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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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총통부 中華民國總統府 Office of the President Republic of China | |
설립 | |
주소 | |
설명 출처
총통부는 비서장 1명(한국의 대통령비서실장 격)과 부비서장(대통령 비서실 차장 격) 2명, 대변인과 부대변인 각각 1명을 둔다.
또한 다음과 같은 3국 3실 체제를 갖추고 있다.
총통부는 비서장 1명(한국의 대통령비서실장 격)과 부비서장(대통령 비서실 차장 격) 2명, 대변인과 부대변인 각각 1명을 둔다.
또한 다음과 같은 3국 3실 체제를 갖추고 있다.
- 제1국:총통의 법률 공포, 국가 기관, 군 등과 관련된 업무[1]
- 제2국:훈장이나 국새의 관리, 공보의 발행[2]
- 제3국:행사 의전 및 건물, 차량 등 총무 업무[3]
- 기요실(機要室):총통부의 기록 업무를 담당[4]
- 공공 사무실(公共事務室):홍보 업무를 담당[5]
- 인사처(人事處):인사 업무 담당[6]
- 주계처(主計處)[7]
- 정풍처(政風處)[8]
- 법규위원회(法規委員會)[9]
- 총통부 직속 위원회
- 인권자문위원회(人權諮詢委員會)
- 재경자문위원회(財經諮詢小組)
- 원주민족 역사정의 및 이행기 정의위원회(原住民族歷史正義與轉型正義委員會)
- 국가연금개혁위원회(國家年金改革委員會)
- 총통부 고문
- 자정(資政)
무급 30인 이내 인원으로 임명하며, 총통의 최고 고문 역할을 하는 직위로 전직 장관급의 퇴직한 고위 관리를 임명하는 것이 관례이다. 현재는 무급만 16명. - 국책고문(國策顧問)
무급 90인 이내 인원으로 임명하며, 임명한 총통의 임기까지 임기가 보장되는 것이 원칙으로, 국가 정책 결정 제반에 대해 총통의 자문 기구 역할을 한다. 현재는 60명.
공자의 직계 후손인 공덕성이 대성지성선사봉사관으로 문화고문직을 겸임했다. 본래 신해혁명 이전까지는 연성공이라는 세습 작위가 주어졌으나, 중화민국 건국 후 현재의 대성지성선사봉사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대성지성선사봉사관은 세습직이기 때문에, 공덕성 사후 공수장이 세습을 받아 지위를 이었다. 원래 맹자, 순자, 주자 후손도 대만에 살고 있으면서 봉사관직을 세습하고는 있지만, 리덩후이 총통 때 공자 후손 외의 다른 후손들은 국책고문직에서 해임했다. - 전략고문(戰略顧問)
15명까지 임명할 수 있으며(현재는 5명), 전원이 유급직이다. 중화민국 국군 장성들이 임명된다. 전략 및 국방 관련 업무에 대해 총통의 자문 기구 역할을 한다.
- 총통부 직속기관
- 중앙연구원(中央研究院, Academia Sinica)
- 국사관(國史館)[10]
- 국사관 타이완 문헌관(國史館臺灣文獻館)

총통관저 위키백과(중국어)
총통 관저. 총통부에서 일을 끝낸 총통이 실제로 거주하는 관저는 바로 이 총통 관저라고 해서 따로 있다. 총통부에서 1km 남짓 떨어져 있으며, 관용차로 출퇴근한다.
타이베이시립대학의 맞은편에 있다. 총통관저 바로 뒤에는 중화민국중앙은행이 있다. 샤오난먼역에서 걸어서 6분 정도 걸려서 역세권 위치이다. 명목상 정확한 위치는 기밀이라고 하는데 언론기사로 위치를 유추해볼 수 있고, 구글 지도에도 드러나있다.
현재 관저는 리덩후이 총통 대부터 사용하였다. 이 건물은 그가 부총통이었을 때 장징궈 총통이 만들어준 것으로, 그가 총통이 되고 나서도 그 집에 그대로 살게 되면서 총통관저가 되었다. 리덩후이 이후 천수이볜이 총통관저 신축 계획을 접으면서 후임 총통인 마잉주, 차이잉원도 이 관저에 거주하게 되었다.
대만의 총통관저는 총통 임기가 시작할 때마다 이름이 바뀐다. 보통 지역명에서 따오는 경우가 많다. 차이잉원 총통이 붙인 이름은 永和寓所(영화우소). 총통이 되기 이전 거주지였던 신베이시 융허(永和)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 전 마잉주는 관저 주소인 중정구와 총통이 되기 전 거주지인 원산구 싱룽루(興隆路)에서 따온 중싱 우소(中興寓所), 천수이볜은 위산에서 따온 위산 우소(玉山寓所), 리덩후이는 전 거주지인 다안구에서 따온 다안 우소(大安寓所)라 하였다. 이 이름은 경호실 등에서 총통관저를 가리킬 때 쓰는 코드네임이기도 하다.
지금 총통관저가 좀 많이 낡아서 재건축 또는 신축이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이전 여론이 좀 더 높다. 총통관저를 신축하게 되면, 현재 총통관저는 관광지로 개조될 가능성이 높다.
차이잉원은 총통관저에 입주했지만 주소지는 신베이시 융허구에 위치한 자택에 그대로 두고 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위장 전입 상황이다. 2018년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 때 타이베이 투표소가 아닌 신베이 투표소에서 투표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리덩후이 이전 총통들은 제각기 다른 관저를 사용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총통 거주용 건물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총통이 사는 집이 곧 관저였다.
부총통은 관저를 따로 쓰는데, 타이베이시 다안구의 다안역 근처에 있다. 천청 전 부총통의 자택을 개조했으며 뤼슈롄 부총통부터 이 관저를 쓰고 있다. 그 전에는 부총통 관저가 따로 없이 자기 집을 관저로 썼다가, 뤼슈롄 부총통부터 정해진 관저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뤼슈롄 이후로도 전임 부총통 샤오완창과 우둔이는 관저에 입주하지 않고[12] 자택에서 출퇴근했으나, 천젠런과 라이칭더는 다시 부총통 관저를 사용하였다.
- 장제스: 타이베이시 스린구에 관저가 있다. 위치는 스린역 인근이긴 한데 스린역에서 걸어가기엔 다소 멀다. 다만 국립고궁박물원을 오가는 버스도 관저 인근에 정차하니 같이 묶어서 갈 수도 있다. 본래 대만총독부 농업시험소 자리로, 국부천대 후에 이곳에 저택을 짓고 관저로 삼았다. 소재지에서 따와 스린관저(士林官邸)라는 이름을 썼으며, 1996년에 관광지로 개방되었다.
국부천대 이전에는 난징의 미령궁(美齡宮)에 거주했는데, 1934년 장제스가 부인 쑹메이링을 위해 지은 관저로 관저명도 쑹메이링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것도 현재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 장징궈: 타이베이시 중산구에 관저가 있다. 1950년대 대만(중화민국)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준 미국 해군 제7함대의 사령관이 대만에 올 때 그의 거처로 마련한 곳이며, 1950년대 제7함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치하이우소(七海寓所)라고 이름지었다. 1968년에 장징궈가 치하이우소로 이사오면서 그의 관저로 쓰기 시작했다. 위치는 대만의 국립현충원격인 국민혁명충렬사와 가깝다. 이곳은 2022년에야 사료관을 겸한 기념관으로 조성, 개방되었는데, 최근까지도 관저 바로 뒤가 군부대였기 때문이다. 해당 군부대는 대만의 저출산 기조에 따라 병력 부족으로 2019년 폐지되었고, 군부대가 폐지되었으므로 드디어 관저 개방이 가능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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