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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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왕국 주앙 3세의 왕비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 Catalina de Austr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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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스페인어 | 카탈리나 데 압스부르고 이 트라스타마라 (Catalina de Habsburgo y Trástamara) |
포르투갈어 | 카타리나 다 아우스트리아 (Catarina da Áustria) | |
출생 | ||
카스티야 연합 왕국 토르케마다 | ||
사망 | ||
배우자 | 주앙 3세 (1525년 결혼 / 1557년 사망) | |
자녀 | ||
아버지 | ||
어머니 | ||
형제 | ||
종교 | ||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여왕 후아나 1세와 카스티야의 공동 국왕 펠리페 1세의 막내딸로 1507년 1월 14일에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 펠리페 1세는 카탈리나가 태어나기 약 5개월 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어머니 후아나는 너무나 사랑했던 남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고 그 와중에 유복자인 카탈리나를 낳았지만, 정신 상태는 나아지지 않아서 광녀 후아나(Juana la Loca)라고 불리며 통치 능력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후아나는 자신의 아버지 페란도 2세에 의해 스페인의 수도원인 토르데시야스 성에 유폐되었다.
이로 인해 유일하게 후아나의 곁에 남아있던 카탈리나도 외할아버지에 의해 태어났을 때부터 18살 때까지 토르데시야스 성에서 어머니와 함께 유폐된 채로 자라게 되었다.
외할아버지 페란도 2세에게 양육된 작은 오빠 페르디난트 1세를 제외하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오빠 카를 5세를 비롯한, 카탈리나의 다른 형제자매들은 어머니 후아나와 떨어진 네덜란드에서 고모인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의 극진한 양육을 받으며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 펠리페 1세는 카탈리나가 태어나기 약 5개월 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어머니 후아나는 너무나 사랑했던 남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고 그 와중에 유복자인 카탈리나를 낳았지만, 정신 상태는 나아지지 않아서 광녀 후아나(Juana la Loca)라고 불리며 통치 능력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후아나는 자신의 아버지 페란도 2세에 의해 스페인의 수도원인 토르데시야스 성에 유폐되었다.
이로 인해 유일하게 후아나의 곁에 남아있던 카탈리나도 외할아버지에 의해 태어났을 때부터 18살 때까지 토르데시야스 성에서 어머니와 함께 유폐된 채로 자라게 되었다.
외할아버지 페란도 2세에게 양육된 작은 오빠 페르디난트 1세를 제외하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오빠 카를 5세를 비롯한, 카탈리나의 다른 형제자매들은 어머니 후아나와 떨어진 네덜란드에서 고모인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의 극진한 양육을 받으며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18살에 사촌오빠 주앙 3세와 결혼해서 포르투갈 왕국의 왕비가 된다.[2] 카탈리나 왕비는 자녀들의 교육을 인해 도서관을 설립하고, 궁정에 살롱을 열였다. 인문학자 주아나 바즈와 푸블리아 오르텐시아 데 카스트로, 시인 루이사 시구아 데 벨라스코 등 여러 여성 학자들을 궁정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부부간의 금슬이 좋았는지 두 사람 사이에서는 총 9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전부 요절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요절했고, 그나마 마리아 마누엘라와 주앙 마누엘은 장성해서 결혼은 했다.
그러나 스페인으로 시집 간 마리아 마누엘라는 돈 카를로스를 낳다가 사망했고, 카탈리나의 자식들 중 유일한 후계자였던 주앙 마누엘조차 자신의 아들이자 카탈리나의 손자가 태어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결핵으로 죽었다.
그렇게 카탈리나는 살아 생전에 9명의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냈고, 유복자인 손자 세바스티앙을 대신해 약 5년간 포르투갈의 섭정을 맡았다.
부부간의 금슬이 좋았는지 두 사람 사이에서는 총 9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전부 요절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요절했고, 그나마 마리아 마누엘라와 주앙 마누엘은 장성해서 결혼은 했다.
그러나 스페인으로 시집 간 마리아 마누엘라는 돈 카를로스를 낳다가 사망했고, 카탈리나의 자식들 중 유일한 후계자였던 주앙 마누엘조차 자신의 아들이자 카탈리나의 손자가 태어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결핵으로 죽었다.
그렇게 카탈리나는 살아 생전에 9명의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냈고, 유복자인 손자 세바스티앙을 대신해 약 5년간 포르투갈의 섭정을 맡았다.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 (Catherine of Austria) | |||
부르봉의 이자벨 (Isabel of Bourbon) | |||
후아나 엔리케스 (Juana Enriquez) | |||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 / 자녀 |
1남 | 포르투갈의 왕세자 아폰수 (Afonso, Hereditary Prince of Portugal) | |||
1녀 | ||||
2녀 | 이자벨 공주 (Infanta Isabel) | |||
3녀 | 베아트리스 공주 (Infanta Beatriz) | |||
2남 | 포르투갈의 왕세자 마누엘 (Manuel, Hereditary Prince of Portugal) | |||
3남 | 포르투갈의 왕세자 펠리페 (Philip, Hereditary Prince of Portugal) | |||
4남 | 디니스 왕자 (Infante Denis) | |||
5남 | ||||
6남 | 안토니우 왕자 (Infante Antonio) |
만화 아르테의 등장인물로 나온다. 실제 역사대로 태어날 때 부터 유폐되었지만 어머니와 함께여서 유폐 생활이 힘들지 않았지만 단조로운 생활이 무료한 와중에 결혼이 결정되어 자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행을 떠나서 피렌체로 온 후, 신분을 감추기 위해 '이레네' 라는 가명을 쓴 채 스파냐(에스파냐)의 귀족 여성으로 등장.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을 대하는 해맑기도 하지만 과연 공주답게 기품과 박력이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스페인의 사극 위대한 대제, 카를로스에서도 등장한다. 어머니 후아나 1세의 광증 때문에 토르데시야스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후아나의 곁에 있던 자식이다 보니, 정신이 불안정한 어머니의 애착인형 신세로 반 감금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를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있었다. 언니 레오노르와 오빠 카를로스도 이를 보다 못해 카탈리나를 토르데시야스에서 데려오려고 하지만, 후아나의 광증이 도져 카탈리나를 돌려보내고 어머니에게 돌아간 카탈리나는 카를로스를 원망한다. 그러나 주앙 3세와의 결혼이 결정되어 포르투갈로 가면서 카를로스와 화해하고 어머니와도 작별 인사를 한다. 말년에는 시누이이자[9] 언니 레오노르의 딸로 조카인 마리아를 친딸처럼 키우다가 친어머니인 레오노르와의 만남을 주선하지만, 마리아가 오히려 카탈리나를 어머니로 여기며 레오노르와 만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충격받은 언니에게 역으로 원망만 산다.
스페인의 사극 위대한 대제, 카를로스에서도 등장한다. 어머니 후아나 1세의 광증 때문에 토르데시야스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후아나의 곁에 있던 자식이다 보니, 정신이 불안정한 어머니의 애착인형 신세로 반 감금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를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있었다. 언니 레오노르와 오빠 카를로스도 이를 보다 못해 카탈리나를 토르데시야스에서 데려오려고 하지만, 후아나의 광증이 도져 카탈리나를 돌려보내고 어머니에게 돌아간 카탈리나는 카를로스를 원망한다. 그러나 주앙 3세와의 결혼이 결정되어 포르투갈로 가면서 카를로스와 화해하고 어머니와도 작별 인사를 한다. 말년에는 시누이이자[9] 언니 레오노르의 딸로 조카인 마리아를 친딸처럼 키우다가 친어머니인 레오노르와의 만남을 주선하지만, 마리아가 오히려 카탈리나를 어머니로 여기며 레오노르와 만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충격받은 언니에게 역으로 원망만 산다.
[1] 펠리페 2세의 첫 아내이자, 돈 카를로스의 어머니로 출산 후 4일 만에 과다 출혈로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국 사망했다.[2] 주앙 3세의 여동생 이자벨은 카탈리나의 오빠 카를 5세와 결혼했으니 겹사돈이다.[3] 두아르트 1세의 장녀이자 페란도 1세의 외손녀이다.[4] 주앙 1세의 외손자이다. 용담공 샤를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5] 주앙 1세의 손녀이다.[6] 아스투리아스 공 카를로스 [7] 카를 5세와 포르투갈의 이자벨의 차녀. 외사촌이자 고종사촌간이다.[8] 세바스티앙 1세 [9] 시아버지 마누엘 1세가 세번째 왕비인 레오노르에게서 낳은 딸(남편 주앙 3세는 두번째 왕비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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