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기혼자가 본인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서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간통 관계에 대해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자기합리화나 정신승리를 하는 좋지 않은 행동을 비꼬는 용어다.
실제 의미는,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편이나 집단에게는 관대하고 괜찮지만, 주로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나 아랫사람 등이 말이나 행동을 하면 까내리거나 비난하면서 고깝거나 띠껍게 여기는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은 다 로맨스 너가 하는 것은 다 불륜, 나는 다 합리적이고 너는 다 비합리적, 내가 가는 방향은 옳은 방향이지만 너가 가는 방향은 틀린 방향, 나는 다 정답이고 너는 다 오답, 나는 다 해도 되지만 너는 절대로 하면 안 돼'라는 남녀노소 동서고금의 이기주의를 적절히 나타낸 표현이다.
2010년대 들어서 텔레비전나 공식 석상에서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이 쓰일 만큼 대중화된 단어다. 하도 유명한 말인데다 4글자다 보니 고사성어 혹은 사자성어로 잘못 아는 사람도 있는데[2], 저 4글자 중에서 한자는 '不' (아니 불) 단 하나 뿐이고, 심지어 '로'는 아예 외국어의 준말이다.
이 문구의 순서 앞 뒤를 바꾸어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거나 줄여서 '남불내로'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발음이 불편해서 거의 쓰이지 않고, '내로남불'에 흡수 통합되었다.
비슷한 속담으로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가 있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기혼자가 본인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서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간통 관계에 대해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자기합리화나 정신승리를 하는 좋지 않은 행동을 비꼬는 용어다.
실제 의미는,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편이나 집단에게는 관대하고 괜찮지만, 주로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나 아랫사람 등이 말이나 행동을 하면 까내리거나 비난하면서 고깝거나 띠껍게 여기는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은 다 로맨스 너가 하는 것은 다 불륜, 나는 다 합리적이고 너는 다 비합리적, 내가 가는 방향은 옳은 방향이지만 너가 가는 방향은 틀린 방향, 나는 다 정답이고 너는 다 오답, 나는 다 해도 되지만 너는 절대로 하면 안 돼'라는 남녀노소 동서고금의 이기주의를 적절히 나타낸 표현이다.
2010년대 들어서 텔레비전나 공식 석상에서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이 쓰일 만큼 대중화된 단어다. 하도 유명한 말인데다 4글자다 보니 고사성어 혹은 사자성어로 잘못 아는 사람도 있는데[2], 저 4글자 중에서 한자는 '不' (아니 불) 단 하나 뿐이고, 심지어 '로'는 아예 외국어의 준말이다.
이 문구의 순서 앞 뒤를 바꾸어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거나 줄여서 '남불내로'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발음이 불편해서 거의 쓰이지 않고, '내로남불'에 흡수 통합되었다.
비슷한 속담으로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가 있다.
요즘 학생들의 농담 중에 "로맨스와 스캔들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내가 하는 연애는 로맨스이고 남이 하는 연애는 스캔달"이라는 것이다. (김인회, 기독교 100년과 한국 교육, 『기독교사상』 1984년 5월호)하기사 지가 하믄 로맨스고 남이 하믄 스캔달이라 카기도 하고, 또 남한테 안 들키면 로맨스고 들키믄 스캔달이라 카는 말도 있습디더마는 참말로 우리는 달라예. (1987년 이문열 『구로 아리랑』)
이와 같은 표현들은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1984년 나온 잡지에 요즘 학생들의 농담이라고 소개되었고, 1987년 발표된 이문열의 단편 『구로 아리랑』에도 등장한다. 1993년에는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제목의 책도 발간되었다.(책 광고 보기)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김재익이 갈등이 심했던 허화평에게 하는 말의 일부로 나온다.
1996년 6월 12일에 국회본회의장에서 신한국당 박희태 의원이 사용하면서[3][4] 본격적으로 유행어가 되기 시작하였다. "야당의 주장은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부동산을 하면 투자, 남이 사면 투기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1996년에 여소야대 정국 하에서 정당의 '의원 빼내기'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이 문장을 내로남불이라고 축약해 사자성어처럼 쓰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나중의 일로, 2004년 4월 한 블로그에 이러한 용례[5]가 보이며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2009년 10월 당시 조전혁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전북 지역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이 교육정보공개법을 위반한 것을 지적하면서 "이 같은 행동은 '내로남불'식의 행동이다"고 지적한 것으로, 국감장 내 교육 관계자들이 이색적인 신조어를 만들어냈다고 수근거리기도 했다. #
취사선택적인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하는 것은 옳은 것이고 남이 하는 것은 잘못한 거라며 상대방이 무조건 잘못했거나 이상한 거라고 주장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사자성어. 내로남불을 한자로 옮기면 아시타비인데 내로남불을 사자성어로 옮기면서 만든 신조어에 가깝다. 2020년에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가 선정되었다. 교수신문이 906명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는데 32.4%에 해당하는 588명이 아시타비를 선정하였다. 신조된 사자성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사례는 처음이다. 아시타비를 선정한 정태연 교수는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리고 서로를 상스럽게 비난하며 다툼만 일삼는 국회에게 서로 협력해서 건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먼저 하라고 일침을 가하였다. 역시 아시타비를 선정한 최재목 교수는 국회는 물론 팬데믹을 두고도 사회에서 내로남이 자행되는 모습에 아시타비를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내로남불의 핵심은 동일한 기준 아래 똑같은 처지의 행위자들 중 1. 누구는 되고 누구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는 이중잣대, 2.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편에게는 관대하고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같은 행동을 하면 윤리적·감정적·이성적으로 과소평가하고 비난하고 보수적인 모습, 3.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말을 바꿔 자신한테 한없이 유리한 쪽으로만 주장하면서 정작 상대에겐 (자신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거침없는 비난과 잣대질을 하는 이중적인 면모 또는 행동을 가진 사람을 비판하는 것에 있다. 즉, 자신의 고정관념만으로 이때 아마 어떻게 했을 거다 가정하여 일반화하면 절대로 안 된다. 종류가 다른 사건을 얼핏 비슷해 보인다고 억지로 엮어 내로남불이라고 공격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이전에 생긴 사건과 얼핏 비슷해 보이더라도 조금 파 보면 이전 사건과 전혀 다른 경우가 많고, 현대에는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사건인 경우도 많아서 똑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잘못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특정 상황에서 침묵했다는 것을 들어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할 경우에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확실하게 이득을 얻기 위해 침묵했다는 근거부터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건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때도 비판은 했으되 묻혔거나 주위의 압박 때문에 대놓고 비판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잘 모르는 사건이라 일부러 쉬쉬한 걸수도 있고,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이익이거나[6] 그 문제를 비판하면 되레 자신이 손해를 입는 경우[7] 행동에 옮기기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즉, 내로남불의 근거가 '행동을 했다'와 달리 '행동을 하지 않았다'일 경우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일부러 침묵했을 뿐 현재는 비판한다', 또는 '옛날에는 비판했지만 현재는 철저히 침묵한다'의 구조에서 이 말을 쓸 때는 주의가 요구된다.
적절하고 그럴듯한 사유가 있어서 행동이 바뀌는 것은 내로남불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버스 안에서 담배를 자주 피우던 사람이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이후에는 다른 사람이 버스에서 담배를 함부로 피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자신이 아이를 가진 이후 타인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반대했다면 갱생으로 볼 수 있다.[8]
과거 특정 상황에서 침묵했다는 것을 들어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할 경우에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확실하게 이득을 얻기 위해 침묵했다는 근거부터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건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때도 비판은 했으되 묻혔거나 주위의 압박 때문에 대놓고 비판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잘 모르는 사건이라 일부러 쉬쉬한 걸수도 있고,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이익이거나[6] 그 문제를 비판하면 되레 자신이 손해를 입는 경우[7] 행동에 옮기기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즉, 내로남불의 근거가 '행동을 했다'와 달리 '행동을 하지 않았다'일 경우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일부러 침묵했을 뿐 현재는 비판한다', 또는 '옛날에는 비판했지만 현재는 철저히 침묵한다'의 구조에서 이 말을 쓸 때는 주의가 요구된다.
적절하고 그럴듯한 사유가 있어서 행동이 바뀌는 것은 내로남불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버스 안에서 담배를 자주 피우던 사람이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이후에는 다른 사람이 버스에서 담배를 함부로 피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자신이 아이를 가진 이후 타인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반대했다면 갱생으로 볼 수 있다.[8]
"내로남불이다"라는 말은 쉽게 써먹을 수 있는 만큼 남용되는 경우도 많아 주의를 요한다.
먼저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필연적으로 가진 문제는 설령 남의 잘못에 대하여 올바른 지적을 하더라도 지적한 사람을 걸고 넘어져서 그 주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용도로 쓰인다. 즉,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 반성이나 잘못의 인정을 회피하려는 목적에서 상대를 인신공격을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기 위해 둘러대는 궁여지책으로 남용되는 것이다. 비판하는 사람의 과거 행적은 비판하는 논리의 정합성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지만,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쓰며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을 대는 것은 인신공격의 오류(피장파장+특수 환경 공격)일 뿐이다.
내로남불이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런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기 이전에 "남에게 잘못을 지적하거나 남에게 비난을 할 때에는 지적하는 사람부터(비난하는 사람부터) 흠이 없어야지 설득력이 있다"[9]는 인식이 지배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내로남불이다"라는 말은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지적하는 사람에게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면서 공격하여 조롱의 효과까지 가지는 무기다. 특히 오늘날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의 과거 행적을 검색하여 모순되어 보이는 발언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점에서 '내로남불이다!'라는 비판은 매우 편리할 뿐 아니라 구체적 근거까지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그 때문에 키보드배틀 뿐만 아니라 여론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한 정치권에서도 줄곧 쓰이는 것이다.
현대에는 새로운 분야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문제의 대부분도 예로부터 내려온 여러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10]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복잡해진다는 사실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상당수의 사회 문제는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 사실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문제의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개인이 모든 분야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옛날에 발생하여 지금도 논란이 되는 사회문제의 경우는 먼저 자료(또는 사료)부터 수집해 해석할 능력이 필수가 되었다. 즉, 배경지식이 있어야 특정 분야의 문제와 관련하여 자기 나름의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쉽게 입장을 밝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특정 사건들이나 분야에서 활발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유사한 형태의 다른 분야에서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거나 애초에 그 분야에 그런 문제가 있었는지 알기조차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한 대안도 없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턱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진짜로 그랬다가 개피본 사람을 무조건 내로남불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에 '입꾹닫' 표현으로 대표되는 가장 중요한 특정 분야에는 정작 목소리도 하나 안/못 냈다면서 내로남불로 몰아가 목소리 자체를 조롱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쿨찐들의 내로남불 논리는 위험하다.
결국 이른바 내로남불 논리에 근거하여 남을 비판할 경우 먼저 그 상황이 이중잣대에 해당하는지 또한 본인의 현재 행동이 옳은 건지 옳지 않은 건지부터 엄격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한 검토도 없이 무작정 '내로남불이다!'라고 비판을 과하게 남용할 경우 이는 부당한 비판으로서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생산적인 토론, 나아가 사회 운영에 대한 활발한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다른 가능성을 고려함도 없이 조롱 섞인 언어로써 그 사람의 악의나 무지를 부당하게 추론할 위험이 있고, 역으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
먼저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필연적으로 가진 문제는 설령 남의 잘못에 대하여 올바른 지적을 하더라도 지적한 사람을 걸고 넘어져서 그 주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용도로 쓰인다. 즉,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 반성이나 잘못의 인정을 회피하려는 목적에서 상대를 인신공격을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기 위해 둘러대는 궁여지책으로 남용되는 것이다. 비판하는 사람의 과거 행적은 비판하는 논리의 정합성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지만,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쓰며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을 대는 것은 인신공격의 오류(피장파장+특수 환경 공격)일 뿐이다.
내로남불이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런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기 이전에 "남에게 잘못을 지적하거나 남에게 비난을 할 때에는 지적하는 사람부터(비난하는 사람부터) 흠이 없어야지 설득력이 있다"[9]는 인식이 지배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내로남불이다"라는 말은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지적하는 사람에게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면서 공격하여 조롱의 효과까지 가지는 무기다. 특히 오늘날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의 과거 행적을 검색하여 모순되어 보이는 발언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점에서 '내로남불이다!'라는 비판은 매우 편리할 뿐 아니라 구체적 근거까지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그 때문에 키보드배틀 뿐만 아니라 여론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한 정치권에서도 줄곧 쓰이는 것이다.
현대에는 새로운 분야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문제의 대부분도 예로부터 내려온 여러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10]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복잡해진다는 사실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상당수의 사회 문제는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 사실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문제의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개인이 모든 분야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옛날에 발생하여 지금도 논란이 되는 사회문제의 경우는 먼저 자료(또는 사료)부터 수집해 해석할 능력이 필수가 되었다. 즉, 배경지식이 있어야 특정 분야의 문제와 관련하여 자기 나름의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쉽게 입장을 밝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특정 사건들이나 분야에서 활발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유사한 형태의 다른 분야에서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거나 애초에 그 분야에 그런 문제가 있었는지 알기조차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한 대안도 없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턱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진짜로 그랬다가 개피본 사람을 무조건 내로남불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에 '입꾹닫' 표현으로 대표되는 가장 중요한 특정 분야에는 정작 목소리도 하나 안/못 냈다면서 내로남불로 몰아가 목소리 자체를 조롱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쿨찐들의 내로남불 논리는 위험하다.
결국 이른바 내로남불 논리에 근거하여 남을 비판할 경우 먼저 그 상황이 이중잣대에 해당하는지 또한 본인의 현재 행동이 옳은 건지 옳지 않은 건지부터 엄격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한 검토도 없이 무작정 '내로남불이다!'라고 비판을 과하게 남용할 경우 이는 부당한 비판으로서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생산적인 토론, 나아가 사회 운영에 대한 활발한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다른 가능성을 고려함도 없이 조롱 섞인 언어로써 그 사람의 악의나 무지를 부당하게 추론할 위험이 있고, 역으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
[1] 해당 가사는 0:29부터 나온다.[2] 4음절 모두 한자음에 있는 발음이라 착각하기 쉽다.[3] 박희태 의원은 이것 말고도 총체적 난국(Total Crisis의 초월 번역)이나 '호박이 줄 긋는다고 수박 되냐' 등의 단어를 자주 인용하여 유행어로 만든 걸로 유명하다. 총체적 난국은 이전부터 쓰이던 문구였으며, '호박이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는 본래 이주일의 유행어 중 하나이며, 폭탄주는 박희태가 검사였던 때부터 상용화된 것이다. 물론 저걸 대변인 시절에 유행어로 밀어붙인 건 박희태 본인이다.[4] 이후 박희태는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인 2014년 가을, 골프장에서 캐디를 성추행하면서 몸소 내로남불을 실천했는데 이 과정에서 "딸 같아서 그랬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5] 다만 네이버 블로그 특성상 나중에 수정을 해도 최초 게시 시각만 표시되므로 확실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6] 과거 노예제나 인종 차별에 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은 지식인이나 성직자들이 해당된다.[7] 내부고발이 해당된다.[8] 당연하지만, 이때는 자신이 먼저 버스에서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무조건 붙는다.[9] 쉽게 말해 먼저 본인부터 상대방에게 지적하거나 비난할 자격도 되고 대중들도 호응해줄 정도로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등의 속담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것.[10]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 갈등만 해도 2000년 전부터 시작해야 제대로 파악된다.[11] 로씨야는 러시아의 문화어(북한말) 표기다. 문화어로 러시아의 정식 명칭인 러시아 연방을 칭할 때는 로씨아련방이라고 한다.[12] 심지어 이때는 마르크스가 살아있을 시절로, 파리 코뮌에도 마르크스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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