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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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왕복선의 역사적인 첫 임무, 30년 역사의 시작
STS-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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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S-1 미션 패치 | |
임무 이름 | STS-1(Space Transportation System-1) |
승무원 수 | 2 명 |
발사일 | 1981년 4월 12일 12:00:03 UTC |
발사대 | 케네디 우주센터 LC-39A |
귀환일 | 1981년 4월 14일 18:20:57 UTC |
미션 기간 | 2일 6시간 20분 53초 |
우주선 | |
사령관(CDR) | |
사령선 조종사(CMP) | |
궤도를 돈 횟수 | 37번 |
궤도 주기 | 89.4분 |
궤도 높이 | 307km (166해리) |
궤도 기울기 | 40.3도 |
이동 거리 | 172.8만 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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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S-1의 승무원들 왼쪽에 서있는 사람이 존 영,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이 로버트 크리펜이다. |
발사장면 |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착륙하여 귀환하는 장면 |
STS-1은 우주왕복선의 첫 발사일 뿐만 아니라, NASA 유인 우주선 발사에 고체연료 로켓이 사용된 첫번째 임무였다. 미션 목표는 궤도로 안전하게 올라가 오비터와 승무원의 안전한 착륙을 위해 지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 임무에 탑재된 탑재물은 개발 비행 계기(DFI) 패키지로, 이 패키지는 궤도 비행의 성능과 발사, 발사각, 비행 궤도, 하강 및 착륙 중 발생한 선체에 가해지는 압박을 기록하는 측정장치를 포함하고 있었다. NASA에서 계획한 113개의 비행시험 목표가 모두 달성되었고, 궤도선의 안정성이 검증되었다.
비행중 대략 70여개의 이상 징후가 관찰되었다.

발사 후 수직미익 주변에 타일이 16개 가량 떨어져 나갔다. 이 때 당시는 별 문제 없었으나, 이 사소한 문제가 어떤 참사로 번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 대기권 재진입 시 압력 중심 위치를 잘못 표시하여 컴퓨터가 예상된 8, 9도보다 16도 정도 차체 플랩을 연장해야 했다.
- 승무원들이 SRB 분리까지 발사 1단계 내내 외부 탱크에서 "흰색 물체"가 떨어져 나와 유리창에서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아마 외부 탱크의 열성 거품을 덮은 흰색 페인트였을것으로 추정된다.
- 컬럼비아호 외부 탱크 도어에 위치한 스트라이크 플레이트가 재진입 중 과열된 열 노출로 인해 용해되고 왜곡되었다.
[1] 백업 조 엥글.[2] 백업 리처드 로런스[3] 원래 이틀전에 발사 예정이였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미뤄졌다.[4] 이 날은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이 우주비행을 한지 20년이 되는 날이였다. 미뤄진 발사 날짜가 우연히 겹친것이다.[5] 우주 왕복선의 중단 모드중 첫번째 모드로, Return To Launch Site(발사 장소로 귀환)의 약자이다.[6] 우주왕복선 양 옆에 붙어있는 고체 부스터[7] 당시 계속해서 고도가 떨어지던 스카이랩에 컬럼비아가 도킹하여 고도를 회복시키는 복안이 존재했다.[8] 그러나 무인 부스터를 도킹하는 등의 방법을 쓰면 컬럼비아가 고도 회복 임무를 맡을 필요가 없었던 만큼, 미국은 스카이랩을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 상관이 없는 존재로 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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