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일스의 모드 공녀
최근 수정 시각:
분류
노르웨이 호콘 7세의 왕비 웨일스의 모드 공녀 Princess Maud of Wales | ||
![]() | ||
이름 | 영어 | 모드 샬럿 메리 빅토리아 (Maud Charlotte Mary Victoria) |
노르웨이어 | 메우드 샬로테 마뤼 빅토리아 (Maud Charlotte Mary Victoria) | |
출생 | ||
사망 | ||
배우자 | 호콘 7세 (1896년 결혼) | |
자녀 | ||
아버지 | ||
어머니 | ||
형제 | ||
서명 | ![]() | |
모노그램 |
- 웨일스의 모드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Maud of Wales (1869년 11월 26일 ~ 1896년 7월 22일)[1]
- 덴마크의 카를 왕자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Charles of Denmark (1896년 7월 22일 ~ 1905년 11월 18일)
- 노르웨이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of Norway (1905년 11월 18일 ~ 1938년 11월 20일)
![]() |
1869년 11월 26일 런던 말버러 하우스에서 태어났다.[2] 1869년 12월 24일, 세례를 받았다. 대부모는 작은아버지 올버니 공작 레오폴드 왕자, 이모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 외숙모 루이세 왕비, 테크 공작 프란츠[3], 케임브리지의 메리 애들레이드 공녀이었다.
![]() |
결혼식 |
1896년 외사촌 덴마크의 카를 왕자와 버킹엄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4] 신부 들러리는 언니 빅토리아, 카를의 여동생 잉에보르와 티라 공주, 그리고 사촌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헬레나 빅토리아 공녀[5], 코넛의 마거릿 공녀와 패트리샤 공녀[6], 올버니의 앨리스 공녀, 조카 레이디 알렉산드라 더프[7]가 있었다.
아버지인 에드워드 7세가 준 애플턴 하우스에서 신혼을 보냈고, 6년 후 33세의 나이로 아들(훗날 올라프 5세)을 출산했다. 카를 왕자는 덴마크의 해군 중위의 계급을 갖고 있었고, 모드와 카를은 대부분 덴마크에서 생활했다.
아버지인 에드워드 7세가 준 애플턴 하우스에서 신혼을 보냈고, 6년 후 33세의 나이로 아들(훗날 올라프 5세)을 출산했다. 카를 왕자는 덴마크의 해군 중위의 계급을 갖고 있었고, 모드와 카를은 대부분 덴마크에서 생활했다.
1905년 6월 91년 간의 노르웨이-스웨덴 동군연합이 해체되면서 카를 왕자가 노르웨이의 새 국왕으로 선출되었다.[8] 카를 왕자는 왕위를 받아들여 호콘 7세로 즉위했고 1906년 6월 22일 노르웨이 트론헤임의 니다로스 성당에서 대관식을 올림으로서 모드는 노르웨이의 왕비가 되었다.[9]
모드는 노르웨이의 왕비가 된 이후에도 영국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다. 항상 영국을 진정한 고향으로 생각했으며, 매년 영국에 방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노르웨이의 환경에 적응했는데, 노르웨이의 겨울 스포츠를 즐기거나 아들 올라프를 노르웨이 방식으로 양육했다.
모드는 노르웨이의 왕비로서 어린이와 동물에 관련된 자선단체를 후원했으며 음악가들과 예술가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37년 조카 조지 6세의 대관식에서였다.
1938년 10월, 영국을 방문한 모드는 건강이 악화되어 복부 수술을 진행했다. 남편 호콘 7세는 빨리 영국에 도착하여 아내의 곁을 지켰지만, 모드는 1938년 11월 20일, 69번째 생일을 6일 남긴 채 심부전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노르웨이는 일요일에 신문 출간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지만 왕비의 부고를 알리기 위해 일종의 호외로 발행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이 날은 모드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왕비의 기일이기도 했다.
모드의 시신은 노르웨이로 옮겨져서 오슬로의 작은 교회에 머물렀다가, 아케르스후스 성에 매장되었다. 그녀는 에드워드 7세와 알렉산드라 왕비의 자녀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한 자녀였다.
모드는 노르웨이의 왕비로서 어린이와 동물에 관련된 자선단체를 후원했으며 음악가들과 예술가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37년 조카 조지 6세의 대관식에서였다.
1938년 10월, 영국을 방문한 모드는 건강이 악화되어 복부 수술을 진행했다. 남편 호콘 7세는 빨리 영국에 도착하여 아내의 곁을 지켰지만, 모드는 1938년 11월 20일, 69번째 생일을 6일 남긴 채 심부전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노르웨이는 일요일에 신문 출간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지만 왕비의 부고를 알리기 위해 일종의 호외로 발행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이 날은 모드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왕비의 기일이기도 했다.
모드의 시신은 노르웨이로 옮겨져서 오슬로의 작은 교회에 머물렀다가, 아케르스후스 성에 매장되었다. 그녀는 에드워드 7세와 알렉산드라 왕비의 자녀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한 자녀였다.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웨일스의 공녀 모드 (Princess Maud of Wales) |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빌헬름 (Friedrich Wilhelm, Duke of 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 | |||
헤센카셀의 루이제 카롤리네 (Princess Louise Caroline of Hesse-Kassel) | |||
헤센카셀의 빌헬름 (Prince William of Hesse-Kassel) | |||
-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 조지의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로 참석하기도 했다.
- 결혼 전에 이탈리아로부터 이탈리아 왕국의 왕세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와의 혼담을 제안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거절하였다고 한다.[12]
[1] 아버지 에드워드 7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결혼을 해서 결혼 당시 웨일스의 공녀 신분이었다.[2] 1871년에 동생 알렉산더 존 왕자가 태어났으나 하루 만에 사망하여 사실상 모드가 막내로 자랐다.[3] 프란츠의 자녀들과 친하게 지냈고 차남인 프랜시스 공자를 좋아했다고 하나 프랜시스는 모드를 친구로만 생각했다고 한다.[4] 자녀들과의 사이가 각별해서 결혼으로 자신의 곁을 떠나는 걸 싫어했던 어머니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는 알렉산드라의 친정인 덴마크 왕실은 매우 가족적인 분위기여서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다.[5] 고모 영국의 헬레나 공주의 딸이다.[6] 숙부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의 딸들이다.[7] 언니 프린세스 로열 루이즈의 딸이다.[8] 이때 카를 왕자가 선출된 이유 중 하나가 모드의 친정이 영국 왕실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모드의 아버지 에드워드 7세가 딸을 왕비로 만들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고 한다.[9] 노르웨이 역사상 덴마크와 스웨덴의 왕비를 겸임하지 않는 최초의 노르웨이의 왕비이다.[10] 오스카르 2세의 손녀이자 프레데리크 8세의 외손녀이다.[11] 하랄 5세 등[12] 당시 이탈리아의 왕비였던 사보이아의 마르게리타가 반드시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