 유리잔에 담아야 했다. 음식과 음료는 샐러드, 과일, 샤퀴테리, 와인, 신선한 물이다.
또한 스카피는 추기경들의 숙소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추기경들이 각자 사용하는 방은 비단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침대, 테이블, 옷걸이, 2개의 의자, 요강, 잠금 가능한 항아리 등 다양한 물품들이 갖춰줘 있었다.
1605년 콘클라베에서는 추기경들 사이에서 주먹 다툼이 일어나 한 추기경이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바오로 5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1623년 콘클라베는 무더운 여름철에 열렸고, 19일 동안 말라리아로 추기경 8명과 보좌진 40여명이 사망했다.
1655년 콘클라베에서는 몇 주 동안 교착 상태가 일어나 지루해지자 젊은 추기경들이 나이 든 추기경들에게 장난을 쳤다. 젊은 추기경 1명이 귀신(Holy Ghost, 성령)으로 분장해 밤중에 나이 든 추기경들을 놀라게 했다. 나이든 추기경 중 1명은 여기에 충격을 받아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고 나중에 죽었다. 알렉산데르 7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1846년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비오 9세는 31년간 교황으로 재임해 초대 교황인 베드로 다음으로 오래 재위했다.
1978년에는 현대에 2차례 콘클라베가 열렸다. 전근대에는 즉위한 지 1년을 못 넘기는 교황들이 많았지만 이때는 현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충격이 컸다. 1978년 8월 콘클라베가 역사상 최초로 TV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이때는 더운 여름에 콘클라베가 열렸기 때문에 일부 추기경은 너무 더워서 죽을 뻔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투표 용지를 태울 때 연기가 틈새로 새어나와 시스티나 경당 내부에 차는 바람에 추기경들이 질식할 뻔하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1세가 재위한 지 33일 만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 해 10월 콘클라베가 또 열렸고, 그때 선출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사문화되어 있던 발성에 의한 결정과 타협에 의한 결정 2가지 방법을 정식으로 폐지하고, 공식적으로 투표에 의한 결정만을 인정하도록 발표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새로 즉위한 그레고리오 10세는 그때 당했던 방식을 좀 더 체계화하여 교황 사망 후 10일 안에 무조건 차기 교황을 뽑아야 하고, 추기경들을 화장실이 딸린 교황청의 한 방에 몰아넣고 나오지 못하게 하고, 3일 안에 교황이 나오지 않으면 하루 1끼의 식사만 제공되고, 5일이 지나도 합의가 안 되면 빵과 물, 포도주 외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하라는 칙령을 내려 이것을 1274년 제2차 리용 공의회 때 제도로 편입해 콘클라베의 절차를 새로 세웠으며, 이것이 12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300년대 중반 클레멘스 6세는 이 규칙을 완화해 수프, 생선과 고기 및 달걀로 구성된 메인 요리, 치즈나 과일로 구성된 디저트 등 3가지 코스요리를 허용했다.
1492년 시스티나 경당이 지어지자 이때부터 이곳에서 콘클라베가 열리기 시작했다.[6] 여기서 처음 열린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단 중 한 명인 로드리고 보르자는 추기경들을 돈으로 매수해 교황에 선출되어 알렉산데르 6세라는 이름으로 즉위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것이 진실인지는 논란이 있다.
중세~르네상스 시기(4~16세기)에는 교황 선출에 세속 군주, 귀족 가문, 국가들[7]이 개입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출 과정 자체를 차단된 공간에서 비공개로 진행하며, 유권자들인 추기경에게 외부와 단절된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이 발전했다. 공개 투표나 외부 노출이 있을 경우, 추기경들은 특정 세력[8]의 눈치를 보며 투표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하여, 비밀 투표를 통해 각 추기경이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명목하에 콘클라베는 비밀 선거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선출 과정이 정당하고 독립적이었다는 인식은 교황의 권위를 뒷받침하며, 계파 갈등, 불복, 정당성 시비를 넘어 신비롭고 경건한 '성령의 인도'에 의한 선택을 신학적인 이상으로 지향하게 되었다. 다만 이런 비밀 지향에도 불구하고, 분위기 정도는 흘리는 경우가 많으며, 보조 인원이 정보를 좀 유출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떤 경우에는 교황이 보편적 지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거나, 현대 교회가 어떤 배경과 흐름 속에서 결정을 내렸는지를 외부가 이해하길 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신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는 비밀을 잘 지키는 편이다.
1570년 바르톨로메오 스카피의 저서 요리의 예술(Opera Dell'Arte del Cucinare, 오페라 델 아르테 델 쿠치나레)에서 율리오 3세를 선출한 콘클라베에서 제공된 음식에 대해 소개했는데, 추기경들의 일상 식사는 요리사와 소믈리에가 공동 주방에서 마련했고, 부엌이 불법 메시지를 공유할 수도 있는 공간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경비원들이 특별히 배치되었다. 하루에 2번 추첨으로 정한 순서에 따라 음식 나르는 사람들이 요리를 "루오타"[9]로 전달했는데 시음 담당자들이 음식과 음료가 벽을 통과하기 전에, 불법 메시지가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확인했고 이탈리아와 스위스 경비원들이 감시했다. 포도주와 물은 불투명한 용기가 아닌 투명한 유리잔에 담아야 했다. 음식과 음료는 샐러드, 과일, 샤퀴테리, 와인, 신선한 물이다.
또한 스카피는 추기경들의 숙소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추기경들이 각자 사용하는 방은 비단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침대, 테이블, 옷걸이, 2개의 의자, 요강, 잠금 가능한 항아리 등 다양한 물품들이 갖춰줘 있었다.
1605년 콘클라베에서는 추기경들 사이에서 주먹 다툼이 일어나 한 추기경이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바오로 5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1623년 콘클라베는 무더운 여름철에 열렸고, 19일 동안 말라리아로 추기경 8명과 보좌진 40여명이 사망했다.
1655년 콘클라베에서는 몇 주 동안 교착 상태가 일어나 지루해지자 젊은 추기경들이 나이 든 추기경들에게 장난을 쳤다. 젊은 추기경 1명이 귀신(Holy Ghost, 성령)으로 분장해 밤중에 나이 든 추기경들을 놀라게 했다. 나이든 추기경 중 1명은 여기에 충격을 받아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고 나중에 죽었다. 알렉산데르 7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1846년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비오 9세는 31년간 교황으로 재임해 초대 교황인 베드로 다음으로 오래 재위했다.
1978년에는 현대에 2차례 콘클라베가 열렸다. 전근대에는 즉위한 지 1년을 못 넘기는 교황들이 많았지만 이때는 현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충격이 컸다. 1978년 8월 콘클라베가 역사상 최초로 TV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이때는 더운 여름에 콘클라베가 열렸기 때문에 일부 추기경은 너무 더워서 죽을 뻔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투표 용지를 태울 때 연기가 틈새로 새어나와 시스티나 경당 내부에 차는 바람에 추기경들이 질식할 뻔하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1세가 재위한 지 33일 만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 해 10월 콘클라베가 또 열렸고, 그때 선출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사문화되어 있던 발성에 의한 결정과 타협에 의한 결정 2가지 방법을 정식으로 폐지하고, 공식적으로 투표에 의한 결정만을 인정하도록 발표했다.

교황 선거에 관한 최신 규정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헌장 《주님의 양 떼》(UNIVERSI DOMINICI GREGIS)'이다.[10] 이 규정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의 관습을 정리하여 시대에 맞지 않은 부분만 수정한 것이다. 베네딕토 16세가 2007년에 당선에 필요한 총득표수를 개정했고,[11] 선거인단 추기경이 모두 도착하면 15일을 넘기지 않고 선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조항을 퇴위 직전인 2013년에 추가했다.[12]
먼저 위에서 언급한 발성에 의한 선출과 타협에 의한 선출은 모두 인정되지 않아 폐지했다.
이 헌장에서, 추기경단은 전처럼 시스티나 경당에서 감금되듯 밀집 생활을 할 필요가 없으며, 요한 바오로 2세 시절인 1990년대에 신축된 '성녀 마르타의 집'(Domus Sanctae Marthae)이라고 하는 숙소에서 거주하면서 시스티나 경당에 출퇴근하듯 투표하러 가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대신 개인적으로 통행하다가 기밀이 유출될 문제를 방지하고자 모든 선거인단이 바티칸에서 제공하는 단체 버스를 타고 동시에 이동한다.
주교급 추기경만이 될 수 있는 수석 추기경에게는 교황 선거에서 몇 가지 역할이 부여된다. 만약 수석 추기경이 연령 제한에 걸려 선거권이 없으면 차석 추기경이 그 역할을 대리하고 차석 추기경도 참가할 수 없으면 주교급 추기경 중에서 최선임자가 대리한다.
추기경단의 규모가 생각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인원을 늘려 교황을 선택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오늘날과 같이 추기경단에 선거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교회의에 맡기는 편이 좋다고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재 규정상 주교 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 사람은 교황뿐이다. 《주님의 양 떼》에서는 시노드뿐 아니라 공의회조차 교황이 사망할 시에는 일단 휴회하고, 새로 선출된 교황에 의한 재개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교황이 사망하면 교황 궁무처장(camerlengo)이라는 직위에 있는 추기경이 입회한다. 궁무처장은 교황이 생전에 지명해 둔 추기경으로,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교황의 비서 겸 재무관이다. 교황 부재 시에 지시를 내리고, 교황 유고 시 다음 콘클라베가 열리고 새 교황이 취임하는 때까지 임시로 교황의 일부 업무를 대행으로 맡는다.
교황이 사망했다고 판단되면, 궁무처장이 은망치로 교황의 이마를 살살 두드리며 세례명으로 3차례 부르고 반응이 없다고 판단되면 죽음을 확인하는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행해졌던 적이 없다.[13]《주님의 양 떼》에서는 단지 교황청 전례 위원장과 성직자단의 대표, 교황의 비서, 사도단의 단장 등 만 80세 미만의 고위 성직자가 입회하여 확인하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만 80세 이상부터는 추기경 직위는 유지되지만 콘클라베에 참여할 수 없다).
확인이 끝나면 궁무처장은 어부의 반지라고 불리는 교황의 황금 반지를 교황의 손가락에서 빼내 추기경단 앞에서 반지에 공식 인장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깊은 흠집 2줄을 낸다.[14] 어부의 반지에는 교황이 작성한 문서에 찍는 인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미 죽은 교황의 반지를 이용해 마치 죽기 전에 처리한 문서로 위조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교황의 사망이 발표되면 추기경단은 전원 집합하여 회의를 열고 토론하여 교황선거 일정과 세부사항을 결정한다. ## 투표권이 없는 80세 이상의 추기경은 이 회합에 불참할 권리가 있다. 장례 미사를 포함한 교황의 장례절차는 사후 4일부터 6일간에 걸쳐 행한다. 그 후 교황청 전체가 9일간 애도하는 기간을 두는데, 이를 라틴어로 9일을 의미하는 노베디아레스라고 한다. 교황선거는 통상 교황 사후 15일 이후에 열린다. # 불참해도 무방한 80세 이상인 자를 제외한 모든 추기경이 다 모이지 않는 경우, 선거 개최일을 많게는 20일까지 늘릴 수 있다. 바티칸에 도착한 추기경들은 1996년부터 바티칸 내 숙소인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지낸다. 성녀 마르타의 집은 호텔급이긴 하지만 각종 매체가 없기 때문에 추기경들은 이곳에서 성경 읽기 등밖에 할 수 없다.# 1996년 이전에는 시스티나 경당과 연결된 방에서 지냈다. 당시 숙소의 방 중 하나는 1978년 8월 콘클라베 기준은 이렇게 생겼다. 링크, 링크 2. 1978년 10월 콘클라베 기준은 이렇게 생겼다.
시스티나 경당의 모든 창문이 닫히고 레이저 스캐너가 소리 신호를 포착하지 못하도록 창문에 특수코팅을 한다.# 외부와 소통을 차단하기 위해 주파수대 변환기(스크램블러) 또한 설치한다. 시스티나 경당은 2000년대 중반 기준 하루 평균 2만여 명이 찾는, 전세계적으로도 방문객 수가 매우 많은 장소지만, 이때에는 콘클라베에 맞춰 관광객의 출입이 제한된다. 교황 알현과 의식 등을 담당하는 바티칸 플로레리아(Floreria)는 시스티나 경당 내부에 연단을 세우고 긴 테이블 12개와 빨간 의자 여러 개를 4줄로, 시스티나 경당 양쪽 끝 2개로 설치한다.#
교황이 사망했다고 판단되면, 궁무처장이 은망치로 교황의 이마를 살살 두드리며 세례명으로 3차례 부르고 반응이 없다고 판단되면 죽음을 확인하는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행해졌던 적이 없다.[13]《주님의 양 떼》에서는 단지 교황청 전례 위원장과 성직자단의 대표, 교황의 비서, 사도단의 단장 등 만 80세 미만의 고위 성직자가 입회하여 확인하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만 80세 이상부터는 추기경 직위는 유지되지만 콘클라베에 참여할 수 없다).
확인이 끝나면 궁무처장은 어부의 반지라고 불리는 교황의 황금 반지를 교황의 손가락에서 빼내 추기경단 앞에서 반지에 공식 인장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깊은 흠집 2줄을 낸다.[14] 어부의 반지에는 교황이 작성한 문서에 찍는 인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미 죽은 교황의 반지를 이용해 마치 죽기 전에 처리한 문서로 위조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교황의 사망이 발표되면 추기경단은 전원 집합하여 회의를 열고 토론하여 교황선거 일정과 세부사항을 결정한다. ## 투표권이 없는 80세 이상의 추기경은 이 회합에 불참할 권리가 있다. 장례 미사를 포함한 교황의 장례절차는 사후 4일부터 6일간에 걸쳐 행한다. 그 후 교황청 전체가 9일간 애도하는 기간을 두는데, 이를 라틴어로 9일을 의미하는 노베디아레스라고 한다. 교황선거는 통상 교황 사후 15일 이후에 열린다. # 불참해도 무방한 80세 이상인 자를 제외한 모든 추기경이 다 모이지 않는 경우, 선거 개최일을 많게는 20일까지 늘릴 수 있다. 바티칸에 도착한 추기경들은 1996년부터 바티칸 내 숙소인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지낸다. 성녀 마르타의 집은 호텔급이긴 하지만 각종 매체가 없기 때문에 추기경들은 이곳에서 성경 읽기 등밖에 할 수 없다.# 1996년 이전에는 시스티나 경당과 연결된 방에서 지냈다. 당시 숙소의 방 중 하나는 1978년 8월 콘클라베 기준은 이렇게 생겼다. 링크, 링크 2. 1978년 10월 콘클라베 기준은 이렇게 생겼다.
시스티나 경당의 모든 창문이 닫히고 레이저 스캐너가 소리 신호를 포착하지 못하도록 창문에 특수코팅을 한다.# 외부와 소통을 차단하기 위해 주파수대 변환기(스크램블러) 또한 설치한다. 시스티나 경당은 2000년대 중반 기준 하루 평균 2만여 명이 찾는, 전세계적으로도 방문객 수가 매우 많은 장소지만, 이때에는 콘클라베에 맞춰 관광객의 출입이 제한된다. 교황 알현과 의식 등을 담당하는 바티칸 플로레리아(Floreria)는 시스티나 경당 내부에 연단을 세우고 긴 테이블 12개와 빨간 의자 여러 개를 4줄로, 시스티나 경당 양쪽 끝 2개로 설치한다.#
교황이 스스로 물러나기로 마음먹는다면, 교황 본인이 물러나고 싶은 날짜를 스스로 선택하고 공고한다. 교황의 퇴위권은 순전히 본인 의사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를 수리하는 기관도 없다. 본인이 퇴위 선언 하면 그것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교황이 물러나기로 공고한 날 새벽 4시가 되면 교황직이 공석이 된다. 그때부터는 사망 직후와 마찬가지로 문서 위조 방지를 위해 어부의 반지를 반납하고 흠집을 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절차를 거친다. 또한 추기경단이 집합한 뒤 회합을 열어 교황 선거 일정을 결정한다. 이 경우에는 교황 본인이 스스로 물러난 경우이므로 퇴위 발표 뒤 전 세계 추기경들에게 공식 사임 전에 미리 투표 날짜를 정하여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이롭다고 할 수 있겠다.
《주님의 양 떼》에서 콘클라베 개시 시점을 명시한 조항은 제37조다. 그 조항에 따르면, 콘클라베는 교황의 사망이나 퇴위로 사도좌가 공석이 된 지 15~20일 사이에 개시해야 한다. 만 15일을 기다리는 것은 장례와 애도 기간 포함해 약 15일, 그리고 아직 로마에 도착하지 않은 추기경들을 위한 배려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때(퇴위하기 전)인 2013년 2월 25일, 자의 교서(Motu Proprio)를 발표하여 제37조에 “모든 선거인 추기경이 도착하면 선거 개시를 앞당길 권한도 있다”는 문항을 추가함으로써 일정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교황의 사망에 따라 열렸던 통상적인 콘클라베와 달리, 600년 만의 생전 퇴위로서 이례적으로 교황이 살아 있는 중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옛날에는 비행기도 없고 육로 및 해상 교통으로만 바티칸에 갈 수 있었으니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20세기부터 비행기만 타면 하루이틀, 늦어도 사나흘이면 다 도착하고, 교황의 사망이 아닌 퇴위로 인한 콘클라베에는 장례 기간이 생략되기 때문에 이것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주님의 양 떼》에서 콘클라베 개시 시점을 명시한 조항은 제37조다. 그 조항에 따르면, 콘클라베는 교황의 사망이나 퇴위로 사도좌가 공석이 된 지 15~20일 사이에 개시해야 한다. 만 15일을 기다리는 것은 장례와 애도 기간 포함해 약 15일, 그리고 아직 로마에 도착하지 않은 추기경들을 위한 배려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때(퇴위하기 전)인 2013년 2월 25일, 자의 교서(Motu Proprio)를 발표하여 제37조에 “모든 선거인 추기경이 도착하면 선거 개시를 앞당길 권한도 있다”는 문항을 추가함으로써 일정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교황의 사망에 따라 열렸던 통상적인 콘클라베와 달리, 600년 만의 생전 퇴위로서 이례적으로 교황이 살아 있는 중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옛날에는 비행기도 없고 육로 및 해상 교통으로만 바티칸에 갈 수 있었으니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20세기부터 비행기만 타면 하루이틀, 늦어도 사나흘이면 다 도착하고, 교황의 사망이 아닌 퇴위로 인한 콘클라베에는 장례 기간이 생략되기 때문에 이것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교황으로 뽑힐 자격에 대해서는 가톨릭 교회가 별도로 정한 바가 없다. 교황이 되려면 오랜 기간 교회에 봉사하며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며, 이는 역으로 추기경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도 작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간 대부분의 교황이 추기경을 역임했지만, 교황 피선출권에는 제한 규정이 없어서 반드시 추기경이 당선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주교직 후보자의 적격성을 규정한 가톨릭 교회법 제378조의 조건을 충족한다면, 한국의 어느 본당 신부가 교황으로 당선될 수도 있다.
이는 가톨릭 교회법의 다음 조항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위의 설명처럼 추기경이 아닌 주교나 심지어 신부가 교황으로 당선될 수 있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이는 가톨릭 교회법의 다음 조항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위의 설명처럼 추기경이 아닌 주교나 심지어 신부가 교황으로 당선될 수 있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교황은 합법적 당선을 수락함과 함께 주교 축성으로써 교회에서 완전한 최고 권력을 얻는다. 따라서 교황직에의 당선자가 주교 인호가 새겨져 있다면 수락의 시각부터 그 권력을 얻는다. 만일 당선자가 주교 인호가 없다면 즉시 주교로 수품되어야 한다.『교회법』 332조-①.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황 당선자가 주교 수품이 필요하면, 당선자를 주교로 서품하는 권리는 수석 추기경에게 있고, 수석 추기경이 유고이면 차석 추기경에게, 그도 유고이면 주교급의 선배 추기경에게 있다.『교회법』 355조-①.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톨릭 교회의 성직 체계를 알아야 한다. 가톨릭 교회의 성직 체계는 부제품, 사제품, 주교품 셋뿐이다. 신부도 종류가 많고, 주교도 종류가 많지만, 성직자가 속한 온갖 직무는 모두 이 범위에 들어온다.
주교품 | 교황, 추기경, 대주교, 교구장 주교, 부교구장 주교, 보좌 주교, 그 외 여러 주교 |
사제품 | 본당 신부, 보좌 신부, 지구장 신부, 수도원장 신부, 총대리 신부 등 |
부제품 | 일반 부제, 종신 부제 등 |
교구장 주교의 인사 명령에 따라 특별한 성품성사 거행 없이 신부의 보직이 바뀔 수 있듯(e.g. 지구장 신부→본당 신부), 주교 직무 간 이동도 이론적으로는 특별한 성사 거행이 필요치 않다. 인 펙토레 추기경이나 비밀 추기경 제도를 둘 수 있는 성직 원리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에 부제품→사제품이나 사제품→주교품은 성직자의 품계가 바뀌며, 이는 성품성사라는 장험한 전례를 통해서만 실현된다.
이에 비추어 위 두 조항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이 이미 주교라면, 선출된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교황이다. 설령 어떠한 사정으로 즉위식을 거행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교황으로서의 정통성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선출된 사람이 주교가 아니라면, 당선자가 결정을 받아들인 뒤 주교로 서품되어야 한다. 주교품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교황이 되며, 만약 주교로 서품되지 않으면 교황이 되지 못한다. 이는 교황이 원칙적으로 로마의 주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세 시절에는 이를 악용해 정치적 이유로 주교는 고사하고 신부조차 아닌 평신도가 교황으로 당선된 사례도 몇 차례 있었으며, 신부가 교황으로 당선된 예는 훨씬 많다. 위에 소개된 가톨릭 교회법은 이런 역사적 상황이 재현될 경우를 가정하여 마련되었다. 이게 완전히 확정된 때는 요한 23세 시절이다. 2025년 4월 21일 기준으로 주교로 서품되지 않은 채 교황에 당선된 마지막 교황은 그레고리오 16세이다. 요한 23세 때 모든 추기경은 주교여야 한다는 제약이 생기기 전에는 주교가 아닌 성직자가 추기경에 임명될 수 있었으므로, 주교품을 받은 적이 없는 사제(이면서 추기경)가 교황으로 선출될 여지가 지금보다는 좀 더 있었다.
언론에서 교황을 선출하기 전 '유력 후보'라며 몇몇 인사들을 소개한다. 이를 이탈리아어로 '파파빌레(papabile)'라고 하며, '교황이 될 수 있는 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소개 자료는 언론이 어디까지나 직책이나 정치 활동 등을 볼 때 교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암묵적으로 평가받는 성직자들을 분석해 추린 것일 뿐이며, 위 설명대로 피선출권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따로 제한한 바는 없다. 그래서 언론에서 아예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던 성직자가 깜짝 선출된 사례도 있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비오 10세나 요한 23세 등 이러한 경향이 많아진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는 '교황으로서 콘클라베에 들어가는 사람은 추기경으로 나온다'라는 속담이 있다. 다만 이 속담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는데 1939년 콘클라베(비오 12세), 1963년 콘클라베(바오로 6세), 2005년 콘클라베(베네딕토 16세)에서는 파파빌레가 선출되었다.
추기경단 사이의 파파빌레는 추기경들이 살아온 모든 생애가 평가 대상이기 때문에 후보 등록 절차가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이에 비추어 위 두 조항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이 이미 주교라면, 선출된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교황이다. 설령 어떠한 사정으로 즉위식을 거행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교황으로서의 정통성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선출된 사람이 주교가 아니라면, 당선자가 결정을 받아들인 뒤 주교로 서품되어야 한다. 주교품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교황이 되며, 만약 주교로 서품되지 않으면 교황이 되지 못한다. 이는 교황이 원칙적으로 로마의 주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세 시절에는 이를 악용해 정치적 이유로 주교는 고사하고 신부조차 아닌 평신도가 교황으로 당선된 사례도 몇 차례 있었으며, 신부가 교황으로 당선된 예는 훨씬 많다. 위에 소개된 가톨릭 교회법은 이런 역사적 상황이 재현될 경우를 가정하여 마련되었다. 이게 완전히 확정된 때는 요한 23세 시절이다. 2025년 4월 21일 기준으로 주교로 서품되지 않은 채 교황에 당선된 마지막 교황은 그레고리오 16세이다. 요한 23세 때 모든 추기경은 주교여야 한다는 제약이 생기기 전에는 주교가 아닌 성직자가 추기경에 임명될 수 있었으므로, 주교품을 받은 적이 없는 사제(이면서 추기경)가 교황으로 선출될 여지가 지금보다는 좀 더 있었다.
언론에서 교황을 선출하기 전 '유력 후보'라며 몇몇 인사들을 소개한다. 이를 이탈리아어로 '파파빌레(papabile)'라고 하며, '교황이 될 수 있는 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소개 자료는 언론이 어디까지나 직책이나 정치 활동 등을 볼 때 교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암묵적으로 평가받는 성직자들을 분석해 추린 것일 뿐이며, 위 설명대로 피선출권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따로 제한한 바는 없다. 그래서 언론에서 아예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던 성직자가 깜짝 선출된 사례도 있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비오 10세나 요한 23세 등 이러한 경향이 많아진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는 '교황으로서 콘클라베에 들어가는 사람은 추기경으로 나온다'라는 속담이 있다. 다만 이 속담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는데 1939년 콘클라베(비오 12세), 1963년 콘클라베(바오로 6세), 2005년 콘클라베(베네딕토 16세)에서는 파파빌레가 선출되었다.
추기경단 사이의 파파빌레는 추기경들이 살아온 모든 생애가 평가 대상이기 때문에 후보 등록 절차가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추기경단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여 미사를 올린다. 이때 뒤쪽에는 평신도들도 있다. 오후에는 진홍색 예복 차림을 하고 사도 궁전 내의 파올리나 성당에 집합하여 《성인 호칭 기도》(Litaniae Omnium Sanctorum)[15]를 부르며 선거 장소인 시스티나 경당으로 이동한다. 시스티나 경당의 추기경 좌석에는 교황령 《주님의 양 떼》와 《콘클라베 예식서》(Ordo Rituum Conclavis),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위한 전례서가 구비되어 있다.
성당에 도착한 추기경들은 성령의 도움을 바라는 찬미가인 Veni, creátor Spíritus(오소서, 창조주님)[16]를 부른 다음 한 명씩 선서를 한다. 선서 내용은, 만약 자신이 선출되었을 때는 성좌의 자유를 수호할 것, 선거의 비밀을 지킬 것[17], 투표에 대해 외부 압력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약은 먼저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의 주도로 다 같이 아래 라틴어로 된 선서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당에 도착한 추기경들은 성령의 도움을 바라는 찬미가인 Veni, creátor Spíritus(오소서, 창조주님)[16]를 부른 다음 한 명씩 선서를 한다. 선서 내용은, 만약 자신이 선출되었을 때는 성좌의 자유를 수호할 것, 선거의 비밀을 지킬 것[17], 투표에 대해 외부 압력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약은 먼저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의 주도로 다 같이 아래 라틴어로 된 선서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Nos omnes et singuli in hac electione Summi Pontificis versantes Cardinales electores promittimus, vovemus et iuramus inviolate et ad unguem Nos esse fideliter et diligenter observaturos omnia quae continentur in Constitutione Apostolica Summi Pontificis Ioannis Pauli II, quae a verbis « Universi Dominici Gregis » incipit, data die xxii mensis Februarii anno MCMXCVI. Item promittimus, vovemus et iuramus, quicumque nostrum, Deo sic disponente, Romanus Pontifex erit electus, eum munus Petrinum Pastoris Ecclesiae universae fideliter exsecuturum esse atque spiritualia et temporalia iura libertatemque Sanctae Sedis integre ac strenue asserere atque tueri numquam esse destiturum. Praecipue autem promittimus et iuramus Nos religiosissime et quoad cunctos, sive clericos sive laicos, secretum esse servaturos de iis omnibus, quae ad electionem Romani Pontificis quomodolibet pertinent, et de iis, quae in loco electionis aguntur, scrutinium directe vel indirecte respicientibus; neque idem secretum quoquo modo violaturos sive perdurante novi Pontificis electione, sive etiam post, nisi expressa facultas ab eodem Pontifice tributa sit, itemque nulli consensioni, dissensioni, aliique cuilibet intercessioni, quibus auctoritates saeculares cuiuslibet ordinis et gradus, vel quivis hominum coetus vel personae singulae voluerint sese Pontificis electioni immiscere, auxilium vel favorem praestaturos. |
교황 선거에 참석한 우리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들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단체로서, 1996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령 《주님의 양 떼》의 규정들을 충실하고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가운데 누가 하느님의 섭리로 교황에 선출되든 보편 교회의 사제로서 베드로의 교의(敎義)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과 교황의 영적·세속적 권리와 자유를 힘껏 지지하고 보호할 것을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 특히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로마 교황 선출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한, 그리고 선출 장소에서 발생한 것에 관한, 직접적 내지는 간접적으로 투표 결과와 관련돼 있는 비밀을 엄수할 것을 충심을 다해 모든 사람과 함께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우리는 이 비밀을 어떤 식으로든, 새 교황 선출 중이든 선출 후든, 선출된 교황의 분명한 허가가 없는 한 깨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어떤 계층이나 지위의 세속적 권위 그리고 단체나 개인이 교황 선출에 개입하려 하더라도 모든 간섭이나 반대 또는 다른 형태의 개입에 대해서도 결코 지지하거나 찬성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
선서문을 낭독한 후 수석 추기경은 경당 중간, 즉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천지창조)의 밑, 최후의 심판이 보이는 쪽에 놓인 복음서 앞으로 가 아래의 기도를 바치며, 이후 순서에 따라 추기경단이 모두 한 명씩 복음서 앞으로 가 복음서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한다.
Et ego N. Cardinalis N. spondeo, voveo ac iuro, (imponendo manum super Evangelium) Sic me Deus adiuvet et haec Sancta Dei Evangelia, quae manu mea tango. |
그리고 나 (세례명), 추기경 (속명)은 그와 같이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하오니, (복음서에 손을 올린다) 하느님과 제가 손을 얹은 이 거룩한 복음은 저를 도와주소서. |
이 콘클라베의 진행 경과에 대해 아무것도 발설하지 못하고 심지어 기록조차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위반할 경우 자동으로 파문된다. 언론에서는 누군가가 정보를 흘렸다면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누가 흘렸는지는 알리지 않는다. 1978년 8월 콘클라베에서는 투표수를 적은 쪽지를 표와 함께 불에 태워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가 유출되었다. 2013년 콘클라베 때는 아일랜드 출신 저널리스트라는 제라드 오코넬(Gerard O'Connell)이 회차별 투표 결과와 추기경별 구체적인 득표 수를 알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자신의 저서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역사를 바꾼 콘클라베의 내부 이야기(The Election of Pope Francis: An Inside Account of the Conclave That Changed History)에서 공개했는데 해당 출처로 2013년 콘클라베에 참석했던 익명의 한 추기경이 작성한 일기라고 주장할 뿐, 해당 일기의 실물이 제시된 것도 아니고, 오코넬의 일방적 주장 외에 어떠한 객관적 근거도 없다. 일본 교도통신이 이른바 '바티칸 소식통'을 인용해 자세한 투표수를 공개했다. 다만 몇 차 투표 때 표가 확 쏠렸다는 등으로 모호하게 말하는 것이나 콘클라베 때 일어난 추기경들의 반응이나 콘클라베 때 사탕을 가져와서 나눠줬다같은 소소한 일화를 콘클라베 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허용된다.
2013년 콘클라베의 엑스트라 옴네스 선언 |
2025년 콘클라베의 엑스트라 옴네스 선언 |
선서가 끝나면, 추기경들은 각자의 천지창조 벽화를 중심으로 양 편의 이름이 적힌 명패와 책자 2권, 이름을 적을 검정 펜과 빨간 판이 있는 책상과 붉은 의자가 있는 자리에 앉는다. 투표에 참여할 추기경 명단이 적힌 종이에는 추기경의 품급에 따라 주교급, 사제급, 부제급 추기경으로 구분돼 이름이 적혀 있다. 책자 중에는 추기경 인명부가 있는데 사진이 크게 나와 있고 각자 탄생과 그동안에 뭐 했는지 등이 적혀 있어 일종의 이력서라고 보면 된다. 교황청 전례원장은 "엑스트라 옴네스(Extra omnes, 모두 밖으로)."라고 외치고, 추기경단과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내보낸 후 청동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도 모두 닫는다. 문 밖의 스위스 근위대는 궁 입구에 근위대 인장이 박힌 구슬줄을 설치해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한다. 전례 위원장은 추기경단에게 교회가 직면한 위기 상황과 지금 요구되는 교황의 자질에 대해 설교한 후 투표를 지켜볼 수 없는 장소로 이동하고, 추기경단만 남아 본격적인 투표 절차를 시작한다.


수석 추기경의 주도 아래 문답을 통해 선거법에 의문이 없는지 확인한다. 의문이 없으면 선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시작 전에 투표와 개표를 진행할 계표인과 검표인도 추기경단 중에서 추첨으로 결정한다. 선거는 수석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주재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수석 추기경이 선거권이 없으면 차석 추기경이, 차석 추기경도 선거권이 없으면 일반적 서열에 따라 선거인 추기경 중 최고령 추기경이 주재한다. 투표 개시에 늦었던 추기경은 그 선거에 참가할 수 없다. 선거 중에 병환 탓에 건강이 나빠지면 퇴실할 수 있다. 그 경우에는 회복하고 나서 선거에 돌아올 수 있지만, 질병 이외의 이유로 퇴실했을 때는 이후의 선거에 참가할 수 없다.

수석 추기경의 주도 아래 문답을 통해 선거법에 의문이 없는지 확인한다. 의문이 없으면 선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시작 전에 투표와 개표를 진행할 계표인과 검표인도 추기경단 중에서 추첨으로 결정한다. 선거는 수석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주재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수석 추기경이 선거권이 없으면 차석 추기경이, 차석 추기경도 선거권이 없으면 일반적 서열에 따라 선거인 추기경 중 최고령 추기경이 주재한다. 투표 개시에 늦었던 추기경은 그 선거에 참가할 수 없다. 선거 중에 병환 탓에 건강이 나빠지면 퇴실할 수 있다. 그 경우에는 회복하고 나서 선거에 돌아올 수 있지만, 질병 이외의 이유로 퇴실했을 때는 이후의 선거에 참가할 수 없다.
곧이어 비밀 서면 투표가 진행된다. 추기경들 각각 'Eligo in Summum Pontificem(나는 교황으로 ~를 선출합니다}'라는 라틴어 문구가 인쇄된 투표 용지가 주어진다. 추기경들은 투표지에 자필로 자신이 선택한 후보의 이름을 적어 투표한다.
자신의 표를 투표함에 넣기 전에, 추기경들은 선임 순으로 각각 기표를 마친 투표 용지를 긴 방향으로 반으로 접어서 잘 보이도록 높이 들어 올린 뒤 제단으로 다가가 접시에 놓고 큰 소리로 이 기도를 바친다.
Testor Christum Dominum, qui me iudicaturus est, me eum eligere, quem secundum Deum iudico eligi debere |
저의 주님이시며 심판자이신 그리스도님을 증인 삼아, 이 표가 하느님 뜻을 헤아려 제가 뽑혀 마땅하다고 생각한 이에게 행사되나이다. |
이후 추기경은 투표 용지를 타원형의 은과 금으로 된 투표함에 넣는다. 질병으로 제대에 갈 수 없는 추기경은 접힌 투표 용지를 검열관 중 한 명에게 주고, 검열관은 표를 제단에 가져와 같은 방식으로 놓지만 선서는 하지 않는다.
투표가 끝나면 검열관들이 번호가 적힌 나무 공들로 투표 용지 하나를 꺼낼 때마다 일련번호가 적힌 공을 하나씩 맞춰서 추기경단의 수에 정확히 맞는지 확인한다. 투표 용지의 수가 투표자 수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개표를 하지 않으며 소각하고 다시 투표를 진행한다. 따라서 표를 백지로 낼 수 없다. 2013년 콘클라베에서 프란치스코가 5번째 투표에서 선출되었다지만 실제로는 이때 백지가 나와서 수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투표를 해서 정확히는 6번째 때 선출되었다. 콘클라베 규칙에 따라 해당 투표는 개표하지 않고 즉시 6번째 투표를 진행해야 했다. 투표 용지의 수가 투표자 수와 일치한다면 개표가 진행된다. 첫 번째 검열관은 투표지를 확인한 뒤 투표 용지에 적힌 이름을 읽고 2번째 검열관에게 표를 전달한다. 2번째 검열관은 투표지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3번째 검열관에게 전달한다. 3번째 검열관은 투표지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마이크에 대고 추기경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이름을 크게 외친 후 투표 결과를 기록한다. 두 투표지가 같은 사람이 쓰고 이름이 같은 경우 한 표로 계산되는데, 이름이 다를 경우 두 투표 용지는 모두 무효지만 전체 투표는 유효하다. 모든 투표 용지가 읽히고 투표 결과가 집계되면, 검열관은 각 투표 용지의 "Eligo"라는 글자 부분에 길쭉한 바늘로 구멍을 뚫은 후 빨간 실에다가 꿴 뒤 끈의 끝을 매듭지어 보관한다. 개표가 끝나면 누가 몇 표를 받았는지 최종 결과를 발표한 뒤 교황 선출 요건인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표들은 그대로 1939년 콘클라베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무쇠 난로의 불에 태워 없애버리는데, 선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논란, 시비, 구설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첫 날에는 투표를 오후에 단 한 번만 진행하며,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그 다음 날부터는 매일 오전/오후에 2번씩 총 4번까지 선거를 진행한다. 20세기 이후 기준 보통 첫날 투표에서 교황이 당선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 탐색전 및 예비 투표로 본다. 오전/오후의 첫 투표에서 선출되면 바로 흰 연기를 피우지만, 불발되어도 검은 연기는 바로 피우지 않는다. 2번째 투표의 결과에 따라서 흰/검은 연기를 피운다. 즉, 검은 연기는 하루 최대 2번만 피우므로 2번째 투표부터는 투표가 끝난 즉시 투표용지들을 불에 태우지 않고 모아놓았다가 이후에 태운다. # 이 절차에 따라 3일 동안 총 9회의 투표를 하고서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투표를 하루 휴식하고 추기경들이 기도, 비공식 토론, 수석 부제 추기경의 간략한 영적 권고를 듣는다. 이후 이런 방식을 3번 더 실시한다. 여기까지 총 12일(휴식일 3일 포함)에 걸쳐 투표를 총 33회 해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기도와 대화 그리고 성찰을 위한 마지막 휴식이 주어진다. 궁내원장은 추기경들에게 선거 방식을 어떻게 할지 의견을 묻는다. 그 뒤의 투표 진행 방법은 선거인들의 과반수가 결정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만, 교황 선출은 기존처럼 3분의 2 이상 득표일 경우에만 유효하고, 추기경들은 이전 라운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후보 가운데 1명만 선택하고, 해당 후보 2명은 투표할 수 없다. 2013년 기준 20세기 들어 콘클라베는 최소 이틀, 최대 닷새 동안 열렸고 평균 기간은 3일이었다.
추기경단 이외에 교황 선거 중에 추기경들과 만나거나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추기경의 비서, 교황청 전례 위원장, 의식장 등이며, 국제어에 능통한 몇 사람의 고해 사제, 2명의 의사, 요리사, 청소원, 버스 운전사 뿐이다. 추기경뿐만이 아니라 스태프 전원이 선거의 진행이나 내용에 대해 중대한 비밀을 지킬 의무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스태프들은 콘클라베 개최 하루 이틀 전에 따로 모여서 비밀 선서 및 서약서를 쓰는 예식을 한다.# 이들도 비밀을 누설하면 파문된다.
특히 추기경단은 외부 통신은 물론 접촉이 엄중하게 금지된다. 1996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정한 대로《주님의 양 떼》에서는 특히 신문, 텔레비전, 컴퓨터 및 휴대전화 인터넷, 라디오 등 미디어나 녹음기와 절대 접촉하지 말 것을 다짐한다. 2005년 콘클라베에서는 추기경단의 숙소인 성녀 마르타의 집에 전화나 인터넷 회선이 절단되었으며, 성녀 마르타의 집과 시스티나 경당에는 휴대전화 사용이나 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방해 전파가 흐르는 등 전자적으로 경계 태세를 강화하였다. 심지어 음식 안에 비밀 쪽지 같은 걸 숨겨서 외부와 주고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라비올리, 치킨, 리가토니 같이 부피가 크거나 속에 공간이 있는 식재료는 의도적으로 메뉴에서 제외되며, 추기경들이 식사 후 사용한 냅킨과 쓰레기도 철저히 검사한다. # 이는 부분적으로 추기경들의 고립을 보장하기 위하고, 또 다른 이유로는 독살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음식은 2025년 콘클라베 기준 스파게티, 삶은 채소, 미네스트로네, 아로스티치니(이탈리아 아브루초식 양꼬치)를 제공했는데 이탈리아 출신 마우로 피아첸차 추기경에 의하면 기차역에서나 먹을 것 같은 메뉴다. 미국의 티모시 M. 돌란 추기경은 "(투표를) 빨리 끝내야겠다는 좋은 동기가 됐다"는 농담을 했다.
이렇게 메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콘클라베가 열리기 직전에는 추기경들이 바티칸 근교 식당을 찾는 경우가 있다. 추기경들도 사람인지라 콘클라베의 통제된 생활이 매우 힘들기에 그 전에 미리 먹고싶은 음식을 먹어두려는 것. 2013년 콘클라베 직전에는 많은 추기경들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200m 떨어진 식당 '알 파세토 디 보르고(Al Forno di Borgo)'에서 라자냐나 구운 오징어 등을 찾았다.
추기경들은 집중해서 일해야 하다 보니 체내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는데, 특히 영미 문화권 출신 추기경들에게 이런 현상이 심하다.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 속에서 투표가 이뤄진다. 화장실 갈 사람이 있으면 추기경단 중 막내가 열쇠를 가지고 화장실까지 안내하기 때문에, 다른 데로 도망갈 수 없다.
투표가 끝나면 검열관들이 번호가 적힌 나무 공들로 투표 용지 하나를 꺼낼 때마다 일련번호가 적힌 공을 하나씩 맞춰서 추기경단의 수에 정확히 맞는지 확인한다. 투표 용지의 수가 투표자 수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개표를 하지 않으며 소각하고 다시 투표를 진행한다. 따라서 표를 백지로 낼 수 없다. 2013년 콘클라베에서 프란치스코가 5번째 투표에서 선출되었다지만 실제로는 이때 백지가 나와서 수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투표를 해서 정확히는 6번째 때 선출되었다. 콘클라베 규칙에 따라 해당 투표는 개표하지 않고 즉시 6번째 투표를 진행해야 했다. 투표 용지의 수가 투표자 수와 일치한다면 개표가 진행된다. 첫 번째 검열관은 투표지를 확인한 뒤 투표 용지에 적힌 이름을 읽고 2번째 검열관에게 표를 전달한다. 2번째 검열관은 투표지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3번째 검열관에게 전달한다. 3번째 검열관은 투표지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마이크에 대고 추기경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이름을 크게 외친 후 투표 결과를 기록한다. 두 투표지가 같은 사람이 쓰고 이름이 같은 경우 한 표로 계산되는데, 이름이 다를 경우 두 투표 용지는 모두 무효지만 전체 투표는 유효하다. 모든 투표 용지가 읽히고 투표 결과가 집계되면, 검열관은 각 투표 용지의 "Eligo"라는 글자 부분에 길쭉한 바늘로 구멍을 뚫은 후 빨간 실에다가 꿴 뒤 끈의 끝을 매듭지어 보관한다. 개표가 끝나면 누가 몇 표를 받았는지 최종 결과를 발표한 뒤 교황 선출 요건인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표들은 그대로 1939년 콘클라베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무쇠 난로의 불에 태워 없애버리는데, 선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논란, 시비, 구설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첫 날에는 투표를 오후에 단 한 번만 진행하며,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그 다음 날부터는 매일 오전/오후에 2번씩 총 4번까지 선거를 진행한다. 20세기 이후 기준 보통 첫날 투표에서 교황이 당선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 탐색전 및 예비 투표로 본다. 오전/오후의 첫 투표에서 선출되면 바로 흰 연기를 피우지만, 불발되어도 검은 연기는 바로 피우지 않는다. 2번째 투표의 결과에 따라서 흰/검은 연기를 피운다. 즉, 검은 연기는 하루 최대 2번만 피우므로 2번째 투표부터는 투표가 끝난 즉시 투표용지들을 불에 태우지 않고 모아놓았다가 이후에 태운다. # 이 절차에 따라 3일 동안 총 9회의 투표를 하고서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투표를 하루 휴식하고 추기경들이 기도, 비공식 토론, 수석 부제 추기경의 간략한 영적 권고를 듣는다. 이후 이런 방식을 3번 더 실시한다. 여기까지 총 12일(휴식일 3일 포함)에 걸쳐 투표를 총 33회 해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기도와 대화 그리고 성찰을 위한 마지막 휴식이 주어진다. 궁내원장은 추기경들에게 선거 방식을 어떻게 할지 의견을 묻는다. 그 뒤의 투표 진행 방법은 선거인들의 과반수가 결정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만, 교황 선출은 기존처럼 3분의 2 이상 득표일 경우에만 유효하고, 추기경들은 이전 라운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후보 가운데 1명만 선택하고, 해당 후보 2명은 투표할 수 없다. 2013년 기준 20세기 들어 콘클라베는 최소 이틀, 최대 닷새 동안 열렸고 평균 기간은 3일이었다.
추기경단 이외에 교황 선거 중에 추기경들과 만나거나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추기경의 비서, 교황청 전례 위원장, 의식장 등이며, 국제어에 능통한 몇 사람의 고해 사제, 2명의 의사, 요리사, 청소원, 버스 운전사 뿐이다. 추기경뿐만이 아니라 스태프 전원이 선거의 진행이나 내용에 대해 중대한 비밀을 지킬 의무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스태프들은 콘클라베 개최 하루 이틀 전에 따로 모여서 비밀 선서 및 서약서를 쓰는 예식을 한다.# 이들도 비밀을 누설하면 파문된다.
특히 추기경단은 외부 통신은 물론 접촉이 엄중하게 금지된다. 1996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정한 대로《주님의 양 떼》에서는 특히 신문, 텔레비전, 컴퓨터 및 휴대전화 인터넷, 라디오 등 미디어나 녹음기와 절대 접촉하지 말 것을 다짐한다. 2005년 콘클라베에서는 추기경단의 숙소인 성녀 마르타의 집에 전화나 인터넷 회선이 절단되었으며, 성녀 마르타의 집과 시스티나 경당에는 휴대전화 사용이나 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방해 전파가 흐르는 등 전자적으로 경계 태세를 강화하였다. 심지어 음식 안에 비밀 쪽지 같은 걸 숨겨서 외부와 주고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라비올리, 치킨, 리가토니 같이 부피가 크거나 속에 공간이 있는 식재료는 의도적으로 메뉴에서 제외되며, 추기경들이 식사 후 사용한 냅킨과 쓰레기도 철저히 검사한다. # 이는 부분적으로 추기경들의 고립을 보장하기 위하고, 또 다른 이유로는 독살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음식은 2025년 콘클라베 기준 스파게티, 삶은 채소, 미네스트로네, 아로스티치니(이탈리아 아브루초식 양꼬치)를 제공했는데 이탈리아 출신 마우로 피아첸차 추기경에 의하면 기차역에서나 먹을 것 같은 메뉴다. 미국의 티모시 M. 돌란 추기경은 "(투표를) 빨리 끝내야겠다는 좋은 동기가 됐다"는 농담을 했다.
이렇게 메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콘클라베가 열리기 직전에는 추기경들이 바티칸 근교 식당을 찾는 경우가 있다. 추기경들도 사람인지라 콘클라베의 통제된 생활이 매우 힘들기에 그 전에 미리 먹고싶은 음식을 먹어두려는 것. 2013년 콘클라베 직전에는 많은 추기경들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200m 떨어진 식당 '알 파세토 디 보르고(Al Forno di Borgo)'에서 라자냐나 구운 오징어 등을 찾았다.
추기경들은 집중해서 일해야 하다 보니 체내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는데, 특히 영미 문화권 출신 추기경들에게 이런 현상이 심하다.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 속에서 투표가 이뤄진다. 화장실 갈 사람이 있으면 추기경단 중 막내가 열쇠를 가지고 화장실까지 안내하기 때문에, 다른 데로 도망갈 수 없다.
투표 결과는 투표 용지를 태울 때 외부에 알려진다. 과거(1914년 베네딕토 15세 콘클라베부터)에는 선거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투표 용지와 젖은 짚단을 함께 태워서 불완전 연소되어 '미정'이란 의미의 검은 연기가 나도록 했고, 결과가 나왔을 경우엔 마른 짚을 함께 태워서 '결정되었음'을 알리는 흰 연기가 나오도록 했었다. 그런데 요한 23세가 선출된 1958년 콘클라베 때는, 지푸라기가 제대로 타지 않는 바람에 연기의 색깔이 불명확해져 회색 연기가 나온 데다 양도 너무 적어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아니 그래서 결과가 나왔다는 거야 안 나왔다는 거야?'라며 혼란을 준 적이 있었다. 때문에 1963년에 바오로 6세가 선출된 콘클라베에서는 이탈리아 육군이 제공한 백색, 흑색 연막탄을 써서 결과를 확실히 했다. 여기에는 TV 방송사의 압력도 있었다.[18] 소각이 끝나면 투표 결과에 대한 공식 기록을 만들어 봉인한 뒤 교황청 문서보관소에 보관한다.
위 영상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당시 영상.
이후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된 2005년 콘클라베부터는 교황 선출이 확정되었을 때 시스티나 경당의 굴뚝에서 흰 연기를 피운 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시계탑의 종을 울리는 것을 병행하고 있으며, 기존의 투표 용지 소각용 난로 바로 옆에 연기색을 확실히 하기 위한 물질을 태우는 용도의 무쇠 난로를 추가로 설치했다. 소각용 난로와 굴뚝은 콘클라베 기간 때만 특별 설치하는 것이며, 평소엔 존재하지 않는다.[19] 2013년 콘클라베부터는 아예 앞에서 언급된 여분의 난로에서 화학 물질을 태워 연기의 색을 보다 명확하게 하였는데 검은 연기는 과염소산 칼륨, 안트라센, 황을 배합한 걸 태우고 흰 연기는 염소산 칼륨, 젖당, 송진을 태운다.
차기 교황이 확정되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발코니에 나가기 약 40분~1시간 전 쯤 수석 추기경이나 품계와 연배가 가장 높은 추기경이 선거인단을 대표해 선출된 사람의 동의를 구한다. 승낙한다면 "ipso facto(틀림없이)"라고 라틴어로 말하면 된다. 새로 선출된 교황은 자신의 교황명을 직접 정해야 한다. 자신의 속명[20]을 교황명으로 쓴 마지막 인물은 1555년에 선출된 제222대 교황 마르첼로 2세(마르첼로 체르비니)였다. 새 교황이 '요한'이라는 인물을 평소에 존경하거나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싶어 할 경우, 그 교황은 '요한 24세'가 될 것이다. 단, 첫 번째 교황의 이름인 베드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는데, 예수께서 자신의 으뜸 제자에게 친히 지어주신 이름을 쓰자니 부담스러워서 그렇다고 한다. 위에 그림에서 사용할 이름 후보가 적힌 종이에서 Peter(베드로의 영어식 표현)에 X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것 때문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불문율일 뿐, 성문법적인 금제는 없다. 실제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가 물린 교황도 있다. 질문 절차가 끝나면 교황전례원장(공증인 역할)과 의전사제 2명이 새 교황의 수락 사실과 이름을 기록하고 투표지를 불에 태워 흰 연기를 피워 올린다.
교황은 시스티나 경당 옆에서 몇 걸음 떨어진 작은 방인, 눈물의 방(Stanza delle Lacrime, Room of Tears) 또는 울음의 방이라는 별명이 있는 제의실에 간다. 이 작은 성구실(sacristy)의 별명인 눈물의 방은 1878년 콘클라베 때 교황 레오 13세 선출 후 이 방에서 선출 당시 나이가 칠순에 가까웠고 본인의 건강이 썩 좋지 못한 편이라 자신이 너무 늙었다면서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린 것에서 유래되었다. 1978년 10월 콘클라베에서 요한 바오로 2세도 이곳에서 눈물을 흘렸다. 베네딕토 16세는 2016년 회고록에서 "진심으로 선출되지 않기를 바랐다. 저에게는 진정 눈물의 장소였다"고 언급했다. 2013년 콘클라베에서 프란치스코도 이곳에서 눈물을 흘렸다. 제의실에는 옷걸이가 있는데 왼쪽엔 이탈리아 재단사가 만든, 대·중·소(유럽 기준 50·54·58) 크기로 미리 준비된 흰색 수단(soutane) 3벌이 걸려 있다. 이는 새 교황의 체격을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958년 콘클라베 때 요한 23세는 제일 큰 수단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 등쪽 솔기를 따로 뜯어서 열고 옷핀으로 고정시켜 겨우 입었다. 옷걸이 오른쪽에는 사이즈 별로 준비된 로체타 4벌이 걸려 있다. 7개의 흰색 신발 상자들이 쌓여 있는데, 다양한 크기의 교황 신발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황 비오 6세의 캅파와 교황 비오 7세의 영대(stole)를 포함한, 교황들이 입었던 장백의, 제의, 전례 때 입는 망토인 캅빠(Cappa, Cope, 캅파, 카파)가 보관되어 있다. 교황은 추기경의 빨간 수단과 비레타를 벗은 후 흰 수단 위에 교황의 권위를 뜻하는 진홍색 모제타(어깨 망토)를 걸친 뒤 금색 자수가 새겨진 빨간 영대를 두르고, 황금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머리에 흰색 주케토(모자)를 쓰고 빨간색 구두를 신는다. 의복 중 일부를 안 입는 교황들도 있는데 프란치스코는 붉은 모제타를 두르지 않고, 평소 신던 검은색 신발을 신고 나가 이목을 끌었다. 교황은 신자들에게 인사하기 전 기도와 묵상을 가진다.
교황은 시스티나 경당으로 돌아와 예식을 갖는데 교황은 교황 직무에 관한 복음서 구절을 읽고 짧은 기도를 한다. 나머지 추기경들은 새 교황 앞에 줄 서서 알현해 일일이 경의를 표하고, 복종의 서약을 받으며 함께 기도한다. 2013년 콘클라베부터 새로 예식이 추가되었는데, 교황은 인근 파올리나 성당에 들러 성체 앞에서 기도를 드린다. 이후 성 베드로 대성당 파사드의 가운데에 있는 '강복의 발코니'에 간다.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먼저 간 선임 부제급 추기경은 외부 사람들에게 새 교황 탄생 소식과 이름을 육성으로 알린다. 이를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21])이라 한다.
2025년 콘클라베의 레오 14세의 예시 |
(라틴어) Annuntio vobis gaudium magnum: Habemus Papam: Eminentissimum ac reverendissimum Dominum, Dominum 'Robertum Franciscum' Sanctæ Romanæ Ecclesiæ Cardinalem 'Prevost', Qui sibi nomen imposuit 'LEONEM XIV'. (의역) 매우 기쁜 소식을 발표하겠습니다: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지극히 탁월하시고 공경하올 분,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이십니다. 이분은 자신을 '레오 14세'로 명명하셨습니다. (직역)[22] 나는 여러분에게 큰 기쁨(기쁜 소식)을 알립니다. 우리는 교황을 가집니다. 가장 뛰어나시고 가장 경외할만한 분, [23] 그분 '로버트 프랜시스'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인 '프리보스트'[24] 그가 자기 자신에게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정했습니다.[25] |
역대 하베무스 파팜 선언 모음 |
콘클라베 | 본명 | 이름 | 성씨 | 교황명 | 교황명(라틴어로) | 교황명의 라틴어 어형 | 즉위 번호 |
Eugenium | Pacelli | Pium | 미공표 | ||||
Angelum Iosephum | Roncalli | Ioannis XXIII (Ioannis Vigesimi Tertii) | 공표 | ||||
Ioannem Baptistam | Montini | Paulum VI (Paulum Sextum) | 공표 | ||||
Albinum | Luciani | Ioannis Pauli I (Ioannis Pauli Primi) | 공표 | ||||
Carolum | Wojtyła | Ioannis Pauli | 미공표 | ||||
Iosephum | Ratzinger | Benedicti XVI (Benedicti Decimi Sexti) | 공표 | ||||
Georgium Marium | Bergoglio | Franciscum | 없음 | ||||
Robertum Franciscum | Prevost | Leonem XIV (Leonem Decimum Quartum) | 공표 |
아래 예시 영상은 2005년 베네딕토 16세의 콘클라베 직후 교황으로서의 첫 강복 모습이다.
- +Sancti Apostoli Petrus et Paulus: de quorum potestate et auctoritate confidimus ipsi intercedant pro nobis ad Dominum.
+거룩한 사도인 베드로와 바오로여, 당신들께 맡겨진 권한과 권위를 신뢰하오니 주님 곁에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Amen.
+Precibus et meritis beatæ Mariae semper Virginis, beati Michaelis Archangeli, beati Ioannis Baptistæ, et sanctorum Apostolorum Petri et Pauli et omnium Sanctorum misereatur vestri omnipotens Deus; et dimissis omnibus peccatis vestris, perducat vos Iesus Christus ad vitam æternam.
+평생 동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대천사 미카엘, 세례자 요한, 거룩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모든 성인의 기도와 공덕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실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 Amen.
+Indulgentiam, absolutionem et remissionem omnium peccatorum vestrorum, spatium verae et fructuosae poenitentiæ, cor semper penitens, et emendationem vitae, gratiam et consolationem Sancti Spiritus; et finalem perseverantiam in bonis operibus tribuat vobis omnipotens et misericors Dominus.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이들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 주시며, 참되고도 결실 풍부한 참회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항상 기꺼이 준비되어 있는 마음, 성령의 은총과 위로와 함께 선을 행하며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인내심을 허락해 주소서.
◎ Amen.
+Et benedictio Dei omnipotentis,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descendat super vos et maneat semper.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Amen.
새 교황은 적절한 때에 즉위식을 거행한 다음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로마 주교 착좌식을 거행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즉위식을 미루기를 바랐는데, 다름 아닌 즉위식을 거행하기로 한 때가 하필 요한 바오로 2세가 보고 싶어 하던 축구 경기가 방송되던 때라 그렇다. 이 경기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지역 예선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회인 1974년도의 3·4위 결정전에서 강호인 브라질을 꺾고 3위를 하여 한바탕 돌풍을 일으킨 폴란드(요한 바오로 2세의 모국)가 또 다른 강호 중 하나인 포르투갈을 상대하는 날이 바로 즉위식이 거행된 10월 16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2:0으로 폴란드가 원정승을 거두었다.
교황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추기경들이 서로 교황이 되려고 안달이 나 있었지만 현대 추기경들 사이에서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교황직을 적극적으로 맡고 싶어하는 의견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종교계뿐 아니라 어느 집단의 최고위직이라면 명예도 명예지만 시간적 여유의 부재와 막중한 책임감 그리고 대외활동 등으로 인해 부담이 굉장할 것이 당연하며, 교황과 추기경들도 엄연히 사람인 이상 이런 현실적인 눈치도 존재한다. 콘클라베를 다룬 영화들 중 추기경들이 다들 교황 자리를 버겁게 여기며 교황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와 추기경들 모두 교황이 되길 바라며 권력 다툼을 벌이는 콘클라베 중에서는 전자가 현실과 가깝다. 이 때문에 교황이 되고 싶었던 몇몇 추기경은 아닐 수 있으나 콘클라베가 끝났을 때 대다수의 추기경들은 끝날 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다.
1978년에 열린 두 콘클라베에 참가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콘클라베가 끝났을 때 추기경단이 박수를 치며 교황을 환영하고, 2025년 콘클라베에 참가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영화 콘클라베와 같은 야합이나 권력투쟁은 없었으며, 형제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에서 치뤄졌다"라고 각각 인터뷰에 밝혔다. 2025년 콘클라베 때 교황 레오 14세와 함께 대중들 앞에서 유흥식 추기경을 포함한 추기경단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오묘한 표정을 지은 레오 14세와 달리 추기경단들은 하나같이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이후 레오 14세가 추기경단 중 젊은 축에 속하는 만 69세(선출 기준)인 것[28]을 알게 된 한국 네티즌들은 저 웃음을 보며 '사실상 선배들이 막내에게 교황 짬을 때렸다', 'Mamihlapinatapai(마밀라피나타파이)의 라틴어 버전은 콘클라베다', '교황뽑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인 것 같다', '막내야 고생해라'라는 의미같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주딱 드립이 오갔는데, "완장 짬처리한 자들의 웃음"이라며 커뮤니티에 대입하면 쉽게 이해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에펨코리아
그래서 교황으로 당선된 추기경이 교황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는 작은 방의 별명이 눈물의 방(Stanza delle Lacrime, Room of Tears)이고, 몇몇 교황들은 실제로 이곳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고 해도 21세기에도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청 내 권력다툼에 치인 끝에 생전 퇴위를 선택하고, 2025년 콘클라베 직전에도 유력 차기 교황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과 비방이 부각되는 것 등 교황청이 권력다툼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저녁 만찬은 콘클라베 때의 식사보다는 비교적 화려해진다. 2005년 콘클라베 기준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단에 콩수프와 콜드컷(식은 고기와 치즈를 곁들인 요리), 샐러드와 과일로 짜여진 만찬을 요청했지만 저녁 식사 특별 메뉴는 아이스크림과 와인밖에 없었다. 2025년 콘클라베 때의 특식으로는 샴페인과 케이크가 나왔다.
교황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추기경들이 서로 교황이 되려고 안달이 나 있었지만 현대 추기경들 사이에서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교황직을 적극적으로 맡고 싶어하는 의견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종교계뿐 아니라 어느 집단의 최고위직이라면 명예도 명예지만 시간적 여유의 부재와 막중한 책임감 그리고 대외활동 등으로 인해 부담이 굉장할 것이 당연하며, 교황과 추기경들도 엄연히 사람인 이상 이런 현실적인 눈치도 존재한다. 콘클라베를 다룬 영화들 중 추기경들이 다들 교황 자리를 버겁게 여기며 교황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와 추기경들 모두 교황이 되길 바라며 권력 다툼을 벌이는 콘클라베 중에서는 전자가 현실과 가깝다. 이 때문에 교황이 되고 싶었던 몇몇 추기경은 아닐 수 있으나 콘클라베가 끝났을 때 대다수의 추기경들은 끝날 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다.
1978년에 열린 두 콘클라베에 참가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콘클라베가 끝났을 때 추기경단이 박수를 치며 교황을 환영하고, 2025년 콘클라베에 참가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영화 콘클라베와 같은 야합이나 권력투쟁은 없었으며, 형제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에서 치뤄졌다"라고 각각 인터뷰에 밝혔다. 2025년 콘클라베 때 교황 레오 14세와 함께 대중들 앞에서 유흥식 추기경을 포함한 추기경단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오묘한 표정을 지은 레오 14세와 달리 추기경단들은 하나같이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이후 레오 14세가 추기경단 중 젊은 축에 속하는 만 69세(선출 기준)인 것[28]을 알게 된 한국 네티즌들은 저 웃음을 보며 '사실상 선배들이 막내에게 교황 짬을 때렸다', 'Mamihlapinatapai(마밀라피나타파이)의 라틴어 버전은 콘클라베다', '교황뽑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인 것 같다', '막내야 고생해라'라는 의미같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주딱 드립이 오갔는데, "완장 짬처리한 자들의 웃음"이라며 커뮤니티에 대입하면 쉽게 이해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에펨코리아
그래서 교황으로 당선된 추기경이 교황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는 작은 방의 별명이 눈물의 방(Stanza delle Lacrime, Room of Tears)이고, 몇몇 교황들은 실제로 이곳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고 해도 21세기에도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청 내 권력다툼에 치인 끝에 생전 퇴위를 선택하고, 2025년 콘클라베 직전에도 유력 차기 교황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과 비방이 부각되는 것 등 교황청이 권력다툼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저녁 만찬은 콘클라베 때의 식사보다는 비교적 화려해진다. 2005년 콘클라베 기준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단에 콩수프와 콜드컷(식은 고기와 치즈를 곁들인 요리), 샐러드와 과일로 짜여진 만찬을 요청했지만 저녁 식사 특별 메뉴는 아이스크림과 와인밖에 없었다. 2025년 콘클라베 때의 특식으로는 샴페인과 케이크가 나왔다.
- 최장은 1268년 클레멘스 4세의 사망 이후 시작되어 그레고리오 10세를 선출한 1268년~1271년 교황 선거다. 이탈리아 파벌과 프랑스 파벌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정치적으로 맞붙었다. 이 투쟁은 장장 2년 10개월을 끈 끝에 각 파벌의 리더 격인 추기경 6명이 합의하여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사목하다 십자군 원정에 나가있던 부제 테오발도 비스콘티가 선출되며 끝났다. 숙소와 투표장이 분리되어 출퇴근 형식이 된 1996년 이후 콘클라베와는 달리 이때는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비테르보 대성당 안에 선거인단 전체가 감금되는 형식이었고, 끝도 없이 길어지는 선거에 지친 시민들이 지붕을 뜯어 비를 새게 만들고 들어가는 식량도 줄여 추기경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결국 그레고리오 10세는 콘클라베가 3일내 새 교황을 선출하지 못하면 점심과 저녁식사량을 반으로 줄이고, 5일 지나면 빵과 물, 포도주만 제공하는 식으로 규정을 바꾸었다.
- 최단은 율리오 2세가 선출되었던 1503년 10월 교황 선거였다. 단 한 번의 투표로 끝났으며, 10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전임 비오 3세가 교황 즉위 후 채 1달을 못 넘기고 사망해 치러졌으며, 비오 3세의 전임자 알렉산데르 6세의 사생아이자 명정치가였던 체사레 보르자와 당선자 본인이 그 동안의 정치적인 앙금을 뒤로하고 결탁했고, 따라서 스페인 추기경들의 표는 어디로 갈지 미리 정해져 있었기에 투표는 사실상 요식 행위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현대에는 콘클라베 투표 1회차 때 바로 교황이 정해진다면 문제라고 여긴다. 현대 콘클라베 제도의 정립 이후 당선자가 이 시점에서 확정된 일은 없다. 이에 관한 별도의 피선거권 규정이 없고,[29] 세속 현실 정치에서 치르는 경선이나 예비후보 제도, 출마 및 입후보 등록도 없이 피투표자에 대해 아무런 제한이 없는 자서 투표제로 진행되므로, 첫 투표에서 바로 3분의 2 득표자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후보자가 2-3명 정도로 압축되는 일조차 어렵다. 따라서 적어도 한두 번 이상의 투표를 치러야 후보군이 압축될 수 있고, 이후에 협상과 합의가 이루어져야 3분의 2 이상의 득표가 가능하기 때문.[30]
1978년 8월 콘클라베 영상. 8:18과 10:10부터 27에는 앞서 언급된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10:38에는 이 콘클라베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되는 알비노 루치아니 추기경, 12:55에는 베네딕토 16세가 되는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도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1978년 8월 콘클라베 참석 회고. CPBC 평화방송 영상.
2025년 콘클라베를 다룬 가톨릭 평화방송의 관련 보도영상 중에서
한국인 추기경의 콘클라베 참석은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1969년 서임)이 첫 번째 사례였다.
-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망으로 열린 2005년 콘클라베는 연령 제한(83세)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다. 다만 교황이 선출되면 즉위미사에서 교황을 위한 공식 기도를 올리는 역할을 하는 수석 사제를 맡았기 때문에 바티칸에는 있었다.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2006년 서임~2011년 투표 정년 만료)과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2014년 서임~2023년 투표 정년 만료)은 콘클라베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유흥식 라자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2022년 서임)이 2025년 기준 한국인 성직자 중에서 유일하게 콘클라베에 참석하여 투표할 수 있다. 1951년 11월생이기 때문에 2031년 11월까지 선거권이 있다. 2025년 4월 21일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망으로 2025년 콘클라베에 참석하였다. 이는 한국인 추기경이 1978년 이후 47년 만에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시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가 추기경에 서임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고, 차기 콘클라베에 참석할 수 있을까 예상되었지만[31]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망하기 전까지 추기경으로 서임되지 못해 2025년 콘클라베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 슈즈 오브 더 피셔먼(어부의 신발): 1963년 소설. 콘클라베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7번의 투표 끝에 공산권인 소련의 우크라이나 출신 추기경 키릴 파블로비치 라코타가 교황에 선출된다는 내용이다. 1978년 10월 콘클라베에서 8번의 투표 끝에 공산권인 폴란드의 추기경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가 교황에 선출되어 요한 바오로 2세가 되는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하베무스 파팜): 콘클라베 과정을 주제로 한 영화로, 추기경들이 갖는 심적 부담을 잘 보여준다. 콘클라베의 후보자이자 유권자인 추기경들이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의 내용이란 게 하나같이 '주님, 저는 아닙니다.', '주님, 제발 저는 뽑히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는 아직 교황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내용. 지식과 신앙심, 정치 능력을 갈고 닦은 추기경들마저도 큰 심적 부담을 가질 정도로 교황이 매우 큰 책임감과 의무를 요구하는 막중한 자리임을 나타내준다.[33]
- 교회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콘클라베는 이탈리아의 로마 지역 교회에 대하여 세계의 지역 교회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로마 주교가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을 서임하고 그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이 로마 주교를 선출하면서, 로마 지역 교회와 세계의 지역 교회들이 서로에게 강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특성이 드러나는 예가 현대 교황들의 출신지인데, 폴란드 출신의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된 1978년부터 40년 넘게 이탈리아의 수석 주교가 이탈리아 출신이 아니다. 또한 선출에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이 관여하면서 교황이 세계 교회에 대해 가지는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보완해 준다.
- 이탈리아에서는 콘클라베 기간 동안 차기 교황이 누가 될지를 두고 전통적으로 도박이 성행해 왔고[34] 이 때문에 바티칸 측은 골머리를 썩여왔다. 그래서 이 시절에는 콘클라베로 도박을 하다 적발된 가톨릭 신자에게는 무려 파문이라는 무시무시한 징계가 내려졌으나 베네딕토 15세가 새로운 교회법(1917년 교회법)을 공포하는 과정에서 폐지되었다. 이제는 파문당할 일도 없으니 유럽의 도박업체들은 콘클라베 기간엔 앞다투어 베팅을 제공한다. 밈 코인도 만들어졌다. 물론 교계 내부적으론 매우 불편하게 여긴다. 심지어 도박업체에서 기어이 선을 넘다 제재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 베네딕토 16세가 당선되었던 2005년 콘클라베 당시 아일랜드의 유명 도박업체 패디파워가 바티칸 한복판에서 배당률이 기재된 입간판을 들고 광고를 하다가 쫓겨난 것.
- 콘클라베 형식으로 1인을 선출하는 선거 방식을 교황 선출 방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의회나 의결기구에서 하는 선거는 많은 경우 콘클라베처럼 입후보 절차 없이 임의의 피선거권자에게 투표하는 주관식 투표로 치러지기 때문에 일부 의회 의장단 선거와, 대학 총장 선거, 일부 의원내각제 국가의 대통령 선거 및 총리 선거도 콘클라베와 유사한 형태로 치러지고 이 같은 형태의 선거를 지칭할 때 이런 표현이 흔히 쓰인다. 다만 콘클라베와 달리 대통령 선거인단이나 의원들은 직/간선제로 선출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애초에 바티칸은 군주제이고[35] 대통령 선출은 공화정이기에 차이는 당연하다.
|
[1]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특별하냐고 묻는다면 교파 간의 갑론을박이 있기는 하지만,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인식 그 자체는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로마 지역 교회는 베드로의 순교 도시를 사목한다는 특별함은 인정받았다. 게다가 굳이 그게 아니었어도 당대 최대 도시이자 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니 전혀 특별하지 않다고는 말 못 했을 것이다.[2] 역시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수장'이냐고 물으면 교단 간 의견이 갈리지만.[3] 단순히 투표가 길어지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당시 교황은 일국의 군주조차 마음 먹으면 파문시켜서 막대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권력을 지녔다 보니, 책임 져야 할 일도 많았고, 이런 교황이 부재하면 그동안 유럽 곳곳에서 멈추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거기다 이 투표에 참가한 이들의 생활비 부담은 선거가 열리는 도시 사람들 몫이었다. 왕 위에 있는 게 교황인데, 그걸 뽑는 추기경들에게 해줘야 하는 대우의 최저치는 얼마나 높았겠는가?[4] 이 문을 걸어잠근 것에서 콘클라베라는 단어가 유래됐다. 미국 언론 ABC에서 작성한 기사에 따르면 “지붕을 뜯으면 추기경들에게 성령이 들어가실 수 있겠지!”라며 짓궂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5] 참고로 이랬는데도 투표 종료까지 몇 달이 더 걸렸다고 한다.[6] 그러나 정작 본격적으로 시스티나 경당으로 위치가 고정되어 콘클라베가 열린것은 바티칸 유수때 부터이다.[7] 프랑스, 신성 로마 제국 등[8] 출신 국가, 교황청 내 계파, 정치 단체 등[9] 바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10] Ioannes Paulus PP. II, UNIVERSI DOMINICI GREGIS - DE SEDE APOSTOLICA VACANTE DEQUE ROMANI PONTIFICIS ELECTIONE, 1996.
요한 바오로 2세, 주님의 양 떼 - 사도좌 공석과 교황 선출에 관하여, 1996.[11] BENEDICTUS PP. XVI, DE ALIQUIBUS MUTATIONIBUS IN NORMIS DE ELECTIONE ROMANI PONTIFICIS, 2007.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 규정의 일부 변경에 관하여, 2007.[12] BENEDICTUS PP. XVI, NORMAS NONNULLAS - DE NONNULLIS MUTATIONIBUS IN NORMIS AD ELECTIONEM ROMANI PONTIFICIS ATTINENTIBUS, 2013.
베네딕토 16세, 일부 규범 - 교황 선거 규범의 일부 변경에 관한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자의 교서, 2013.[13]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사망 진단이 오류가 날 일이 적기 때문이다. 굳이 두드려 보지 않아도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존재하기도 하고, 또한 시신의 이마를 망치로 두드린다는 게 아무리 살살 한다고 해도 조금 무례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14] 많은 사람들이 어부의 반지를 파괴한다고 알지만, "이는 '줄을 그어 지운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biffatura'의 오역인 것 같다."라고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반지를 만들었던 세공사 클라우디오 프란치가 말했다.[15] 라틴어, 한국어[16] 참고: 『가톨릭 성가』 146번 '임하소서 성령이여'.[17] 비밀 선거의 취지를 고려하면 자명하다.[18] 이처럼 연기로 투표 결과를 알리는 전통은 19세기부터 시작했다. 당시에는 연기의 색깔이 아니라 양으로 알렸다. 굵은 연기는 미결, 가느다란 실연기는 선출을 뜻했다.[19] 시스티나 경당에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는 한 한국인 신부의 경험담에 따르면, 난로가 놓이는 곳 바닥에 악간 패이고 열에 의해 변색된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20] 가톨릭권 국가에서 신자들은 대부분 세례명이 보통 때 쓰는 이름이기도 하다. 즉 '세례명 = 속명'.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의 경우 속명을 개명했다는 의미이다.[21] 라틴어 habemus는 동사 habeō(가진다)의 1인칭 복수 현재 능동 직설법 형태로, 주어 우리(1인칭 복수)가 동사에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직역하면 '우리는 교황을 가진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이하 한국어 번역은 한국어 위키백과 참고.[22] 라틴어는 동사에 주어의 성질을 담는다. 따라서 원문에는 주어가 없어보여도 동사에 내포되어 있다.[23] 3단어 모두 대격 단수이기 때문에 뒤에나올 '우리가 모신 분'에 대한 나열이다[24] 거룩한 로마 교회는 추기경에 대한 속격이고, 나머지는 대격 단수이다. 즉, 앞 문장과 동일하게 뒤의 주어를 부연하는 내용이다.[25] 주격(Qui)이 등장하여 앞의 대격을 받았다. 이름도 동일하게 대격으로 되어있어 LEO가 아닌 LEONEM으로 되어있다.[26]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우에는 베네딕토 16세의 문장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빈 휘장이 걸렸다.[27] 이를 한문으로 번역하면 '도시와 촌락 전체'를 뜻하는 '京鄕(경향)'이 된다. 대한민국의 일간지 경향신문의 경향이 바로 이 뜻이다. 이탈리아도 아닌 한국의 신문사 이름에 '우르비 에트 오르비'가 붙은 것은 경향신문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경향신문은 원래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만들던 신문이었다.[28] 단, 2025년 콘클라베 소집자 중 레오 14세는 정말로 막내는 아니고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해서 임명 순서로 막내도 아니다. 단지 젊은 축에 속한데다 당시 발코니에 나와있던 추기경들이 레오 14세보다 대부분 연상이라 막내 밈이 붙은 것일 뿐이다.[29] 물론 현실적으로는 견진성사를 받은 남성 가톨릭 신자로 한정된다고 해석할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해석상 그럴 뿐이다. 교회법에는 이 자격으로 세례성사나 견진성사조차 명시되지 않았다. 한국 세속으로 치면 만 40세 이상의 자는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다는 법과 마찬가지다.[30] 과거엔 발성에 의한 선출, 즉 모든 투표자가 동일하게 마음에 둔 후보자를 입 밖에 꺼냈을 때 하나의 이름이 만장일치로 나왔을 때는 성령의 개입으로 인정하고 교황으로 선출하는 방법, 즉 첫 투표서 만장일치가 나올 시 선출하는 방법이 있었으나, 이는 무려 1621년까지 올라가 그레고리오 15세 때가 마지막이었기에 사문화되어 이후 요한 바오로 2세 때 폐지됐다.[31] 정순택 대주교는 1961년 8월생이기 때문에 추기경에 서임된다면 2041년 8월까지 선거권이 있다.[32] 바티칸 측에서 영화에 불편함을 드러낸 것은 아니고, 시스티나 경당의 특수성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후술할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와 콘클라베 등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다.[33] 사실 교황이라는 자리는 엄청난 업무량이 따라온다. 늘 가톨릭 행사를 진행하느라 바쁜 데다 지구상에서 손꼽히는 거대 종교의 전 세계급 대표자이니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부담이다. 심지어 종신직이라 임기가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근무해야 한다. 그나마 베네딕토 16세는 사전 퇴임했지만 긴 역사 동안 퇴임한 교황은 단 3명에 불과할 정도로 드물다.[34] 무려 500년 전에 콘클라베 기간 동안 도박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나름 유서 깊은 문화(?)다.[35] 상징적으로는 전제군주제monarchia assoluta이다. 다만 말 그대로 종교적 의미에 국한하며 교황 선출 과정 역시 민주적 절차인 투표를 통하기에 그 체제 자체로 비민주적이라고 비판을 받지는 않는다.
요한 바오로 2세, 주님의 양 떼 - 사도좌 공석과 교황 선출에 관하여, 1996.[11] BENEDICTUS PP. XVI, DE ALIQUIBUS MUTATIONIBUS IN NORMIS DE ELECTIONE ROMANI PONTIFICIS, 2007.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 규정의 일부 변경에 관하여, 2007.[12] BENEDICTUS PP. XVI, NORMAS NONNULLAS - DE NONNULLIS MUTATIONIBUS IN NORMIS AD ELECTIONEM ROMANI PONTIFICIS ATTINENTIBUS, 2013.
베네딕토 16세, 일부 규범 - 교황 선거 규범의 일부 변경에 관한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자의 교서, 2013.[13]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사망 진단이 오류가 날 일이 적기 때문이다. 굳이 두드려 보지 않아도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존재하기도 하고, 또한 시신의 이마를 망치로 두드린다는 게 아무리 살살 한다고 해도 조금 무례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14] 많은 사람들이 어부의 반지를 파괴한다고 알지만, "이는 '줄을 그어 지운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biffatura'의 오역인 것 같다."라고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반지를 만들었던 세공사 클라우디오 프란치가 말했다.[15] 라틴어, 한국어[16] 참고: 『가톨릭 성가』 146번 '임하소서 성령이여'.[17] 비밀 선거의 취지를 고려하면 자명하다.[18] 이처럼 연기로 투표 결과를 알리는 전통은 19세기부터 시작했다. 당시에는 연기의 색깔이 아니라 양으로 알렸다. 굵은 연기는 미결, 가느다란 실연기는 선출을 뜻했다.[19] 시스티나 경당에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는 한 한국인 신부의 경험담에 따르면, 난로가 놓이는 곳 바닥에 악간 패이고 열에 의해 변색된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20] 가톨릭권 국가에서 신자들은 대부분 세례명이 보통 때 쓰는 이름이기도 하다. 즉 '세례명 = 속명'.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의 경우 속명을 개명했다는 의미이다.[21] 라틴어 habemus는 동사 habeō(가진다)의 1인칭 복수 현재 능동 직설법 형태로, 주어 우리(1인칭 복수)가 동사에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직역하면 '우리는 교황을 가진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이하 한국어 번역은 한국어 위키백과 참고.[22] 라틴어는 동사에 주어의 성질을 담는다. 따라서 원문에는 주어가 없어보여도 동사에 내포되어 있다.[23] 3단어 모두 대격 단수이기 때문에 뒤에나올 '우리가 모신 분'에 대한 나열이다[24] 거룩한 로마 교회는 추기경에 대한 속격이고, 나머지는 대격 단수이다. 즉, 앞 문장과 동일하게 뒤의 주어를 부연하는 내용이다.[25] 주격(Qui)이 등장하여 앞의 대격을 받았다. 이름도 동일하게 대격으로 되어있어 LEO가 아닌 LEONEM으로 되어있다.[26]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우에는 베네딕토 16세의 문장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빈 휘장이 걸렸다.[27] 이를 한문으로 번역하면 '도시와 촌락 전체'를 뜻하는 '京鄕(경향)'이 된다. 대한민국의 일간지 경향신문의 경향이 바로 이 뜻이다. 이탈리아도 아닌 한국의 신문사 이름에 '우르비 에트 오르비'가 붙은 것은 경향신문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경향신문은 원래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만들던 신문이었다.[28] 단, 2025년 콘클라베 소집자 중 레오 14세는 정말로 막내는 아니고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해서 임명 순서로 막내도 아니다. 단지 젊은 축에 속한데다 당시 발코니에 나와있던 추기경들이 레오 14세보다 대부분 연상이라 막내 밈이 붙은 것일 뿐이다.[29] 물론 현실적으로는 견진성사를 받은 남성 가톨릭 신자로 한정된다고 해석할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해석상 그럴 뿐이다. 교회법에는 이 자격으로 세례성사나 견진성사조차 명시되지 않았다. 한국 세속으로 치면 만 40세 이상의 자는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다는 법과 마찬가지다.[30] 과거엔 발성에 의한 선출, 즉 모든 투표자가 동일하게 마음에 둔 후보자를 입 밖에 꺼냈을 때 하나의 이름이 만장일치로 나왔을 때는 성령의 개입으로 인정하고 교황으로 선출하는 방법, 즉 첫 투표서 만장일치가 나올 시 선출하는 방법이 있었으나, 이는 무려 1621년까지 올라가 그레고리오 15세 때가 마지막이었기에 사문화되어 이후 요한 바오로 2세 때 폐지됐다.[31] 정순택 대주교는 1961년 8월생이기 때문에 추기경에 서임된다면 2041년 8월까지 선거권이 있다.[32] 바티칸 측에서 영화에 불편함을 드러낸 것은 아니고, 시스티나 경당의 특수성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후술할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와 콘클라베 등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다.[33] 사실 교황이라는 자리는 엄청난 업무량이 따라온다. 늘 가톨릭 행사를 진행하느라 바쁜 데다 지구상에서 손꼽히는 거대 종교의 전 세계급 대표자이니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부담이다. 심지어 종신직이라 임기가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근무해야 한다. 그나마 베네딕토 16세는 사전 퇴임했지만 긴 역사 동안 퇴임한 교황은 단 3명에 불과할 정도로 드물다.[34] 무려 500년 전에 콘클라베 기간 동안 도박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나름 유서 깊은 문화(?)다.[35] 상징적으로는 전제군주제monarchia assoluta이다. 다만 말 그대로 종교적 의미에 국한하며 교황 선출 과정 역시 민주적 절차인 투표를 통하기에 그 체제 자체로 비민주적이라고 비판을 받지는 않는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