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진/대한민국/역사
최근 수정 시각:
분류
2026/01/06 10:18:48 UTC+9 |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 남동쪽 23km 지역 | Mj 6.4, 최대 진도 5+ | 해일 예보 미발령 | |||||||
|
| ||||||||||||||||||||||||||||||||||||||||||||||||||||||||||||||||||||||||||||||||||||||||||||||||||||||||||||||||||||||||||||||||||||||||||||||||||||||||||||||||||||||||||||||||||||||||||||||||||||||||||||||||||||||||||||||||||||||||||||||||||||||||||||||||||||||||||||||||||||||||||||||||||||||||||||||||||||||||||||||||||||||||||||||||||||||||||||||||||||||||||||||||||||||||||||||||||||||||||||||||||||||||||||||||
대한민국에서 기록된 역사지진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역사지진이란 지진계 측정이 도입되기 이전 역사적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지진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지진은 1905년 지진계가 도입되기 이전인 서기 2년 ~ 1904년[1]까지의 지진 기록에 해당한다. 1904년 이후 기록된 지진의 목록에 대해서는 지진/대한민국/목록 문서 참조.
역사지진이란 지진계 측정이 도입되기 이전 역사적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지진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지진은 1905년 지진계가 도입되기 이전인 서기 2년 ~ 1904년[1]까지의 지진 기록에 해당한다. 1904년 이후 기록된 지진의 목록에 대해서는 지진/대한민국/목록 문서 참조.
지진 기록이 남아있는 역사 문헌으로는 삼국사기, 고려사절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 승정원일기, 일성록, 풍운기, 천변초출승록, 개인문집, 지방지 등이 있다.# 기상청에서 발간한 '한반도 역사지진 기록'에 따르면 역사문헌에 2161개의 지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 중 62%인 1340건은 최대진도 Ⅱ~Ⅲ 정도의 약한 지진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피해를 줄 수 있는 수준인 최대진도 Ⅵ 이상 급의 지진도 119건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 중 큰 피해를 남길 수 있는 최대진도 Ⅷ~Ⅸ 급의 지진(규모 6.0 이상)도 총 15건에 달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지진에 관한 기록 중 대다수는 '~~에 지진이 있었다'라는 식으로 한 줄 정도 적고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지진의 규모나 사태의 심각성 등의 이유로 자세하게 서술하는 경우도 있다.
유시(酉時)에 세 차례 크게 지진(地震)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인마(人馬=사람과 말)가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城堞=성위에 낮게 쌓은 담)이 무너지고 떨어져서,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쩔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고로(故老=오랫동안 산 노인)들이 모두 옛날에는 없던 일이라 하였다. 팔도(八道)가 다 마찬가지였다.중종실록 33권, 중종 13년 5월 15일 계축 3번째 기사(1518년)
하매, 남곤이 아뢰기를,
"신이 처음 들을 때에 심신(心神=마음과 정신)이 놀랐다가 한참 만에 가라앉았으니, 상의 뜻에 놀랍고 두려우실 것은 더구나 말할 것이 없습니다. 요즈음 경상·충청 두 도(道)의 서장(書狀)을 보니 모두 지진이 있었다고 보고하였는데, 서울의 지진이 이렇게 심한 것은 뜻밖입니다.(생략)"
(중략)얼마 있다가 또 처음과 같이 지진이 크게 일어나 전우(殿宇)가 흔들렸다. 상이 앉아 있는 용상은 마치 사람의 손으로 밀고 당기는 것처럼 흔들렸다. 첫번부터 이때까지 무릇 세 차례 지진이 있었는데 그 여세가 그대로 남아 있다가 한참 만에야 가라앉았다. 이때 부름을 받은 대신들의 집이 먼 사람도 있고 가까운 사람도 있어서, 도착하는 시각이 각각 선후(先後)가 있었으나 오는 대로 곧 입시하였다. 영의정 정광필이 아뢰기를,
"지진은 전에도 있었지마는 오늘처럼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신 등이 재직하여 해야 할 일을 모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것입니다."중종실록 33권, 중종 13년 5월 15일 계축 4번째 기사(1518년)
가장 주목해 볼 만한 지진은 1518년 서울 지진으로, 최대진도 Ⅴ 이상의 여진이 며칠 간 이어졌다.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갔으며 한참 뒤에 그쳤다. 처음에는 소리가 약한 천둥 같았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집채가 모두 흔들리고 담과 벽이 흔들려 무너졌다. 신시[2]에 또 지진이 일어났다.명종실록 3권, 명종 1년 5월 23일(1546년)
1546년 지진은 경기도부터 함경남도까지 한반도 중북부 전역에서 기록된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혼란한 분위기를 서술하고 있다.
지진이 일어났다. 【이날 새벽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소리가 엄청나게 큰 천둥소리와 같았으며 장옥(墻屋)이 많이 무너졌다. 이때 김제남을 사사(賜死)하라는 명이 바야흐로 내려졌는데, 옥에 갇힌 수백 명이 지진 소리를 듣고는 한꺼번에 소리치며 애통해 하기를 ‘천지가 우리의 원통함을 알고 있다.’ 하였다. 】광해군일기[중초본] 66권, 광해 5년 5월 29일 병술 1번째 기사(1613년)
경상감사 장계의 내용이다. 좌도가 안동에서부터 동해·영덕 이하를 경유해 돌아서 김천 각 읍에 이르기까지, 이번 달 초 9일 신시, 초 10일 진시[3]에 2번 지진이 있었다. 성벽이 무너짐이 많았다. 울산 역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마찬가지로 지진이 있었다. 울산부의 동쪽 13리 밀물과 썰물이 출입하는 곳에서 물이 끓어올랐는데, 마치 바다 가운데 큰 파도가 육지로 1,2보 나왔다가 되돌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건답 6곳이 무너졌고, 물이 샘처럼 솟았으며, 물이 넘자 구멍이 다시 합쳐졌다. 물이 솟아난 곳에 각각 흰 모래 1,2두가 나와 쌓였다.
1643년 7월 25일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M 7.0의 지진에는 쓰나미, 토양 액상화, 건물 붕괴 등등의 지진으로 인한 각종 재난이 기록되어 있다.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가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의 신흥사 및 계조굴의 거암이 모두 붕괴되었다. 삼척부 서쪽 두타산 층암은 옛부터 돌이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모두 붕괴되었다. 그리고 부의 동쪽 능파대 수중의 10여 장 되는 돌이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는데, 평일에 물이 찼던 곳이 1백여 보 혹은 5, 60보 노출되었다. 평창·정선에도 또한 산악이 크게 흔들려서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었다. 이후 강릉·양양·삼척·울진·평해·정선 등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하였는데, 이때 팔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숙종실록 11권, 숙종 7년 5월 11일(1681년)
한반도에서 역사적으로 기록된 지진 중 가장 강력했던 지진은 1681년 양양 대지진으로,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발생한[4] M 7.5로 추정되는 강력한 지진이다. 이 기록에서는 무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와 산사태를 연상시키는 묘사가 나온다.
(京師地震)再昨日下午九時에 地氣大震하야 房屋이 搖動하야 居人이 安席치 못하고 江氷大坼하야 行人이 通路치 못하엿더라
(경사지진)재작일하오구시에 지기대진하야 방옥이 요동하야 거인이 안석치 못하고 강빙대탁하야 행인이 통로치 못하엿더라
현대어 해석: (서울 지진) 그저께 오후 9시에 땅이 크게 진동하여 집이 흔들리고 집안에 있는 사람이 편히 앉아있지 못하고 강[5]의 얼음이 크게 갈라져,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되었다.황성신문, 1899년 01월 17일#
(幸矣人命)京畿道楊根郡斗尾別隅에 一數間茅店이 有한대 日前 地震에 該店이 動覆한 中 幸히 其家夫婦가 穉兒를 率하고 隣家에 往하야 空家된 間인 故로 人命은 致傷치 아니하얏다더라
(행의인명)경기도양근군두미별우에 일수간모점이 유한대 일전 지진에 해점이 동복한 중 행히 기가부부가 치아를 솔하고 인가에 왕하야 공가된 간인 고로 인명은 치상치 아니하얏다더라
현대어 해석: 경기도 양근군 두미별우(현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에 작은 주막이 있는데, 며칠 전 지진에 가게가 흔들려 무너졌으나 다행히 해당 집의 부부가 어린 아들과 함께 이웃집에 머물러 있어 빈집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다치진 않았다.황성신문, 1899년 01월 20일#
가장 최근에 발생한 지진은 1899년 대한제국 지진으로, 진앙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시 얼어있던 한강의 얼음이 깨지고 서울 인근 경기도 양평에서 집이 무너졌다는 기록을 볼 때, 서울에서 큰 흔들림을 감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후삼국 주요 역사지진 (27~918년) | ||||||
발생지(진앙지) | 발생일자 | 추정 규모 | 추정 최대진도 (MMI) | 사상자 수 | 비고 | |
27년 10월 | M6.3[A] | Ⅷ | ||||
89년 6월경 | M6.8[A] | Ⅸ | 사망자 발생 | |||
100년 10월 | M6.7[8] | 사망자 발생 | ||||
304년 8월 | M6.3[A] | Ⅷ | ||||
304년 9월 | M6.8[A] | Ⅸ | 사망자 발생 | |||
458년 2월 | M6.3[A] | Ⅷ | ||||
502년 12월 | M6.8[A] | Ⅸ | 사망자 발생 | |||
510년 5월 | M6.8[A] | 사망자 발생 | ||||
664년 8월 14일 | M6.3[A] | Ⅷ | ||||
768년 6월 | M6.3[A] | |||||
779년 3월 | Ⅸ | 사망 100+ | ||||
최대진도와 지진 발생일, 위치는 기상청 역사지진 기록을 기반으로 하며, 규모는 '한반도의 역사지진 평가를 위한 진도-규모 관계 분석; 경재복; 2015'에서 제안된 식 ML = 1.7 + 0.57 * I0을 사용하여 기상청 역사지진 최대진도를 규모로 변환함. 별도로 연구된 규모가 있는 경우 해당 규모를 참조함 | ||||||
고려 주요 역사지진 (918~1392년) | ||||||
발생지(진앙지) | 발생일자 | 추정 규모 | 추정 최대진도 (MMI) | 사상자 수 | 비고 | |
경상북도 군위군 | 1025년 8월 3일 | M5.1[A] | Ⅵ | |||
1036년 7월 17일 | M6.3[A] | Ⅷ | ||||
1226년 10월 29일 | M5.7[A] | Ⅶ | ||||
1260년 7월 23일 | M6.3[A] | Ⅷ | ||||
최대진도와 지진 발생일, 위치는 기상청 역사지진 기록을 기반으로 하며, 규모는 '한반도의 역사지진 평가를 위한 진도-규모 관계 분석; 경재복; 2015'에서 제안된 식 ML = 1.7 + 0.57 * I0을 사용하여 기상청 역사지진 최대진도를 규모로 변환함. 별도로 연구된 규모가 있는 경우 해당 규모를 참조함 | ||||||
조선 주요 역사지진 (1392~1904년) | ||||||
발생지(진앙지) | 발생일자 | 추정 규모 | 추정 최대진도 (MMI) | 사상자 수 | 비고 | |
1385년 8월 24일 | M6.3[A] | Ⅷ | ||||
강원도 강릉시 | 1404년 2월 9일 | M5.1[A] | Ⅵ | |||
1405년 3월 3일★ | M5.1[A] | |||||
1416년 5월 14일 | M5.1[A] | |||||
1427년 10월 5일 | M5.1[A] | |||||
1428년 8월 24일 | M5.1[A] | |||||
1430년 5월 9일 | M5.7[A] | Ⅶ |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 1430년 9월 30일 | M5.1[A] | Ⅵ | |||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청도군 | 1431년 3월 10일 | M5.1[A] | ||||
진앙지 미상 | 1436년 5월 20일☆[39] | M6.3[A] | Ⅷ | |||
1437년 2월 28일☆ | M6.2[42] | Ⅶ | ||||
대구광역시 | 1438년 3월 15일 | M5.1[A] | Ⅵ | |||
1454년 1월 27일 | M5.1[A] | |||||
1455년 1월 15일☆[45] | M6.8[A] | Ⅸ | 사망자 다수 | |||
충청남도 금산군 | 1459년 8월 31일 | M5.1[A] | Ⅵ | |||
전라북도 군산시 | 1484년 2월 4일 | M5.7[A] | Ⅶ | |||
강원도 양양군 해역 | 1489년 3월 9일 | M5.1[A] | Ⅵ | |||
전라북도 익산시 | 1502년 8월 20일☆[50] | M5.7[A] | Ⅶ | |||
경기도 평택시 | 1503년 7월 5일☆ | M5.3[C] | Ⅵ | |||
1503년 9월 13일☆ | M5.5[C] | |||||
1515년 9월 17일 | M5.1[A] | |||||
평안남도 안주시 | 1516년 3월 5일 | M5.1[A] | ||||
1518년 6월 22일 | M6.8[C] | Ⅸ | ||||
인천광역시 앞바다 | 1520년 4월 4일 | M5.1[A] | Ⅵ | |||
1521년 4월 16일 | M5.1[A] | |||||
황해북도 사리원시 | 1521년 9월 4일 | M5.1[A] | ||||
황해남도 해주시 | 1523년 2월 18일 | M5.1[A] | ||||
1525년 4월 27일 | M5.7[A] | Ⅶ | ||||
평안남도 증산군 앞바다 | 1525년 5월 21일 | M5.1[A] | Ⅵ | |||
인천광역시 앞바다 | 1525년 5월 28일 | M5.1[A] | ||||
1526년 10월 27일 | M5.1[A] | |||||
경기도 남양주시 | 1531년 10월 7일 | M5.5[C] | ||||
인천광역시 강화군 | 1543년 3월 1일 | M5.1[A] | ||||
1544년 2월 25일 | M5.1[A] | |||||
경상남도 진주시 | 1545년 10월 22일 | M5.1[A] | ||||
평안남도 평원군 | 1546년 6월 19일 | M5.1[A] | ||||
황해북도 평산군 | 1546년 6월 20일 | M6.2[C] | Ⅷ | |||
평양시 | 1548년 12월 31일 | M5.1[A] | Ⅵ | |||
1553년 2월 20일 | M5.7[A] | Ⅶ | ||||
충청북도 청주시 | 1553년 12월 31일 | M5.1[A] | Ⅵ | |||
경상북도 성주군 | 1555년 3월 3일 | M5.1[A] | ||||
인천광역시 강화군 | 1556년 1월 19일 | M5.1[A] | ||||
황해남도 연안군 해역 | 1556년 5월 12일 | M5.1[A] | ||||
서울특별시 중랑구 | 1557년 5월 30일☆[80] | M5.1[A] | ||||
대구광역시 | 1557년 5월 30일 | M5.1[A] | ||||
평안남도 양덕군 | 1561년 6월 17일 | M5.1[A] | ||||
평안남도 숙천군 해역 | 1565년 5월 18일 | M5.1[A] | ||||
경기도 파주시 | 1565년 5월 18일 | M5.1[A] | ||||
진앙지 미상 | 1568년 11월 19일 | M6.8[A] | Ⅸ | |||
대구광역시 | 1594년 7월 1일 | M5.1[A] | Ⅵ | |||
서울특별시 성북구 | 1594년 7월 13일 | M5.1[A] | ||||
1594년 7월 20일 | M6.3[A] | Ⅷ | ||||
강원도 정선군 | 1596년 2월 20일 | M5.1[A] | Ⅵ | |||
1597년 10월 6일★☆[91] | VII | 화산성 지진[94] | ||||
1597년 10월 7일★☆ | Ⅷ | |||||
1597년 10월 8일★☆ | Ⅶ | |||||
대구광역시 | 1601년 3월 7일 | M5.1[A] | Ⅵ | |||
경상북도 성주군 | 1601년 3월 19일 | M5.1[A] | ||||
경상북도 문경시 | 1604년 7월 30일 | M5.1[A] | ||||
대구광역시 군위군 | 1607년 1월 1일 | M5.1[A] | ||||
충청북도 보은군 | 1609년 9월 13일 | M5.1[A] | ||||
충청북도 보은군 | 1610년 4월 9일 | M5.1[A] | ||||
1613년 7월 16일☆[101] | M5.7[C] | Ⅷ | ||||
경상북도 울진군 해역 | 1630년 여름철 | M5.1[A] | Ⅵ | |||
1632년 2월 26일 | M6.3[A] | Ⅷ | ||||
전라북도 익산시 | 1641년 3월 19일 | M5.1[A] | Ⅵ | |||
1643년 5월 30일 | M6.3[A] | Ⅷ | ||||
1643년 6월 9일 | M6.8[A] | Ⅸ | 최소 2명 | |||
1643년 7월 24일 | Ⅹ | 쓰나미 발생[115] | ||||
경상남도 양산시 | 1667년 5월 1일 | M5.1[A] | Ⅵ | |||
1668년 7월 31일★☆ | M5.7[A] | Ⅶ | 쓰나미 발생[118] | |||
전라북도 고창군 해역 | 1667년 7월 31일 | M5.1[A] | Ⅵ | |||
1670년 10월 4일☆ | M5.7[A] | Ⅶ | ||||
1670년 10월 30일☆ | M6.3[A] | Ⅷ | ||||
1670년 11월 15일☆ | M5.7[A] | Ⅶ | ||||
충청남도 예산군 | 1671년 10월 9일 | M5.1[A] | Ⅵ | |||
1672년 3월 3일☆ | M5.7[A] | Ⅶ | ||||
1672년 3월 10일☆ | M5.7[A] | |||||
1681년 6월 12일☆[127] | M6.1~6.7[128] | Ⅷ | ||||
1681년 6월 17일☆ | M6.3[A] | |||||
세종특별자치시 | 1681년 6월 24일 | M5.1[A] | Ⅵ | |||
1681년 6월 26일☆ | M7.5[132] | Ⅸ | 지진해일 발생[133] | |||
1681년 10월 8일 | M5.1[A] | Ⅵ | ||||
강원도 삼척시 앞바다 | 1681년 12월 20일 | M5.1[A] | ||||
1681년 12월 21일☆ | M5.7[A] | Ⅶ | ||||
1683년 2월 10일 | M5.1[A] | Ⅵ | ||||
1692년 11월 2일 | M5.7[A] | Ⅶ | ||||
함경남도 단천시 | 1693년 10월 15일 | M5.1[A] | Ⅵ | |||
1694년 3월 11일 | M5.7[A] | Ⅶ | ||||
1697년 12월 6일☆[142] | ||||||
1700년 4월 29일☆[143] | M6.3[A] | Ⅷ | ||||
전라북도 전주시 | 1702년 8월 26일★☆ | M6.3[A] | ||||
1702년 10월 13일☆ | M5.7[A] | Ⅶ | ||||
1707년 1월 3일★☆[148] | M5.7[A] | |||||
강원도 원산시 | 1711년 4월 20일☆ | M5.7[A] | ||||
강원도 원산시 | 1711년 4월 21일☆ | M5.7[A] | ||||
1713년 3월 8일 | M5.7[A] | |||||
1714년 3월 7일 | M5.7[A] | |||||
개성시 | 1714년 3월 15일 | M6.8[A] | Ⅸ | |||
1727년 6월 20일 | M6.8[A] | |||||
충청남도 서산시 | 1757년 7월 30일 | M5.1[A] | Ⅵ | 사망자 발생 | ||
1810년 2월 19일 | M6.8[A] | Ⅸ | 사망자 발생 | |||
1899년 1월 15일 | M6.3 | Ⅷ | 부상자 발생 | 최후의 역사지진[161] | ||
최대진도와 지진 발생일, 위치는 기상청 역사지진 기록을 기반으로 하며, 규모는 '한반도의 역사지진 평가를 위한 진도-규모 관계 분석; 경재복; 2015'에서 제안된 식 ML = 1.7 + 0.57 * I0을 사용하여 기상청 역사지진 최대진도를 규모로 변환함. 별도로 연구된 규모가 있는 경우 해당 규모를 참조함 | ||||||
| ||||||||||||||||||||||||||||||||||||||||||||||||||||||||||||||||||||||||||||||||||||||||||||||||||||||||||||||||||||||||||||||||||||||||||||||||||||||||||||||||||||||||||||||||||||||||||||||||||||||||||||||||||||||||||||||||||||||||||||||||||||||||||||||||||||||||||||||||||||||||||||||||||||||||||||||||||||||||||||||||||||||||||||||||||||||||||||||||||||||||||||||||||||||||||||||||||||||||||||||||||||||||||||||||
[1] 「한반도 역사지진 기록 (2년~1904년)」 국립기상연구소(2012)[2] 오후 3~5시[3] 오전 7~9시[4] 현 강원도 양양군 일대.[5] 한강으로 추정된다.[A] 6.1 6.2 6.3 6.4 6.5 6.6 6.7 6.8 6.9 6.10 6.11 6.12 6.13 6.14 6.15 6.16 6.17 6.18 6.19 6.20 6.21 6.22 6.23 6.24 6.25 6.26 6.27 6.28 6.29 6.30 6.31 6.32 6.33 6.34 6.35 6.36 6.37 6.38 6.39 6.40 6.41 6.42 6.43 6.44 6.45 6.46 6.47 6.48 6.49 6.50 6.51 6.52 6.53 6.54 6.55 6.56 6.57 6.58 6.59 6.60 6.61 6.62 6.63 6.64 6.65 6.66 6.67 6.68 6.69 6.70 6.71 6.72 6.73 6.74 6.75 6.76 6.77 6.78 6.79 6.80 6.81 6.82 6.83 6.84 6.85 6.86 6.87 6.88 6.89 6.90 6.91 6.92 6.93 6.94 6.95 6.96 6.97 6.98 6.99 6.100 6.101 '한반도의 역사지진 평가를 위한 진도-규모 관계 분석; 경재복; 2015'에서 제안된 식 ML = 1.7 + 0.57 * I0(I0는 최대진도)으로 기상청 역사지진 최대진도를 변환한 규모[8] 남한 남동부 양산단층대와 울산단층대의 고지진 연구와 최대 지진 규모 평가를 참고함[N] 16.1 16.2 NOAA 추정값이다.[L] 17.1 17.2 이기화 서울대학교 교수 및 기상청의 추정값이다.[S] 18.1 18.2 손문 부산대학교 지질환경과학과 교수의 추정값이다.[19] 역사지진들 중 인명피해 기록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지진이다. 기록은 단 1줄로 남아 있는데, 삼국사기에 779년 3월경 "경도(京都; 경주)에 지진이 일어나 민옥이 무너지고 사망자가 100명이 넘었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남산(경주)에 부서지거나 넘어진 불상이 유독 많은 것도 이 지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22] 역사서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 지진 때문에 불국사의 시설이 다수 무너졌고, 석가탑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았다고 한다.[26]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이날 송악산 서쪽에 있던 바위가 무너졌다고 한다.[30] 지진은 경북 전역에서 감지되었다.[32] 이 지진은 영남 지방 전역, 호남 지방 대부분의 지역, 충청북도 전역에서 감지되었다.[34] 이 지진은 전라북도 전역, 전라남도 일부 지역, 충청남도 일부 지역, 충청북도 대부분 지역에서 감지되었다.[36] 이 지진은 영남 지방 전역, 호남 지방 전역에서 40개가 넘는 지역에서 감지되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진앙지인 함양을 포함해서 현풍, 대구, 경산, 광주, 전주, 익산 등을 포함한 40개 이상의 지역에서 지진의 영향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39] 1433년 10월 28일 일본 사가미 해곡에서 최소 규모 7의 지진이 있었다.[41] 이 지진은 지금의 함경북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감지되었다.[42] 2022.12 한반도 충북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고지진의 층서학적 기록 논문 참고함.[45] 1454년 12월 13일에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규모 8.4 이상의 지진이 있었다.[50] 1498년 9월 11일에 일본 도카이 해역에서 M 8.4의 강력한 지진이 있었다.[C] 52.1 52.2 52.3 52.4 52.5 52.6 Six Major Historical Earthquakes in the Seoul Metropolitan Area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Seongjun Park, Inho Baek, and Tae-Kyung Hong[57] 이 지진은 제주도 및 함경북도 동부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감지되었다.[63] 이 지진은 충청도 전역, 호남 지방 전역, 영남 지방 전역에서 감지되었다.[73] 이 지진은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남도 전역에서 감지되었다.[80] 1556년 1월 23일 중국 산시성에서 규모 8의 대지진이 있었다.[91] 1596년 일본에서 규모 7이 넘는 지진이 세 차례 있었다.[92] 李裕澈(리유체); 时振梁; 曹学锋 (2012). “1597年10月6日“珲春-汪清深震区”M≥8地震触发的湖震和火山喷发”. 地震学报, (중국어) 34 (4): 557–570.[93] 高山泰(가오샨타이); 于岫嵋; 朱大庆; 李玉贤; 张兴科 (2003). “1597年10月6日中国东部的振动事件是一次深源强震”. 地震学报, (중국어) 25 (3): 324–330.[94] 이 해에 백두산 폭발이 있었다.[101] 1611년 12월 2일에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규모 8.1 이상의 지진이 있었다.[103] 이날 광해군이 계모 인목왕후의 친정아버지인 김제남의 사사(사약형)를 명했다.[108] 아래 울산 지진, 합천 지진과 연동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110] 지진으로 인한 바위사태로 사망자 2명이 있었다고 기록에 나와 있다.[114] 여기서, 손문 교수의 추정값을 기록한 기사는 다음 사이트를 참고. 마지막으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헌철 박사는 이 지진에서 일어났다는 여러 현상들(대형 쓰나미 등)은 적어도 진도 Ⅷ(Severe) 이상은 되어야 일어나는 것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 이전에 M8.0이나 M9.0까지 추정하기도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것은 진도와 규모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실제로는 M6.5~7.4 로 보는 것이 옳다. 더 자세한 것은 해당 지진의 토론 항목을 참조.[115] 쓰나미가 실제로 발생했는지에 관해선 논란이 있다. 이 지진으로 영남 지방 전역이 최대진도 Ⅷ를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진앙지인 울산은 최대진도 Ⅸ~Ⅹ로 추정된다. 하지만 인명피해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은데, 영남지역에서만 해도 엄청난 수의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이 없어 확정할 수 없다.. 만약 지금도 같은 진앙지에서 같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비 여하에 따라 피해가 클수도 있으며, 고리원전 등 동해안 원전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도 있다. 물론 안전장치가 있으니 심각한 피해까지는 안 갈 수도 있지만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118] 공교롭게도 이 지진은 1668년 7월 25일 중국 산둥 성에서 발생한 규모 M8.5, 최대진도 XII 지진과 겨우 1주일 차이가 난다. 게다가 이 지진이 일어났던 해에는 백두산이 분화하기도 했다.[121] 하필이면 이 지진은 바로 아래 행의 순창 지진과 함께, 경신대기근이 한창일 때 터졌다.[127] 1677년 4월 13일 아오모리현 북부에서 M 7~8급의 강력한 지진이 있었다. 또한 같은해 11월 4일에는 일본 치바현 동쪽 바다로 추정되는 곳에서 규모 8급의 굉장히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128] 1681년 6월 12일, 17일, 그리고 26일 양양-삼척 근해에서 발생한 지진기록의 분석, 이덕기; 이유철; 양준모; 윤용훈, Journal of the Korean Geophysical Society v.7 no.2 = no.21 , 2004년, pp.89 - 97 [129] 이 지진은 6월 26일 양양 지진의 전진으로 추정된다.[132] 韓半島で発生した最大級の地震 -1681 年 6 月韓国東海岸地震-[133] 1643년 울산 지진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적 지진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악의 지진 중 하나. 이때 쓰나미까지 덮쳤다. 이 지진 이후에도 수개월간 여진이 계속해서 일어났으며 여진의 최대진도는 Ⅵ(일본 기준 5약)였다.[140]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142] 1694년 6월 19일 일본 아키타현에서 규모 7의 지진이 있었다.[143] 1700년 4월 15일 대마도 근처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있었다.[146] 이 지진은 남한 전역에서 진동이 감지되었다.[148] 1703년 12월 31일 일본 사가미 해곡에서 M 8.1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였다.[150] 이 해 10월 28일에 일본에서는 도카이 지진 중 하나인 호에이 대지진(호에이 대지진은 도카이-도난카이-난카이 셋 다 동시에 발생했으며, 규모는 M 8.6-M 9.3에 달했다.)이 있었고, 12월 16일에는 후지산이 호에이 대분화를 일으켰다.[156] 이 지진은 한반도 전역에서 진동이 감지되었다.[160] 부령군은 지진다발지역인 러시아의 연해주와 접해 있다. 또한, 이 강진 이후로 보름 가까이 지난 3월 4일까지 지진이 없는 날이 없었다고 할 만큼 여진도 길게 이어졌다.[161] 기상청 역사지진기록에는 없지만, 당시 신문 기사에는 남아있다.#1#2#3 서울에서 지진이 일어나 집이 심하게 흔들려 집안에 있는 사람이 앉아있지 못하고, 강(한강으로 추정)의 얼음이 크게 갈라졌다는 기록과 목포에서 집이 무너졌다는 기록을 토대로 역사지진 진도 결정방식에 따라 진도 VIII로 추정했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