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재 安成宰|Sung An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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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Sung Anh 성 안 |
출생 | |
국적 | |
거주지 | |
가족 | 배우자 임정은(Amy Anh) 딸 안시영(July Anh)(2014년 7월생) 아들 안은기(Caleb Anh)(2016년생) |
경력 | |
학력 | |
신체 | 183cm |
직업 | |
MBTI | |
소속 | |
링크 | |
1982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궁중 요리 전수자였던 할머니의 요리를 자주 먹으며 자랐다.[7] 1993년 만 11세,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족을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민가서 자랐다. 이민 후 부모님은 어렵게 살며[8] 양말 가게 점원, 티셔츠 가게 점원, 옷가게, 미국식 중화 요리 식당[9] 등 장사일을 바꾸어가며 했다. # 안성재도 새벽에 나가 양말 좌판을 깔거나 방과 후 매일 식당에 들러 일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
성인이 되어 미군에 입대했고, 미국 육군에서 4년 동안 정비병으로 근무하며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간 경험도 갖고 있다. # 군 전역 후 24세 때 포르쉐 정비사가 되기 위해 차량정비학교에 입학하려 학비까지 냈으나, 이전까지는 셰프가 어떤 존재인지 뭐하는 직업인지 자체도 전혀 몰랐었지만(#) 운전 중 지나가던 요리 학교 르 꼬르동 블루의 패서디나 캠퍼스 앞에 하얀 조리복을 입고 서있는 학생들을 보고는 순간 흥미가 생겨 입학 상담을 신청하고 졸업하면 취업이 100% 보장된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요리 학교 입학을 결정하게 된다. 이때 안성재의 나이가 24세였는데, 요리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 경험을 최대한 빨리 쌓기 위해 개강도 하기 전에 인근 레스토랑에서 접시 닦는 일을 구했다.[10]
요리 학교를 졸업한 뒤, 베벌리힐스의 스시 전문점인 '우라사와'에서[11] 스타지[12]로 일을 시작하며 파인 다이닝 커리어를 시작했다. 안성재에 의하면 우라사와는 그 당시 미국 서부에서 가장 비싸고 평이 좋은 레스토랑 중 하나로, 요리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그렇다면 자신이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일해보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수 차례 전화가 끊겼고, 전화로 되지 않자 무작정 수 차례 방문해 자신을 써줄 것을 요청했지만 오너 셰프 우라사와 히로유키는 미국인은 규율을 잘 따르지 못해 쓰지 않겠다, 자신들은 일본인을 받는 것이 편하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안성재는 자신은 한국인이고 월급도 안 줘도 된다고 하며 계속 설득해 처음 몇 주간은 무급으로 일했고, 우라사와는 진지하게 요리를 배우려는 안성재의 자세를 확인하고 몇 주 뒤에 월급을 주기 시작했다. 우라사와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하니 오너 셰프가 출근하지 않아도 레스토랑의 모든 일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됐다고 한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의 대표 산지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파 밸리에 위치한 더 프렌치 런드리의[13] 수셰프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셰프 이동민이 식사차 우라사와를 방문하고, 근무 중이던 안성재를 눈여겨봐 더 프렌치 런드리로 이직을 제안한다.[14] 안성재는 제안을 수락하고, 나파밸리에 있는 한 포도밭에 있는 오두막에서 지내며 더 프렌치 런드리에서 꼬미 셰프로 시작하여 두 달 후 셰프 드 파티로 진급하게 된다.
이후에는 이동민 셰프가 미국 요리계의 오스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이 선정하는 '올해의 주목 받은 셰프'가 된 이후 더 프렌치 런드리에서 독립해 샌프란시스코에 '베누'라는 레스토랑을 개업하게 되고 한인 최초로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하게 되는데, 안성재도 오픈 멤버로 베누에 합류하게 된다. 그 후 안성재는 샌프란시스코의 '아지자'라는 모로코 레스토랑에서 총괄 셰프로 근무를 했으며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15]
성인이 되어 미군에 입대했고, 미국 육군에서 4년 동안 정비병으로 근무하며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간 경험도 갖고 있다. # 군 전역 후 24세 때 포르쉐 정비사가 되기 위해 차량정비학교에 입학하려 학비까지 냈으나, 이전까지는 셰프가 어떤 존재인지 뭐하는 직업인지 자체도 전혀 몰랐었지만(#) 운전 중 지나가던 요리 학교 르 꼬르동 블루의 패서디나 캠퍼스 앞에 하얀 조리복을 입고 서있는 학생들을 보고는 순간 흥미가 생겨 입학 상담을 신청하고 졸업하면 취업이 100% 보장된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요리 학교 입학을 결정하게 된다. 이때 안성재의 나이가 24세였는데, 요리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 경험을 최대한 빨리 쌓기 위해 개강도 하기 전에 인근 레스토랑에서 접시 닦는 일을 구했다.[10]
요리 학교를 졸업한 뒤, 베벌리힐스의 스시 전문점인 '우라사와'에서[11] 스타지[12]로 일을 시작하며 파인 다이닝 커리어를 시작했다. 안성재에 의하면 우라사와는 그 당시 미국 서부에서 가장 비싸고 평이 좋은 레스토랑 중 하나로, 요리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그렇다면 자신이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일해보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수 차례 전화가 끊겼고, 전화로 되지 않자 무작정 수 차례 방문해 자신을 써줄 것을 요청했지만 오너 셰프 우라사와 히로유키는 미국인은 규율을 잘 따르지 못해 쓰지 않겠다, 자신들은 일본인을 받는 것이 편하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안성재는 자신은 한국인이고 월급도 안 줘도 된다고 하며 계속 설득해 처음 몇 주간은 무급으로 일했고, 우라사와는 진지하게 요리를 배우려는 안성재의 자세를 확인하고 몇 주 뒤에 월급을 주기 시작했다. 우라사와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하니 오너 셰프가 출근하지 않아도 레스토랑의 모든 일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됐다고 한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의 대표 산지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파 밸리에 위치한 더 프렌치 런드리의[13] 수셰프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셰프 이동민이 식사차 우라사와를 방문하고, 근무 중이던 안성재를 눈여겨봐 더 프렌치 런드리로 이직을 제안한다.[14] 안성재는 제안을 수락하고, 나파밸리에 있는 한 포도밭에 있는 오두막에서 지내며 더 프렌치 런드리에서 꼬미 셰프로 시작하여 두 달 후 셰프 드 파티로 진급하게 된다.
이후에는 이동민 셰프가 미국 요리계의 오스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이 선정하는 '올해의 주목 받은 셰프'가 된 이후 더 프렌치 런드리에서 독립해 샌프란시스코에 '베누'라는 레스토랑을 개업하게 되고 한인 최초로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하게 되는데, 안성재도 오픈 멤버로 베누에 합류하게 된다. 그 후 안성재는 샌프란시스코의 '아지자'라는 모로코 레스토랑에서 총괄 셰프로 근무를 했으며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15]
한식의 '파인 다이닝' 꿈꾸는 미슐랭 셰프 | YTN |
2016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너 셰프로서 본인의 첫 레스토랑 모수를 개업했다.[16] 안성재는 모수에서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신규 업장으로서는 신기록이었던 195달러의 디너 테이스팅 메뉴를 출시한다. 이에 샌프란시스코 유력지의 푸드 칼럼니스트 마이클 바우어는 "모든 디쉬들이 흥미로웠지만 요리가 아직 미완성인 듯 밸런스가 부족한 것들이 많았다"는 평과 함께 무명 셰프가 개업부터 너무 비싼 가격을 책정했다며 정식 리뷰를 게재하지 않았다.[17] 그 여파로 인해 매출이 급감해 모수는 폐업 위기까지 몰리지만, Eater 매거진의 유명 푸드 칼럼니스트인 빌 애디슨에게 요리를 극찬받고[18] 그 해 10월에 출시된 미쉐린 가이드에서 1스타를 획득하며 기사회생하게 된다.
미국으로 유학 온 한국인 아내와 교회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30살에 결혼했고 다시 한국으로 가족과 함께 역이민했다. 가족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지내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 한남동으로 모수를 이전했으며, 한남동 모수는 흔히 '모수 서울'로 불린다. 이후 코로나19 방역 시기인 2022년에는 홍콩에 자매 레스토랑인 모수 홍콩을 개업했다. 모수 서울은 2019년에 미쉐린 1스타와 이듬해에 2스타를 차례로 획득하고, 2023년에는 한국의 유일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모수는 2024년 초에 CJ와의 파트너십 종료[19]로 휴업을 했고 미쉐린 평가원들이 잠행하는 기간에 영업하지 않아 2025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지 않았다.
2025년 3월, 서울 이태원동에서 모수 서울을 재개장했다.[20] 현재 모수 서울, 모수 홍콩과 유튜브 채널 운영을 병행 중이다.
"만약에 제가 심사를 본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에서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제작 전 김학민 PD와 섭외과정에서 나눈 대화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시즌 1)에서 대한민국 유일의 3 스타 셰프로 백종원과 함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요리 자체의 맛 뿐만 아닌, 요리의 과정과 의도 또한 심사 기준에 포함하며 각 요리사의 계급에 상관 없이 평가에 엄격하고 까다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를 두고 맛의 대중성을 중점으로 평가한 백종원과는 반대로 요리사의 기본기와 요리의 맥락을 중점으로 평가했다는 의견이 많다.[21]
이후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에서 후일담을 내놨는데, 흑수저 결정전에서 평가를 혹독하게 하는 것과는 별개로 참가자분들의 노력을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지표로 무 자르듯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참가자분들의 감정이 다 보였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이후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에서 후일담을 내놨는데, 흑수저 결정전에서 평가를 혹독하게 하는 것과는 별개로 참가자분들의 노력을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지표로 무 자르듯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참가자분들의 감정이 다 보였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는 채소의 익힘 정도거든요(덩여).
이 보섭살은... 제 기준에는 잘 못 구워졌어요. 고기가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 고기가 고루 익지 않았어요.참가자 평가절하에게 조언하는 中. 일명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 밈.
오늘 급식 메뉴는 뭔가요?참가자 급식대가의 급식 메뉴 심사평 中
간이 아주 타이트하게 들어갔어요.
잠시 보류하겠습니다.
근데 그 익힘이 굉장히 타이트해요. 어, 맛있어요.참가자 철가방 요리사의 팔보채 메뉴 심사평 中
돼지고기를 먹고 좋았던 점보다 그쪽 요리가 더 싫었어요. 네. 이건 진심이에요. (중략) 완성도가 없는 테크닉은 테크닉이 아닌 거예요.참가자 최현석의 1 vs 1 대결 장 트리오 심사평 中
뭔가 지금 달달하게 하려고 과일 같은 걸 넣었는데 이게 지금 은은하게 향이 나서 지금 뭔지 모르겠어. 근데 그 과일이 지금 킥이거든요 저한텐? 단맛이 올라오는 게.
편의점 재료가 좋네.[23]
마늘을 빼셨다..?[24]
음.. 그 생사과가 제일 맛있었어요.
향, 맛, 식감. 그 모든 걸 다 잡아야 되는 거예요.
웃으셔도 돼요, 이제.
잣을 충분히 더.. 세게 강하게 막 할 수 있었을텐데. 절제를 하셨어요, 지금. 이게 절제했는데, 그 향이 너무 향긋한 거 같아요.
1번 요리 잣 국수를 먹었는데, 대박인 거지, 응. 너무 맛있었어요. '잣의 향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라는... 그래서 '아 이거는 지금, 엇 보통 사람이 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서는... 잘못하면은 이제 바로, 바로 그냥 버튼 누르겠단 생각을 하고서는 이제 두 번째를 먹었어요.[25]
혀를 가지고 우리를 갖다가 이제 농락시키는 거예요. 근데, 너무 맛있는 거지. 농락당해도 되게 기쁘게 농락당하는 느낌? 좀... 지금 생각해도 흥분되는 거예요, 약간.
날짜 | 방송사 | 방송명 | 비고 |
2015년 | |||
2월 24일 ~ 3월 17일 | 올리브쇼 2015 | 5, 7, 8회 | |
2017년 | |||
1월 1일 | [청춘 세계로 가다] 한식의 '파인 다이닝' 꿈꾸는 미슐랭 셰프 | ||
2024년 | |||
3월 25일 | Inside South Korea's only three-Michelin-starred restaurant | ||
9월 17일 ~ 10월 8일 | 심사위원 | ||
10월 20일 | |||
2025년 | |||
3월 9일 | 게스트 | ||
3월 11일 | |||
3월 30일 ~ 4월 13일 | |||
4월 18일 | 특별출연 | ||
12월 16일 ~ 2026년 1월 13일 | 심사위원 | ||
2026년 | |||
미정 | 고정출연 | ||
수상일 | 시상식명 | 수상내역 | 비고 |
2024년 | 엘르 스타일 어워즈 2024 | TRAILBLAZER OF THE YEAR | |
2024년 | Inedit Damm Chefs’ Choice Award 2024 (Asia’s 50 Best Restaurants) [28] | ||
2025년 | thebestchefawards 2025 | three knives[29] |
- 2025년 3월 21일(금), 안성재 셰프의 레스토랑 '모수 서울'이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수의 전화번호로 착신 전환을 한 후 식사 비용을 요구하는 범죄 행위가 발생했다"며, "이는 모수와 관련 없는 행위이므로 유의 바란다."라는 SNS 게시글을 게재했다. #

- 구체적으로는 "KT 통신사 직원"이라 소개한 사칭범이 모수 내부 직원에게 본인의 번호로 착신 전환을 유도했으며, 모수 내부 직원이 이를 의심없이 진행하여 착신 전환이 이루어졌다. # #


- 사칭범은 선결제를 위해 모수 로고를 박아 계좌번호와 지불할 금액을 적어 문자를 보냈고, 피해자들은 모수 서울 공식 대표 번호로 전화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입금을 진행했다. #

-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자는 6명, 이 중 4명의 피해액은 최소 84만 원부터 최대 504만 원까지 총 1310만 원으로 밝혀졌다. #
안성재가 "중국인", "중국 공산당원", "화교"거나 "친중 성향이 있다."라는 허위사실이 디시인사이드 흑백요리사 갤러리를 중심으로 유포되자 흑백요리사 제작사 스튜디오 슬램이 2026년 1월 6일 강력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음모론자들은 안성재의 말투가 어눌하다는 점, 이름의 한자를 화교들이 많이 쓴다는 점, '안'씨의 영어 표기법이 일반적인 한국어 표기와 다르다는 점, 안성재의 부모님이 미국에서 중식당을 운영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내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안성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모수'를 두고 "모택동을 연상케 한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30] 물론 대다수 네티즌들은 미군에 입대까지 한 사람이 무슨 중국인이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1 #2
음모론자들은 안성재 개인 SNS에까지 찾아가 욕설과 비방 메시지를 보내는 등 사이버 불링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음모론 주장과 사이버 인신 공격에 대하여 스튜디오 측은 선처 없는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
법조계에 따르면 해당 게시글 및 악플은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최대 징역 7년 또는 벌금 5000만 원, 그리고 고액의 손해배상 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 #
음모론자들은 안성재 개인 SNS에까지 찾아가 욕설과 비방 메시지를 보내는 등 사이버 불링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음모론 주장과 사이버 인신 공격에 대하여 스튜디오 측은 선처 없는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
법조계에 따르면 해당 게시글 및 악플은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최대 징역 7년 또는 벌금 5000만 원, 그리고 고액의 손해배상 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 #
- 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영문 이름을 'Ahn'[32]으로 쓰지만 안성재는 'Anh'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탈자가 아니라 의도된 것.
- 오른팔에 한국인의 자부심, 한국인의 프라이드 느낌의 타투가 영어로 새겨져 있다.#
- 과거 자신이 일하던 미국의 일식당 '우라사와'에 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수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그 중 한국과 일본이 격돌한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 직전에 이치로가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게 연달아 패배해 굉장히 분해하는 이치로가 안성재를 앞에 두고 심한 욕설을 섞어가며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안성재는 운동선수로서 이치로가 승부사 기질을 가진 선수라는 것은 알겠으나 그래도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 스시야 전통 복장을 하고 요리를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일식만을 연마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맞지 않다고 느꼈다고 한다.[33] 이후 안성재는 곧 나파 밸리의 더 프렌치 런드리로 이직하게 된다.
- 2024년에 한국의 유일한 3스타였던 모수 서울이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면서, 한국에는 3스타 레스토랑이 모두 없어졌다. 모수 서울의 투자를 맡고 있던 CJ가 투자를 철수하면서 운영이 어려워진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34] 이전까지 3스타 개근을 했던 곳은 라연과 가온인데, 라연은 2023년 2스타로 강등됐고, # 가온은 2022년을 끝으로 폐업했다. # 원래 모수도 2024년에 휴업에 들어가면서 별을 반납해야 했지만 6월 재오픈을 조건으로 3스타를 유지했으나, 투자자 유치에 난항을 겪었는지 6월 오픈에 실패했고 결국 별을 반납하게 됐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히 폐업하지는 않은 상태로 여전히 투자자를 찾고 있으며 언젠가는 다시 영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한다.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에서 언급한 바로는, 2024년 겨울에 오픈을 준비하고 있지만 내년으로 밀릴 수 있다고 한다.
-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출연 이후로는 '채소의 익힘 정도'라는 표현이나 "고기가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라는 표현들이 인기를 얻어 유행하고 있다. 여기서 이븐(even)은 균일하다는 의미로, "골고루 익히다"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 흑백요리사 시즌 1에서 최현석과 은근히 마찰을 빚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여 혐관 밈이 생겼다. 2라운드에서 최현석의 장 트리오 스테이크를 먹을 때 "그쪽[35] 요리가 더 싫었어요."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최현석을 투표했던 백종원과 싸우기 직전까지 장장 40분에 걸친 토론을 했다고 한다.# 4라운드에서는 최현석의 전략을 듣고 크게 와닿는 게 없다는 극딜을 넣기도 했다. 최현석이 실수로 마늘을 넣지 않은 봉골레 파스타를 먹으며 "마늘을 안 넣으셨다...?"라며 탄식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후 무한 요리 지옥 1차 라운드에서 최현석을 탈락시키기 전 요리 심사평을 할 때 방송 처음으로 굉장히 신난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화제가 됐다.[36] 극도로 정갈하고 완전한 레시피를 구사하는 안성재와 달리 실험 정신이 투철하고 자유분방한 최현석과의 성향 차이로 생긴 갈등인 듯하다. 다만 어디까지나 방송적 연출의 측면에서 보인 모습이고 실제로는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37]
- '사람들이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을 할 때가 있지만,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노력'이라는 말을 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싫어한다고 덧붙였다.
- 음식을 평가할때 요리 자체의 맛 뿐만 아닌, 요리의 과정과 의도 또한 심사 기준에 포함시키며 이 심사 기준이 상당히 일관적이고 철저히 고수한다. 요리 자체에 점수를 매길 때도 100점을 맞는 요리는 이세상에 없다고 하면서 맛으로 낼수 있는 최고 점수는 90점. 그래서 안성재에게 90점의 점수를 받으면 사실상 만점이다.[38] 현재까지 안성재가 90점을 준 요리는 나폴리 맛피아의 게국지 요리와 최강록의 무시즈지 요리 단 두개뿐이다.
- 현재는 그의 동년배 사이에선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노년층에서나 존재하는 서울 방언 구사자이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 "~거덩요."하는 말투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초반에 이민을 갔고, 미국에 정착 후에는 한국어보다 영어를 사용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한국어 말투가 이민을 떠나오던 그 당시에 한국에서 쓰던 말투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예전에 한국을 떠나 외국에 오래 정착한 다른 교포들에게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 슬하에 1남 1녀가 있는데, 안성재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종종 등장한다. 특히 아들은 안성재의 영향인지 미식을 즐기고 맛 평가도 제법 하는 모습을 보인다.
- 202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본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가족끼리 요리 만드는 콘텐츠를 공개했다. 딸이 먹고 싶어한 두바이 쫀득쿠키를 만드는 데 건강을 생각한다고 마시멜로를 덜 넣고, 레시피를 재해석해서 바꾼 쫀득하지 않고 모양도 사각형에 본인 말로는 아메리칸 스타일로 재해석한 두바이 쫀득쿠키
두바이 강정를 만들었다.[39] 또한 아들은 그저 불고기만 먹고 싶다고 했고 피자를 먹고 싶어한 것은 딸이었지만, 그 둘을 섞어 불고기 피자를 만들어버렸다.[40] 그래도 피자는 가족들 모두 호평하며 맛있게 먹었다. 영상에는 안성재를 유쾌하게 지적하는 댓글뿐만 아니라 인신공격성 비난 댓글도 폭주했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 # #
[1] 빠른년생이다. 안성재의 생애를 보면 '1993년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일반적인 1982년생은 1993년에 초등학교 5학년이기 때문이다.[2] 정비병 출신이었으며, 이라크 전쟁과 후세인 작전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이라크 참전 이외에는 캠프 험프리스, 동유럽 등지에서 근무했다고 한다.[3]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3년에 미국으로 이민[4] 파리에 있는 본교가 아닌 현재는 폐교한 미국 LA 패서디나 캠퍼스 출신이다. 르꼬르동블루는 호주, 한국 등 전 세계에 분교를 두고 있다.[5]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4년 판에 등재된 국내 유일의 3스타 레스토랑이었으나 CJ와의 스폰서쉽 만료로 휴업에 들어간 후 재개장 기간이 길어지면서 2025년 가이드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참고로 역대 대한민국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은 '모수'를 비롯해 현재는 2스타인 호텔신라의 '라연', 지금은 폐업한 '가온', 2025년에 3스타를 부여 받은 밍글스까지 총 네 곳이다.[6] 파인 다이닝을 전문으로 하며, 과거 대한민국 유일의 미쉐린 가이드 3스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었던 '모수 서울'과 분점인 '모수 홍콩'의 오너셰프이다.[7] 이북 출신이었던 안성재의 할머니가 개성 약과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안성재는 훗날 모수에서 할머니의 요리법으로 개발한 개성 약과를 디저트 메뉴로 차용했다. 모수의 디저트 메뉴 중 유일하게 개업부터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았던 메뉴다. 안성재는 인터뷰에서 어릴 때는 약과 때문에 나는 생강과 계피 냄새를 정말 싫어했는데, 지금은 그 냄새가 너무 그립다고 말하기도 했다.[8] 자동차를 샀더니 은행 잔고가 0이었다고 한다. #[9] 판다 익스프레스와 비슷한 컨셉의 로컬 브랜드 레스토랑이었다.[10] 반에서 레스토랑 일을 구한 유일한 학생이어서 개강 첫날에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11] 미쉐린 2스타. 현재는 폐업했다.[12] Stage, 무급으로 요리를 배움. 일종의 도제다.[13] 토마스 켈러 셰프가 운영하는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이며 미쉐린 3스타이다.[14] 당연히 무작정 빼간 게 아니라 이동민이 우라사와에게 영입을 해도 괜찮은지 물어봤다고 한다.[15] 당시 안성재 본인은 모로코에 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모로코에 가보지 못한 요리사가 모로코 요리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것이다. #[16] 이 오픈 날짜가 기사와 정보마다 다른데, 모수 사이트와 본인 인터뷰로는 2015년에 오픈했다고 말을 하는지라 국내에서는 2015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소프트오픈이었고 정식 오픈은 2016년 2월이었다고 관련 정보들이 나온다. # 거기에 인터뷰마다 오픈 후 8개월 만에 미쉐린 1스타를 얻었다고 말하는데 당시 미쉐린을 받은 시점이 2016년 10월이니 계산상 2월에 오픈한 게 타당하다.[17] 정식 리뷰를 게재하려면 세 번을 방문해야 하는데 두 번만 방문하고 말았다고 한다. 모수 개업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고급 일식당이 모수의 신기록을 경신했는데, 바우어는 신규 업장들은 가격을 점진적으로 올려야지 처음부터 이런 가격을 책정할 자격이 없다며 두 레스토랑의 정식 리뷰를 거부한다는 칼럼을 썼다.[18] 모수에서 먹은 송어알, 게살, 오크라, 무가 들어간 계란찜을 "spectacularly gorgeous"라고 평하며 그 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먹었던 12가지의 가장 인상 깊었던 요리 중 하나로 꼽았다. 매거진의 동료 기자에 의하면 빌 애디슨이 모수의 요리는 엄청난데 왜 이렇게 인테리어가 비어있고 간판을 안 달았는지 의아해했다고 한다. 마이클 바우어 또한 레스토랑의 인테리어가 초라하다는 뉘앙스로 서술했다. 안성재에 의하면, 그게 최대한 자금을 긁어모아 했던 최선이었다고 한다.[19] 안성재 본인은 모수 홍콩 운영 등 개인 활동과 병행을 원했지만, 3스타 유지를 목표로 하던 CJ에서 난색을 표해 재계약이 불발 됐다고 한다. # 기사와 당시 반응은 CJ가 실적 악화로 인해 파인 다이닝 사업에 손을 떼려 하려는 게 아니냐고 추측했지만, 모수와의 결별 이후 조승현 쉐프와 손을 잡고 SAN이라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바로 오픈한 것을 보면 안성재와의 의견 차이가 주된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20]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를 맡았다.[21] 흑수저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지만 백수저 참가자들도 안성재의 평가를 더욱 두려워했다.[22] 대표적으로 "~거'든요'"를 "~거'덩여'"에 가깝게 발음하는 습관이 있다.[23] 권성준이 편의점 제품으로만 사용해서 만든 티라미수를 맛보고 난 뒤 감탄하며 한 말. 심지어 더 먹어야겠다며 연신 숟가락으로 더 퍼먹었다.[24] 최현석이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면서 실수로 마늘을 넣지 않았고, 안성재는 음식에서 마늘 맛이 나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였다. 이후 진짜로 마늘이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나지막하게 한 말이다. 최현석도 이후 개인 인터뷰에서 실수를 인정하며 자책했고, 본인의 식당에서 한동안 손님들에게 봉골레 파스타를 내놓을 때 "이번에는 마늘을 빼 먹지 않았습니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25] 안성재가 극찬한 몇 없는 상황이다.[26] 이전부터 유독 후덕죽에 대한 리스펙을 강하게 드러내던 안성재가 세미파이널 두 번째 미션인 무한 요리 지옥 첫 번째 당근 요리 대결에서 후덕죽이 반죽을 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며 말한다.[27] 한글 자막 버전은 다음 영상 참고. 
[28] 쉐프들이 꼽은 쉐프[29] 한국 유일[30] 전부 반박이 가능한 주장들이다. 안성재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대개정된 2000년 이전에 미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영어 표기가 지금과 달리 특이하단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Ken이란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을 쓰는 이근을 똑같은 억지 논리로 일본인으로 몰아갈 수 있다. 옛날엔 한국과 한식의 소프트파워가 약했기 때문에 한국인 이민자가 해외에서 밥벌이로 중식당이나 일식당을 운영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강해진 지금은 해외에서 한식당을 중국인이나 동남아인이 운영하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成, 宰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특정 한자를 이름에 사용하는 유명인들은 많다. 안성재는 '모수'라는 레스토랑 이름을 코스모스에서 따왔다고 예전에 밝힌 적이 있다.[31] 해당 하이볼은 출시 2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 캔을 돌파했다.[32] 대표적으로 안철수가 창업한 안랩의 사명도 안철수의 영문 이름 'Ahn'에서 따온 것이다.[33] 물론 개인적인 선택이고 한국에서 일식과 스시를 전공하는 요리사들을 존중한다고 한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큰 이민자의 특성상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34] 파인 다이닝 문서에도 나오지만 파인 다이닝은 일반적인 음식점들에 비해 고급화로 차별화를 두는 특성 상 인테리어부터 식기 하나하나까지 최상급의 세팅을 갖춰야 하며, 높은 재료값과 인건비로 인해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수익률이 5% 미만으로 적자에 가깝다. 그래서 3스타 정도 되면 거대 투자자가 스폰서를 맡거나 아예 적자 감당이 가능한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영업이 어렵다. 게다가 3스타를 유지하기 위해선 비용이 점점 더 커지는 구조인데다, 이득이라 할 것도 미미한 마케팅 효과 외엔 없어서 어지간한 기업들은 시도하지도 않고 투자자 유치도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라연'은 신라호텔이 운영하고 '가온'은 화요를 가진 도자기 기업 광주요가 운영했으나, 6년 연속 완전 자본 잠식과 더불어 모기업의 실적이 악화하자 바로 철수했다. 모수도 풀무원의 접촉이 있었던 듯하지만, 불발 된 바 있다. #[35] 블라인드 심사에서 누가 요리한 지 모르는 상태로 양쪽의 요리 중 하나를 가리키며 한 말이지, 최현석의 면전에 대고 2인칭으로 말한 게 아니다. 안성재는 항상 최현석을 '선배님' or '셰프님'으로 호칭한다.[36] 한 인터뷰에서는 최현석을 떨어트릴 생각에 신난 밈에 대해 억울하다며 그런 생각을 하고 한 행동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37] 본인 업장의 메뉴 구성에 대해 조언을 구하거나 하는 사이라고 한다.[38] 영화평론가 박평식이 35년동안 수많은 영화를 평론하면서 단 한번도 10점 만점을 주지 않고 9점을 최고 점수로 기준을 세운것과 비슷하다.[39] 만들어진 모습을 보면 만두처럼 속을 채운 두쫀쿠보다는 과거에 유행했던 강정같은 쫀득쿠키를 훨씬 닮은 모습이다.[40] 해당 영상은 LG전자의 광파오븐 광고를 받아서 만든 영상이었기에 오븐을 오래 사용하는 요리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두바이 쫀득쿠키나 불고기는 오븐의 기능을 사용할 여지가 적기에 정통 쿠키와 피자를 바탕으로 오븐의 존재감이 커지는 요리를 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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