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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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영화 시상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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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하는 영화 시상식의 명칭. 3대 영화상 중 가장 역사가 깊으나 애니깽 사태, 배우에 대한 협박, 지나치게 보수적인 문화, 박근혜 정부의 개입 논란, 영화와 관계 없는 시상자 등의 잦은 논란을 일으켜 불참과 대리수상이 이어지며 58회에서는 수상자의 절반 이상이 불참하며 주목도, 참여도 등이 실추되다가 급기야 2024년에는 사실상 폐지 코앞까지 몰렸다.
영화제가 아니라 시상식이지만 왜인지 주최 측에서 '대종상 영화제'라는 명칭을 고집하고 있다.[1] 시상식의 전야제 개념으로 후보작과 역대 수상작을 상영하는 상영회를 가진 적이 몇 번 있긴 하지만 꾸준히 열리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만으로 영화제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영화제가 아니라 시상식이지만 왜인지 주최 측에서 '대종상 영화제'라는 명칭을 고집하고 있다.[1] 시상식의 전야제 개념으로 후보작과 역대 수상작을 상영하는 상영회를 가진 적이 몇 번 있긴 하지만 꾸준히 열리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만으로 영화제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제1회 대종상 시상식
전신(前身)인 우수국산영화상을 포함할 때 현존 영화상 중에서는 역사가 제일 깊다.[2] 1957년에 문교부에서 우수국산영화상이라는 명칭으로 시상하기 시작했고(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1961년 주관이 공보부로 바뀌면서[3] 제1회 한국최우수영화상 시상식(영상)이 열렸으며, 1962년 대종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수국산영화상과 한국최우수영화상 시절은 대종상의 역대 수상 목록에서 제외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이 시절과 단절을 선언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웹사이트 연혁에는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4]
1969년과 1970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의 영화 부문으로 통합[5]되었는데 수많은 잡음 속에 1969년은 영화 부문 수상자 없이 끝났다. 1970년에는 영화 부문에서 시나리오 작가 최금동이 본상을 수상했다.[6] 1971년부터 다시 대종상으로 환원되었다.
1988년에는 영화계 내분으로 이듬해로 연기되었고, 1998년에는 IMF 외환위기로 후원사를 찾지 못해 무산되었으며, 2019년에는 시상 방식 변경으로 이듬해로 연기되면서 개최되지 못했다. 적어도 80년대 이전에는 한국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이었다. 사실은 애초부터 공정성과는 담 쌓은 후진국형 이권다툼 행사였다는 것이[7]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의 수준도 점점 높아지기 시작하고,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만천하에 들통났다.
국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넘어간 것은 1992년으로 삼성이 단독 후원을 맡아 영화인협회와 공동 주최했다.
조직위원회와 영화 단체의 갈등, 영화 단체들의 파벌 싸움과 공정성 논란 속에서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메이저 영화상' 중 유일하게 언론사가 아닌 '영화인'들이 직접 꾸리는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주기적인 위기 속에서 위와 같은 이유로 되살아나기를 반복해왔다.
남녀주연상 수상자가 다음 해 홍보대사를 맡는 전통이 있다.
2015년 남녀주연상 후보 전원 불참 사태와 2016년부터 TV 생중계가 지상파인 KBS에서 케이블 방송, 종합편성채널로 바뀌며 위상이 하락했다. 당시 대종상은 흥행 대작 위주의 시상으로 여론이 좋지 않았는데, 대종상 이후 열리는 청룡영화상이 2년 연속 독립영화에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비교적 공정하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결정적으로 2016년 청룡이 대종상엔 불참한 뒤 청룡에 참석한 여우주연상 후보들을 제치고 유일한 불참자[8]에게 여우주연상을 주며 화제성과 함께 국내 최고 권위의 영화상 타이틀을 거머쥐었다.[9] 2인자 포지션도 JTBC에서 중계하는 종합 시상식인 백상예술대상에게 넘겨주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TV에 생중계 되며 '3대 영화상'이라 불리고 있다.[10]
2017년 제54회 대종상영화제는 '리부트'를 선언하며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외부 심사위원 비율을 높이고 국내 시상식 최초로 심사위원 명단과 함께 심사결과를 방송에서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설경구, 송강호, 이병헌 등 배우들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참석률도 높아졌다. 출품제 심사 방식 역시 폐지됐다. 제55회 대종상영화제까지 TV조선이 생중계를 맡았다.청룡영화상 주최가 스포츠조선인데??
제56회 대종상영화제부터는 1월부터 12월 개봉작을 심사하기 위해 개최 시기를 11월에서 다음 해 2월로 변경했다.[11] 당초 2020년 2월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되어 6월 3일 개최됐다. 중계 방송사는 MBN으로 바뀌었다.
2021년 제57회 시상식은 코로나19로 무산되었고, 2022년 12월 9일 제58회 시상식이 건국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렸다.
2023년 12월 대종상을 주최하던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이하 영연, 영협이라고도 함)가 서울회생법원에 의해 파산선고를 당했다. 이번 파산신청은 과거 영연 임원의 파산신청을 법원이 인정한 것으로 영연은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런 상황에 당장 2024년 겨울로 계획된 제60회 대종상도 사실상 개최가 무산되었다.[12]
최대채권자 김진문의 법률상 대리인인 로펌고 측 고윤기 변호사는 2024년 11월 18일 대종상영화제 상표권에 대한 매각 공고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번 매각은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Stalking Horse Bid'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먼저 선정된 우선매수권을 가진 매수희망자의 매입 조건이 최저 입찰가가 되어, 이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입찰자를 추가로 모집하는 방식이다. 최저매각가격은 5천6백만원(부가세 포함)으로 책정됐다. 입찰 마감은 오는 11월 22일 오후 6시까지이며, 개찰은 11월 25일 오전 9시에 진행된다. 또한, 입찰 참가 자격은 비영리법인으로 제한된다. 상표법상 업무표장인 대종상영화제 상표권은 실제로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단체만이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2월 12일, 새로운 개최주체로 <영화기획프로듀서협회>로 낙찰됨에 따라 폐지 위기는 가까스로 벗어났다. #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기획프로듀서가 영연의 산하단체중 하나라는 것. 그리고 행사 주관사로는 위밴드주식회사가 선정되었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예토전생을 앞둔 상황에서도 여전히 말썽이 있는 모양. 기존 영연의 잔당(?)과 다른 영화단체들이 대종상을 금전 매수하려한다고 반발하고 있다.[13] 이런 갈등이 계속되서야 개최권자가 넘어간 뒤의 대종상이 제대로 개최될지도 의문이고, 개최되어도 그 나물에 그 밥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5년 6월, 프로듀서협회가 인수 자금을 납부하지 못함에 따라 계약이 해지되어 2025년 10월에 대종상이 다시 경매에 나왔다.
2025년 11월에 한국영화예술인협회에서 대종상 상표를 인수했다.# 2026년 4월에 시상식 개최를 할 예정
전신(前身)인 우수국산영화상을 포함할 때 현존 영화상 중에서는 역사가 제일 깊다.[2] 1957년에 문교부에서 우수국산영화상이라는 명칭으로 시상하기 시작했고(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1961년 주관이 공보부로 바뀌면서[3] 제1회 한국최우수영화상 시상식(영상)이 열렸으며, 1962년 대종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수국산영화상과 한국최우수영화상 시절은 대종상의 역대 수상 목록에서 제외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이 시절과 단절을 선언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웹사이트 연혁에는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4]
1969년과 1970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의 영화 부문으로 통합[5]되었는데 수많은 잡음 속에 1969년은 영화 부문 수상자 없이 끝났다. 1970년에는 영화 부문에서 시나리오 작가 최금동이 본상을 수상했다.[6] 1971년부터 다시 대종상으로 환원되었다.
1988년에는 영화계 내분으로 이듬해로 연기되었고, 1998년에는 IMF 외환위기로 후원사를 찾지 못해 무산되었으며, 2019년에는 시상 방식 변경으로 이듬해로 연기되면서 개최되지 못했다. 적어도 80년대 이전에는 한국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이었다. 사실은 애초부터 공정성과는 담 쌓은 후진국형 이권다툼 행사였다는 것이[7]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의 수준도 점점 높아지기 시작하고,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만천하에 들통났다.
국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넘어간 것은 1992년으로 삼성이 단독 후원을 맡아 영화인협회와 공동 주최했다.
조직위원회와 영화 단체의 갈등, 영화 단체들의 파벌 싸움과 공정성 논란 속에서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메이저 영화상' 중 유일하게 언론사가 아닌 '영화인'들이 직접 꾸리는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주기적인 위기 속에서 위와 같은 이유로 되살아나기를 반복해왔다.
남녀주연상 수상자가 다음 해 홍보대사를 맡는 전통이 있다.
2015년 남녀주연상 후보 전원 불참 사태와 2016년부터 TV 생중계가 지상파인 KBS에서 케이블 방송, 종합편성채널로 바뀌며 위상이 하락했다. 당시 대종상은 흥행 대작 위주의 시상으로 여론이 좋지 않았는데, 대종상 이후 열리는 청룡영화상이 2년 연속 독립영화에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비교적 공정하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결정적으로 2016년 청룡이 대종상엔 불참한 뒤 청룡에 참석한 여우주연상 후보들을 제치고 유일한 불참자[8]에게 여우주연상을 주며 화제성과 함께 국내 최고 권위의 영화상 타이틀을 거머쥐었다.[9] 2인자 포지션도 JTBC에서 중계하는 종합 시상식인 백상예술대상에게 넘겨주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TV에 생중계 되며 '3대 영화상'이라 불리고 있다.[10]
2017년 제54회 대종상영화제는 '리부트'를 선언하며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외부 심사위원 비율을 높이고 국내 시상식 최초로 심사위원 명단과 함께 심사결과를 방송에서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설경구, 송강호, 이병헌 등 배우들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참석률도 높아졌다. 출품제 심사 방식 역시 폐지됐다. 제55회 대종상영화제까지 TV조선이 생중계를 맡았다.
제56회 대종상영화제부터는 1월부터 12월 개봉작을 심사하기 위해 개최 시기를 11월에서 다음 해 2월로 변경했다.[11] 당초 2020년 2월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되어 6월 3일 개최됐다. 중계 방송사는 MBN으로 바뀌었다.
2021년 제57회 시상식은 코로나19로 무산되었고, 2022년 12월 9일 제58회 시상식이 건국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렸다.
2023년 12월 대종상을 주최하던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이하 영연, 영협이라고도 함)가 서울회생법원에 의해 파산선고를 당했다. 이번 파산신청은 과거 영연 임원의 파산신청을 법원이 인정한 것으로 영연은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런 상황에 당장 2024년 겨울로 계획된 제60회 대종상도 사실상 개최가 무산되었다.[12]
최대채권자 김진문의 법률상 대리인인 로펌고 측 고윤기 변호사는 2024년 11월 18일 대종상영화제 상표권에 대한 매각 공고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번 매각은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Stalking Horse Bid'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먼저 선정된 우선매수권을 가진 매수희망자의 매입 조건이 최저 입찰가가 되어, 이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입찰자를 추가로 모집하는 방식이다. 최저매각가격은 5천6백만원(부가세 포함)으로 책정됐다. 입찰 마감은 오는 11월 22일 오후 6시까지이며, 개찰은 11월 25일 오전 9시에 진행된다. 또한, 입찰 참가 자격은 비영리법인으로 제한된다. 상표법상 업무표장인 대종상영화제 상표권은 실제로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단체만이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2월 12일, 새로운 개최주체로 <영화기획프로듀서협회>로 낙찰됨에 따라 폐지 위기는 가까스로 벗어났다. #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기획프로듀서가 영연의 산하단체중 하나라는 것. 그리고 행사 주관사로는 위밴드주식회사가 선정되었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예토전생을 앞둔 상황에서도 여전히 말썽이 있는 모양. 기존 영연의 잔당(?)과 다른 영화단체들이 대종상을 금전 매수하려한다고 반발하고 있다.[13] 이런 갈등이 계속되서야 개최권자가 넘어간 뒤의 대종상이 제대로 개최될지도 의문이고, 개최되어도 그 나물에 그 밥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5년 6월, 프로듀서협회가 인수 자금을 납부하지 못함에 따라 계약이 해지되어 2025년 10월에 대종상이 다시 경매에 나왔다.
2025년 11월에 한국영화예술인협회에서 대종상 상표를 인수했다.# 2026년 4월에 시상식 개최를 할 예정
2017년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
- 최우수작품상
- 감독상, 신인 감독상
- 남녀 주연상, 남녀 조연상, 신인 남녀상
- 기획상
- 시나리오상
- 촬영상, 조명상, 미술상, 의상상
- 편집상, 음악상
- 기술상
연도 | 작품상 | 감독상 | 남우주연상 | 여우주연상 | 남우조연상 | 여우조연상 |
1957 | - | - | - | - | - | |
1958 | - | - | ||||
1959 | ||||||
1960 |
연도 | 회차 | 최우수작품상 | 감독상 |
1962 | 1 | 《연산군》 | |
1963 | 2 | 《열녀문》 | 유현목 《아낌없이 주련다》 |
1964 | 3 | 《혈맥》 | |
1965 | 4 | 《벙어리 삼룡》 | |
1966 | 5 | 《갯마을》 | 유현목 《순교자》 |
1967 | 6 | 《귀로》 | 김수용 《안개》 |
1968 | 7 | 《대원군》 | |
1971 | 10 | 수상작 없음[14] | 유현목 《분례기》 |
1972 | 11 | 《의사 안중근》 | 신상옥 《평양폭격대》 |
1973 | 12 | 《홍의장군》 | 최훈 《수선화》 |
1974 | 13 | 《토지》 | |
1975 | 14 | 《불꽃》 | |
1976 | 15 | 《어머니》 | |
1977 | 16 | 《난중일기》 | |
1978 | 17 | 《경찰관》 | |
1979 | 18 | 《깃발 없는 기수》 | 정진우 《심봤다》 |
1980 | 19 | 《사람의 아들》 | |
1981 | 20 | 《초대받은 사람들》 | |
1982 | 21 | ||
1983 | 22 | ||
1984 | 23 | 《자녀목》 | |
1985 | 24 | 《어미》 | |
1986 | 25 | 《안개기둥》 | |
1987 | 26 | 《연산일기》 | |
1989 | 27 | ||
1990 | 28 | ||
1991 | 29 | 《젊은 날의 초상》 | |
1992 | 30 | 《개벽》 | |
1993 | 31 | 《서편제》 | |
1994 | 32 | 《두 여자 이야기》 | |
1995 | 33 | 《영원한 제국》 | |
1996 | 34 | 《애니깽》 | |
1997 | 35 | 《접속》 | |
1999 | 36 | 《아름다운 시절》 | |
2000 | 37 | 《박하사탕》 | |
2001 | 38 | ||
2002 | 39 | 《집으로...》 | |
2003 | 40 | 《살인의 추억》 | |
2004 | 41 | ||
2005 | 42 | 《말아톤》 | |
2006 | 43 | 《왕의 남자》 | |
2007 | 44 | 《가족의 탄생》 | |
2008 | 45 | 《추격자》 | |
2009 | 46 | 《신기전》 | |
2010 | 47 | 《시》 | |
2011 | 48 | 《고지전》 | |
2012 | 49 | ||
2013 | 50 | 《관상》 | |
2014 | 51 | 《명량》 | |
2015 | 52 | 《국제시장》 | |
2016 | 53 | 《내부자들》 | |
2017 | 54 | 《택시운전사》 | |
2018 | 55 | 《버닝》 | |
2020 | 56 | 《기생충》 | |
2021 | 57 | (개최 무산) | |
2022 | 58 | 《헤어질 결심》 | |
2023 | 59 | ||
연도 | 회차 | 남우주연상 | 여우주연상 |
1962 | 1 | ||
1963 | 2 | 도금봉 《새댁》 | |
1964 | 3 | ||
1965 | 4 | 신영균 《달기》 | |
1966 | 5 | 김진규 《태양은 다시 뜬다》 | 최은희 《민며느리》 |
1967 | 6 | 박노식 《고발》 | |
1968 | 7 | 신성일 《이상의 날개》 | |
1971 | 10 | 장동휘 《대전장》 | 윤정희 《분례기》 |
1972 | 11 | 황해 《평양폭격대》 | 고은아 《며느리》 |
1973 | 12 | 남궁원 《다정다한》 | |
1974 | 13 | 박근형 《이중섭》 | |
1975 | 14 | ||
1976 | 15 | 신일룡 《아라비아의 열풍》 | 최민희 《빗속의 연인들》 |
1977 | 16 | 윤미라 《고가》 | |
1978 | 17 | 고은아 《과부》 | |
1979 | 18 | 유지인 《심봤다》 | |
1980 | 19 | ||
1981 | 20 | ||
1982 | 21 | 안성기 《철인들》 | |
1983 | 22 | ||
1984 | 23 | 윤일봉 《가고파》 | |
1985 | 24 | ||
1986 | 25 | ||
1987 | 26 | 이영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 강수연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
1989 | 27 | 이덕화 《추억의 이름으로》 | |
1990 | 28 | 신성일 《코리안 커넥션》 | |
1991 | 29 | ||
1992 | 30 | ||
1993 | 31 | ||
1994 | 32 | ||
1995 | 33 | ||
1996 | 34 | ||
1997 | 35 | ||
1999 | 36 | ||
2000 | 37 | ||
2001 | 38 | ||
2002 | 39 | ||
2003 | 40 | ||
2004 | 41 | ||
2005 | 42 | ||
2006 | 43 | ||
2007 | 44 | ||
2008 | 45 | ||
2009 | 46 | ||
2010 | 47 | ||
2011 | 48 | ||
2012 | 49 | ||
2013 | 50 | ||
2014 | 51 | ||
2015 | 52 | ||
2016 | 53 | ||
2017 | 54 | ||
2018 | 55 | ||
2020 | 56 | ||
2021 | 57 | (개최 무산) | |
2022 | 58 | ||
2023 | 59 | ||
연도 | 회차 | 남우조연상 | 여우조연상 |
1962 | 1 | 이예춘 《현해탄은 알고 있다》 | |
1963 | 2 | 박노식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 황정순 《새댁》 |
1964 | 3 | 김희갑 《쌀》 | 최지희 《김약국의 딸들》 |
1965 | 4 | 윤인자 《빨간 마후라》 | |
1966 | 5 | 최남현 《추풍령》 | |
1967 | 6 | 윤일봉 《애하》 | 주증녀 《만선》 |
1968 | 7 | 황정순 《엄마의 일기》 | |
1971 | 10 | 최무룡 《마지막황태자 영친왕》 | 사미자 《분례기》 |
1972 | 11 | 김희갑 《작은 꿈이 꽃필 때》 | 도금봉 《작은 꿈이 꽃필 때》 |
1973 | 12 | 박암 《열궁녀》 | 최인숙 《비련의 벙어리 삼룡》 |
1974 | 13 | 허장강 《꽃상여》 | |
1975 | 14 | ||
1976 | 15 | ||
1977 | 16 | 윤일봉 《초분》 | 선우용여 《산불》 |
1978 | 17 | 최불암 《세종대왕》 | |
1979 | 18 | 황해 《심봤다》 | 정애란 《을화》 |
1980 | 19 | 박암 《땅울림》 | |
1981 | 20 | ||
1982 | 21 | - | |
1983 | 22 | 김희라 《불의 딸》 | 고두심 《질투》 |
1984 | 23 | 김무생 《깊고 깊은 그 곳에》 | |
1985 | 24 | 나기수 《화녀촌》 | 한은진 《오싱》 |
1986 | 25 | ||
1987 | 26 | 이대근 《감자》 | 김형자 《감자》 |
1989 | 27 | 김지미 《추억의 이름으로》 | |
1990 | 28 | 김희라 《수탉》 | |
1991 | 29 | 박근형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 |
1992 | 30 | 이혜영 《명자 아끼꼬 쏘냐》 | |
1993 | 31 | 이미연 《눈꽃》 | |
1994 | 32 | ||
1995 | 33 | ||
1996 | 34 | ||
1997 | 35 | ||
1999 | 36 | ||
2000 | 37 | ||
2001 | 38 | ||
2002 | 39 | ||
2003 | 40 | ||
2004 | 41 | ||
2005 | 42 | ||
2006 | 43 | ||
2007 | 44 | ||
2008 | 45 | ||
2009 | 46 | ||
2010 | 47 | ||
2011 | 48 | 심은경 《로맨틱 헤븐》 | |
2012 | 49 | ||
2013 | 50 | ||
2014 | 51 | ||
2015 | 52 | ||
2016 | 53 | ||
2017 | 54 | ||
2018 | 55 | ||
2020 | 56 | ||
2021 | 57 | (개최 무산) | |
2022 | 58 | ||
2023 | 59 | ||
연도 | 회차 | 신인상[1~15회] | ||
특별상 신인부문(연기)[21~24회] | 특별상 신인부문(감독)[21~22회] | |||
신인남우상 | 신인여우상 | 신인감독상 | ||
1962 | 1 | 김기덕 감독 《5인의 해병》 | ||
1963 | 2 | 전우영 각본가 《빼앗긴 일요일》 | ||
1964 | 3 | 서정민 촬영 감독 《돌아오지 않는 해병》 | ||
1965 | 4 | 김석강 《잉여인간》 | ||
1966 | 5 | 문희 《흑맥》 | ||
1967 | 6 | |||
1968 | 7 | 정진철 촬영 감독 《성년한국》 | ||
1971 | 10 | |||
1972 | 11 | 전영 《불장난》 | ||
1973 | 12 | 윤미라 《처녀 사공》 | ||
1974 | 13 | |||
1975 | 14 | |||
1976 | 15 | 한유정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 ||
1977 | 16 | 김기만 《고가》 | 김영란 《처녀의 성》 | |
1978 | 17 | 김보연 《제갈맹순이》 | ||
1979 | 18 | 이영주 《누가 이 아픔을》 | ||
1980 | 19 | 안성기 《바람 불어 좋은 날》 | 금보라 《물보라》 | |
1981 | 20 | |||
1982 | 21 | 나영희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 ||
1983 | 22 | 이보희 《일송정 푸른 솔은》 | 하명중 《X》 | |
1984 | 23 | |||
지숙 《푸른 하늘 은하수》 | ||||
1985 | 24 | 전혜성 《어미》 | 장길수 《밤의 열기 속으로》 | |
최현미 《화녀촌》 | ||||
1986 | 25 | 강석현 《젊은 밤 후회 없다》 | ||
1987 | 26 | |||
천은경 《소금 장수》 | ||||
1989 | 27 | 박광수 《칠수와 만수》 | ||
최수지 《상처》 | 유영진 《추억의 이름으로》 | |||
1990 | 28 | 안승훈 《물의 나라》 | 최유라 《수탉》 | 정한우 《죄없는 병사들》 |
1991 | 29 | 김성령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 방규식 《천국의 땅》 | |
1992 | 30 | 장현수 《걸어서 하늘까지》 | ||
이만 《뻘》 | ||||
1993 | 31 | 김의석 《결혼 이야기》 | ||
1994 | 32 | 김정민 《휘모리》 | 이정국 《두 여자 이야기》 | |
1995 | 33 | 이정재 《젊은 남자》 | ||
1996 | 34 | |||
이민용 《개같은 날의 오후》 | ||||
1997 | 35 | |||
1999 | 36 | |||
2000 | 37 | 민병천 《유령》 | ||
2001 | 38 | |||
2002 | 39 | 이시명 《2009 로스트 메모리즈》 | ||
2003 | 40 | |||
2004 | 41 | |||
2005 | 42 | |||
2006 | 43 | |||
2007 | 44 | 권형진 《호로비츠를 위하여》 | ||
2008 | 45 | 한예슬 《용의주도 미스 신》 | ||
2009 | 46 | 이호재 《작전》 | ||
2010 | 47 | |||
2011 | 48 | |||
2012 | 49 | |||
2013 | 50 | |||
2014 | 51 | |||
2015 | 52 | |||
2016 | 53 | |||
2017 | 54 | |||
2018 | 55 | |||
2020 | 56 | |||
2021 | 57 | (개최 무산) | ||
2022 | 58 | |||
2023 | 59 | |||
연도 | 회차 | 남우주연상 |
1993 | 31 | 이덕화 《살어리랏다》 최민수 《결혼 이야기》 김명곤 《서편제》 정보석 《웨스턴 애비뉴》 안성기 《하얀전쟁》 |
1994 | 32 | 안성기 《투캅스》 박중훈 《투캅스》 장동휘 《만무방》 문성근 《101번째 프로포즈》 김희라 《증발》 |
1995 | 33 | 김갑수 《태백산맥》 문성근 《너에게 나를 보낸다》 박중훈 《마누라 죽이기》 이경영 《세상 밖으로》 안성기 《영원한 제국》 |
1996 | 34 | 최민수 《테러리스트》 문성근 《꽃잎》 박상민 《나에게 오라》 임성민 《애니깽》 한석규 《은행나무 침대》 |
1997 | 35 | 한석규 《초록 물고기》 박근형 《아버지》 김승우 《고스트 맘마》 최민수 《블랙 잭》 정우성 《비트》 |
1999 | 36 | 최민식 《쉬리》 박신양 《약속》 신현준 《퇴마록》 이정재 《태양은 없다》 한석규 《8월의 크리스마스》 |
2000 | 37 | 최민수 《유령》 이병헌 《내 마음의 풍금》 안성기 《진실 게임》 설경구 《박하사탕》 박중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2001 | 38 | 송강호 《공동경비구역 JSA》 차승원 《리베라 메》 이병헌 《번지 점프를 하다》 유오성 《친구》 이성재 《하루》 이정재 《선물》 |
2002 | 39 | 설경구 《공공의 적》 조재현 《나쁜 남자》 정우성 《무사》 차태현 《엽기적인 그녀》 최민식 《파이란》 |
2003 | 40 | 송강호 《살인의 추억》 장동건 《해안선》 유오성 《챔피언》 황정민 《로드무비》 차승원 《선생 김봉두》 |
2004 | 41 | 최민식 《올드보이》 박신양 《범죄의 재구성》 류승범 《아라한 장풍대작전》 양동근 《와일드 카드》 장동건 《태극기 휘날리며》 |
2005 | 42 | 조승우 《말아톤》 설경구 《공공의 적 2》 이병헌 《달콤한 인생》 설경구 《역도산》 류승범 《주먹이 운다》 |
2006 | 43 | 감우성 《왕의 남자》 장동건 《태풍》 이정재 《태풍》 황정민 《너는 내 운명》 류승범 《사생결단》 |
2007 | 44 | 안성기 《라디오 스타》 송강호 《괴물》 설경구 《그놈 목소리》 조인성 《비열한 거리》 이대근 《이대근, 이댁은》 |
2008 | 45 | 김윤석 《추격자》 송강호 《밀양》 임창정 《스카우트》 하정우 《추격자》 황정민 《행복》 |
2009 | 46 | 김명민 《내 사랑 내 곁에》 하정우 《국가대표》 정재영 《신기전》 설경구 《해운대》 김윤석 《거북이 달린다》 |
2010 | 47 | 원빈 《아저씨》 정재영 《이끼》 최민식 《악마를 보았다》 이병헌 《악마를 보았다》 박희순 《맨발의 꿈》 송강호 《의형제》 강동원 《의형제》 |
2011 | 48 | 박해일 《최종병기 활》 이순재 《그대를 사랑합니다》 류승범 《부당거래》 윤계상 《풍산개》 차태현 《헬로우 고스트》 김윤석 《황해》 |
2012 | 49 | 이병헌 《광해, 왕이 된 남자》 안성기 《부러진 화살》 최민식 《범죄와의 전쟁》 황정민 《댄싱퀸》 김명민 《페이스 메이커》 |
2013 | 50 | 류승룡 《7번방의 선물》 송강호 《관상》 이정재 《관상》 황정민 《신세계》 황정민 《전설의 주먹》 |
2014 | 51 | 최민식 《명량》 강동원 《군도:민란의 시대》 박해일 《제보자》 송강호 《변호인》 정우성 《신의 한 수》 |
2015 | 52 | 황정민 《국제시장》 하정우 《암살》 손현주 《악의 연대기》 유아인 《베테랑》 유아인 《사도》 |
2016 | 53 | 이병헌 《내부자들》 곽도원 《곡성》 최민식 《대호》 하정우 《터널》 송강호 《밀정》 |
2017 | 54 | 설경구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송강호 《택시운전사》 이제훈 《박열》 조인성 《더 킹》 한석규 《프리즌》 |
2018 | 55 | 이성민 《공작》 황정민 《공작》 김윤석 《1987》 이병헌 《남한산성》 유아인 《버닝》 조진웅 《독전》 |
2020 | 56 | 이병헌 《백두산》 설경구 《생일》 송강호 《기생충》 정우성 《증인》 한석규 《천문: 하늘에 묻는다》 |
2021 | 57 | (개최 무산) |
2022 | 58 | 박해일 《헤어질 결심》 설경구 《킹메이커》 송강호 《브로커》 정우성 《헌트》 이병헌 《비상선언》 류승룡 《인생은 아름다워》 |
2023 | 58 | 이병헌 《콘크리트 유토피아》 도경수 《더 문》 류준열 《올빼미》 송강호 《거미집》 임시완 《1947 보스톤》 |
연도 | 회차 | 여우주연상 |
1993 | 31 | 심혜진 《결혼 이야기》 강수연 《그대 안의 블루》 강수연 《웨스턴 애비뉴》 윤정희 《눈꽃》 김혜수 《첫사랑》 |
1994 | 32 | 윤정희 《만무방》 최진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김서라 《두 여자 이야기》 김희애 《101번째 프로포즈》 이혜영 《아주 특별한 변신》 |
1995 | 33 | 최진실 《마누라 죽이기》 심혜진 《세상 밖으로》 정선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 진희경 《손톱》 최명길 《장미빛 인생》 |
1996 | 34 | 심혜진 《은행나무 침대》 이정현 《꽃잎》 김혜수 《닥터 봉》 심혜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방은진 《301 302》 |
1997 | 35 | 심혜진 《초록 물고기》 신은경 《창》 강수연 《블랙잭》 심혜진 《마리아와 여인숙》 최진실 《고스트 맘마》 |
1999 | 36 | 심은하 《미술관 옆 동물원》 김혜자 《마요네즈》 윤소정 《올가미》 이미숙 《정사》 전도연 《약속》 |
2000 | 37 | 전도연 《내 마음의 풍금》 강수연 《송어》 심은하 《텔 미 썸딩》 전도연 《해피 엔드》 하지원 《진실 게임》 |
2001 | 38 | 고소영 《하루》 전도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연 《물고기자리》 김희선 《비천무》 이영애 《선물》 전지현 《시월애》 |
2002 | 39 | 전지현 《엽기적인 그녀》 이미숙 《베사메무쵸》 이영애 《봄날은 간다》 추상미 《생활의 발견》 장백지 《파이란》 |
2003 | 40 | 이미연 《중독》 엄정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장나라 《오! 해피데이》 김윤진 《밀애》 예지원 《대한민국 헌법 제1조》 |
2004 | 41 | 문소리 《바람난 가족》 김하늘 《그녀를 믿지 마세요》 이미숙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전도연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염정아 《장화, 홍련》 |
2005 | 42 | 김혜수 《얼굴 없는 미녀》 문근영 《댄서의 순정》 김미숙 《말아톤》 전도연 《인어공주》 이은주 《주홍글씨》 |
2006 | 43 | 전도연 《너는 내 운명》 이영애 《친절한 금자씨》 전지현 《데이지》 장진영 《청연》 김혜수 《분홍신》 |
2007 | 44 | 김아중 《미녀는 괴로워》 문근영 《사랑따윈 필요없어》 예지원 《올드 미스 다이어리 - 극장판》 김혜수 《타짜》 엄정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
2008 | 45 | 김윤진 《세븐데이즈》 김해숙 《경축! 우리사랑》 박진희 《궁녀》 전도연 《밀양》 임수정 《행복》 |
2009 | 46 | 수애 《님은 먼곳에》 김규리 《미인도》 김혜자 《마더》 최강희 《애자》 장나라 《하늘과 바다》 |
2010 | 47 | 윤정희 《시》 김윤진 《하모니》 서영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전도연 《하녀》 조여정 《방자전》 |
2011 | 48 | 김하늘 《블라인드》 배종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심은경 《써니》 김혜수 《이층의 악당》 최강희 《쩨쩨한 로맨스》 윤소정 《그대를 사랑합니다》 |
2012 | 49 | 조민수 《피에타》 김고은 《은교》 엄정화 《댄싱퀸》 임수정 《내 아내의 모든 것》 황정민 《밍크코트》 |
2013 | 50 | 엄정화 《몽타주》 갈소원 《7번방의 선물》 윤여정 《고령화 가족》 장영남 《공정사회》 문정희 《숨바꼭질》 |
2014 | 51 | 손예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심은경 《수상한 그녀》 엄지원 《소원》 전도연 《집으로 가는 길》 천우희 《한공주》 |
2015 | 52 | 전지현 《암살》 김윤진 《국제시장》 김혜수 《차이나타운》 엄정화 《미쓰 와이프》 한효주 《뷰티 인사이드》 |
2016 | 53 | 손예진 《덕혜옹주》 배두나 《터널》 윤여정 《계춘할망》 이태란 《두 번째 스물》 심은경 《널 기다리며》 강예원 《날, 보러와요》 |
2017 | 54 | 최희서 《박열》 공효진 《미씽: 사라진 여자》 김옥빈 《악녀》 염정아 《장산범》 천우희 《어느날》 |
2018 | 55 | 나문희 《아이 캔 스피크》 김다미 《마녀》 김태리 《1987》 김해숙 《허스토리》 이솜 《소공녀》 |
2020 | 56 | 정유미 《82년생 김지영》 김향기 《증인》 김희애 《윤희에게》 전도연 《생일》 한지민 《미쓰백》 |
2021 | 57 | (개최 무산) |
2022 | 58 | 염정아 《인생은 아름다워》 탕웨이 《헤어질 결심》 이혜영 《당신얼굴 앞에서》 이정은 《오마주》 박소담 《특송》 |
2023 | 59 | 김서형 《비닐하우스》 김선영 《드림팰리스》 배두나 《다음 소희》 양말복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염정아 《밀수》 정유미 《잠》 |
- 1986년 제25회 이창호, 유혜선
- 1989년 제27회 차인태
- 1994년 제32회 이덕화, 강수연
- 1995년 제33회 안성기, 강수연
- 2001년 제38회 유정현, 정지영
- 2002년 제39회 홍은철
- 2005년 제42회 손범수, 정지영
- 2006년 제43회 유정현, 이보영
- 2007년 제44회 유정현, 김아중
- 2008년 제45회 최기환, 김아중
- 2009년 제46회 최기환, 한예슬
- 2012년 제49회 신현준, 김정은
- 2013년 제50회 신현준, 하지원
- 2015년 제52회 신현준, 한고은
- 2017년 제54회 신현준, 스테파니 리
- 2018년 제55회 신현준, 김규리
- 2022년 제58회 김태훈, 강나연
2011년부터 2016년을 제외하고 2018년까지 진행을 맡았던 신현준은 생방송 중 후보자, 작품 이름을 헷갈리는 등 어수선하고 웃기려는데에만 치중하다는 비난도 있었으나, 2015 대종상 시상식 논란 당시에는 MC, 시상, 대리수상까지 하며 '신현준의 일당백', '신현준의 고군분투'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16년에 전문 진행자가 진행을 맡아 시상식이 다소 안정되어 보인다는 평도 있으나 메인 진행자인 김병찬의 진행 방식이 올드하다는 평 또한 있었다.
김홍준(심사위원장, 영화감독, 영상원 교수), 강성률(영화평론가, 광운대교수),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교수), 김형준(한맥문화 대표), 달시 파켓(영화평론가, 부산영화아카데미 교수), 오동진(영화평론가, 마리끌레르영화제 집행위원장), 윤성은(영화평론가),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정수완(영화평론가, 동국대교수)
2017년부터 생방송으로 수상자들의 심사 결과를 공개했다.
2017년부터 생방송으로 수상자들의 심사 결과를 공개했다.
김홍준 | 강성률 | 강유정 | 김형준 | 달시 파켓 | 오동진 | 윤성은 | 정성일 | 정수완 | |
남우주연상 설경구 | ● | ● | ● | ● | ● | ● | ● | ||
여우주연상 최희서 | ● | ● | ● | ● | ● | ● | |||
남우조연상 배성우 | ● | ● | ● | ● | ● | ||||
여우조연상 김소진 | ● | ● | ● | ● | ● | ● | |||
신인남우상 박서준 | ● | ● | ● | ● | ● | ||||
신인여우상 최희서 | ● | ● | ● | ● | ● | ● | ● | ● |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교수), 김영(미루픽쳐스 대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 김형준(한맥문화 대표, 아시아필름어워드 국제고문), 김홍준(영화감독, 영상원 교수), 달시 파켓(영화평론가, 부산영화아카데미 교수), 전진수(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 정성일(영화평론가, 영화감독), 정수완(영화평론가, 동국대 교수), 채수진(프로듀서, 전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소위원회 위원)
이장호(영화감독, 한국영화 100년 추진위원장), 김영 (영화 기획제작자), 김형준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운영위원), 문재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 백현주 (동아방송예술대 창의융합교양학부 교수), 변성찬 (인디다큐페스티벌 집행위원장), 성승택 (촬영 감독), 양경미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 전철홍 (시나리오 작가)
- 1999년 제36회 시상식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보내 "영화는 21세기 무한한 세계문화시장을 이끌어갈 전략상품의 핵심이 되고 있다"며 "좋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 시대의 영웅이며 신지식인"이라고 영화인들을 격려했다.
- 2013년 제50회 대종상은 KBS 2TV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2013년 한국시리즈 7차전 중계로 취소되었고, 녹화방송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대종상 측이 7차전까지 가지 못할 거라고 해명하는 바람에 대충상이라고 욕을 먹은 적이 있다.
- 2017년 제54회 시상식에서 박열의 최희서가 대종상 역사상 최초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함께 수상하였다. 신인상 후보가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경우는 여러번 있었지만 수상까지 이어진 경우는 처음이다. 이전과 달리 주최측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와 전혀 무관한 영화계 인물들로 심사단을 구성했고, 심사위원들의 투표과정과 결과를 공개하였기에 가능한 시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여우주연상 후보 중 최희서만 참석했으나, 다른 부문 수상자 중 불참자는 사전에 촬영해둔 수상소감 영상을 방송하였으므로 불참했다고 주최측이 심사위원단의 결과를 번복하여 수상자를 바꿨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 2020년 시상식부터 인기상이 폐지됐다.
[1] 반대로 청룡영화상은 정식 명칭이 청룡영화'상'인데도 청룡영화'제'라고 곧잘 불린다. 물론 청룡영화상도 영화제가 아니다.[2] 참고로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상은 1956년 1월 3일 열린 제1회 금룡상(金龍賞)이다. 전신을 제외하고 대종상만 따지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상은 1958년 시작된 부일영화상이다.[3] 1961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문화 및 예술에 관한 사무가 공보부로 이관되었다.[4] @1 @2 @3[5] 대종상, 무궁화상, 방송문화상, 출판상, 3·1연극상, 문예상, 신인예술상, 국악상 등 8개 시상 제도와 6개 경연대회 등의 시상 제도를 단일화하여 본상 10개 부문으로 통합하였다.[6] 일부 자료에는 최금동이 1970년 제9회 대종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것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엄밀하게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의 영화 부문 본상이다. 영화 부분 본상은 작품상, 감독상, 연기상 등으로 각각 시상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해 1인에게 주었다.[7] 왜냐하면 대종상을 시상받은 회사에게 특전이 주어지는데, 바로 외화수입권이었다. 당시 이전만 해도 질이 낮았던 한국영화보다 아무래도 헐리우드 영화표가 더 잘 팔렸기에, 이런 것을 하나라도 확보하고자 작품성이야 어쨌든 대종상 수상만 목적으로 영화를 찍던 영화인들도 있었다.[8] 영화 아가씨의 김민희.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연기 호평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감독과의 불륜으로 국내 각종 협회 시상식에 불참, 대중들의 비난 여론으로 1개의 여우주연상에 그쳤었다. 대종상에는 아예 작품을 출품하지 않아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9] 2019년 기준 지상파에서 중계되는 유일한 영화 시상식.[10] 2010년 초반까지는 MBC가 주최한 '대한민국 영화대상'이 SBS에서 중계했던 대종상, KBS에서 중계를 맡은 청룡영화상과 함께 ‘3대 영화상’으로 불렸다.[11] 제56회 대종상 영화제는 2018년 9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1년 4개월간 개봉한 영화들이 후보에 올랐다.[12] 파산 전후에 벌어진 일도 가관이었는데, 前 영연 이사장이었던 양윤호가 2023년 영연 파산을 막아달라고 모금을 했는데 그 모금액조차도 착복해서 고소당했다. #[13] 「영협이 청산 절차에 들어가자 기획협회는 영협의 자산이던 대종상 업무표장을 6억6000만원에 낙찰받고, 지난 12일 올해 대종상을 기획협회 명의로 주최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영협을 비롯한 한국영화감독협회, 한국영화기술단체협의회, 한국영화배우협회,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한국영화음악협회,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 등 7개 단체가 “대종상을 금전 매수하려 한다”고 강력 반발하면서 대종상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영협 등은 기획협회가 대종상을 꾸려나갈 여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경향> 국내 가장 오래된 영화 시상식, 대종상에 무슨 일이(sic.) [14] 《무명의 교사》는 극영화가 아닌 문화영화로서 '최우수문화영화작품상'을 수상했고, 극영화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은 없다. # #[15]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시나리오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 조명상, 음악상, 의상상, 미술상, 기획상, 영상기술상, 음향기술상, 인기상[16] 1979년 족보, 1981년 만다라, 1986년 티켓, 1987년 연산일기, 1993년 서편제[17] 최초 2연속 수상[18] 2003년 살인의 추억, 2007년 괴물, 2009년 마더, 2013년 설국열차, 2020년 기생충[19] 2006년 왕의 남자, 2008년 즐거운 인생, 2014년 소원, 2015년 사도, 2017년 박열[20] 1982년 철인들, 1983년 안개마을, 1985년 깊고 푸른 밤, 1994년 투캅스, 2007년 라디오스타[21] 2001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3년 살인의 추억, 2007년 괴물, 2008년 밀양, 2010년 의형제, 2013년 관상, 2014년 변호인, 2016년 밀정, 2017년 택시운전사, 2020년 기생충, 2022년 브로커, 2023년 거미집[22] 1959년 어느 여대생의 고백, 1960년 동심초, 1961년 이 생명 다하도록, 1962년 상록수, 1965년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1966년 민며느리[23] 1999년 약속, 2000년 내 마음의 풍금, 해피엔드, 2001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2004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2005년 인어공주, 2006년 너는 내운명, 2008년 밀양, 2010년 하녀, 2014년 집으로 가는 길, 2020년 생일[24]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 1983년 불의 딸, 1990년 수탉, 2010년 시[25] 2006년 왕의 남자, 2010년 이끼, 2011년 부당거래, 2014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5년 베테랑[26] 2010년 방자전, 2013년 7번방의 선물, 2015년 국제시장, 암살, 2016년 터널[27] 1963년 새댁, 1968년 갯마을, 1968년 엄마의 일기[28] 2008년 무방비도시, 2012년 도둑들, 2015년 사도[29] 2008년 무방비도시, 2009년 박쥐, 2012년 도둑들, 2015년 사도, 2017년 재심[30] 1997년 초록물고기, 2000년 박하사탕, 2010년 시[31] 2000년 유령, 2003년 살인의 추억, 2013년 설국열차, 2020년 기생충[32] 1971년 화녀, 1974년 국회 푸락치, 1978년 과부, 1982년 만추, 1983년 안개마을, 1991년 젊은 날의 초상, 1993년 서편제[33] 1971년 화녀, 1974년 국회 푸락치, 1978년 과부, 1982년 만추, 1983년 안개마을, 1991년 젊은 날의 초상, 1993년 서편제, 1996년 본 투 킬, 1997년 아버지, 2000년 춘향던, 2001년 침향[34] 1978년 망명의 늪, 1981년 만다라, 1983년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91년 젊은 날의 초상, 1992년 개벽[35] 1996년 은행나무 침대, 1997년 비트, 1999년 태양은 없다, 2001년 인터뷰, 2002년 무사, 2003년 살인의 추억, 2005년 역도산, 2007년 괴물[36] 1996년 테레리스트, 1997년 접속, 피아노맨, 1998년 정사, 2001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5년 얼굴없는 미녀, 2008년 황진이, 2009년 신기전, [37] 1962년 연산군, 1963년 지옥문, 1965년 벙어리 삼룡, 1982년 삐에로와 국화[38] 1975년 불꽃, 1979년 깃발 없는 기수, 1982년 낮은 데로 임하소서, 1984년 사약, 1985년 길소뜸, 1996년 금홍아 금홍아, 1997년 창[39] 1994년 그 섬에 가고 싶다, 1997년 창, 2009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 2016년 덕혜옹주[40] 당시 25세 3개월 3일[41] 당시 20세 6개월 26일[42] 당시 55세 5개월 7일[43] 당시 76세 10개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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