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왕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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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건 28년(기원전 237년), 제왕 건은 진왕 정에게 입조했다. 진왕 정은 함양에 있었다. 그리고 술을 내어 제왕 건을 대접했다. 제왕 건은 군왕후가 죽은 뒤, 후승(后勝)을 상국으로 삼았는데, 후승은 진나라로부터 황금, 보석 등을 받아 진나라를 섬길 것을 권해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진나라가 손쉽게 한나라, 조나라, 위나라의 삼진은 물론, 초나라, 연나라까지 차례대로 멸망[5]시켰다.
제왕 건 44년(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위에 언급한 나라들을 멸하자 제왕 건도 위기를 느끼고 후승에게 제나라 서쪽 변경을 지키게 했다. 이에 진시황은 왕전의 아들 왕분을 시켜 제나라를 쳐서 임치를 집중 공격하니 임치가 손쉽게 함락되었고 후승도 항복하였으며 제나라는 더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결국 제왕 건은 항복을 제안했고 진시황은 제왕 건의 항복을 받아들여 제나라는 멸망하였다.
제나라가 멸망하면서 진나라는 제나라를 군으로 삼았고 전건은 진나라에 입조하려 하다가 옹문을 지키는 사마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때 나라에 왕을 세우는 것에 대해 사직을 위한 것이라 했다가 그 사마가 사직을 위해 왕을 세웠으면서 어째서 사직을 버리고 진나라로 들어가냐고 하자 다시 제나라 지역으로 돌아갔다.
즉묵의 대부로부터 진나라에 복종하기 싫어하는 세력을 끌어들여 남쪽에서 왕을 칭한다는 의견을 들었지만 이를 거절했으며, 진나라에서 사람을 보내 500리의 땅을 주겠다고 하자 전건은 그 말을 믿고 진나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전건은 진 시황으로부터 공성(共城)의 송백나무 숲 속에 연금되었다가 굶어죽었다. 즉 진나라가 일부러 음식을 끊어 그를 굶어죽게 했다.[6] 후승은 항복했지만 진군이 제나라를 멸하자마자 처형당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간신과 빈객의 말만 듣고 나라를 망친 전건을 원망해 "소나무인가? 잣나무인가? 왕 건을 공에서 살게 한 사람들은 빈객인가?"라고 하면서 전건이 빈객들을 신중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탄식했다.
제왕 건 44년(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위에 언급한 나라들을 멸하자 제왕 건도 위기를 느끼고 후승에게 제나라 서쪽 변경을 지키게 했다. 이에 진시황은 왕전의 아들 왕분을 시켜 제나라를 쳐서 임치를 집중 공격하니 임치가 손쉽게 함락되었고 후승도 항복하였으며 제나라는 더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결국 제왕 건은 항복을 제안했고 진시황은 제왕 건의 항복을 받아들여 제나라는 멸망하였다.
제나라가 멸망하면서 진나라는 제나라를 군으로 삼았고 전건은 진나라에 입조하려 하다가 옹문을 지키는 사마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때 나라에 왕을 세우는 것에 대해 사직을 위한 것이라 했다가 그 사마가 사직을 위해 왕을 세웠으면서 어째서 사직을 버리고 진나라로 들어가냐고 하자 다시 제나라 지역으로 돌아갔다.
즉묵의 대부로부터 진나라에 복종하기 싫어하는 세력을 끌어들여 남쪽에서 왕을 칭한다는 의견을 들었지만 이를 거절했으며, 진나라에서 사람을 보내 500리의 땅을 주겠다고 하자 전건은 그 말을 믿고 진나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전건은 진 시황으로부터 공성(共城)의 송백나무 숲 속에 연금되었다가 굶어죽었다. 즉 진나라가 일부러 음식을 끊어 그를 굶어죽게 했다.[6] 후승은 항복했지만 진군이 제나라를 멸하자마자 처형당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간신과 빈객의 말만 듣고 나라를 망친 전건을 원망해 "소나무인가? 잣나무인가? 왕 건을 공에서 살게 한 사람들은 빈객인가?"라고 하면서 전건이 빈객들을 신중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탄식했다.
정말 여담이지만 제왕 건이 군왕후 시절 때만큼 적극적인 군사적 움직임을 보였으면 멸망은 피할 수 없어도[7] 최소한 제나라를 좀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제왕 건의 후손인 왕망(王莽)이 신나라를 세울 때, 제왕 건을 세조(世祖) 경왕(敬王)으로 추존했다.
그리고 《고우영 열국지》에서는 강태공의 후손이 굶어 죽었다고 하는데, 이 양반의 조상은 강태공이 아니라 진여공(陳厲公)의 아들인 진완(陳完)이다. 애초에 제나라는 역성혁명을 한 번 겪었으므로 국호는 변하지 않았지만 왕실은 강태공의 후손인 강제에서 전제로 바뀐 상태였다. 제왕건의 먼 조상이 순임금임을 감안하면[8] 순임금의 후손이 굶어죽었다고 하는게 옳다.
아무리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곤 하지만, 왕위에 무려 44년이나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당시 시기로는 노인이라 불릴 50대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난왕과 동일하게 장수가 오히려 독이 된 케이스. 만약 30대나 40대 초반 정도에 죽었더라면 위경민왕같이 망국을 아슬아슬하게 보지 못하고 사망한 케이스였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고우영 열국지》에서는 강태공의 후손이 굶어 죽었다고 하는데, 이 양반의 조상은 강태공이 아니라 진여공(陳厲公)의 아들인 진완(陳完)이다. 애초에 제나라는 역성혁명을 한 번 겪었으므로 국호는 변하지 않았지만 왕실은 강태공의 후손인 강제에서 전제로 바뀐 상태였다. 제왕건의 먼 조상이 순임금임을 감안하면[8] 순임금의 후손이 굶어죽었다고 하는게 옳다.
아무리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곤 하지만, 왕위에 무려 44년이나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당시 시기로는 노인이라 불릴 50대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난왕과 동일하게 장수가 오히려 독이 된 케이스. 만약 30대나 40대 초반 정도에 죽었더라면 위경민왕같이 망국을 아슬아슬하게 보지 못하고 사망한 케이스였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작중 시점에서 제나라 왕으로, 진왕 정에게 시집보낸 제나라 공주 이추의 오빠가 된다. 점잖기는 하지만 매우 우유부단하고 생각을 깊게 안하는 좀 모자란 사람으로 나오는데, 역사대로 X맨 후승 말만 듣다가 나라를 말아먹게 된다.
그나마 대진 강경파인 제나라 공자 전충의 말이라도 들었다면 작중 제나라가 회생해서 진나라를 유의미하게 견제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진나라가 문자를 통일하면서 각국 상인들에게 진전체를 쓸 것을 강요했을 때 전충과 한비를 비롯해서 6국 인물들이 다 도시락 싸들고 반대했지만 진나라는 제나라의 오랜 동맹국이라는 논리와 이사와 후승의 설득에 넘어가서 소전체 사용을 승인했으며, 이후 조, 한, 위, 연, 초가 줄줄이 망해나갈 때도 후승 말대로 진나라와 적대하지 않아서 제나라의 고립을 초래했다. 초나라 멸망 이후에는 여동생이 시황제의 부인인 것도 있고 해서 항복하면 500리의 땅을 주고 제후로 삼겠다고 제안을 보냈는데[9] 이것도 들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제나라는 2,000리인데 꼴랑 500리가 말이 되냐고 한 후승의 말에 넘어가(...) 설득하러 온 이추 공주를 가두는 실책을 범하게 된다. 웃긴 건 정작 대진 강경파였던 전충 공자는 진나라에 가서 상황을 보고 이미 때는 늦었다고 여기고 500만 제나라 백성을 살리기 위해 빨리 항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후승은 태세를 전환해 결사항전해야 한다고(...) 우긴다.
그의 마지막도 우유부단 그 자체인데, 진왕 정에게 후승을 죽이라는 서신을 받고 후승에게 독주를 마시게 해서 그를 살해하고 자신도 독주를 마시고 죽어버리려 했는데 술잔을 보고 공포에 떨며 던져버려서 자결도 못한다. 이후 진나라에 옥새와 지도를 바치며 항복했으며, 제나라 멸망 및 천하통일을 기점으로 작품이 끝나는지라 최후는 묘사되지 않았다.
그나마 대진 강경파인 제나라 공자 전충의 말이라도 들었다면 작중 제나라가 회생해서 진나라를 유의미하게 견제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진나라가 문자를 통일하면서 각국 상인들에게 진전체를 쓸 것을 강요했을 때 전충과 한비를 비롯해서 6국 인물들이 다 도시락 싸들고 반대했지만 진나라는 제나라의 오랜 동맹국이라는 논리와 이사와 후승의 설득에 넘어가서 소전체 사용을 승인했으며, 이후 조, 한, 위, 연, 초가 줄줄이 망해나갈 때도 후승 말대로 진나라와 적대하지 않아서 제나라의 고립을 초래했다. 초나라 멸망 이후에는 여동생이 시황제의 부인인 것도 있고 해서 항복하면 500리의 땅을 주고 제후로 삼겠다고 제안을 보냈는데[9] 이것도 들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제나라는 2,000리인데 꼴랑 500리가 말이 되냐고 한 후승의 말에 넘어가(...) 설득하러 온 이추 공주를 가두는 실책을 범하게 된다. 웃긴 건 정작 대진 강경파였던 전충 공자는 진나라에 가서 상황을 보고 이미 때는 늦었다고 여기고 500만 제나라 백성을 살리기 위해 빨리 항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후승은 태세를 전환해 결사항전해야 한다고(...) 우긴다.
그의 마지막도 우유부단 그 자체인데, 진왕 정에게 후승을 죽이라는 서신을 받고 후승에게 독주를 마시게 해서 그를 살해하고 자신도 독주를 마시고 죽어버리려 했는데 술잔을 보고 공포에 떨며 던져버려서 자결도 못한다. 이후 진나라에 옥새와 지도를 바치며 항복했으며, 제나라 멸망 및 천하통일을 기점으로 작품이 끝나는지라 최후는 묘사되지 않았다.
[A] 1.1 1.2 신 왕망 추존[3] 후술하겠지만 군왕후 섭정기에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4] 물론 그 포위는 풀렸는데 이유는 백기가 조나라를 멸망시켜 자신보다 큰 공로를 세워 승상이 되는 것을 경계한 범저 때문이었다.[5] 소설 열국지에서는 삼진 멸망 당시 진나라에 사절을 보내 축하까지 했다고 서술된다.[6] 《열국지》에 의하면 식량을 보내주기는 했는데, 가족들이 먹기에 턱없이 부족한 양이어서 굶어 죽었다고 나온다.[7] 제민왕 때 털린 여파 탓에.....[8] 순임금...(생략)...호공 규만(진나라 초대 임금)...(생략)...진여공-공자 완(전씨의 시조)...(생략)...제태공(전제 초대 임금)...(생략)...제왕건[9] 조나라의 경우 아예 폐서인시킨 걸 보면 관대한 조치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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